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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29화 (129/800)

0012923일차 -------------------------

비르고 남작령의 강가 마을, 자비야바에는 100여명의 병사들이 상주하고 있다.

기존에는 50여명 정도가 상비군으로 주둔하고 있었지만, 최근 비르고 남작은 남작령 내의 마을이나 도시에 병사들을 파견했다. 마을의 주민들은 갑작스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병사들 때문에 절로 불안에 바졌다.

- 혹시 뭔가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마왕군과의 전쟁이 아직도 안 끝난 거 봐서는 여기도 슬슬....

- 아니면 던전이 생겼다거나. 요즘 모험가들 자주 드나들잖아. 그거랑 관계 있는 거 아냐?

- 부정타는 소리 하지들 말어. 그냥 단순히 권력 좀 부리려고 병사들 파견한 거겠지. 새 남작이 여자라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서 자격지심을 벌이는 거야.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병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남작은 영악하게도 병사들을 해당 마을이 고향인 이들로 최대한 편성했다.

-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요?

- 만약에 마물이 나타나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하하, 걱정마십쇼!

마을 주민들과 서스럼없이 지내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마을과 고향을 지킨다는 의욕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청사자 길드의 모험가 40명이 전멸했다는 소문이 감돌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경비병들은 망루를 통해 목책 너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금방 언덕 위에 진을 친 오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법 눈썰미가 좋은 청년들이 언덕 위의 이상을 감지했고, 발이 빠른 청년들이 금방 정찰을 다녀왔다.

"오크입니다! 오크 무리예요! 거의 100!"

비록 한 청년이 무릎에 화살을 맞고 구멍이 뚫리는 중상을 입었지만, 100여마리에 이르는 오크는 마을에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너는 당장 말을 타고 스피카 성으로 가라! 남작님께 오크들의 존재를 전해!"

경비대장은 급히 파발을 보냈다. 연락 전용 수정구라도 있으면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할 수 있건만, 아쉽게도 이런 벽지의 마을에 그런 고급 마도구는 없었다.

"오크들의 구성은?!"

"전부다 나무로 된 곤봉같은 걸 들고 있었습니다! 오크 라이더같은 고위 개체는 없는 듯 보였고, 전부 다 조잡한 장비의 일반병이었습니다. 가죽 갑옷조차 없는."

"......? 미쳤나?"

경비대장은 오크 무리의 상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여기가 후방이라도 그렇지, 갑옷 하나 입지 않은 오크들이 곤봉만 달랑 들고 나타났다고?"

"예. 몇몇은 철검이나 도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투기장에 종종 나오는 노예 오크병같은 차림이었습니다."

"......그렇군. 정찰대인 거야. 정찰대가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경비대장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오크 부대의 정체를 가늠했다.

"던전이 있는 건 확실하군. 어쩌면 고위급 던전일 수도 있어. 백에 이르는 오크 부대를 이리 헌신짝처럼 던지는 던전이라니. 쯧, 이곳도 이제 전쟁터가 되겠군."

경비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땅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 박자는 일정했다.

쿵, 쿵, 쿵, 쿵!

"이것들이...!"

오크들은 발을 맞추어 크게 발구름을 시작했다. 북을 치는 듯한 울림이 목책 너머로 넘어왔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걱정마십시오! 저희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스피카 성에서 기사들이 올 것입니다!"

경비병들은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다독이고 안심시켰다. 소요는 빠르게 제압되었고, 경비병들은 정면에서 대로를 따라 걸어오는 오크들의 모습에 긴장섞인 비웃음을 날렸다.

"저 멍청이들 좀 봐. 화살에 벌집이 되고 싶나?"

"오크들 구워 먹으면 돼지 맛이 난다고 하던데."

"진짜? 오늘 완전 포식 하겠군."

마왕군과의 전투가 계속된 이후, 인류는 마물들의 부산물을 처리하여 식재료로 만드는 것 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오크는 불에 직화로 바싹 구워내면 살에서 독기가 빠져나가고 돼지고기 맛이 나는 마물들이었다.

"...저것들 계속 걸어오는데?"

"미쳤나? 대가리에 화살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쿵, 쿵, 쿵.

오크들이 발을 맞춰 걸어오는 소리에 경비병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오크들을 상대해본 적이 있는 베테랑들도 예사롭지 않은 오크들의 모습에 오한이 들었다.

쿵, 쿵, 쿵!

오크들의 진군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었다. 선두에 선 로브의 오크가 발걸음을 빠르게 하니, 뒤따르는 오크들도 전부 그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씨발 저 새끼들 도대체 뭐지?"

경비대장은 오크들이 걸어오는, 아니 달려오는 곳을 훑으며 의아해졌다. 그곳은 목책의 정문도 아니었고, 나무를 통으로 땅에 박아놓아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정도로 두터운 곳이었다.

