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간호
* * *
학교에서 맞고 온 내가 충격에서 회복하는 동안, 나는 민서 누나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누워서 푹 쉬고 있어. 저녁 갖다 줄 테니까.”
민서 누나는 나를 공주님 안기, 아니 여기선 왕자님 안기인가?
아무튼 날 번쩍 들어서 안고는 내 방까지 옮겨 주었다.
“누, 누나. 내 발로 갈 수 있는데….”
“쉿. 몽환의 숲.”
“…?”
누나에게 안겨 있자 걸어가는 박자와 함께 내 몸이 누나의 커다란 가슴과 불규칙적으로 닿았다.
특히 누나의 몸쪽을 향한 팔은 거의 누나의 밑가슴에 묻히다시피 했는데, 그 감촉이 부드러워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말랑
누나는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나를 좀 더 가슴 쪽으로 밀착시켰다.
“누, 누나….”
“후후, 다 왔다.”
누나는 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금방 준비해서 가져다 줄게. 기다리고 있어.”
“으, 응…. 고마워.”
달칵.
문이 닫혔다.
철컥.
문이 잠겼….
다?
‘뭐, 뭐지?’
어차피 문은 안쪽에서 열리는 거기 때문에 문고리는 잠가 봤자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지금 난 철컥 소리는 문고리에서 난 소리가 아니다.
‘설마….’
나는 대략 10초 전에 지나가듯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문고리 위에 뭔가 경첩 같은 게 새로 달려 있다 싶었는데….’
누나의 밑가슴에 정신이 팔려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금 그 철컥 소리는….’
자물쇠 소리.
즉, 내가 새벽에 몰래 빠져나가서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누나는 내 방문에 경첩을 설치했고, 지금 날 방에다 가둔 뒤 자물쇠를 잠갔다는 소리였다.
“큰일났다.”
생각해 보면 새벽에 몰래 빠져나가서 이득을 본 거라고는 편의점 알바 누나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한 것밖에 없었다.
새벽부터 양아치 3인방에게 강간을 당했고, 도서실에서 시간을 떼우려다가 시비를 털리고 여자 모쏠아다의 아다를 졸업시켜줘 버렸다.
게다가 호되게 얻어맞기까지 했고.
그냥 얌전히 집에서 민서 누나가 해 주는 따뜻한 아침을 먹고, 예쁘고 상냥한 누나들과 시덥지 않은 수다를 떨다가 정상 등교를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아…. 그래.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윤서 누나랑 섹스한 영상을 찍혔고, 그 후폭풍이 두렵다는 이유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새벽에 몰래 나간 죗값이었다.
차라리 민서 누나랑 잘 대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라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냐. 후회는 그만 하자.”
어쨌든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다인 선배가 날 멋지게 구해주었지 않은가.
이렇게 누나들도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그러고 보니 다인 선배가 연락처 주고 갔었지.”
보건실에서 떠나기 전에, 다인 선배가 연락처 적힌 쪽지 하나를 내 주머니에 넣고 갔었다.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시합 중만 아니면 바로 뛰어가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다인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쪽지를 꺼내자 휘갈겨 쓴 글씨체로 선배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연락해 볼까.”
생각해 보면 날 위해서 체대생 3명을 상대로 맨몸으로 뛰어들어 준 선배다.
그때 다인 선배가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면 다인 선배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치료를 받느라, 그리고 다인 선배도 강의 들으러 가버려서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 딱히 사심이 있는 건 아니야. 인간 된 도리로서 감사 인사는 해야지.’
토토톡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인 선배의 번호를 저장했다.
코톡의 친구 목록 갱신 버튼을 누르자 다인 선배의 프로필이 새로 생긴 친구 목록에 바로 떴다.
[박다인]
‘와, 프로필 사진 봐.’
최근에 바디 프로필을 찍었는지 매끈한 구릿빛 몸매에 선명한 복근,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프로필 사진으로 떠 있었다.
문득 라커룸, 샤워실에서 봤던 다인 선배의 맨몸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무, 무슨 불순한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생명의 은인한테.’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끈적하게 달라붙던 질의 감촉, 나를 꼭 껴안고 움직이며 낮은 숨을 뱉던 선배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갔다.
‘으윽….’
나도 모르게 발기하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프로필 배경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찍어 줬는지 배구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찍는 장면이 멋있게 담겨 있었다.
‘진짜 멋있다….’
역동적인 장면 속 선배는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대화하기]
‘음, 뭐라고 해야 하지.’
[하늘 : 저, 선배. 안녕하세요. 강하늘입니다.]
[하늘 : 연락처 전송]
[하늘 : 제 연락처예요.]
[하늘 :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일단 여기까지는 보냈는데.
