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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28화 (128/800)

0012823일차 -------------------------

때가 되었다.

나는 나를 포함한 100명의 특공대를 이끌고 포털을 통해 내 던전으로 넘어왔다. 던전을 빠져나오는 동안 제식에 맞추어 움직이는게 영락없는 군대였고, 나는 던전을 부하들에게 맡겼다.

"정원 초과는 안 걸리네요?"

"아무렴 그레모리 던전에 소속된 녀석들이니."

던전의 정원이나 시스템은 오직 던전 내부에서만 적용된다. 바깥으로 나오면 그 모든 것은 적용되지 않고, 시스템의 버프는 일절 없었다.

"륜, 뭐 보이면 바로 얘기해라."

"네. 그런데 주인님, 정말 이 루트로 가실 거예요?"

"물론."

륜은 자신의 손에 든 지도의 루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도에 표시된 길과는 확연히 다른 길이지만, 자비야바까지 도착하기에는 최단 루트였다.

최단 루트.

직선.

"우리는 숲을 뚫고 간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갈 뿐. 나는 100명의 특공대에 딱 마물 3마리만 데리고 던전을 나왔다. 다름 아닌 나와 륜, 에일라가 타고 있는 슬라임 드래곤 3마리.

이왕 3성으로 진화시킨 김에 나는 이들을 우리 던전에 소환된 순서대로 1호기-2호기-3호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1호기를, 륜이 2호기를, 에일라가 3호기를 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저희만 이걸 타고 다니니까 조금 미안한데요."

"원래 대장급들은 뭐든 타고 다니는 거야."

"그렇다, 륜. 아무리 보병 위주의 편제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이끌고 가는 기사는 말을 타고 가는 법."

에일라는 슬라임 드래곤의 목에 씌워진 고삐를 가리켰다.

"실제로 이 정도 속도면 제법 빠른 편이다. 말도 이 정도로 움직이기도 하고."

"에일라야, 그러다가 슬라임 나이트 되겠다."

"바닥을 기어가는 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기동성이 뛰어난 존재들입니다. 역시 주인님의 부하들 답습니다."

"아무렴."

슬라임 드래곤은 긴 장어 같은 형체였지만 바닥을 기어가는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오크들의 체력과 걷는 속도에 맞추어, 슬라임 드래곤은 거의 8km/h 즈음에 이르는 속도로 기어가고 있었다.

'오크들도 무리없이 따라오고 있고.'

이 속도라면 자비야바까지는 못해도 반나절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고, 자비야바 인근에서 도착하더라도 잠시 대기하여 작전을 짜야 했다.

"그런데 주인님, 정말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비록 제가 주인님에 비해서 전쟁의 식견이 짧다고는 하지만...."

"나도 운빨이 좋은 거지 딱히 잘 아는 건 아닌데? 말해봐."

"저희 이 상태로 정말 괜찮겠습니까?"

에일라는 후미의 오크 병력들을 가리켰다. 체격은 다부졌지만 장비는 허름했다.

모험가들의 장비는 오크들의 체격에 맞지 않았고, 결국 모두 소환되었을 당시인 낡고 질긴 천옷에 나무를 깎아만든 곤봉 정도가 전부였다.

"원래 내복단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네?"

"확실히 우리 장비가 여러모로 문제가 되기는 하지. 에일라 너만 하더라도 지금 입고있는 가죽 갑옷이 안 맞잖냐."

에일라는 노획한 가죽갑옷을 손질해 입고있지만, 가슴 부근이 너무 작아서 결국 복부만 입어야했다. 그게 하필이면 코르셋처럼 조이고 있는 덕분에 에일라의 가슴이 도드라졌다. 그게 그나마 가장 양호한 복장이었다.

"마음같아서는 전부 풀플레이트로 도배를 하고 싶은데, 우리 상황이 거의 원시부족 수준인데 어쩔 수 없지. 에일라야, 생각해봐라. 오크들이 철갑을 두르고 군마에 올라 랜스차지를 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런데 그럴려면 일단 재료도 엄청나게 필요할테고, 그걸 다루는 기술자도 있어야할테고, 정말 필요한 게 많겠지?"

"어디 구할 곳이 있습니까?"

"어."

이번 전쟁이 끝난 뒤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남작령을 정복하여 분노의 군단이 정식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또 전쟁이었다.

"자원을 얻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그리고 나는 가장 효율적이고 마족다운 선택을 할 거다."

"약탈하실거군요?"

"그래, 륜아. 인간들의 물건을 가져다 쓴다니까 경멸했느냐?"

