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167화 (167/800)

0016729일차 -------------------------

"복종하겠다."

플라우로스의 선택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다. 수인 여인의 허벅지 사이의 따스함과 포근함을 불과 3분도 즐기지 못한 채, 나는 플라우로스의 복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진짜?"

"그렇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수인 여인을 꽉 붙잡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흐흐, 어줍잖은 조건을 내걸면 이 여인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나를 죽여도 좋다. 하지만 나의 누님, 그리고 나의 부족원들은 살려다오. 그것만 약속해주면 나의 이름을 넘기도록 하겠다."

쿵!

플라우로스는 두 무릎까지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하 수인들까지 내게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숙연해진 분위기에 내 물건이 한순간 쪼그라들 뻔 했다. 여인의 허벅지가 조금만 더 차가웠어도 분명 발기가 풀렸다.

"......플라우로스, 너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느냐? 내가 네 누님을 데려다가 범해도 좋다는 말이냐?"

"안드라스, 그대의 힘은 나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로 보인다. 솔로몬 님의 은총에 보이는 ★의 갯수가 그 증거지. 비록 우리 부족이 65위의 전투에서 승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는 허나.... 만전의 상태였어도 우리는 네게 패배했을 거다."

플라우로스는 순순히 자신들의 전력이 나보다 약함을 시인했다. 어쩐지 수인들의 몸에 잔 상처가 많더라니, 내가 72위를 털어먹는 사이 플라우로스는 아랫 단계의 놈에게 하극상을 당한게 틀림 없었다.

나는 플라우로스가 바로 아랫단계의 마족과 총력전을 펼치고 지친 직후에 습격을 한 셈이었다.

'개꿀.'

덕분에 편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덕분에 플라우로스가 빠르게 싸우기를 포기하고 복종하게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손쉽게 플라우로스의 던전을 강탈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이 공허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플라우로스가 '생각할 시간을 다오!'라고 외치는 즉시, 치마를 벗겨버리고 안에 성기를 집어넣어 생각할 시간동안 여인을 범하겠다는 내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쟁탈전> '파후우 쿰처쿠 척'이 '플라우로스'의 던전을 강탈하였습니다.

# 휘하 던전으로 등록 - 별개의 던전으로 등록합니다. 부하를 파견하여 제 2의 던전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 서브 던전으로 흡수 - 던전의 정수를 차원석으로 모아 하나로 만듭니다. 본인의 던전 내부에 새로운 서브 던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 '플라우로스'로 등록 - 기존의 모든 시설을 해당 던전에 재배치하여, 솔로몬 님의 64번째 던전으로 등록합니다. (선택불가)

## 현재 등위보다 낮은 등위의 던전입니다.

'시스템까지 나를 향해 말하는 구만. 끝났다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수인 여인에게서 성기를 빼내고 바지를 추스렸다.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 시스템의 재촉, 그리고 문 뒤에서 기습을 펼치려고 기다리고 있는 륜의 눈초리 때문에라도 나는 더 여인의 허벅지를 즐길 수 없었다.

"...휘하 던전으로 등록."

<알림> 플라우로스 던전을 휘하 던전으로 편성합니다.

# 플라우로스의 모든 마물이 당신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 플라우로스 던전의 모든 시설이 당신의 시설이 되었습니다.

# 휘하 부하에게 '플라우로스'의 이름을 부여할 권한이 생겼습니다.

우우웅.

플라우로스 던전 전체를 감돌고 있던 붉은 기운에 녹색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플라우로스 본인을 비롯한 모든 부하들에게 녹색의 마력이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플라우로스의 던전>

등급 :  D급

위험도 : 62

정원 : 30 / 41

포로 : 0 / 9

"오호."

플라우로스 던전의 정보, 그리고 모든 부하들의 정보까지 시스템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가운데 공동을 중심으로 네 방향으로 펼쳐진 플라우로스 던전의 구조는 몹시도 화끈했다.

일직선 통로.

내가 지금 서있는 심처까지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통로는 군데군데 부하들이 요격하기 위한 공터가 있을 뿐, 별다른 함정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오면서 함정도 딱히 존재하지 않았고.

"화끈하구만."

"저, 주인님...."

문 뒤에서 륜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륜에게 조용히 하라고 복화술로 소리쳤다.

"나오지 마...! 혹시나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아뇨, 저기.... 플라우로스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요."

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다시 플라우로스에게 돌렸다. 플라우로스는 목을 빳빳히 세우고 눈을 감은 채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 뭐하냐?"

"베어라. 패자에게는 할 말이 없으니."

