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287화 (287/800)

# 287

38위 던전의 간부는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까.

우리 세력의 간부진이라고 할 수 있는 륜, 샤이탄, 그레모리 등과 비교하면 과연 얼마나 강할까. 직접 맞붙어보면 알 수 있기는 하지만, 나는 미리 정보통을 통해 적의 전력 대부분을 파악했다.

저주받은 와이번, 천둥군주, 그리고 시체매.

셋다 레벨이 무려 80대에 이르는 괴물들이더라. 포털의 방향이 바뀌자마자 공격을 들어갔다면 나부터 저 세 명의 선에서 커트 당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카가가각!

저주받은 와이번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이빨을 딱딱거리며 내 발목을 쥐어뜯으려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내 발은 정확히 저주받은 와이번의정 수리를 밟았고, 와이번은 고개를 땅에 처박은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어쩔 거냐, 남의 무기를 이렇게 멋대로 망가뜨려서."

나는 저주받은 와이번이 산산조각 내버린 메이스의 파편을 집어들었다.

수직으로 집어던진 메이스를 귀신같은 반응속도로 눈치채고 아가리를 쩍 벌리더라.

그리고 메이스를 입안에 정확히 넣고 이빨로 깨물어부수더라.

그래서 나는 메이스를 더욱 꼭꼭 집어삼킬 수 있게, 하늘 높이 뛰어올라 정수리를 발로 짓밟아버렸다. 나의 힘과 무게에 의해, 와이번은 입이 꽉 막히고 말았다.

"어어, 저항하지 마라. 지금 입천장 벗겨질 걸?"

"크르르...!"

와이번은 살기어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입안에 메이스의 파편이 철조각이 되어 진탕을 만들어놓았을텐데, 역시 레벨 80에 이르는 마물다웠다.

주르륵.

입천장이 전부 벗겨져 이빨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건만, 와이번은 나를 죽이기 위해 다 뜯겨나간 날개를 연신 퍼덕거렸다.

"씁. 이래서야 닭봉은 못해먹겠는데."

날개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피막과 살을 꿰뚫어버린 화살은 전부 신성력이 담겨있던 화살이었으니, 구멍 근처에 신성력이 살포시 묻어있었다.

마치 뼈만 남은 고등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날개는 먹을 살점이 없었다.

"네 별명이 노랑이라고 했지?"

"!!"

와이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군단 내에 통용되는 자신의 이명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혼란이 온 듯 했다. 입으로는 계속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밟고 있는 발을 떼지 않았다.

"응?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흐흐, 알 필요있나?"

까드드득.

나는 정수리를 밟은 다리의 무릎 위에 팔짱을 끼고 엎드렸다. 상체의 무게까지 보태어 눌렀고, 와이번의 이빨은 시뻘게질 정도로 피가 흘러나왔다.

"그냥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나도 까딱하면 실수를 할 뻔 했지. 얘들아!!"

내 지시에 인간 모험가들이 품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을 꺼냈다. 모험가들 중에서도 가학체질을 가진 다섯 명에게 특별히 지급한 물건으로, 그들은 교도관같은 복장까지 갖춘 채 내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네비어, 버프!"

"예...."

기네비어는 힘없이 다섯 모험가의 물건에 신성력을 부여했다. 딱히 이런 상황이 싫다기 보다는, 가학 체질을 가진 누군가가 생각이 난 듯 했다.

'어찌됐든 신성력이 발렸으면 그만이지.'

죽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감히 우리 군단을 넘보는 걸로도 모자라 나와 우리 군단을 능멸한 변종 코카트리스 따위에게는 천벌을 내려줘야했다.

"위치로!"

모험가들은 각자 방해가 되지 않는 적절한 위치를 잡고 손에 든 물건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가까이 다가가면 와이번에 의해 공격을 당할 수 있으니, 원거리에서 와이번의 채력을 빼놓아야 했다.

상대를 구속해놓고 쓰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물건.

우리 군단 운영에 있어서 내가 필요로 느낀 물건.

...그레모리 던전을 습격한 던전 주인 〈아미〉가 어떤 식으로 그레모리를 괴롭혔는지 듣고, 그와 똑같이 갚아주기 위해 만들어낸 물건.

"신성력이 담긴 가죽 채찍은 아플테지...."

손잡이 끝에 달린 사자의 갈기털은 장식일 뿐. 진짜 위력은 채찍에 한가득 뿌려진 기네비어의 축복-신성력이다.

"그레모리가 이거에 분신으로 몇 번을 죽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우리 군단이 당한 수모는 철저히 기억하는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크르르륵!!

