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여대에 입학한 남자로 살아가는 법-17화 (17/79)

〈 17화 〉 라커룸

* * *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나도 다인 선배처럼 서비스 잘 좀 넣어보고 싶다.”

“연습이나 하고 말해. 다인 선배가 평소에 서비스 연습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아냐?”

“안 그래도 하려고 그랬거든?”

나는 황급히 내가 나온 화장실 쪽을 돌아보았다.

도망쳐야 한다.

여기서 걸리면 바로 대학 생활 종치는 거다.

아무리 세계가 바뀌었다고 해도 여자 라커룸에 남자가 혼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문제였다.

단순히 성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절도에 대한 의심도 생겨날 수밖에 없을 터.

‘혹시 누가 뭐 없어졌다고 하면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을 게 뻔하잖아.’

하지만 이곳에 출구는 하나뿐.

뒤쪽의 화장실도 막다른 공간이다.

화장실에 숨으면 당장은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겠지만, 저들 중 한 명만 화장실에 와도 바로 발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나는 재빨리 쭈욱 늘어서 있는 많은 라커 중 하나의 문을 잡아당겼다.

덜컥, 덜컥.

‘젠장, 잠겼어.’

덜컥, 덜컥.

‘이것도.’

이제 발걸음 소리는 라커룸 문 바로 근처까지 다가왔다.

‘틀렸나.’

곧 라커룸의 문이 열리고, 다인 선배를 비롯한 배구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그래서 그때….”

“방금 여기 안에서 뭔 소리 들리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 건 다인 선배였다.

“…….”

순간 라커룸 안이 정적으로 휩싸였고, 모두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글쎄요…?”

“전 못 들은 거 같은데.”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자 평소대로 웃으며 다시 수다를 떨었다.

“깜짝이야, 귀신이라도 있는 줄.”

“닌 여자가 돼서 귀신이 무섭냐?”

“야, 체육관 건물에서 밤에 동정귀신 봤다는 사람도 있어.”

“나도 그 소문 들었는데.”

“동정귀신? 야, 나와 보라 그래. 바로 따먹고 성불시켜 줄라니까.”

“풉. 센 척은 잘하네.”

“진짜라니까?”

다들 깔깔대며 자신의 라커 앞으로 가 열쇠를 꽂고 문을 열었다.

‘휴우…. 진짜 십 년 감수했네.’

그리고 나는 가장 안쪽에 있는, 아무도 쓰지 않는 남은 라커 안에 들어가 있었다.

‘진짜 이것까지 안 열려 있었으면 큰일날 뻔했네.’

배구부 부원들이 들어오기 직전 마지막 시도가 성공한 게 천운이었다.

물론 아직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바깥쪽의 동태를 살폈다.

“야, 현지야. 너 요즘 걔랑 어떻게 돼가고 있냐?”

“하, 넘어올락말락 안 넘어오네.”

“그러게 딱 봐도 못 꼬실 것 같았다니까. 크큭.”

“죽을래?”

라커 문의 얇은 틈 사이로 보이는 바깥쪽에서는 부원들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며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헉.’

일단 배구부 부원들이라 키가 일반 여자들보다도 컸고, 거기다가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까지 그대로 드러나다 보니 안 보려고 해도 동공이 자꾸 끌려갔다.

윗옷을 벗을 때, 팔을 올렸다 내리면서 드러나는 섹시한 광배근을 보며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자꾸 보면 안 되는데….’

머리는 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눈은 이미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야, 니 가슴 더 큰 거 같다?”

“뭐래, 원래 컸거든?”

“아닌데…. 살쪘냐?”

“뒤질래?”

“야, 어딜 만져어!”

서로 친해 보이는 부원들끼리는 서로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눈호강이 따로 없었다.

이전 살던 세계에서는 뭐 남자애들끼리 어렸을 때 자지로 칼싸움을 했다는 괴담도 돌아다니던데, 여기선 실제로 여자끼리 가슴을 맞대며 크기 대결을 하고 있었다.

“야, 아직은 내가 더 큰데?”

“비슷한데 무슨 개소리야?”

“현지한테 물어보든가.”

가슴을 맞대면서 서로의 유두가 닿았지만 막상 둘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꼴깍.

여자들끼리 홀딱 벗고 가슴을 비비는 일련의 모습들을 빠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자지는 커져 있었다.

‘으윽…. 하필이면 이럴 때.’

이미 시각적인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서인지, 가라앉히려고 애를 써 봐도 소용이 없었다.

‘만지면 안 돼. 진짜 걷잡을 수 없어져.’

문득 집에서 윤서 누나가 자위하는 모습을 보고 발정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몸의 스위치가 한번 켜지면 더 이상 이성 따위로는 몸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바지 속에서 팽창한 자지는 만져 달라고, 싸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리를 배배 꼬면서도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최대한 자지를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만 싸워라. 도토리 키 재냐?”

“헉. 다인 선배는 반칙인데….”

그리고 그때 시야에 갑자기 다인 선배가 훅 들어왔다.

놀란 나는 숨을 죽였다.

철컥.

