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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08화 (10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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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죽여버려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적의 전력과 아군 전력을 비교해보니, 아군 전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나와 그레모리가 대장전으로 일기토를 벌인다고 가정했을 때, 나머지 병력들로 상대 병력들을 이길 수 있는가?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던전 주인과 부하들이 힘을 합세하여 총력전을 벌인다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내 병력들을 천천히 진군시킴과 동시에, 슬라임 드래곤들로 천장을 뚫어 부하들에 앞서 진격했다.

목적지는 공동, 적 부하들의 절반 이상이 모여있는 곳.

'이미 던전 구조는 전부 파악해뒀어.'

내가 그레모리 던전을 탐험한 시간은 대략 20시간이 넘는다. 우리는 던전 속에 숨어 던전 곳곳을 염탐했고 그 구조를 파악했다. 라임이 슬라임 드래곤의 선봉에서 구멍을 파던 방향도 그 구조를 알기에 할 수 있었던 공사였다.

그리고 나는 적이 많은 병력을 배치한 장소에서 전면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망치와 모루.

본래는 옆으로 돌았어야 할 기병 역할은 슬라임 드래곤으로 천장을 뚫고 적의 후미에 날아간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떨어지자마자 바로 적 병령들을 눈으로 훑었다.

의외로 그레모리는 없었다. 분신조차 없었고, 그레모리가 타고 다니는 4성 낙타도 없었다. 주변에는 대부분 3성짜리 낙타나 청동 가고일 등이었다. 누가봐도 정예병이 넘쳐나는 상황.

"잡졸들 뿐이지!"

나는 몽둥이가 된 철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가고일의 날개를 손으로 뽑아 뾰족한 끝을 낙타 괴물의 미간에 꽂고, 옆에서 단검을 들고 달려드는 고블린의 정수리에 철검을 때려박았다.

퍼--억!

검면으로 때린 덕분에 고블린의 이마가 넓게 꺼졌다. 나는 조금 강하다 싶은 마물들을 중점적으로 베고 부수며 발로 짓밟았다.

크아아악!

괴수들이 붉은 안광을 뿌리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동굴 내 공기 중에는 그레모리의 마력 냄새가 가득했고, 주인의 허락 하에 광분하기 시작한 낙타 괴물들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난사!"

나는 전방으로 달려드는 낙타 괴물의 안면을 붙잡고 왼쪽으로 비틀었다. 코와 입이 도드라져서 면상의 형태가 꼭 남근같은 낙타 괴물의 얼굴을 비틀어 터뜨리니 손맛이 미묘하면서도 재미있었다.

파바박!

하늘에서 바람 화살의 비가 뿌려졌다. 륜은 내가 뛰어내린 구멍 아래로 보이는 족족 화살을 쏘았다. 고블린들의 단말마를 내지르며 전신에 피가 줄줄 흘렀고, 바위로 된 가고일들은 석회암에서 현무암이 되어있었다.

내가 후미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고 때려 패면서 난동, 그리고 륜이 천장에서 슬라임 드래곤들의 엄호를 받고 활을 무차별로 난사.

적의 후미를 찌른다는 우리 1군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괴물들은 일단 지상에 한 명 뿐인 나를 공격할 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방어는 단단한 우리 던전 부하들을 공격할 지 고민하는 듯 했다.

크르륵.

방어력이 높은 구울과 하이구울이 전방에 섰다. 그리고 그 뒤에 사냥꾼들이 활과 석궁을 들고 상대적으로 몸이 얇은 구울들의 겨드랑이 사이로 사격을 시작했다. 고블린들이 독침으로 반격을 한다 싶으면, 구울들이 팔을 휘둘러 침을 쳐내거나 몸으로 막았다.

아직까지 유기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 움직임을 더디게나마 이어나가게 할 수 있는 지휘관이 방진의 한 가운데에서 검을 들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교대! 남자들은 물러서고 여자들 사격 준비!"

에일라의 지휘 하에 사냥꾼들은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간단히 성별로 번갈아가며 화살을 퍼부었고, 고블린들은 하나 둘 안드라스 발톱 화살촉이 몸에 박혀 바닥에 쓰러졌다.

키에엑!

구경할 틈은 없었다. 낙타 괴물의 등 뒤에서 늑대같은 모습의 괴물이 나를 할퀴려들었다. 나는 철검을 치켜올려 손톱을 쳐냈고, 늑대 괴물의 턱을 걷어찼다.

깨갱!

이름도 모를 마물은 개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까뒤집었다. 나는 철검을 역수로 쥐고 늑대 마물의 입안에 푹 찔러넣었다. 이가 나가기는 했어도 여전히 검은 검. 늑대 괴물은 입이 바닥에 딱 달라붙은채 절명했다.

'전력을 급하게 늘렸구나!'