그 이후에 뭐라고 해야 하지?
앞으로 배구 경기 자주 보러 가겠다?
시합에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뭐라고 보내도 너무 형식적인 인사로 보일 것 같았다.
“끄응….”
일단 답장을 기다려 볼까.
띠리리리리
“헐?”
[수신 중 : 박다인]
코톡 답장이 아니라 전화?
일단 받긴 해야겠지…?
“여, 여보세요…?”
어, 하늘아. 몸은 좀 괜찮나?
“아 네, 덕분에요. 보건 선생님도 푹 쉬면 다 나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 잘됐네. 앞으로도 연락할 일 있음 일로 연락해. 지금 뭐 해?
“저 지금 침대에 누워 있어요. 곧 저녁 먹으려고요.”
아, 그래? 맛있게 먹고. 나도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그럼 담에 보자.
“저, 선배!”
어?
“그,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어떻게 갚을 건데?
“네?”
다인 선배의 목소리가 장난기로 물들었다.
아님 내가 정할까?
수화기 너머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다시 라커룸 생각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다인 선배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농담이야. 됐고 그럼 다음 주에 밥이나 한 번 먹자.
“조, 좋아요. 제가 사드릴 테니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오케이. 담주에 보자. 그럼 끊는다.
“네, 선배!”
나는 전화를 끊고 심호흡을 했다.
“휴우…. 전화 한 번 하는데 뭐 이리 떨리냐….”
전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옆으로 내려놓던 나는, 그제서야 내 방문이 열려 있음을 깨달았다.
“하늘아, 저녁 준비 다 됐는데.”
나는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민서 누나는 쟁반을 든 채로 문앞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눈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어, 언제부터….”
“조, 좋아요. 제가 사드릴 테니 드시고 싶은 거 있음 말씀하세요.”
“헉….”
누나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나, 날 구해 준 선배 있잖아? 그 선배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구해줬으니 은혜는 갚아야….”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 변명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민서 누나는 내 옆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떨어, 하늘아. 괜찮아. 학교 선배하고 밥 먹는 게 왜? 누난 하늘이가 학교에서 적응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은데.”
“정…말?”
“그럼. 하늘이를 지켜줬으니 나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돈데.”
누나는 침대용 탁자를 펴 내 무릎 위에 놓고, 가져온 쟁반을 올려놓았다.
“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죽이었다.
“하늘이 닭죽 좋아하잖아, 그치?”
“응.”
“자, 아~ 해봐.”
누나는 내 옆에 딱 붙어 앉아서 한손으로는 내 허리를 붙잡고, 한손으로는 숟가락으로 닭죽을 떠서 후, 분 뒤 내 입으로 가져왔다.
“누, 누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는데….”
그러자 공중에서 숟가락이 멈췄다.
민서 누나는 잠시 숟가락을 그릇에 놓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학, 핫, 흣….
누나….
윤서 누나와의 섹스 영상이 재생되자 나는 재빨리 입을 벌렸다.
“아~”
민서 누나는 그제야 빙긋 웃으며 영상을 껐다.
그리고 조용히 내 귀에 속삭였다.
“하늘아, 오늘은 내 거라니까.”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 입에 닭죽을 떠넣어 주었다.
“으움….”
“맛있다….”
“맛있어? 다행이다.”
누나는 진심으로 기쁜 듯 웃었다.
“아~”
“아~ 움….”
‘이거 완전 어린애가 된 기분인데….’
나는 얌전히 닭죽을 받아먹으면서 생각했다.
말랑
나와 꼭 붙어앉아서 누나가 상냥하게 손수 닭죽을 먹여 준다라….
‘이거, 나쁘지 않을지도….’
방금까지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내 몸은 이미 누나의 따뜻함에 사르륵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누나가 닭이 덩어리져 있는 부분을 숟가락으로 떴다.
“이건 한입에 먹기 좀 크네.”
누나는 그렇게 말하곤 닭을 입으로 찢었다.
‘…?’
민서 누나는 입안에 닭을 머금더니, 별안간 그 상태로 입을 내 쪽으로 가져왔다.
“누….”
하지만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누나의 입이 내 입과 맞춰졌다.
누나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을 훑었다.
그리고 닭고기가, 따뜻한 누나의 혀가 내 입으로 들어왔다.
츄릅
닭고기를 내게 넘겨준 누나는 한 번 더 내 혀를 훑고, 내 입술을 살짝 빨며 입을 뗐다.
꿀꺽.
닭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갔지만, 닭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누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늘아.”
누나는 그런 내 얼굴에 뺨을 맞대었다.
“맛있어?”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으, 응….”
누나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리고 다시 내게 키스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