"아니 뭐 죽일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깝치면 전부다 몰살하고 새롭게 내 부대로 채울 생각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아무 피해 없이 내 군단으로 들어온다면 딱히 죽일 이유는 없었다.

<굴복> 가족의 안위에 대한 걱정, 부족장으로서의 책임감, 강자에 대한 존중. 플라우로스는 부하들을 아무도 죽이지 않은 당신에 대한 분노를 참고 굴복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가족과 부족을 살릴 수만 있다면, 플라우로스는 얼마든지 기꺼이 자신의 목을 내놓을 것입니다. 단, 당신이 누군가를 한 명이라도 죽인다면 플라우로스는 목숨을 걸고 당신을 죽이려 들 것입니다.

'트랄이랑 비슷한 과인가....'

트랄은 강하지만 플라우로스는 약하다. 결국 강자인 나보다 약해서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았고, 플라우로스는 자신의 피로 부족민들의 안위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플라우로스. 고개를 들어라.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문신이 붉은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플라우로스는 내 명령에 따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너, 싸움 잘 하나?"

"...65위, 안드레알푸스를 직접 이 손톱으로 할퀴어 죽였다. 우리 부족 중에서는 내가 제일 강하다."

"그럼 다음 질문. 나와 1:1로 싸운다면 너는 나를 이길 수 있느냐?"

"...불가능할테지. 허나, 나는 승산을 두고 싸우지 않는다."

플라우로스의 머리칼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안드라스, 강한 자여. 네가 우리 부족을 털끝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네게 손톱을 들이밀 것이다. 설령 내 목이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네 얼굴에 손톱 자국 하나는 새겨놓을 것이다."

"나 이미 네 누나 음모 조물딱 거렸는데?"

"...비유다, 비유. 정정하지."

플라우로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륜도 표정이 가히 좋지는 않았다. 나는 괜히 무안해서 아직까지 내 손에 잡혀있는 여인을 륜에게 맡겼다.

"륜. '아무르'가 깨어나도 난리를 피우지 않도록 잘 감시하라."

"네. 그나저나 주인님도 오크는 오크시네요."

"...그런 거 아니다. 부하를 영입하기 위한 절차같은 거라고. 뭘 그렇게 흐뭇하게 보고있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

"네, 네. 그런 걸로 알게요. 그럼 주인님, 조심하셔요. 이건 제 응원이에요."

쪽.

륜이 내게 쪼르르 걸어와 승리의 버프를 걸었다. 나는 괜히 남사스러워 볼을 손으로 슥슥 닦고 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버렸다.

"...장난은."

나는 플라우로스의 앞으로 세 걸음 다가갔다. 플라우로스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내 의도를 읽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잘 들어라, 플라우로스. 나는 분노의 군단을 지배하는 자. 휘하에 안드라스와 그레모리를 주인으로 둔 군단의 대장, 파후우라고 한다. 안드라스의 던전을 빼앗아 던전의 주인이 되었고, 그레모리를 잡아 부하로 만들었지."

"......!!"

"나는 이 던전 전체를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놈들을 막을 참호로 쓸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이 참호를 지킬 던전의 관리인, '플라우로스'가 필요할 터."

절그럭.

나는 등에 메어놓았던 도끼의 끈을 풀어냈다.

"일어서라, 플라우로스. 지금부터 네 힘을 알아보겠다. 시스템이 아니라, 내 직접 네 싸움 실력을 한 번 보겠느니라."

"......그렇군. 이것은 내 이름을 증명하는 기회인가? 좋다, 분노의 주인이여!"

플라우로스의 전신에 불꽃이 타올랐다.

"나의 이름은 플라우로스! <블레이즈 판테라> 부족의 부족장! 지금부터 내 힘을 증명하겠다!"

"오냐. 죽일 각오로 달려들어라."

나는 도끼를 꽉 붙잡았다.

플라우로스. Lv.55. ★★★.

"이름을 지킬지, 가죽이 될 지. 오늘 네 싸움에 모든게 달렸다."

나를 만족시키면 이름을 지킬 것이요, 못 지키면 표범가죽 속옷이 되리라. 나는 플라우로스를 향해 도끼를 들고 달렸다.

하수에게 첫 공격을 양보.

"양보 따위 없다!"

나는 하늘 높이 치켜든 도끼를 플라우로스를 향해 찍었다.

* * *

첫 인상은 최악.

안드레알푸스가 일으킨 하극상을 막아낸 이후 연이어 열린 포털은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안드라스의 던전이었다. 상위 층의 존재가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던전을 공격하는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안드라스-녹색의 오크는 아무렇지 않게 던전을 습격했다.

