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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여대에 입학한 남자로 살아가는 법-34화 (34/79)

〈 34화 〉 띵동

* * *

내 우주가 멈췄다.

오늘 내 세상이 무너졌… 아니 이게 아니라.

이런 뻘소리가 스쳐지나갈 정도로 내 사고 회로는 마비되어 있었다.

윤서 누나의 온기, 살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입을 맞추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입을 맞춘 채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서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이 코로만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다.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내 침인지 누나의 침인지조차 이제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DNA는 같으니까 상관없으려나…?’

그런 몹쓸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루 종일 이러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이 극락을 누리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다시 신호가 왔다.

도대체 이 몸은 어떻게 돼먹은 걸까.

싸고 나서 빼지 않고 그대로 일정 시간이 지난 것만으로 다시 감각이 살아나며 혼자 달아오르고 있었다.

‘윤서 누나 안쪽이 너무 기분 좋아서 그래….’

이런 말하기도 뭣하지만, 정말 윤서 누나와 섹스를 하지 않았던 나는 그동안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본 기분이었다.

아니, 손해라니.

오히려 스무 살 한창 나이에 이런 행복을 알았다는 것이 축복이 아닐까.

“헤읍….”

윤서 누나도 내 자지가 다시 빳빳해지자 기분 좋은 듯 내 뺨을 어루만지며 날 사랑스런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하늘아, 사랑해.”

그리고 우리는 다시 정신 없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헤윽…!”

그 이후로도 나와 윤서 누나는 몇 번이고 절정하면서 교감을 나눴다.

“헤으으…. 눈나…. 사랑헤….”

“하늘아…. 사랑해….”

우리 둘 다 녹초가 되어 발음은 뭉개졌고, 내 침대 위는 이제 누나의 질에서 넘쳐 새어나온 정액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케이, 컷!”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뜨자 카메라를 들고 있는 민서 누나가 보였다.

어제 찍었던 핸드폰 카메라가 아닌, 전문가용 캠코더를 손에 들고 맛이 가버린 내 표정을 적나라하게 찍고 있었다.

‘아니, 저런 건 언제 산 거야?’

내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민서 누나를 올려다보자, 누나가 싱긋 웃었다.

“역시 전문가들답게 이 오랜 시간을 NG 없이 촬영을 끝냈네요. 박수 한 번 드릴게요.”

카메라를 내려놓은 민서 누나가 예쁜 손으로 박수를 쳤다.

“으으…. 언니이…. 너무해….”

윤서 누나는 녹초가 된 채로 고개를 내 얼굴 옆에 툭 떨궜다.

“그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까운 장면들을 영원히 담아 놓을 수 없는걸?”

민서 누나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키득댔다.

“하아, 하늘이의 가버린 표정. 몇 번을 봐도 안 질린다니까.”

민서 누나는 캠코더를 돌려 보며 손으로 뺨을 감쌌다.

띵동­

그때 아래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지…?”

나는 지금 하고 있던 짓이 있으니 괜히 찔려서 긴장했다.

“그러게, 누굴까? 한번 나가 볼래 하늘아?”

“내가?!”

민서 누나의 말에 내가 기겁했다.

아니,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대충 옷가지 걸치고 나가면 되지, 왜?”

“언니, 그냥 내가 나갈게.”

민서 누나의 말에 윤서 누나가 다행히 흑기사를 자처했다.

“아니, 난 하늘이가 나갔음 좋겠는데.”

민서 누나가 휘파람을 불며 캠코더를 흔들자 윤서 누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크윽….”

“하늘이는 오늘까지 내 거잖아. 안 그래?”

띵동­

반응이 없자 다시 한 번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오늘 아침에 도망갔던 것에 대한 벌인가….’

밖에 누가 있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꼴로 나가면 그 누구든 간에 내 이미지가 구겨질 게 분명하다.

‘어쩌겠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나가야지.’

나는 굳게 결심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강 티셔츠에 츄리닝 반바지를 집어들어 입었다.

“끙….”

“입혀 줄까, 하늘아?”

“아니, 제발.”

띵동­

나는 허둥지둥 옷을 입고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꿀꺽.

현관문 앞에 선 나는 침을 한 번 삼켜주고 문을 열었다.

끼이이­

“아, 안녕하세요. 깐부피자입니다!”

“네?”

문밖에는 웬 키 큰 여자 한 명이 이마에 땀이 맺힌 채로 내게 피자를 내밀고 있었다.

‘피자 배달 온 거였어?’

그 순간 민서 누나의 씩 웃는 표정이 떠올랐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놀려 주려고….’

피자 시켜 놓고 누가 왔는지 모른 척하다니.

역시 짓궂은 누나다.

“감사합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피자를 받아들었다.

“계산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어, 계산이요?”

배달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이 시대에 어플로 바로 결제를 안 해 놨다고?’

