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라면 먹고 갈래?
* * *
‘다인 선배가 밥을 사주신다고?’
그러고 보니 지난번 삼겹살 이후로 제대로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뭐, 다인 선배도 배구부 에이스이니만큼 바쁜 게 당연하긴 하지만.
‘나야 학기초라 정신이 없고…. 다인 선배도 배구부 신입생들 가르쳐서 대회나 전국체전 준비도 시켜야 하니.’
간만에 선배랑 밥을 먹는 건 나로선 환영이었다.
‘그리고 선배가 있으면 여자들 가드 효과가 있단 말이지.’
평소에는 지아와 시간이 맞을 때 먹거나 조별과제 조원들과 먹거나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서로 시간이 안 맞을 때가 많아서 혼밥도 자주 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혼밥을 하고 있으면 주변 여자들의 시선과 관심이 부담돼서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는 것.
구석에서 학식을 먹고 있으면 이곳저곳에서 수군대는 건 기본에, 그중 용감한 몇몇은 다가와서 번호를 묻거나 데이트 신청을 한다.
‘이것도 처음엔 진짜 거절하기 힘들었지.’
꽤 예쁘장한 타 과 신입생 동기, 혹은 포스 좀 있는 선배들, 특히 락 밴드라도 할 것처럼 형형색색 염색을 하고 귀걸이를 한 선배들이 다가와서 밥 먹고 같이 디저트나 먹으러 가자고 꼬시면 거절하기가 참 난감하다.
커피 사 줄게, 커피.
남자들 딸기 케이크에 그렇게 환장한다던데, 너도 좋아하니?
이야, 내가 마침 딱 기프티콘이 있네?
‘그놈의 커피!’
커피 한 잔 하자는 권유를 대체 몇 번이나 받았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그나마 요즘엔 좀 유하게 거절하는 데 익숙해져서 비교적 잘 쳐내는 편이긴 하지만….
아직도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여하튼, 다인 선배가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 줬으니 답을 해야겠지.
<하늘 :="" 네,="" 선배.="" 좋아요.="" 저="" 11시="" 50분에="" 끝나는데="" 선배는요?=""/>
<다인 선배="" :="" 난="" B교시라="" 12시="" 15분.="" 강의실="" 앞에서="" 좀="" 기다릴래?="" 아님="" 어디="" 휴게실="" 같은="" 데="" 가="" 있든가.=""/>
<하늘 :="" 음….="" 적당히="" 근처에="" 있을게요.=""/>
휴게실 가서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휴게실을 가겠는가.
여자들 많은 휴게실을 가느니 공용 화장실에서 문 닫고 웹툰이나 몇 편 보고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닌가? 화장실도 위험 지역인가?
<다인 선배="" :="" 그래.="" 이="" 교수님="" 항상="" 우리="" 점심="" 먹으라고="" 조금씩="" 일찍="" 끝내="" 주시니까="" 오래는="" 안="" 걸릴="" 거야.=""/>
<하늘 :="" 넵.=""/>
좋아, 그럼 자연스럽게 화장실 한 번 들렀다가 다인 선배 강의실 쪽으로 가면 되겠다.
자, 교재 28페이지를 보면…. 강하늘, 강하늘? 여기 한 번 읽어 줄래요?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나는 교수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자연스럽게 숨기며 교재를 펼쳤다.
“네, 넵!”
***
‘하아, 집중하기가 어렵네.’
나는 한숨을 쉬며 벽시계의 초침을 바라보았다.
별로 재미가 없는 강의인 것도 있지만, 다인 선배 얼굴을 떠올리니 자꾸만 아랫도리가 반응해 버려 강의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시작 전에 화장실에서 한 발 빼고 올 걸 그랬나…. 아니, 그럴 시간도 없어서 택시 타고 왔었지.’
요즘은 좀 정액이 쌓였다 싶으면 강의 시작 전에 몰래 화장실에서 한 발씩 빼고 들어가곤 하는데, 이게 효과가 참 좋다.
그마저도 발정기에는 힘들지만, 이렇게 평상시에는 손으로 한 발 빠르게 빼고 들어가면 그 강의 시간만큼은 집중이 잘 된다.
‘참, 이 몸의 회복력이라는 게….’
어디 다치거나 몸이 피곤할 때 회복이 빠른 건 정말 좋은 일이긴 하다.
아마 이 몸으로는 웬만한 사고를 당해도 일주일 안에는 멀쩡히 퇴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될 정도.
