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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55화 (255/800)

# 255

짜-악!

비르고 남작은 메어리의 뺨을 쳐올렸다. 메어리는 담담히 고개를 숙였고, 비르고 남작은 씩씩거리며 호통을 쳤다.

"슬라임이라니요! 그 무슨 말을!!"

메어리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직감했다. 태어날 때부터 분노의 군단에서 살아왔기에, 인간이 마물에 대해 가진 근본적인 혐오감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들어보십시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되는 법. 메어리는 뺨이 화끈거렸지만 오히려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슬라임 딸이라는 건 그냥 표현에 불과합니다. 다소 표현이 저속했던 것을 남작님께 순화하지 않고 말씀드렸다는 것,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메어리의 진지한 말에 남작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잘난 태도입니까! 방금 마, 마물이랑 그런 행위를 한다고...!"

"마물과 그런 행위를 하는게 아닙니다. 슬라임을 이용하는 것 뿐입니다. 조금 순화해서 표현을 한다면...슬라임 마사지라고 할 수 있겠군요."

당당한 메어리의 말에 남작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역정을 냈다가, 메어리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하니 긴가민가 한 눈치였다.

'시범을 보여야 해.'

적당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메어리는 눈물을 머금고 희생양을 세우기로 했다.

"잠시 기다려보십시오."

메어리는 남작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윗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에이를 불렀다.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그에이는 메어리에게 불려와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만 했다.

"그에이 경. 메어리 양이 내게 '슬라임 딸'이라고 했네. 이것을 두고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귀족모독죄로 즉결 처형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확실히 들리는 표현 그 자체로만 들으면 그렇군요."

그에이는 애매모호하게 남작의 말에 긍정하며 메어리의 눈치를 봤다. 그에이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에이는 금방 타개책을 내놓았다.

"흠, 흠흠. ...슬라임이라는 건 메어리 양의 패밀리어 같은 겁니다. 소환수, 그러니까 일종의 정령이죠."

"정...령?"

"그렇습니다. 슬라임 형태를 한 물의 정령으로서, 메어리 양은 그 정령의 힘으로 이런 저런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지금은 제가 잠시 빌려서 효과를 누리고 있고요."

"흠...."

남작은 그에이와 메어리를 한참동안 번갈아봤다. 하지만 둘은 전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좋네. 그렇다면 그 정령은 어디있는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슬라임 딸이라고 불렀는가?"

"정령이라면 제 몸에 붙어있고, 그 형태가 슬라임처럼 생겨서 그렇습니다. 메어리 양?"

"잠시 실례할게요. 잠깐 위로 나와줄래, 라인?"

메어리는 그에이의 등에 손을 올리고 위로 쓸었다. 그에이의 몸 속에서 꾸멀꾸멀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붉은 부정형의 물체가 그에이의 등 뒤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마물...?!"

"마물이 아닙니다. 제 동생같은 존재입니다."

메어리는 겉으로 빠져나온 라인을 안아들며 남작을 눈으로 쏘아붙였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메어리의 태도에 오히려 남작이 기가 죽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슬라임 아닌가?"

"남작님, 보통 슬라임이 이렇게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까?"

메어리는 라인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어린 아이만한 키의 라인은 분명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남작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비록 마법에 조예는 없으나, 물의 정령이 이런 형태는 아니었을텐데...?"

"그래서 '패밀리어'인 겁니다."

"......복잡하군. 미안하네, 메어리 양. 내가 실례를 했네."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한 걸요. 용서해주십시오."

너무나도 라인을 아끼는 태도에 비르고 남작은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은 거두지 않고 있었다.

"흠흠, 그래서 그 문제의 '슬라임 딸'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내게 그 슬라임...? 패밀리어로 무엇을 하려고 했던 건가?"

"이렇게요."

메어리는 훌러덩 웃옷을 벗어던졌다. 정장 안에 받쳐입은 하얀 셔츠는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라있었고, 비르고 남작과 그에이는 동시에 얼굴을 붉혔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앞을 지키고 있을테니 뭔가 필요하시면 언질해주십시오."

그에이는 잽싸게 밖으로 나가버렸고, 비르고 남작은 압도적인 메어리의 중량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자신 보다 몇 배는 더 큰, 과장 좀 보태어 자신의 머리통이 두 개 달려있는 듯 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락, 사락.