그냥 대충 옷가지 걸치고 나왔으니 카드 같은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고.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누나를 부르기 위해 허둥지둥 잠시 피자를 내려놓았다.

주륵­

그리고 그때 내 다리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피자를 내려놓느라 허리를 숙였을 때 츄리닝 반바지 사이로, 내 허벅지를 타고 정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급하게 옷을 입느라 정액도 제대로 못 닦고 나온 탓이었다.

“헉.”

큰일났다 싶어 피자 배달부 쪽을 보니, 역시나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배달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으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계속해서 내 허벅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 이건…. 그….”

나 역시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었다.

“빠, 빨리 카드 가지고 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는데, 어딘가에서 갑자기 카드가 날아왔다.

툭, 차르르­

바닥에 떨어져 내 앞까지 밀려들어온 카드.

재빨리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민서 누나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누나….’

모든 게 계산된 시나리오였다는 걸 깨달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어서 카드를 주워 피자 배달부에게 내밀었다.

“이, 이만 칠천구백 원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배달부는 결제되는 동안에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계산이 끝나자 카드를 주고 황급히 아랫도리 쪽에 손을 가져간 채로 자리를 떴다.

“…….”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피자 두 판을 가지고 위로 올라갔다.

* * *

내가 피자를 받아오는 동안 내 방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테이블 세팅까지 완료된 채로 우리 삼남매는 피자를 먹었다.

“맛있다….”

나는 따끈따끈한 피자를 한 입 베어문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엄, 원래 격렬한 운동 끝에 먹는 게 제일 맛있는 법이지.”

민서 누나도 피자를 한 입 먹으며 웃었다.

“누, 누나…. 자꾸 놀릴래? 아까도 일부러 나 내보내서 완전 쪽팔렸는데….”

“쿡쿡, 미안 미안. 그런 모습까지 하늘인 귀여우니까 괜찮아.”

“귀여우니까 괜찮다니….”

그 와중에 윤서 누나는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열심히 피자를 먹었다.

우리 둘 다 녹초가 되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윤서 누나가 위에 있었으므로 더 고생한 것이 사실이다.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윤서 누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아마 하지도 못했을 거다.

“하늘아, 이것도 맛있어. 먹어 봐.”

윤서 누나는 다른 쪽 피자를 먹어 보더니 내 쪽에 붙어 앉으며 피자를 내밀었다.

“아~”

순간 민망해서 거절하려던 나는 문득 아까 민서 누나가 닭죽을 먹여 줬던 게 생각났다.

‘민서 누나한테는 얻어먹어 놓고, 윤서 누나 것만 거절하는 것도 미안한데….’

그런 생각에 나는 순순히 입을 벌렸다.

“아~ 움. 오, 맛있는데?”

내가 순순히 윤서 누나가 내민 걸 받아먹고 웃자 윤서 누나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치?”

“응.”

“언니, 이거 어디 거야?”

“피자유니버시티.”

“오호, 여기 괜찮은데 담에 또 시켜 먹자.”

“그래, 다음엔 윤서가 사는 걸로.”

“쳇. 알았어.”

아까 닭죽을 먹어서인지 분명 피자는 맛있었지만 많이는 먹지 못했다.

다행히 윤서 누나가 배가 많이 고팠는지 꽤 많은 부분을 처리해 주었기에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다.

저렇게 잘 먹으면서 어떻게 저런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옷을 입고 있는데도 실루엣만으로 알 수 있는 탄탄한 몸매.

벗으면 더 미치는 몸… 아니 그만하자.

‘역시 운동량이 많아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내일은 윤서 누나가 날 도장에 데리고 간다고 했었는데.

아예 목각인형까지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도 나는 그다지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냥 반에서 딱 평균 정도 하는 수준?

‘내가 잘할 수 있으려나.’

가벼운 스포츠는 몰라도 무술을 배우는 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도 무술 영화를 보거나 만화에서 주인공이 화려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동경한 적이 있었는데, 직접 배우러 간다고 하니 뭔가 겁나면서도 설렜다.

설렘 반, 걱정 반.

그게 지금 딱 내 마음 상태였다.

‘몰라, 일단 내일 생각하자.’

나는 걱정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콜라를 들이켰다.

“꺼억.”

* * *

“자, 들어가자. 하늘아. 널 강하게 만들어줄 곳으로.”

“어, 응.”

윤서 누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도장에 데리고 왔다.

듣자하니 유도와 주짓수를 둘 다 가르치는 곳인 것 같았다.

사실 간지는 유도긴 한데, 아무래도 윤서 누나가 나에게 원하는 건 실전이다 보니 주짓수를 먼저 가르쳐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 일찍 와 있던 관원들이 윤서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어, 코치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하던 관원들은 누나를 따라 들어온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 굳었다.

“어!”

“어!”

그리고 관원들을 본 나도 그 자리에 굳었다.

“어.”

생각해 보니 이 세계에선 도장 다니는 사람들도 다 여자인 거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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