"울타리에 대가리 박고 죽을려고 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마물들은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광증을 보일 때가 많았다. 주로 흑마법사들이 마물들을 폭주시켜 마구잡이로 들이닥치도록 만들기도 했다.

"씨발, 일단 요격해! 화살을 쏴!"

우어어어어어어----!!

오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성난 황소마냥 달려오는 오크들은 두꺼운 울타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돌진했다.

"젠장!"

몸으로 부딪혀서 육편이 되더라도 목책을 향해 돌진할 기세였다. 경비대장의 외침과 함께, 근처 망루에 서있던 여덟 명의 경비병이 급히 활을 들어올렸다.

"사격 개-"

피융-!!

막 활을 들어올리려던 경비병의 활이 박살났다. 활은 반으로 쪼개졌고, 그 이상 현상이 일어난 건 비단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대장님! 저격입니다!"

"젠장, 일단 쏴!"

울타리가 성벽같은 형태는 아니었기에, 망루에 오른 경비병들이 무력화 된 순간 요격할 방법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아직 활을 가진 이들은 남아있었지만, 저격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젠장, 어디서 쏴대는 거야! 미친!"

고작 한 명이 쏴대는 건데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한 명 때문에 목책 근처의 망루는 모두 무력화되었다.

쿵쿵쿵쿵쿵!

오크들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경비대장은 목책이 제발 평소처럼 단단하게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지끈!

나무가 통째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직 오크들이 도착하기도 전이었으나, 우지끈 소리는 분명 목책에서 났다. 그것도 하필이면 오크들이 달려오는 목책이.

"......뭐야?"

하필이면 지금 목책이 기울어진다고? 경비대장은 우연치고는 너무 소름돋는 상황에 입이 바짝 말랐다.

우연일 리가 없다.

"젠장! 모두 전투 준비!"

목책 근처로 모인 경비병들이 급히 검과 방패를 들어올렸다. 예상외의 장소로 달려오는 통에 정문 근처의 병사들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사각, 사각.

경비대장의 귀에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나무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하는 생각에 경비대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목책은 서서히 안쪽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콰득!

목책의 기둥 아래에서 붉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괴물들이 땅밑에서 나무 기둥에 뭔가 수작을 부린게 틀림없었다.

우우우우웅-

나무 기둥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울어가는 목책의 위로 로브를 입은 오크 하나가 높이 뛰어올랐다.

우두두둑!!

오크는 기울어져가는 울타리 위를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목책이 기울지 않았다면 아마 목책을 통째로 뚫고 들어왔을 법한 기세였다. 그리고 오크의 손에는 방금 뽑아온듯한 굵은 나무가 들려있었다.

"라 스 하 살 법 ! ! !"

얼굴에 붉은 문신이 반짝이는 오크는 나무를 통째로 땅바닥에 내리쳤다.

콰---------앙!!!

그야말로, 세상이 울렸다.

* * *

슬라임 드래곤을 이용한 땅굴파기는 위험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 군단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리 여러 작업을 펼쳤다. 울타리 아래에 슬라임 드래곤을 미리 보내 나무 기둥의 아래를 갉아먹도록 했다.

땅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슬라임 드래곤의 진동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나는 적당한 시점부터 오크 부대의 발을 구르며 시끄럽게 전진했다.

우리의 시끄러운 전진에 경비병들이 화살을 조준했다. 위협적인 놈들에 대해서는 오크들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던 륜이 저격했다. 륜은 에일라가 안고 걸어가는 도중에도 정확히 궁수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적당한 시점, 슬라임 드래곤이 울타리의 안쪽면을 갉아먹어 울타리가 기울기 시작한 순간.

나는 울타리를 향해 달렸다.

갸우뚱 기울기 시작하는 목책의 위로 달려나가며 나는 끝에서 뛰어올랐다.

울타리에 개돌? 하기는 했다.

직진으로 진격했고, 단지 그저 타이밍 좋게 울타리가 기우뚱 하고 넘어갔을 뿐.

슬라임 드래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전신의 무게를 실은 도약은 울타리를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고, 나는 미리 뽑아온 나무 한 그루를 근력강화의 버프까지 둘러 바닥으로 내리쳤다.

기술의 이름은 딱히 의미가 없었다. 그저 경비병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생각나는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 소리쳤었다.

콰드득!

통나무가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바닥에 내리찍으며 손을 놓았고, 땅이 흔들림과 동시에 경비병들의 자세가 무너졌다. 나는 낙법을 취하고 급히 전방으로 달렸다.

"쏴, 쏴라!"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나를 향해 사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한 번 자세가 흐트러진 이상 움직이는 대상을 상대로 바로 쏘는 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우오오오오!!"