메어리는 아예 셔츠와 속옷까지 벗어던지고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겨드랑이 아래 눌려진 옆가슴에 비르고 남작은 호흡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라인."

꿀럭, 꿀럭.

라인은 침대위로 올라가 메어리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메어리의 등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안마를 시작했다.

"어...?"

"표현이...저속해서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지라."

"......크, 크흠."

남작은 열이 오른 얼굴을 연거푸 손부채질을 하며 열기를 삭혔다. 저속한 걸 넘어서 상스럽기 짝이 없는 자세였으나, 막상 자신이 이곳에 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온 것이기에 뭐라고 따지기도 애매했다.

"......하아."

메어리는 라임의 안마를 받으며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으로 피로가 가시는 듯 고개를 묻으니, 비르고 남작은 괜히 아랫도리가 쿡쿡 쑤셔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꼭 마물에게 당하는 것만 같군."

"패밀리어의 외형으로 인해 빚어진, 흐응, 오해일 뿐입니다. 라인의 안마는, 하아, 제법 기분이 좋거든요."

메어리는 상기된 얼굴로 비르고 남작에게 옆 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정말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대는 크게 경을 치게 될 것이야."

"얼마든지요."

비르고 남작은 긴가민가하며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메어리의 옆에 상반신만 다 벗고 눕기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연스레 메어리와 몸을 붙일 수 있도록 딱 달라붙으며 누웠다.

"메어리 양. 미안하네. 슬라임 딸이라는 거, 혹시나 슬라임을 남근 삼아 안에 박는 것인 줄 알았거든."

"......에이, 설마요."

메어리는 목소리가 떨렸으나, 라인의 안마 덕분에 간신히 속내를 무마할 수 있었다.

그거 맞는데.

"흐읏."

메어리는 자신의 엉덩이 위로 올려지는 비르고 남작의 손길에 입을 꾹 다물었다.

* * *

현재, 그레모리와 륜은 각각 진화가능한 레벨을 1씩 남겨두고 있었다.

륜, Lv.69.

그레모리, Lv.74.

륜은 70레벨이 되면 진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며, 그레모리는 75레벨이 되면 만렙을 찍게 된다. 마녀로서 성장 가능한 끝까지 성장하는 셈이지만, 그레모리는 마녀답게 음흉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주인님, 그러면 저 이제 1레벨만 더 올리면 진화하는 거예요?!"

"그래. 그것도 그냥 진화하는 게 아니다."

예전부터 벼르고 벼렀던만큼, 기회가 찾아온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시스템상 륜의 처녀는 아직 살아있으니, 륜은 4성 하이엘프 4성으로 충분히 진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레모리.

4성까지 성장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1레벨만 올리면 자꾸 환생할 수 있다고 역정을 내는 탓에, 나는 그레모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일단 75레벨까지 만들어줘봐. 그러면 내가 바로 처녀 대줄테니까. 응?"

"뭔 수를 쓰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어디 두고보자."

"내가 그런 거 가지고 장난칠 것 같아?"

그레모리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결백함을 주장하기 위한 증거로서 그레모리는 하나의 보석을 꺼냈다.

"짜잔!"

"환생결정?"

"너도 혹시 가지고 있니?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이거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거야."

"......어떻게?"

그레모리가 몰래 꿍쳐둔 물건이 있다는 건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예전에 그레모리를 이겼을 때, 그레모리 던전의 모든 자원을 털어가겠다고 생각하여 속옷 한 장까지 전부 내가 챙겨버렸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확실시 뽑아내는 건데.'

그런데 어떻게 저런 귀한 환생결정이 그레모리에게 있단 말인가.

"흐흥, 안 보이는 곳에 깊숙히 넣어놨지."

"뭐 직장 안쪽에다가 꿍쳐뒀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

그레모리는 머리카락의 색만큼 얼굴이 시뻘게졌다. 나는 그레모리가 손에 들고있는 환생결정을 낚아채 모닥불 위에 살살 굴렸다. 불길이 내 손을 덮쳤지만 오크의 피부는 이정도로 바삭하게 구워지지는 않는다.

"뭐하는 거야?!"

"소독."

"내가 더러워?!"