나는 와이번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상체를 숙여 무게를 더했다.

"어디 죽을 때까지 채찍에 얻어맞아봐라."

그냥 채찍도 아닌, 신성력이 담긴 채찍을.

"시작해!"

찰싹, 찰싹!

내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섯 모험가들은 신나게 웃으며 채직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실 그냥 적당히 화살을 퍼붓기만 해도 와이번은 사망하게 되겠으나, 이건 내가 할파스 군단을 상대로 벌이는 시위다.

"첫번째는 아미가 그레모리에게 했던 것 처럼 죽여주마. 원망할 거면 우리 세력을 건드릴 할파스를 원망하거라."

나는 한손으로 나의 옆구리를 두드렸다. 복부가 흔들리며 주변에 막대한 울림을 만들어냈고, 붉은 문신의 힘은 오라가 되어 다섯 모험가의 채찍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찰싹, 찰싹!!

나는 서서히 죽어가는 와이번이 미동조차하지 않을 때까지 대가리를 발로 밟고 버텼다.

* * *

"큰일났는데."

금발 여인은 지상 1층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페일 라이더들이야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왔지만, 지금 절찬리에 죽어가는 저주받은 와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할파스의 의형제나 다름없는 존재.

세 간부는 할파스가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전장을 누비고 다녀온 전우이자 동료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끼는 만큼 옆에 두고자 했기에, 할파스는 여러 던전 주인의 이름을 수집하고 나서도 그들에게 던전 주인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런 존재 중 하나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다. 여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했다.

이대로 할파스에게 알린다?

왜 잠에서 깨웠냐고 모진 고문을 받을게 뻔하다. 설령 죽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모른 척 한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저주받은 와이번은 던전 주인이 아니기에 마석을 통한 부활도 가능하다.

"......."

여인은 침묵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예 할파스까지 죽여버렸으면.'

금발 여인은 안드라스 세력-〈분노의 군단〉을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주인이 몇 번이고 바뀐 입장으로서, '인장'은 의욕이 완전히 꺾여버렸다.

마침 잘 됐다.

분노의 인장, 샤이탄은 그래도 말이 잘 통하는 상대였으니.

'군단장은 분명 똑똑한 존재일 거야.'

막무가내 오크를 선봉에 세워 날뛰게 하는 것으로 보아, 인선을 정함에 있어서 다소 괴팍하지만 성과만 내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물을 인간에게 박게 한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자를 가만히 살려두겠는가?

'부디 할파스같은 새대가리가 아니기를.'

여인은 서서히 죽어가는 저주받은 와이번에 침묵했다.

삐빅.

시스템창이 울렸다. 여인은 하복부에 새겨진 인장을 손으로 쓸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노랑이가 명단에 올랐습니다."

여인은 천장을 향해 말했으나, 정작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장본인은 쿨쿨 자고 있을 뿐이었다.

* * *

"이야, 채찍질로 껍질에 칼집 잘 들어간 거 보소. 양념 바르면 장난 아니겠어."

저주받은 와이번은 죽었다. 죽을 때까지 채직을 후려쳤고, 죽을 때까지 위에서 억누르고 있으니 결국 죽어버린 것이다.

"주인님. 진짜로 드실 생각이셨습니까?"

"어. 와이번 고기는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코카트리스도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는데, 그것이 진화하여 하늘을 날아다니기까지 하는 와이번이라면 또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저주받은 와이번은 무수히 많은 채찍질에도 죽지 않았다. 결국 피부의 절반 가까이가 붉은 채찍 자국으로 가득해지고 나서야 숨이 넘어갔다.

"내가 먹기는 이제 좀 그렇겠네. 미안하다, 키메리에스. 마물들이 먹기에는 좀 그렇게 됐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채찍질에 얻어맞아 죽은 게 아니다."

나는 단검을 빌려 채찍질로 속살이 드러난 껍질 속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상처 부위는 분명 피가 맺혀있기는 했어도 그게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그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 신성력에 죽은 거다."

마족에게 있어서 신성력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그 독이 묻은 채찍을 연거푸 얻어맞았으니, 사제들의 공격을 죽을 때까지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먹지는 못하겠네. 씁, 아쉬워라."

나는 로브의 소매를 걷고 와이번의 몸을 뒤집었다. 상처가 가득한 윗부분 보다는 아무래도 발라당 뒤집힌 배부분이 보기에는 편안했다.

자르기 예뻤다. 나는 단검을 와이번의 목덜미에 찔러넣고 쭉 밀어버렸다.

쩌어어억.

