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735일차 -------------------------
첫번째. 엘프에 관한 문제 해결.
나는 여왕 루나의 힘을 확인했고, 솔라를 비롯한 반반엘프들을 다단계 프로젝트에 포섭했다. 이제 그들은 발정이 났다 하면 던전에 친구들을 데려올 것이며, 순진한 엘프들은 벽에 박혀 타락할 것이다.
"일단 밥 먹고 마저 하지. 우선 엘프들아, 환영한다. 변변찮지만 많이들 먹어라. 그래야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한 가득 먹을 수 있지."
나는 엘프들을 라스베가스에 초대했다. 인간들의 재료를 바탕으로 하여 내 요리지식이 함께 곁들여진 한 상 차림에 엘프들은-밖에 나와서 다들 과일맛이 되었다-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기. 이건 뭐예요?"
"아아, 그것은 로보탕이라고 하는 것이다. 먹으면 원기 회복에 일품이지."
"...이 말랑한 것은?"
"아아, 그것은 라임 젤리라고 하는 것이다. 미약 효과가 있는 젤리지."
"그럼 이 누르스름하고 꾸덕꾸덕하고 끈적한 액체가 들어간 빵은 뭐죠?"
"아아, 그것은 '슈크림빵'이라고 하는 것이다."
빵을 가르고 속을 파내어 그 안에 크림을 잔뜩 집어넣었다. 무엇으로 어떤 크림을 집어넣었는지는 알지 모르지만....
"주인님께서 커스터드 크림 맛이래요!"
"그, 그래."
군단의 왕비인 륜은 자신만의 특별한 간식을 공유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들의 입에 한가득 묻은 크림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내 앞에 놓인 빵은 그저 평범한 빵이었으나, 그 옆의 컵에는 갓짜낸 신선한 초코우유가 한 컵 들어있었다.
"가는 길 든든하게 배 채우고 가라."
"감사합니다. 음...맛있는 데요. 저기, 혹시 하나 더 먹을 수 있겠습니까?"
솔라는 빵을 하나 집어삼키고 더 먹기를 원했다. 나는 륜을 슬쩍 쳐다봤고, 륜은 착잡한 얼굴로 자신의 빵을 건넸다.
"...크림이라고 하는게 워낙 귀한 거라서 여러 개 구하기가 어려워요. 이해해줘요, 언니."
"......내가 너를 오해했었구나. 미안하다, 륜."
솔라는 얼굴을 붉히며 륜이 건넨 빵을 받고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입안 한가득 차오르는 크림의 맛에 상당히 기뻐하며 몸을 떨었다. 입술 사이로 크림이 흘러내리니 솔라는 그걸 손가락으로 훑어 쪽 하고 빨았다.
"......."
미리 하지 않은 덕분에 이런 배덕감을 느끼게 될 줄이야. 나는 륜에게 보이지 않게 엄지를 들어올렸고, 륜은 내게 작게 손고리를 만들어 앞뒤로 움직였다.
"그런데 말이야."
빵을 집어들던 루나가 빵을 흔들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침을 꼴깍 삼켰고, 루나는 암묵적 합의를 이룬 엘프 넷을 보며 히히덕거렸다.
"왜 내가 자꾸 밖에 나온 건지 알겠지? 후후. 엘프 인생 싹다 손해 본 것 같지 않아? 왜 지금까지 이런 걸 몰랐을까."
"남자가 없었다며. 수백년 동안 성행위 모르고 살다가 쾌락 느끼니까 뻑가는 거지."
"...? 꼭 그런 건 아닌데?"
루나는 바로 내 추측을 부정했다. 나는 루나의 말을 곱씹어, 몇 번이고 그 속내를 짐작해야했다.
"주인님."
륜이 내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혹시 루나 언니가 다른 남자랑 했을까봐 걱정되어서 그러세요?"
"어."
"그거라면 걱정하지마. 남자랑은 안 했어. 남자랑은."
"......?"
성행위는 했는데 남자랑은 안했다? 루나는 빵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륜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까 말해도 괜찮지? 가끔 그런 쪽으로 알고 있는 엘프들이 서로 한단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지. 안 그러면 너랑 처음 했을 때 어떻게 그렇게 허리를 움직였겠니?"
"......뭐랑 한 거야?"
"저희 엄마요."
"......."
솔라의 표독스러운 말에 루나는 멎쩍게 빵을 집어삼켰다. 나는 솔라의 모친을 상상하며, 루나와 함께 침대에서 서로 가위를 부딪히는 상상에 오한이 들었다.