나는 기합과 함께 팔을 어깨 뒤로 넘겼다. 직접 주먹으로 후려치려는 대상은 경비대장. 일단 우두머리부터 조져야했다.

"네놈!"

경비대장은 어디서 칼밥 좀 먹었는지 철방패를 들어올렸다. 주먹을 방패로 막을 생각인듯 했지만 어리석었다. 방패는 전신을 거의 가리는 타워실드였다.

'방패 생긴게 꼭 포르네우스년 상판같구만.'

절로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나는 전방을 향해 발을 쭉 뻗으며 허리까지 돌려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강철방패에 내 주먹이 꽂혔다. 비록 꿰뚫는데는 실패했지만, 내 주먹은 방패 째로 경비대장을 아래로 뭉게버렸다.

"크어억!"

방패를 놓지 않은 건 봐줄만 했다. 하지만 차라리 방패를 놓았다면 방패를 잡은 손에서 피가 튀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린 쪽은 멀쩡한데 맞은 쪽은 손에 피가 터졌다.

"피지컬의 차이다, 이 작은 인간놈아!"

나는 방패 뒤에 숨은 경비대장을 향해 다리를 뻗어올렸다. 경비대장은 바닥에 쓰러졌고, 나는 들어올린 발을 바닥에 쿵 굴렀다.

콰--앙!!

"커흑!"

경비대장은 비명을 지르며 기침을 토해냈다. 철방패 아래 숨은 경비대장은 내 발길질을 몸으로 견뎌냈다.

"당장 죽여---!!"

경비대장의 악다구니에 경비병들이 나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찔리면 제법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잘 벼려져 있었다.

망가뜨리면 안 된다. 나는 곧장 경비대장의 방패 위로 올라갔다.

"크어어억!!"

경비대장은 방패위에 올라선 내게 깔리고 말았다. 나는 방패 위에 서서 로브 안의 나무 몽둥이를 양손에 들었다. 야구 배트처럼 깎은 몽둥이는 나의 팔뚝보다 두꺼웠다.

"어딜!"

찌르는 창은 몸을 비틀어 피한다. 그리고 피하는 걸 이용해 방망이를 사선으로 내리친다. 경비병 하나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때렸고, 경비병은 맥없이 피가 터지며 쓰러졌다.

"이 새끼가!"

"누구 보고 새끼래 이 새끼가!"

뒤에서 검을 휘두르려던 놈의 경로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경비병은 검을 놓쳐버렸고, 나는 경비병의 안면에 피묻은 방망이를 창처럼 찔렀다.

"얼굴 빻기!!"

"커허억?!"

나는 홍두깨로 마늘을 빻듯 경비병의 얼굴에 방망이를 찔렀다. 안그래도 비틀린 매부리코가 내 방망이질에 으스러졌다. 경비병은 코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졌다.

"어디 덤빌테면 덤벼봐라, 이것들아!!"

나는 방망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붕붕 뛰었다. 마치 무당이 살풀이를 하듯 제자리에서 훨훨 뛰는게 꼭 탈춤이라도 추는 듯 했다.

"얼쑤!"

"커헉!"

높이 뛰어올라 무게를 모두 발끝에 실어 방패를 밟는다. 아래에서 뭔가 피가 튄 것 같지만, 내 발목을 노리고 베어오는 칼을 피하려면 점프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 발목을 자르려던 경비병의 목을 향해 방망이를 내리찍었다.

퍼-억!

경비병은 방패를 들어 내 방망이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들어올리는 바람에 빗겨치듯 관자놀이를 때려버렸고, 경비병은 그대로 고개가 돌아가며 고꾸라졌다.

"이, 이 미친 괴물이!!"

나를 둘러싼 경비병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한 명을 바닥에 깔아버리고 세 명을 때려패죽이니, 자신들의 실력으로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걸 직감한 듯 했다.

우오오오오!!

부하 오크들이 경비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경비대장을 깔고 선 타워 실드에서 내려왔다.

"커흐으윽...."

"아직 살아있네? 마나로 신체강화라도 했냐? 흐흐, 그럼 어디 얼마나 버티는 지 볼까?"

나는 방망이를 타워실드 위로 살짝 늘어뜨렸다. 마음같아서는 퍼질러 앉고 싶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방망이를 잡고 다리로 박자를 맞췄다.

"아아, 이것은 난타라고 하는 것이다."

장단은 휘몰이.

"오늘의 큰북은 너다."

나는 타워실드를 향해 방망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손등의 문신의 붉은 빛이 방망이로 흘러내려가기 시작했다.

앗.

'그냥 해봤는데 이게 되네.'

우오오오오----------!!!

부하 오크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들의 몸에서 붉은 아우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드랍 더 비트

이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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