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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89화 (289/800)

# 289

신성력이 꼭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신성력은 마족을 상대로 함에 있어서 일종의 약점을 찌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1.25배, 아니 2배 데미지가 들어간다고 가정해도 그 효과는 어마무시하다.

나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을 던전마다 한 명씩 배치하고자 했다.

본진에 루나를, 그리고 기네비어와 갤러해드를 필요에 따라 배치하며 마물들의 침공에 대처하고자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가 가장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전장은 '마물들이 엄청나게 많은 적진'이었다.

"꺄하하하!"

즉, 남의 던전에서 가장 미쳐 날뛸 수 있다. 륜과 그레모리는 물만난 고기처럼 신성력을 사용하며 적의 총공세를 막아냈다. 둘이서.

"그레모리야,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내버려둬라. 나중에 올라갈 때 도트템 먹는다."

"제어가 잘 안 되는 걸 어쩔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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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나게 날뛰는 바람에 전장 전체가 뒤집어졌다. 덕분에 우리의 진격로까지 신성력이 깔리게 되었고, 그대로 길을 걸으면 분명 발바닥이 엄청나게 따가울 것이다.

"완전 레고가 깔린 길이 되었군."

적들조차도 발을 디디는 것을 꺼려할 정도로 지상 1층 전체에는 신성력이 자욱하게 묻어있었다.

언데드인 듀라한들은 유니콘과 함께 본진으로 귀환해서 피해가 전무했고, 신성력으로 피부가 따끔거리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만 아픈 건 괜찮아.'

고통은 내가 감내하면 된다. 내가 아플수록 적은 더욱 아플 것이며, 내가 죽을 것 같으면 적은 진짜로 죽을 것이다.

"슬슬 정리되기 시작하는 군. 그럼 작전 2단계로 돌입한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지상조와 지하조.

탑을 등반하며 위에서 내려오는 적들을 막아내는 1군과 지하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전부 몰살하는 2군. 2군의 소탕 작업이 끝나는 즉시, 본대인 1군과 합류하여 탑의 끝까지 오른다.

그리고 할파스를 죽여 인장을 빼앗는다. 할파스 세력 전체를 내 것으로 만든다.

할파스의 이름을 가질 생각은 없지만, 이 정도 됐으면 38위 던전의 주인이라고 떵떵거리면서 살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는가.

"샤이탄, 작전 시작이다!!"

[지상조를 지휘하여 주십시오. 지하조를 투입하겠습니다.]

"오냐!"

포털 너머에서 한 무리의 마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던전을 공략해 온 공성의 스페셜리스트들.

〈슬라임 드래곤〉. Lv.55. ★★★.

〈빅슬라임〉. Lv.35. ★★.

〈슬라임〉. Lv.15. ★.

모두가 각자의 레벨에 맞춰 만렙을 찍은 최정예 슬라임 부대가 바로 우리 군단의 탑을 등반할 최정예 1군이다.

"가자, 라임!!"

꾸르륵.

그 슬라임들의 선두에는 슬라홀, 라임이 있다. 다섯 의 슬라임 드래곤을 몰고 온 라임은 슬라임 드래곤의 빈 안장을 가리켰다.

"륜, 그레모리! 앉아라!"

라임이 하나. 륜이 하나. 그레모리가 하나. 한 명당 각자 하나씩 앉은 슬라임 드래곤의 안장은 자리가 한 자리 비었다. 나는 레벨이 만렙은 되지 않은, 짬이 가장 낮은 녀석에게 목책 안쪽을 가리켰다.

"너는 여기서 대기하다가 샤이탄이 지시를 하면 올라오거라. 알겠느냐?"

꾸르륵.

남은 슬라임 드래곤은 내 지시에 따라 목책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그와 교차하듯 포털 너머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군단장님!"

"왔느냐!"

안드라스로부터 낳은 나의 딸, 하르퓨이어가 대규모의 하피 엔젤 부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바닥에 깔린 신성력의 잔재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하피 부대, 모두 준비!"

하피와 하피 엔젤들이 섞인 공중 부대는 각자 맡은 파트너에 따라 슬라임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내가 탄 슬라임 드래곤 근처로는 무려 6명의 하피들이 달라붙었다.

구구구구.

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할파스 군단의 마물들이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블린이든 뭐든 되는 대로 일단 다 때려박는 움직임이었고, 아무 생각없이 저걸 뚫는 건 하책이다.

'그러니까 계단은 스킵하고 바로 천장의 포털로 올라간다.'

2층의 탑이 할파스 군단의 진정한 위협이었다. 계단의 마물들 따위는 모험가들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날아올라라, 하피들아---!!"

퍼드드득!!