"아뇨? 엘프들이 꽉 막혀있기는 하지만, 다른 이종족의 문화 중 괜찮은 것들은 적극적으로 도입해요. 당장 이것만 하더라도 그렇죠."

륜은 치마를 슬쩍 들어올렸다. 당연히 륜의 치마 아래에는 흰 팬티가 입혀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도입된 문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마왕군이 발족된 이후에 마족들이 엘프의 숲을 공략하러 온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들은 저희의 치마 아래를 보고 모욕을 했다고 해요. 수치심을 느낀 수호자 분들께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자 했죠. 그 이후로 치마 아래를 가릴 만한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당시 엘프의 숲을 방문하신 현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륜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깔았다.

"아아, 이것은 '팬티'라고 하는 것이다."

"좋아, 그 새끼는 반드시 죽여야겠군."

좋은 문화를 악습으로 덮어버린 악의 근원은 반드시 파괴해야한다. 마왕, 그리고 현자. 엘프들의 아래에 팬티라는 구속구를 채운 그들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꼭 자비야바를 세계 정복의 교두보로 삼아야겠어. 잠깐 정지! 여기 공터에서 쉬고 간다."

약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걸었다. 물론 나와 륜, 에일라는 슬라임 드래곤에 타고 이동했지만, 10분 정도 휴식을 취할 필요는 있었다.

"아버지."

"지금은 군단장님이라고 불러라."

"...군단장님, 저희는 아직 쌩쌩합니다."

아더는 조금 더 걸을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아더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지쳐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더의 뒤에 알게 모르게 일그러지는 병사들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더야. 한 시간 풀로 걸었으면 무조건 10분은 쉬어줘야한다. 안 그러면 좋은 간부가 못 돼. 쌍욕 들어먹는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군단장이 병사들의 휴식을 보장하는데 네가 토를 달면 안 되지."

"...죄송합니다."

아더는 이해할 수 없지만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물러섰다. 나는 슬라임 드래곤에서 내려 그들에게 미리 챙겨온 슬라홀의 점액을 간식으로 먹였다.

"쟤는 좋은 간부 되기는 글렀네."

"좋은 간부라는게 있기나 합니까?"

"......그걸 에일라 네가 말하니까 엄청 어색한데?"

우리는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휴식을 취했다.

* * *

장시간의 행군. 잠깐의 휴식.

거의 규칙적인 시간으로 군단은 끊임없이 진군했다. 병사들은 어느덧 그 속도에 익숙해졌고, 10분간 휴식동안 최대한 효율적으로 개인적인 용무를 해결했다.

누군가는 나무로 된 수통에 물을 채워오거나, 누군가는 숲길로 들어가 용변을 보거나. 그들은 행군 중에는 조용히 뒤를 따랐고, 딱히 불만은 없었다.

"......."

오히려 불만은 십장의 역할을 부여받은 아더와 형제들에게서 튀어나왔다. 특히 불만의 최고봉은 랜슬롯이었고, 그녀는 아더를 꼬드겨 파후우에게 한 번 더 간청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엄청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좀 더 빨리 걸으면 안될까요? 중간에 쉬는 것도 굳이 이렇게 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천천히 걸으니 몸이 근질근질 거려서...."

"......."

아더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더와 가장 가까이 있던 퍼시발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일이십니까, 형님."

"아버지의 말씀을 곱씹고 있었다."

"...좋은 간부는 되지 못할 거란 말씀 말입니까?"

파후우는 에일라에게 혼잣말을 하듯 흘렸지만, 아더는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 행군을 하는 내내 아더는 파후우의 말이 어떤 의미일까 해석하고 있었다.

"형제여, 좋은 간부란 뭘까?"

"에일라 어머님의 말씀에 따르면 없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형님을 그런 존재로 키우실 생각이실 터."

"......정말로?"

"그렇습니다. 형님은 저희와는 달리 라스촌의 촌장을 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처음으로 태어난 것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형님께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저희 십장의 우두머리 역할을 형님께 맡긴 것은 언젠가 형님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 군대를 이끌 때를 위한 시련이겠지요."

퍼시발의 말에 아더는 서서히 귀가 쫑긋 섰다. 뭔가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

"뭔가 깨달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우리는 거의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출발할 때와 다를 바가 없지."

아더는 자신들의 체력 상태를 훑었다. 그 어느 오크 하나 힘들다고 징징대는 자 하나 없었다.