"...아, 왠지 잘못 한 것 같은데."
"뭐가요."
"내가 백합 정원을 망가뜨린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라스는 음양합일이 제일이었다. 나는 초코우유를 한 컵 들이마시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떠나기 전에 간식 먹고 가거라. 그리고 슬라임 샤워하면 몸안에 묻은 거 다 씻겨나가니까 흔적 걱정하지 말고."
"내가 보증할게. 너희 내가 여기 왔다갔다 했을 때 눈치나 챘었니? 후후."
"......."
마족과의 행위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는다. 넷만 비밀을 지키면, 여기서 무슨 이상성욕에 의한 플레이를 하든 돌아가서도 들키지 않는 것이다.
"저, 그, 그러면 말이에요...."
솔라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고개를 숙인 채 나와 루나에게 부탁했다.
"오, 오크 분들 되는 대로 좀...."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갤러해드, 삼촌들 다 불러와라."
역시 귤은 나눠먹어야 제맛이지.
* * *
자유로운 라스베가스는 모든 존재를 포용한다. 라스베가스가 주는 자유에 엘프들은 정숙하고 가련한 엘프의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피부를 검게 태워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했다.
그렇게 오크의 자지에 반한 엘프들이 있는가 하면, 하피들의 깃털 사이에 파묻힌 인간 남자도 존재했다. 나는 엘프들이 다크엘프로서 후식으로 갤러해드를 맛보는 동안, 라스베가스로 이동하여 사위겸 초대남을 찾았다.
"아주 신혼 살림을 차리셨구만 그래."
라스베가스의 빈 집 하나에 신혼 부부와 안드라스는 함께 둥지를 틀었다. 던전에서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남자-그에이는 비록 하르퓨이어를 상대로 파종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허리를 놀렸다. 집 곳곳에 그의 밤꽃냄새가 풍겼다.
"그래서 그에이, 생각은 해봤나?"
"...저는 이 거래를 받아들이면 인류를 배신하는 셈이 되겠죠."
그에이는 내게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기사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세였다.
"배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에이가 이번에는 두 무릎을 끓었다. 손까지 앞으로 뻗고 고개를 숙이며 내게 절을 했다.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그에이는 땅에 이마를 찧을 정도로 큰 절을 올렸다. 나는 그 모습에 그의 진심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에이는 진심으로 하르퓨이어의 깃털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쯧. 진심이 부족하구나."
하지만 나는 그런 가벼운 절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륜이 왕비라면 안드라스는 후궁으로, 엄연히 내 부하이며 그 딸인 하르퓨이어를 동시에 취했으면서 고작 절 한 번으로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내 직접 시범을 보여야겠구나. 고개를 들어 직접 보아라. 이것이."
나는 물구나무를 서서 절을 올렸다.
"그랜, 절이니라."
"......."
나는 약 10초 정도 자세를 유지하고 바로 원래 자세대로 돌아왔다. 그에이는 내가 보여준 압도적인 예의에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말이야, 어? 세상 예쁜 서큐버스 허락해 주신 장인어른께 이걸로 예를 올렸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그에이는 힘겹게 자세를 바꾸어 내게 그랜절을 올렸다. ...굳이 따라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직접 실행하는 모습에 나는 화가 살짝 가라앉았다.
내가 허락을 했음에도 모녀덮밥을 먹은 것에 살짝 열이 올랐지만, 이리도 진심으로 원하고 있고 나름 여러가지로 이용가치가 있으니 써먹기로 했다.
'에일라 아래에 기사단 만들려면 진짜 기사들도 필요하니까.'
오크들이 유니콘을 타면 둘 다 발정이 나서 낭패였다. 괜히 백마에 대한 국룰은 인간이고 늑대에 대한 국를은 오크인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자세를 바로하자, 그에이."
"예."
나와 그에이는 시뻘게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봤다. 쾌남형에 근육이 가득한 몸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랫도리도 튼실하니 하르퓨이어와 안드라스를 실망시킬 일도 없을 터.
"네가 만약 우리 군단을 배신한다면 나는 다시 안드라스와 하르퓨이어를 거두어 갈 것이다. 그러면 둘은...알지?"
"결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그에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이는 멎쩍어하면서도 내가 뻗은 손을 붙잡았다. 보통 상태의 나와 손아귀 힘이 거의 엇비슷한 정도였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날, 언젠가 또 안드라스를 함께 먹는 날을 기대해도 되겠느냐? 그 때는 네가 아래를, 내가 안드라스의 입을 취하도록 하마. 그 때까지는 안드라스를 나 말고 그 누구도 취하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아 두마."