하얀 날개의 하피들이 각자 맡은 슬라임들을 들고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발에 슬라임 하나를, 누군가는 두 명이 달라붙어 빅슬라임을 들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

백여 명이 넘는 하피들이 일제히 슬라임들을 들고 날아올랐다. 계단의 마물들이 우리의 전략을 깨닫고 황급히 대처를 하려고 하지만 역부족.

그들은 원거리 공격 수단이 거의 전무했다.

"흐하하, 무혈 입성이다!!"

저주받은 와이번이 체공하며 버티고 있던 상공까지 무려 20m. 하피들은 슬라임 특공대를 계단의 끝에 안착시켜주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

'하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하피는 전투요원이 아니야.'

나는 슬라임 드래곤 2호기와 함께 계단의 끝에 내려앉았다. 나를 수송한 하피들은 미소와 함께 날개를 힘겹게 펄럭이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슬라임을 옮긴 하피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알을 낳던 애들을 급히 부른 거였으니까.'

하피들 대부분이 10레벨 이하의 마물들이었다. 저주받은 와이번 혼자서도 전멸시킬 수 있는 정도의 전력이었고, 그들은 20m 가량의 높이를 지상에서 천장까지 슬라임을 수송한 것 만으로 전력을 다했다.

'돌아가면 하루 동안은 알을 안 낳아도 좋다.'

원하면 낳아도 좋지만, 근육통을 앓을테니 하루는 편하게 쉬면 좋을 터.

"샤이탄, 회수----!!"

[회수조를 투입하겠습니다.]

포털 너머에서 끼룩끼룩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울타리의 문이 활짝 열리며, 검은 까마귀 머리의 조인들이 달려왔다.

"라! 스! 라! 스!!"

"하피들을 회수해서 본진으로 귀환하라스!!"

안드라스 종은 남녀를 막론하고 달려와 바닥에 떨어지는 하피들을 구조했다. 날지 못하는 안드라스들은 나는데 최선을 다한 하피들을 구조해 포털로 금방 사라졌다.

"흐흐, 됐다. 우리는 이제 올라가자!"

꾸르르륵!

나는 슬라임 드래곤의 기수를 천장으로 돌렸다. 슬라임들은 일제히 내 지시에 따라 계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마, 막아---!!"

근처에 있던 고블린 하나가 황급히 계단을 올라오며 우리의 후미를 노리려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대처는 마련되어있다.

"륜! 이쪽으로 와라!"

"네!"

나는 가장 아래쪽 계단에 착지한 륜에게 지시를 내렸고, 륜은 슬라임 드래곤의 안장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륜은 계단에서 수 미터를 뛰어올랐고, 나는 허공에 뜬 륜의 허리를 휘감아 끌어안았다.

"3호기!"

꾸르륵!

3호기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비장한 각오로 머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쿠---웅!!

슬라임 드래곤 3호기가 계단 아래쪽을 향해 몸을 처박았다. 길게 늘어진 3호기는 아주 빠른 속도로 계단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저주받은 와이번의 죽음에 따라 안 보이던 계단이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계단은 마나로 이루어진 아주 특별한 통로였다.

즉, 슬라임 드래곤이 녹이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통로였다.

"야, 큰일이야!"

"젠장, 나도 보고 있다!"

"녹이는 속도보다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빨라요!!"

계단의 마물들은 역행하여 올라오기 시작했다. 3호기 혼자서 계단을 끊어버리기에는 너무 속도가 느렸다.

"젠장, 안되겠다! 내가 내려가서-"

꾸르륵!

"뭐라고요? 아, 안 돼!!"

륜이 비명을 질렀다. 라임은 창백한 얼굴로 3호기를 가리켰다. 나 또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꾸르륵.

3호기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올렸다. 마치, '나는 신경쓰지 말고 가라'는 듯한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저는 신경쓰지 말고 가래요!!"

끄어어어어!!

고블린을 제친 미노타우르스 하나가 3호기를 향해 도끼를 들어올렸다. 3성 마물로 아무리 슬라임 드래곤이라고 해도 힘에 의해 집어던져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

꾸드드득!!

3호기는 자신이 디디고 있던 발판을 통째로 몸속에 집어삼켜버렸다. 계단 전체가 슬라임 드래곤의 몸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계단은 끊겼다.

동시에 3호기가 디딜 계단도 사라졌다.

"3호기---!!"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는 허공을 갈랐다. 앞으로 휘두르는 무게 때문에 계단에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러면서 미노타우르스는 떨어지는 3호기를 집어들었다.

끄어어엉---!!

격한 비명과 함께 미노타우르스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난간도 없는 나선형 구조라, 옆으로 밀리면 20m 높이에서 바로 떨어지는 식이었다.

끄어엉!!

미노타우르스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분노를 3호기에게 표출했다.

콰드득---!

"윽...!"