날카로운 단검에 내 힘이 더해지니, 가죽과 살은 손쉽게 좌우로 갈라졌다. 속살을 갈라내니 안에는 내장이 고스란히 눈에 보였고, 나는 이런 순간을 대비해 데려온 빅슬라임 하나를 속에 와이번의 속에 집어던졌다.

"그걸 찾아오거라."

꿀럭, 꿀럭.

빅슬라임은 갈려진 와이번의 속으로 들어갔다. 내장을 제거하는 사이, 나는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너희들 지금 저게 비위가 상해서 표정이 안 좋은 거냐, 아니면 지쳐서 힘든 거냐?"

"...후자였는데 이제 전자까지 포함되게 생겼습니다."

모험가 한 명이 당돌하게 말했다. 다른 모험가들 또한 크게 다를게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 미안하다. 그리고 고생했다. 이제 푹 쉬어도 좋다."

선봉부대, 죽음의 기사들과 인간 모험가들의 역할은 이걸로 충분했다. 사실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페일 라이더들을 몇 번이나 격퇴했고, 간부 중 한 명인 저주받은 와이번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나야 그저 메이스를 던지고 대가리를 밟은 것 말고는 특별히 한 게 없었다.

"그런데 쉴 때 쉬더라도 소초는 세우고 쉬어야지?"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군단장님. 저희 열심히 싸웠는데 소초까지 세워야 하나요?"

"이것들이. 누가 너희들보고 소초를 세운다고 하더냐."

"...흐흐흐."

모험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정해진 제몫을 다하고 나니 금방 풀려버린다. 전쟁이기는 해도 군단이 군대는 아닌 만큼, 나는 병력들의 특성에 맞춰 임무를 부여해야했다.

"소초가 세워질 때까지 대기해. 아아, 샤이탄. 공병들을 불러와라."

[지금 바로 투입하겠습니다.]

샤이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털을 타고 한 무리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양손에 통나무를 하나씩 들고 나타난 구울들의 선두에는 하서스와 라스투자드가 서있었다.

[진지를 구축하겠습니다.]

"포털 입구에서부터 설치하는 거 알지?"

[본부대로.]

라스투자드가 조종하는 35마리의 구울.

그리고 하서스가 이끄는 하이구울.

우리 던전 인근의 숲에서 공수해 온 통나무들을 익숙한 손길로 손질한 구울들은 통나무를 하나 둘 땅에 박아넣으며 요새의 입구를 만들었다.

바닥에 구멍을 파서 그 안에 통나무를 밀어넣어 울짱을 만들고, 그 뒤에 사람이 올라가서 견제 사격을 할 수 있는 칸을 만들었다.

모험가들이 일렬로 서서 사격을 할 수 있게 하였고, 가운데에 입구를 만들어 통로를 좁혀버렸다.

우리는 적진 한 가운데에 우리 던전으로 통하는 나무 관문을 만들었다. 모든 시설은 만들어지는 도중이 가장 위험하므로 모험가들은 끝까지 긴장을 유지해야했다.

"...아직 반응이 없네?"

구울들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목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할파스 군단에서는 반응이 아무것도 없었다.

'신중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과도한데.'

지금까지 할파스가 보인 병력 운용을 보면 대충 부하 하나를 찔러넣어 정찰을 했을 것이다. 자기 집 앞마당에 진이 구축되고 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부하 하나 죽으라고 보내면 시스템으로 다 보일텐데?'

어째서 할파스는 부하를 보내지 않는 걸까.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함정이라고 하기에느 너무 허술했다.

"어쨌든 나야 개이득이군. 죽음의 기사들은 본진으로 귀환. 모험가들은 구울들이 요새를 구축하는 즉시 요새에서 휴식을 취한다. 쉬는 동안 마액을 섭취하여 체력과 마나를 보충하라."

"""예!!"""

모험가들은 하나 둘 품안에 넣어둔 알사탕을 하나씩 꺼내 입안에 홀라당 집어삼켰다. 정사와 라스의 방에서 나눠준 타조알만한 마액과 별개로, 삶은 계란 사이즈로 만들어낸 마액 슬라임 젤리였다.

"서전은 승리. 작전은 계획대로. 이제 여기서...버틴다."

작전 2단계.

〈벙커는 남의 집 앞마당에〉.

그리고 벙커를 구축하는 이유는 본진의 고위 병력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함.

"그 녀석이 알에서 깨어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알겠느냐!!"

* * *

"...예, 그렇죠."

두근, 두근.

샤이탄은 피막 앞에서 활짝 웃었다.

"남은 시간...앞으로 3시간입니다, 주인님."

두근, 두근.

거대한 알 가운데.

붉은 머리의 타천사가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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