"......꿀꺽."
그에이는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는 듯 손을 떨었다. 나는 그의 손등을 토닥거리고 에일라를 불렀다.
"언제까지 뒤에 숨어있을 것이냐. 나와라."
"......그, 저, 만나서 반갑소."
에일라는 경비대의 투구에 안드라스 깃털로 엮은 콧수염을 달고 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이는 에일라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아리에스 영애?"
"...어떻게 한 눈에 파악한 거지?"
"목소리가 인상적…. 서, 설마."
그에이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광장에서 교성을 터뜨리던 여인이…영애?"
"그래, 얘다."
나는 에일라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가슴을 쥐어뜯었다. 에일라는 아는 사람의 앞에서 대놓고 희롱당하는 것에 어색해했지만, 그런 모습도 상당히 귀여웠다.
"하, 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세상에."
"미리 경고하지만 안 준다."
"......과연,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주군을 만나셨군요."
"...음."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그에이의 인사에 에일라는 깃털 콧수염을 떼어냈다. 그리고 서로 통성명을 간단히 하고, 나는 에일라가 차고 다니는 철검을 직접 집어들었다.
"그럼 이제 작전을 위해서 네가 할 일은 하나다."
나는 철검의 손잡이를 그에이에게 넘겼다.
"안드라스의 목을 베어, 그것을 들고 스피카 성으로 탈출하라."
***
스피카 성은 현재 장례식장보다 더 우울한 분위기에 빠져있었다.
사제 프란시스-기네비어 피스케스의 납치.
기사 그에이-칸세르 공작가 칠남의 행방불명.
그 외에도 남작령에서만 족히 천이 넘는 인간이 죽거나 마왕군에 잡혔고,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비르고 영지의 책임자인 남작은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할 힘도 없었다.
"영지 망했네."
안 그래도 망해가던 곳을 그나마 괜찮게라도 살려보려고 악착같이 노력했지만, 자연 재해나 다름없는 던전의 출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금 부유하다싶은 이들은 하나 둘 옆 영지인 레오 후작령으로 도망가기 시작했고, 경비병들이 줄어든 틈을 타서 자비야바의 난민들이 하나 둘 성벽 너머로 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영지는 끝났다.
자체적인 두 번의 토벌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고, 피스케스 가문에서 대대적으로 자금 지원을 하여 모험가들을 고용해 보낸 세 번째 토벌대도 전멸당했다. 적은 날이 가면 갈수록 지금까지 힘을 숨겨왔다는 것 마냥 강해졌다.
'성검 같은 거라도 없으면 못 이겨.'
비르고 남작은 성검 전설을 떠올렸다. 자신의 영지 어딘가에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성검. 오직 순수한 처녀만이 들 수 있다고 하는 그 검만 있으면, 마물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찾으러 갈까.'
정말로 다행히, 그리고 기적적으로.
비르고 남작은 성검의 행방을 알고 있다. 죽은 부친은 그 성검을 찾느라 재산을 탕진했고, 결국 성검은 찾지 못하고 영지는 몰락하게 되었다.
'이제 희망은 거기 뿐이야.'
그리고 희망의 검을 높이 치켜드는 이는 다름 아닌 비르고 남작-자신이 될 것이다. 성검의 사용자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영지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험한 곳인데.'
믿을만한 자가 누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기사 그에이는 이제 불귀의 객이 되었다. 남은 자라고 해봐야 콧수염 기사 뿐.
"주군!!"
마침 그가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났다. 남작은 반색하면서도 노크없이 들어온 그의 등장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인가."
"살아돌아왔습니다!!"
"...누가? 돌아가신 아버님이 성검을 찾아 돌아오시기라도 하셨는가?"
"그에이 경이 살아돌아왔습니다!!!"
남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가득한 바깥을 향해 테라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오아아아아아아!!
대로의 한 복판. 검은 새대가리 마물의 모가지를 손에 든 상처입은 기사 한 명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전신에 피칠갑을 한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마냥 흔들거렸지만, 방향만큼은 남작을 향해 곧게 나아갔다.
"......그에이 경!!"
이빠진 철검을 보고 남작은 깨달았다. 살아서 돌아왔구나. 남작은 한걸음에 달려나가 맨발로 그에이를 맞이했다.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남작님."
"어서오시오!"
남작은 그에이에게 달려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주민이든 난민이든 모험가든 할 것 없이,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돌아온 기사와 주인의 해후는 남작령 전체에 희망의 불씨를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
정작 기사 그에이는 남작의 포옹에 눈이 차갑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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