3호기는 터져버렸다. 미노타우르스는 걸레를 비틀어짜듯 3호기를 비틀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은 바닥에 처박혀 모가지가 꺽였다.

"저 새끼가--!!"

"주인님! 지금은...!"

"알아, 젠장!!"

계단의 마물들은 더이상 올라오지 못했다. 3호기는 계단을 끊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인연소환〉

〈슬라임 드래곤(3호기)〉. ★★★. Lv.55.

# 중급마석 16개 필요.

# 재소환시 레벨 1 감소.

"네 희생은 잊지 않겠다! 살려서, 꼭 살려서 4성으로 만들어주마!!"

할파스 던전의 중급 마석을 모조리 털어, 슬라임 드래곤을 더 높은 존재로 만들어주리라. 나는 고개를 천장으로 돌렸다.

"위로 달려! 모두 나를 따르라--!"

나와 슬라임 부대는 지상 2층, 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우리 군단 최초의 전사자를 뒤로 한 채, 앞으로 달렸다.

* * *

"...조금 의외인데, 슬라임 하나 죽었다고 저렇게 화를 내다니."

"어떤 존재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군단의 일원이라면, 그리고 군단내에서 능력만 있다면."

샤이탄은 인연 소환의 리스트에 오른 슬라임 드래곤의 필요 마석을 확인했다. 슬라임 드래곤은 탑을 공략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만큼, 빠르게 부활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액 때문에 중급 마석이 모자라군요, 쳇."

샤이탄은 혀를 차며 한 번 더 재고를 확인했다. 하지만 시스템부터가 중급 마석이 부족하다고 연거푸 알리고 있었다.

"이러면 꼬이는데."

"3호기라는 애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그런건 아닙니다만, 원래 계획은 슬라임 드래곤 넷이 전부 올라가는 거였습니다. 꼬인 이상 어쩔 수 없군요. 아아."

샤이탄은 목을 가다듬고 주인에게 전언을 날렸다.

"하르퓨이어가 체력을 회복하는대로 대기 중인 아이를 올려보내겠습니다. 말씀하신 '조커'는 3호기를 부활시켜서 함께 올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부디 앞으로 나아가 주십시오."

[맡긴다, 샤이탄!!]

파후우는 샤이탄에게 '맡긴다'는 말과 함께 등반을 시작했다.

"그럼 당신, 이제 선택하시죠."

샤이탄은 시스템창을 옆으로 밀어두고, 검은 로브를 입은 여인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분노입니까, 오만입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살아남고 싶어서 선택하는 거야. 절대로 그 이상한 짓거리가 좋아서 선택하는 게 아니야."

"서론이 깁니다."

"칫. 됐어. 빨리 보내주기나 해."

여인은 후드를 뒤집어썼다. 후드의 위에는 노란 부리와 동그란 눈이 달려있었다.

"나 진짜 죽을 각오를 하고 가는 거야. 버리면 안 된다."

"주인님께서 나름 당신을 아끼시는데 어찌 제가 버리고 말고 하겠습니까. 작전은 완벽합니다. 당신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모든 정보를 오픈했다는 가정 하에."

"......그러니까 내가 직접 가는 거 아니야. 나보고 증명하라고. 분노인지, 오만인지."

펭귄 로브의 여인, 샥스는 포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다 발걸음을 돌렸다.

"생각해보니 조금 화나네? 나한테 그렇게 박아놓고 나를 의심해?"

"의심하지요. 주인님께 여자와 부하는 다릅니다. 무슨 뜻인지는 아실텐데요?"

"......칫, 그래. 부하할게. 하면 되잖아. 오만의 군단에서 배신한 녀석이 분노의 군단 부하로서 가치를 증명하라 이거 아니야?"

"물론이죠."

지하조.

투입인원 단 한 명.

"......나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기는 해. 그러니까 약속해. 너, 내가 지하 1층 완전히 밀어버리면 내 조건을 지지해달라고."

"물론입니다. 주인님께서도 충분히 인정하실 겁니다."

샤이탄은 로브 아래에 번들거리는 샥스의 눈빛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적을 세우십시오. 오만의 군단을 상대로 이기면 인장은 주인님께서 취하시게 되겠지만...."

"할파스의 이름은 아무도 가지지 않게 되겠지."

"그렇습니다. 부디 당신께서 새로운 할파스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자면, 지하조는 한 명 더 있습니다."

"뭐?"

샥스는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혼자서 간다며!"

"당신이 오만했다면 당신 대신 갈 자가 한 명 있었을 뿐입니다.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데려가십시오. 주인님께서도 여차하면 동원하라고 하셨으니까요."

"...누군데?"

"접니다."

샥스는 자신의 뒤에 나타난 오크에 오한이 들었다.

"당신의 앞을 책임질 오크 성기사, 갤러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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