"우리는 단순히 이동을 하는게 아니다. 전쟁을 하러 가는 거지. 아버지께서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투를 들어가기 위해 체력을 아끼시는 것이다."

"과연."

아더는 행군 중간중간에 있었던 휴식의 이유를 자각했다. 그는 선두에서 슬라임 드래곤을 탄 파후우의 뒷모습이 여느때보다도 커보였다.

언젠가 자신도 대부대를 이끌 지휘관이 된다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할까. 아더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랜슬롯을 좋게 타일렀다.

"분명 아버지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실 거다. 그러니 너도 그만 칭얼거려라."

"하지만 오라버니."

랜슬롯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달려가는 자세를 취했다.

"...우리 이것보다 1.3배는 더 빨리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1.3배는 뭐냐?"

"전력 보존을 위해서 천천히 걷고 휴식을 취하는 거라면, 지금 속도보다 1.3배 정도 빠르게 걸어도 될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1.3배냐고."

랜슬롯은 한참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감!"

"......이 전투가 끝나고 진언을 드리도록 하겠다, 막내여."

"지금 좀 더 빨리 가도 될 것 같은데...."

랜슬롯은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오직 퍼시발만이 조용히 감으로 랜슬롯이 말한 1.3배가 타당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적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이 정도면 최고 속도인 것 같은데."

그 누구도 퍼시발의 혼잣말을 듣지 못했다.

그 누구도 파후우가 정한 진군 속도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파후우는 그저 두 여인과 노가리까기에 가장 적당한 속도로 진군하고자 할 뿐이었다.

* * *

대략 5번 정도를 쉰 것 같았다.

우리는 직진으로 자비야바까지 제법 빠른 속도로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인간들이 만든 도로가 나오기는 했지만, 우리는 강과 구릉을 피지컬로 넘어 금방 도시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도시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임시 진지를 구축했다.

그냥 퍼질러 앉아서 쉬는 정도였지만.

"도시라고 하기에는 되게 적네."

"남작령의 중심지인 스피카 성에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래. 그만큼 병사들도 여기에는 얼마 없다는 말이지."

"대신 목책이...."

도시를 둘러싸는 목책은 우리 라스촌의 것과 비교해도 훨씬 높고 단단했다. 제법 그럴듯한 망루까지 갖춰져 있었고, 경비병들이 망루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주 꼼꼼하게 둘러놓으셨구만."

강물이 흐르는 면을 제외하고는 반달 모양으로 길고 높은 목책을 쌓아놓았다. 목책 너머에도 집들이 널려있기는 했지만, 물레방아나 창고같은 것들은 전부 목책 안에 놓여있었다.

"정면에서 습격을 했다가는 망루의 경비병들에게 들킬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강을 따라서 습격을 하기에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들킬 거야. 야습을 해도 마찬가지."

사실상 기습은 물건너 갔다. 족히 수 백은 훨씬 넘을 인구가 살고 있는 마을의 목책 치고는 상당히 두터웠지만, 이곳이 비르고 남작령의 최대 곡창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요충지기는 했다.

"흐흐, 마냥 후방이라 방심했구나. 남작."

"던전의 존재를 알았다면 대처가 달라졌을까요?"

"글쎄. 알았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던전에서 여기까지 나올 거라고는 상상 못했을 걸?"

륜은 우리의 진군을 발견한 정찰대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설령 그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그 사이에 자비야바를 진작에 공략했을 것이다. 병사들의 체력 상태는 썩 나쁘지 않았고, 목책만 해결하면 될 문제였다.

"흐흐. 모처럼 왔으니까 아주 깜짝 놀라게 해줘야겠어."

"어떻게요?"

"잘 들어봐라. 특히 너희 슬라임 드래곤 1호기부터 3호기까지. 너희의 역할이 크다."

나는 슬라임 드래곤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임무를 내렸다. 과연 슬라임 드래곤이 알아들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라임 정도는 아니더라도 ★★★답게 제법 똑똑해졌다.

"잠깐 나란히 서봐라. 그래. 하나, 둘, 셋, 넷...."

나는 슬라임 드래곤 세 마리가 나란히 붙었을 때의 폭을 가늠했다.

"흐흐. 이러면 충분히 돌격할 수 있겠어."

"돌격...이요?"

"그래."

나는 두꺼운 목책을 가리켰다.

"우리는 저기에 돌격할 거다."

우리는,

수 미터에 이르는 목책을 향해,

돌격한다.

"직진으로."

빠꾸는 없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1편입니다.

원래 월말에는 건강상 하루 쉬어가려고 했는데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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