‘다만 이 아랫도리도 빨리 충전돼버린다는 게 문제지.’
처음엔 이성으로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성욕 스위치 때문에 자위를 해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니 ‘빨리 빼고 강의 들어가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택시를 타고 급하게 오는 바람에 그럴 겨를이 없었고.
하늘아, 벌써 가버릴 것 같아?
싸버렸네? 자, 그럼 바로 다시 시작할까?
찔걱, 찔걱.
다인 선배와 샤워실, 그리고 라커룸 안에서 했던 착정 섹스가 자꾸만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다인 선배의 호박색 눈이 나를 그윽하게 내려다 보고, 이어서 입술이 겹쳐진다.
선 채로 밀착하자 단단하면서도 매끈한 복근,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말랑한 가슴이 상체에 닿는다.
그 상태에서, 손으로 내 엉덩이를 들어 자지를 다인 선배의 질 안에 푹 쑤셔 넣는다.
찔걱, 찔걱.
나를 벽 쪽에 힘으로 밀어붙여 놓고, 아랫도리만을 거칠게 움직이며 강한 질압으로 조인다.
신음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다인 선배와 입을 맞추고 있어 신음은 다인 선배의 목구멍으로 넘어갈 뿐.
다른 사람들이 라커룸 밖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다인 선배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할 때.
우린 라커룸 안에서 그렇게 질척한 섹스를 했다.
다인 선배의 질압을 견디지 못하고 몇 번이나 사정했을까.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던 시간이 거의 절반이었던 것 같은데.’
흔히 술 먹다가 필름이 끊겼다고들 하던데, 나는 아직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겨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섹스하다가 끊겨 본 적은 좀 있지….’
글쎄, 그 정도면 섹스가 아니라 그냥 착정이라고 불러야 했었을까….
어쨌거나.
내 자지는 자꾸만 ‘이따가 섹시한 다인 선배 만난다’는 생각을 강의 중에 수시로 내 머릿속에 주입시켜 버렸다.
‘아니, 어차피 다인 선배랑 섹스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나는 거냐고….’
식사라 해 봐야 그냥 캠퍼스 내에서 먹거나, 아니면 뭐 다인 선배가 빠삭하게 아는 주변 맛집 같은 곳을 가게 될 터.
그럼 그곳엔 보는 눈도 많을 거고, 은밀한 짓을 할 건덕지 따위는 없다.
‘후우….’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강의에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이거 끝나고 다인 선배 만나러 가기 전에, 일단 화장실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뷰르르릇
뷰릇
“하아…. 이제 좀 살겠네.”
강의 막바지에는 아예 쿠퍼액으로 옷 안쪽이 축축해진 상태였기에, 혹시라도 주변에서 알아챌까 전전긍긍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나가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인 선배 생각을 하면서 변기에 대고 자지를 마구 흔들어댔다.
뷰릇
“후우….”
확실히 한 발을 빼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며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참 호르몬이란 게 무섭단 말이야. 사정 직후에는 이렇게나 세상의 이치와 물욕, 성욕,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을 하게 되는데 말이지.’
정액이 쌓여 있을 때나, 성적으로 자극을 받아 스위치가 올라가버리면 그냥 바로 성욕의 노예가 되어버리니….
‘그래, 뭐 어쩌겠냐. 조금 불편해도 참자.’
어처구니없게도 입학 첫날 세계가 이상하게 변했지만, 듣자하니 남자는 취업이나 기타 여러 가지 면에서 가산점이 붙는다고도 하고, 여자들도 대체적으로 호의적으로 대해 주니 세상 살아가기에는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뭐 일부러 꿀만 빨고 편하게 지낼 생각은 아니지만.’
당연히 나도 다른 학생들처럼 노력하고,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알바도 해서 어엿한 성인으로서 1인분을 할 생각이다.
다만 일이 좀 잘 안 풀리더라도 이쪽 세계에선 발밑에 안전 지대가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뭣보다 우리 든든한 누나들이 있….
‘아, 잠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어느새 내가 쾌감의 여운을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바지를 올렸다.
우웅
<다인 선배="" :="" 하늘아,="" 어디야?="" 나="" 지금="" 끝났는데.=""/>
<하늘 :="" 지금="" 바로="" 갈게요!=""/>
<다인 선배="" :="" 밖이면="" 1층에서="" 기다려.="" 지금="" 내려갈="" 테니까.=""/>
<하늘 :="" 넵!=""/>
***
킁킁. 킁.