그리고 그가 보인 힘은 플라우로스 조차 경탄스러울 정도. 자신은 전력을 다해야만 들어올릴 슬라임 드래곤을 양 쪽으로 들고 휠윈드를 도는 모습은 같은 마족으로서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이는 졸렬하고 비열한 행위는 인정할 수 없었다.

누이-아무르를 잡은 뒤 능욕하는 것은 플라우로스로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플라우로스는 안드라스보다, 녹색 오크보다 약했다.

카앙, 카앙!

도끼날과 손톱이 부딪힐 때마다 손톱이 깨질 것 같았다. 깨지지 않아도 이상했다. 오크는 고작 발길질 한 번으로 굳건한 철문에 걸린 걸쇠를 박살내는 그 힘을 절반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 절반의 힘만으로도 자신을 이길 수 있기 때문. 플라우로스는 이런 힘을 가진 존재가 누이를 능욕하여 인질로 잡은 짓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러니 자신이 증명해야한다.

강한 힘을 가진 자는 그에 어울리는 품격을 가져야 함을. 바알이나 바르바토스처럼 단신으로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진중하여 무게감을 가져야 했다.

"고작 이 정도냐!!"

하지만 오크는 그 무게감을 오직 위에서 찍어누르는 데에만 사용했다. 근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품격은 개나 줘버리라는 듯 양아치마냥 행동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톱은 막되먹은 도끼를 견뎌낼 수 없었다.

카앙, 카앙!

도끼날과 손톱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오크는 자신의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이어나갔다. 한 번 부딪힐 때마다 플라우로스는 반 걸음,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야했다. 오크가 내리찍는 도끼날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우오오오오!!"

그러나 플라우로스는 그 무게를 견뎌내야했다. 자신이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한다면 부족들의 운명은 불보듯 뻔했다. 새롭게 나타날 플라우로스는 자신의 부족을 모욕할 것이며, 누이는 오크의 노리개가 될 게 뻔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목숨으로써 증명해야했다.

플라우로스는, 플라우로스의 세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플라우로스의 전신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질 수 없다----!!"

"아, 맞다. 야, 미안하다."

파사삭! 플라우로스의 손톱이 박살이 났다. 오크는 심드렁한 얼굴로 도끼를 거꾸로 들었다.

"우리 딸 지금쯤 출산했겠다. 미안하지만 가봐야겠네."

퍼----억.

플라우로스의 정수리에 도끼가 박혔다. 플라우로스는 심드렁하고 무심한 오크의 눈빛에 좌절했다.

'아아, 나는 결국.'

"이제 편히 쉬어라."

플라우로스는 시야가 붉어지는 것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이 새끼 4성으로 진화만 하면 존나 쎄겠는데.... 야, 니들 대가리 챙겨라. 내가 나중에 감독관 파견할 거니까, 당분간은 니들이 알아서 던전 지켜."

나는 기절한 플라우로스를 옆에 부복한 표범 수인들에게 던졌다. 플라우로스는 도끼의 날이 아닌 도끼등 부분을 정수리에 얻어맞았고,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았다.

"주인님, 쟤 살려주시게요?"

"제법 쓸만하긴 하네. 나 상대로 저렇게 목숨걸고 싸우면 이 던전도 알아서 지키겠지. 자, 가자."

나는 플라우로스의 누이, 아무르를 집어들었다.

"주인님, 혹시 가져가셔서...?"

"글쎄다. 내 아랫도리가 바빠서 얘까지 건드릴 일이 있겠냐 싶기는 한데, 일단 데리고 가긴 가야지."

플라우로스가 없는 사이 부하들이 아무르를 건드릴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아무르를 라임에게 퐁당 떨어뜨렸다. 라임은 아무르의 옷이라도 된 것 마냥 제 몸 속으로 집어넣었고, 휴식을 통해 회복한 슬라임 드래곤 1호기의 위에 걸터앉았다.

"전리품도 챙겼고, 쓸만한 부하도 얻었고. 뭣보다 쓸만한 정원을 얻었군."

"정원이요?"

"그래. 정원."

나는 고개를 높이 치켜들었다. 우리 던전의 공동보다 천장이 훨씬 높은 공동은 족히 4층 건물을 훌쩍 넘을 정도였다.

"마침 놀고있는 놈이 있었는데 잘 됐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플라우로스에게는 최고의 원군이 되리라.

"그럼 돌아가자. 가서.... 손자일지 손녀일지 확인해야지."

과연 엄마를 닮아서 예쁜 전사가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아빠를 닮아서 예쁜 사제가 나올 것인가. 그건 직접 알을 까봐야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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