그리고 바로 옆칸의 라커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아, 깜짝이야. 여기 여는 줄 알았네.’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온 모양인지 다인 선배는 이제야 라커를 열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바로 가까이서 옷을 벗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다인 선배의 상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윤기 있는 구릿빛 태닝 피부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팔 근육, 넓은 어깨.

그리고….

‘다인 선배 가슴이…. 저렇게 컸다고?’

스포츠 브라를 입고 있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이즈의 가슴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슴을 부비며 사이즈 대결을 하던 부원들이 무색해지는 순간.

하얀 속옷 자국 같은 것도 없이 올 태닝한 매끄러운 구릿빛 가슴은 그 큰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전혀 처지지 않은, 탄력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적당한 크기의 유륜과 보기 좋게 튀어나온 핑크빛 젖꼭지까지.

두근, 두근.

역치를 넘어간 시각적인 자극, 그리고 바로 곁이라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초조함, 그리고 더 흥분하면 안 된다는 필사적인 머리의 외침이 내 심장에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흐윽…. 참아야 돼.’

하지만 이미 이성의 끈은 끊어지기 직전.

꽉 쥔 채 몸 양쪽에 고정시켜 놓았다고 생각했던 두 손은 어느새 자지 쪽으로 가 있었다.

‘아, 안 돼.’

그때 다인 선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는 바람에, 나는 순간적으로 나를 제어할 수 있었다.

‘드, 들켰나?’

내가 지금 밖을 내다보는 각도로는 다인 선배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좀 더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움직였다가 잘못해서 소리라도 나면 끝장이었다.

꼴깍.

침 삼키는 소리 하나가 라커 전체를 울릴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순간이 지나가고, 다인 선배는 다시 자연스럽게 부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가슴 같은 거 가지고 고민할 시간 있음 토스 연습 한 번이라도 더 해 봐. 우리 이번에 전국대회 우승 해야지.”

“하긴 이런다고 커지는 것도 아니긴 하죠….”

“다인 선배 유전자가 부럽다!”

위험한 순간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나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흐읍….’

조금만, 조금만.

진짜 잠깐만 자지를 만지는 거야.

그러면 기분이 정말 좋겠지?

잠깐이면 충분해.

그런 악마의 속삭임이 내 귓가를 간질였다.

‘제발, 이제 옷 다 갈아입어 가는 거 같은데….’

잠깐만 버티고 부원들이 라커룸을 나가면 올라가버린 스위치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기회가 생긴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가볼게요!”

“저도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다들 수고했어!”

됐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다인 선배는 안 가세요?”

어?

“아, 나 좀 정리할 게 있어서. 먼저들 들어가.”

“네에.”

“고생하셨습니다!”

이, 이러면.

‘갑자기 정리라니. 대체 얼마나 더 버티라는 거야?’

자지를 만지고 싶은 충동이 극에 달해 있는데, 다인 선배는 아직도 스포츠 팬티만 입은 상태로 라커 내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됐다.”

부원들이 전부 나가고 라커룸의 문이 닫혔을 때, 다인 선배가 말했다.

타이밍이 너무 적절해서 다들 나간 걸 가지고 말하는 건지, 정리가 다 됐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이제 더 이상은….’

내 손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렸다.

한껏 달아오른 내 자지가 끅끅대며 쿠퍼액을 생성해내고 있었다.

이미 팬티 안쪽은 쿠퍼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상황.

‘편해지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자지를 쥐었다.

귀두를 쥐었을 뿐인데 기분 좋은 쾌감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지금까지 참았던 고통이 한순간에 해방되는 기분.

왜 진작 자지를 만지지 않았을까.

아니, 이제부터라도 만지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자지를 쥔 손을 움직이는 순간.

끼익­

“역시 있었구나.”

나는 자지를 쥔 채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다인 선배가, 내가 라커 문틈 사이로 훔쳐보던 다인 선배가 온전한 모습으로 내 눈앞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인 선배는 눈썹까지 오는 앞머리를 살짝 쓸어넘기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다, 다인 선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 이제는 변명하기도 늦었다.

자지를 꺼내기 전이었다면 뭐 어떤 사정이 있어서 왔다가 상황이 곤란해질까 봐 숨어있었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라도 있었을 터.

부원들이 전부 있었을 때 발각된 게 아니라 다인 선배 개인에게 들킨 거라면 잘 설득해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누가 봐도 여자들의 라커룸에 숨어들어서 자위를 하고 있는 변태의 모습이지 않은가.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에 내 머릿속으로 수많은 후회가 지나갔다.

‘내가 괜히 라커룸인 걸 보고서도 급한 마음에 안쪽까지 가서 화장실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냥 시간 남는다고 이 체육관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냥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미리 1층 공용 화장실로 갔더라면.’

‘오늘 아침에 물을 덜 마셨다면….’

이러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까지 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가정이 머리를 스쳤다.

“흐음.”

다인 선배는 라커 구석에 한껏 찌그러져서 아직도 자지를 잡고 있는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쌍문동의 자랑 한국여대 수석입학 강하늘이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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