"아니 그냥 농담한 건데 진짜로 그런 건 줄은 몰랐지."

밀수꾼들이 세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경우 장내에 숨겨 수술을 통해 꺼내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뒷구멍으로 밀어넣었다는 건 조금 과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걸. 내가 네 후장을 안 찔러본 것도 아니고."

과장 좀 보태어 족히 20cm에 달하는 길이의 거근이 뿌리까지 들어갔을 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에 알사탕만한 구슬을 숨겼다?

"무슨 수를 쓴 거냐?"

그레모리는 씩 웃으며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스카 트올로지로 감싸게 한 다음 안쪽까지 더 밀어넣었어."

"너도 참 보통내기는 아니구나."

그레모리가 환생결정을 얼마나 아끼고 또 아꼈는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쓸 각만 나오면 얼마든지 쓰려고 했는데. 통했군.'

나도 하나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쓸만한 상황을 느끼지 못하여 그냥 가지고만 있었다.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만렙을 찍어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 갯수가 그리 많지 않다면,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4-〉5성이나 5-〉6성에서 사용을 해야만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쓸 조건이 안 되면 말짱도로묵이 아닌가.

"그레모리야, 너 이거 못 쓰잖아. 던전 주인인데."

"그렇지. 지금까지는."

그레모리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진지한 눈빛에 나와 륜까지 덩달아 긴장되었다.

"나 던전 주인 그만둘래."

"...거 무슨 말인지 예상이 되는구만."

지금까지 그레모리와 쌓아온 관계, 그레모리가 목숨처럼 아껴온 환생결정을 내게 내밀었다는 것, 그리고 할파스 군단이라는 강대한 적들을 맞상대 하게 됨으로써 갖게 된 심적 변화.

그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그레모리가 하는 말의 진의는 간단했다.

"내 부하가 된 다음 환생하려고?"

"응. 네가 원한다면 다시 그레모리의 이름을 줘도 좋고...아니면 그냥 5성짜리 마녀로 사용해도 좋고."

"그거야 적재적소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레모리의 이름을 돌려줘야하는 건데.... 잘 생각했다."

나는 그레모리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적으로 상대할 때나 선배라고 생각할 때나 내 아래에 깔려서 가벌릴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이렇게 안고 나니 그레모리의 체구는 상당히 작은 편이었다.

"오냐. 서브던전 세 번 다 털어버리고 마석 몰빵해서 바로 환생가자."

"...진화 직전 레벨에서 경험치 장난 아닌 건 알고 있지?"

"알게 뭐냐. 대 마녀 그레모리 님께서 처녀 대주신 다는데."

스타킹 판매 대금으로 모은 마석들 중 남은 것들, 그리고 바퓰라 서브 던전을 돌아 모은 마석들을 어떻게든 긁어 모으면 잘하면 둘 다-못해도 한 명은 진화가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지금 중급 마석만 계속 나오고 있지 않느냐. 흐흐흐."

나는 주머니속에 꿍쳐둔 중급 마석을 들어올렸다. 화염사자들은 제법 강한 스펙을 가지고 있던 마물답게, 잡는 족족 중급 마석들이 쏟아져나왔다.

'이 정도 스펙이면 사실상 간부급 아니면 잡기 어렵겠네.'

평균레벨이 대략 45에서 55정도 사이에 머물러있는 듯 했다. 새삼 이런 화염 사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던 루나의 신성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놀랄 지경이었다.

"그러면 슬슬 보스 잡으러 가자. 아마도...다시 바퓰라겠지만. 간다."

사자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휴식은 끝났고, 반드시 보스를 잡아서 마석을 챙겨야 할 이유도 생겼다. 내가 앞장서서 보스룸의 철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헉."

나는 던전의 한가운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서브 던전의 보스를 보고 식겁했다.

〈라이온〉 ★★★★★ Lv. 80/80

"씨발, 숫사자 새끼들이 갈기 없을 때부터 눈치 깠어야 하는데."

설마 탈모사자들였다니.

〈히든 퀘스트〉 백수의 왕을 이겨라!!

# 퀘스트 보상 : 최상급 마석 1개, 마정석 1개.

# 퀘스트 실패 시 서브던전 바퓰라 보상 25% 감소

"으아아악!!"

라이온은 시작부터 눈에서 빔을 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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