나는 그레모리 또한 모든 전력을 쥐어짜고 있음을 직감했다. 정작 본인은 이 전장에 없지만, 그레모리는 고블린-가고일-낙타 괴물의 라인업 이외에도 온갖 마물들을 부리며 우리를 압박하려 했다. 마왕성에서 급히 공수한 놈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어어어어!!"

나는 기합과 함께 낙타 괴물의 손목을 붙잡고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낙타 괴물의 팔을 힘으로 뽑아버릴 기세로 잡아당긴 통에 낙타 괴물은 행사장 인형처럼 나풀거리며 그 다리로 다른 마물들을 걷어찼다.

퍽, 퍽퍽퍽!

키이이익!

낙타 괴물은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 내가 너무 꽉 쥐어서 그런지 손목이 금방이라도 으깨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나는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몸을 돌려 빙빙 돌았다. 낙타 괴물 자체를 무기로 하는 휠윈드에 괴물들은 당황했다.

'당황하면 죽어야지!'

나는 가차없이 낙타 괴물을 가고일들 위로 집어던졌다. 낙타 괴물의 거구가 가고일 두 마리를 깔고 바닥에 떨어졌다.

푸욱!

순간, 종아리 쪽이 화끈거렸다. 고블린 하나가 내 아킬레스건을 그으려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잡아 당기는 덕분에 화를 면했다.

콰득!

나는 고블린을 발로 밟아 으깨버렸다. 빨리 제압을 하지 않으면 놈들은 계속 내 종아리를 노릴 것이다. 나는 철검을 붕붕 휘두르며 주변 적들을 위협했다.

적의 숫자는 아직도 백을 훌쩍 넘겨보였다. 그리고 그 백에 이른 모든 적은 오늘 죽어야했다. 내가 최대한 오랫동안 버티고, 그 사이 부하들이 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전투가 끝날 기미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 * *

쾅!

그레모리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연결하는 족족 부하들의 모가지가 꺾이거나 죽어 사망하여, 현장의 상황을 알아보기엔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니 분신이라도 만들어서 보내야 했다. 그 분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산란.

그레모리의 안에 들어온 촉수 괴물의 씨앗은 아직 수확을 하려면 시간이 훨찐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레모리에게는 그 시간을 단축할 마법의 물건이 하나 있었다.

마정석.

그레모리는 볼록한 배를 이끌고 소환시설에 직접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보라색 빛으로 반짝이는 마정석을 손에 움켜쥐고 아래로 밀어넣었다.

찌걱, 찌걱!

질속에 나선형으로 막혀있던 촉수 괴물의 촉수 가닥이 힘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마정석의 마력에 반응한 소환 시설의 힘 덕분에 산란을 막는 촉수 가닥들은 전부 잘려나간듯 바닥에 흩뿌려졌다.

"어어억--!"

그레모리는 마정석을 음부속에 쏙 집어넣었다. 촉수를 뽑아내고 헐거운 구멍 사이로 마정석은 너무나도 쉽게 안으로 들어갔고, 소환 시설에 그려진 마법진이 격렬히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으, 키잇, 흐아악!"

그레모리는 자궁 속에서 꿈틀거리는 감각에 교성을 터뜨렸다. 뱃속에서부터 알의 형태로 크기를 키워나간 촉수 괴물들의 새끼들은 마정석의 마력을 먹이삼아 신명나게 자궁속을 헤엄치고 다녔다. 그 모든 자극은 그레모리에게 쾌락으로 전해졌고, 그레모리는 하체에 힘을 주었다.

"응, 크으으윽...!"

앓는 소리를 내던 그레모리의 하복부가 꿀렁거렸고, 곧 질속에서 달걀만한 알이 쏙 튀어나왔다. 알처럼 위장한 촉수 괴물을 새끼들이 점막과 함께 그레모리의 뱃속에서 빠져나왔다.

꿀럭, 꿀럭.

이를 악문 그레모리의 입가에 침이 줄줄 흘렀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레모리의 배가 꿀렁일 때마다 촉수 괴물의 새끼들이 음부에서 밖으로 고개를 들이밀듯 빠져나왔고, 그레모리는 마정석의 힘으로 빠르게 슴풍슴풍 알을 산란했다.

"하으으...."

몸을 두어차례 떤 그레모리는 그대로 소환 시설에 누워 천장을 향해 마력을 뿜어냈다. 마나가 허공에서 춤추며 하나의 인영을 만들어냈다.

"후우, 후우."

그레모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금 갓 만들어낸 분신에게 정면을 가리켰다. 분신은 힘은 본체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마법을 써서 적을 위협할만한 힘이 있었다.

반드시 돼지는 죽인다. 심처의 입구를 지키던 3성짜리 낙타 괴물 하나에게 분신을 데리고 전장으로 향하라 명령을 내린 그레모리는 다시 침대로 기어가 몸을 눕혔다. 산란의 절정에 빠졌던 그레모리는 잠깐이나마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휴식은 분신이 벌어줄 때 였다.

분신은 부리나케 낙타 괴물에게 업혀 공동으로 향했다.