‘냄새 안 배겼겠지?’
혹시라도 옷에 정액 냄새가 배겼을까 코를 찡긋할 때쯤.
“하늘아! 기다렸지?”
저 멀리서 다인 선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선배!”
오늘도 선배는 멋있었다.
검은 후드에, 똑같이 검정으로 쫙 빠진 트레이닝복.
‘안 그래도 키가 큰데, 비율까지 좋으니 다리가 진짜….’
허리 위까지 트레이닝복을 일부러 당겨 입은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입었는데 저 정도 비율이면 진짜 너무 사기 아닌가?
‘일단 골반이 넓어서 잘 걸쳐지는 것도 있고.’
아니, 지금 몸매 볼 때가 아닌데.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가자. 내가 기가 막힌 집 알고 있걸랑.”
다인 선배는 활짝 웃으며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날 끌어당겼다.
“으아아, 선배!”
“왜? 우리 사이에 이 정도도 안 돼?”
“그게 아니라….”
선배는 날 한 팔로 안은 채로 휴대폰을 꺼내 대충 지도를 보더니 이쪽이 빠르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여기 부대찌개가 진짜 미쳤거든. 다른 곳에서는 이 맛이 안 나. 여기다가 밥 한 공기 말아 먹으면 진짜…. 후….”
벌써부터 신난 듯 다인 선배는 걸음을 빨리했고, 나는 다인 선배의 빠른걸음을 쫓아가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했다.
“헉, 헉…. 여긴가요?”
<흥부대찌개/>
나는 간판을 보며 소매로 땀을 닦았다.
“근데…. 맛집이라 그런가 사람이 엄청 많은데요…?”
아닌 게 아니라, 부대찌개집은 거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뭐야. 여기 원래 이렇게까지 붐비는 데 아닌데. 뭔 일 났나?”
찰칵, 찰칵!
“막 사진을 찍는데요?”
자세히 보니 단순한 손님뿐 아니라, 안쪽의 어느 공간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가장 신기한 건, 그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남자였다는 것.
“우와, 눈나…. 나 죽어!”
“눈나!”
그들은 눈나를 연호하며 안쪽 누군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잠시 후, 인파가 살짝 갈라졌을 때 본 안쪽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아아, 저거 때문이었구만.”
“…누구지?”
내 말에 오히려 놀란 건 다인 선배였다.
“뭐야, 하늘이 너 하우연 몰라?”
“누군데요…?”
원래 세계에서도 있었던 사람인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뭐 아이돌에 관심이 있었어야 알지….’
청초한 푸른 머리.
아름다운 얼굴선.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또렷한 이목구비.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짓지만, 어딘가 조금 차가워 보이는 눈빛.
…대충 아이돌 같긴 한데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사람이다.
“다인 선배, 여긴 당분간 붐빌 것 같으니까 다음에 가고 오늘은 다른 거 먹어요.”
“어, 어? 괜찮겠어? 넌 뭐 사진 안 찍어도 돼?”
다인 선배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끄덕였다.
“잘 모르는 사람 사진 찍어서 뭐 남는 거 있나요. 선배 주변에 아는 맛집 많다고 했으니까 다른 데 가요.”
“어, 그, 그래.”
다인 선배는 답지 않게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안쪽을 슬쩍 보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이 타이밍에, 그것도 부대찌개 집에 아이돌이 찾아오다니.’
솔직히 나도 부대찌개에 라면 사리 넣어 먹을 생각에 침 삼키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뭐, 오늘만 날도 아니고. 맛집도 다른 데 많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휴무입니다.=""/>
<정기휴무/>
<닫습니다./>
<강아지가 아파="" 오늘은="" 영업="" 안="" 합니다=""/>
“…….”
“…….”
아니.
“왜 가는 맛집마다 영업을 안 하는 거야아아아!”
다인 선배가 이마를 짚었다.
“재수 옴 붙었네, 진짜.”
“어, 어쩔 수 없죠. 선배. 전 괜찮으니까 그냥 적당히….”
“하늘아.”
“네?”
“너 이 다음에 시간표 어떻게 돼? 바로 강의 있냐?”
다인 선배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어, 아뇨. 사실 시간표가 제대로 망해서 우주공강이에요.”
그리고 내 말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어지는 선배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그럼, 하늘아.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