* *  *

퍼억, 퍽!

고블린들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낙타 괴물들이 신난다 싶으면 달려가서 머리를 터뜨려버렸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적을 대처하는 방법은 오직 죽여서 없애는 방법밖에 없었고, 나는 그 방법에 따라 두 주먹에 피를 흥건히 적시며 마물들을 때려잡았다.

"후우우...."

살짝 짙쳐서 한숨이 짙게 흘러나왔다. 그레모리의 부하들은 그 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던전 군데군데 퍼진 놈들이 하나 둘 공동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크르륵.

서로 교대를 하며 휴식을 취하는 모루의 부하들은 편하게 쉴 수 있었으나, 혼자서 후방을 교란하는 역할을 맡은 나로서는 피로감을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님!"

"후우, 내려오지 마! 아직은 할 수 있다!"

륜이 나를 구하려는 듯 슬라임 드래곤을 이끌고 내려오려고 했다. 나는 천장을 향해 호통을 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시작이었고, 아직 본 게임에 들어가려면 한참 남았다.

부족한 전력은 내가 다 채워야했다.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에워싼 가고일들의 날개를 뽑아버리려던 찰나.

"오호호!"

통로 너머에서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하필이면 지쳐서 잠깐 쉬고 싶다고 생각한 때, 그레모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레모리의 부하들의 움직임도 잡깐 굼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다시 돌아오다니, 멍청한 것!"

그레모리는 시작부터 날 도발했다. 피를 본 덕분에 눈에 뵈는 게 없던 나는 절로 그레모리의 말을 맞받아쳤다.

"호되게 당한 건 네년이지. 정신 못차렸군."

나는 피가 덕지덕지 묻은 철검을 허공에 휘둘러 위협했다. 그레모리는 자신감 넘치는 상태로 나타났으면서도 내가 위협을 하자 침을 꼴깍 삼키며 물러섰다. 내 위협이 허세인지 아니면 실제로 여유가 넘치는 힘을 과시하는지 파악하는 듯 보였다.

허세인 동시에 과시였다. 나는 부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빡 주고 그레모리를 도발했다.

"분신만 보내서 뭘 하겠다는 거냐? 흐흐, 이번에는 진짜로 박히고 싶어서 나를 찾아온 게냐?"

"하여튼 머릿속이 그걸로만 가득찬 변태새끼가! 넌 실수한 거야, 멍청아! 깔깔!"

그레모리는 하이톤으로 경박하게 웃으며 나를 환멸했다.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포털은 신경도 안 쓰이나보지?!"

"......!"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훑었다. 그레모리는 그제서야 우쭐거리며 부하들의 뒤에 숨어 방글거렸다. 나를 비웃어대는 저 건방진 얼굴에 철검을 쑤셔넣고 싶은 생각이 치솟았다.

"오호호! 네 본진은 지금 비어있겠지! 공격에 모든 힘을 다 쏟은 네 패배다!"

"...그 낙타 괴물은 보냈군. 4성짜리."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적이 하나 있었다. 그레모리 본체를 상대로 통정을 했던 그 낙타 괴물은 우리가 이렇게까지 날뛰고 있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포털을 타고 우리 던전을 급습하러 간게 틀림없었다. 나는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는 그레모리의 용병술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크흐, 흐흐흐!"

"뭐, 뭐야?! 미쳤어?! 왜 웃는 거야! 상황 파악이 안 돼?!"

"아, 별거 아니다. 더 쉽게 이길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레모리 던전에서 가장 난적이라 할 수 있는 세 개체 중 하나가 우리 던전으로 향했다. 그 말은 즉 던전에서 돌아오는 길을 막아버리면 그 별동대는 이 던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쟁탈전의 핵심은 던전 주인에 대한 사냥.

그러므로 던전이 유린당한다고 해서 내가 패배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 네 던전에 있는 남은 부하들이 모두 학살당할 거라고! 내가 지금까지 전력으로 키워온 나의 사랑하는 부하에게!"

"빈 던전 터느라 고생이 많겠네. 걔한테 안부는 전했냐? 라임!!"

나는 천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임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포털에서 나오는 통로 무너뜨려!"

"뭐...?"

그레모리는 당황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나는 입안에 고인 피섞인 침을 바닥에 퉤 뱉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낙타 괴물들의 뒤에 숨은 그레모리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이라니. 간단하지."

나는 호흡을 고르고 그레모리에게 활짝 웃었다.

"이게 바로 올-인이라는 거다. 기지바꾸기라고 들어는 봤냐?"

나는 내 던전의 전력, 말 그대로 '모든것'을 챙겨 그레모리의 던전으로 넘어왔다. 부하, 재물, 그리고 아직 부화하지도 않은 알까지 전부.

"그레모리야, 헌 집을 줄테니 새 집을 내놓거라."

네 던전으로.

물론, 결국에는 둘 다 내 집이 될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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