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4화 〉 외전 1화 (314/315)

〈 314화 〉 외전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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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꼭 한 번씩 피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전생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군 입대같은게 그랬다.

아마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백이면 백 공감을 표할 것이다.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고 왔는데 거실 테이블 위에, 혹은 우리집 호수가 새겨져있는 우편함 속에 '병무청'이라고 적혀있는 우편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그 기분을.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암만 볼을 꼬집어봐도 달라지는 건 없고, '올 게 왔구나'하는 느낌하고 더불어 막연한 두려움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퐁퐁하고 솟아오르는 그 느낌은 정말이지···

'어우, 씨··· 소름···'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육아라는 행위는 그 피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흔히 미운 네 살이라 불리는 시기가 그랬고, 미운 일곱 살이라 불리는 시기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고.

오늘도 어김없이 다같이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쓰읍···! 유보미! 아빠가 편식하면 안 된다고 그랬지!"

"나 편식 안 했는데!"

"그럼 거기 식판에 남아있는 초록색의 동글동글한 것들은 대체 뭘까아? 응?"

어쩜 저렇게 완두콩만 쏙 빼고 골라먹었는지 솔직히 감탄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내가 식판 위에 남아있는 완두콩들을 손가락으로 콕 찝으며 말을 하니 순간적으로 할 말이 궁해지기라도 했던 것일까.

"이, 이건···"

궁지에 몰린 사람먀낭 말을 더듬거리던 보미가 이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세, 세한이! 세한이 주려고 남겨둔거야!"

"···뭐?"

"지나 엄마가 그랬어! 콩 먹으면 몸 튼튼해진다고!"

"그래서?"

"근데! 난 이미 튼튼하니까!"

"그래서 세한이한테 양보를 하시려고 했다?"

"응! 그런 거야!"

본인이 만들어낸 논리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일까.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서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통통한 볼을 씰룩거리면서 '히ㅡ'하고 웃는데 이게 또 은근히 논리적이라서 어디서부터 반박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날 더 환장하게 만든 건 내 신경이 보미 쪽에 쏠려있는 틈을 타 이미 행동을 개시한 여름이의 모습이었고.

보미가 말하는 걸 즐기는 타입이라면?

여름이는 행동파라 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보미가 말로 날 설득하려고 들때 여름이는 이미 본인의 포카락을 이용해 옆에 앉아있는 세한이의 식판으로 콩을 옮겨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졸지에 피해자가 되어버린 세한이로 말할 것 같으면···

"나 콩 싫은데··· 힝···"

눈을 깜빡일 때마다 하나둘씩 늘어만가는 완두콩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울먹거리고 있었고.

그리고 어찌보면 이 모든 사태를 촉발시킨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나머지 셋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셋의 실랑이를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고.

애들이 본격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내세우기 시작한 후부터 우리에게 있어 식사란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일이 터진 건 식사가 끝나고 나서 애기들한테 우유를 한 잔씩 먹이고 있을 때였다.

"아빠!"

"응? 여름이 왜? 혹시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

"응!"

"그게 대체 뭘까아? 아빠한테만 말해볼까?"

"우음··· 그게에··· 애기는 어떻게 하면 생기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 아이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상정도는 했었지만 그게 설마 오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니,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솔직히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 고작 일곱살 밖에 안 된 아이의 입에서 이토록 철학적인(?) 질문이 흘러나올 거라는 걸 말이다.

덕분에 당황을 잔뜩 집어먹어버리고만 나만큼이나 당황한 이들이 또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가영과 지나, 그리고 세나였다.

그리고 그 셋 중에서도 특히 세나의 반응이 극적이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가영이 '어머'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살짝 붉히고, 지나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반복할 때 세나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 우유를 꼴깍꼴깍 들이키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그런 질문이 들려오는 바람에 그대로 사레가 들려버리고 말았고···

"콜록, 커흑···!"

그 결과가 바로 저거였다.

"으이구··· 괜찮아?"

덕분에 내가 세나의 옆으로 가서 조심스레 등을 두들겨주고 있는 동안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가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여름이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졌을까?"

"그게··· 실은 이지가···"

이지?

이지면은 우리 세 꼬맹이하고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칠 때마다 날 향해 세상 예의 바르게 꼬박꼬박 배꼽인사를 하길래 우리 애들 말고도 저렇게 예의 바른 애가 또 있었구나하고 나름대로 좋게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설마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아무튼 여름이의 이야기를 예약해보자면 이러했다.

이지한테 동생이 생겼는데 이지가 그 사실을 자랑하면서 혹시 너네는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고 있냐며 으스댔다는 것.

"그래서 그게 궁금했구나?"

"네에···"

그리고 그런 일련의 대화들이 안 그래도 아까부터 둘을 향해 귀를 쫑긋하고 세우고 있는 중이었던 나머지 두 아이의 관심마저도 사로잡아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결국 가영은 세 아이를 상대로 '아이란 어떻게 생기는가'에 관해 강의를 하게 되었다.

"음, 아이가 어떻게 생기냐면 말이지···"

나나 세나, 지나에 비하면 육아에 관한 경험이 압도적인 편인 가영이지만 그런 가영이라해도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걸 설명해본 경험은 당연히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의 그 자애로워 보이는 얼굴 위에 살짝 난감하다는 감정을 띄워놓고 있던 가영이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꼬옥하고 잡고 자면 생기는 거란다."

역시는 역시라고 제 아무리 월등한 육아 경험을 지닌 가영이라 해도 아직 일곱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대신 지금 당장은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다고 여긴 건지 말을 끝마친 가영의 얼굴 위로 고비 하나를 넘긴 듯한 그런 표정이 떠올랐다.

물론···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가영의 설명을 들은 보미와 여름이가 입을 모아서 외쳤으니까.

"거짓말···"

"맞아! 거짓말이야!"

그리고 그런 두 아이의 격렬하기 그지없는 반응은 이제 막 안심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었던 가영을 다시금 당황이라는 감정 속으로 밀어넣기에 충분했고.

"거짓말이라니 무슨 소리니?"

"그, 그치만···! 세한이는 맨날 다른 여자애들이랑 손 꼭 잡고 자는데 애기 안 생기는 걸!"

그리고 그런 보미의 외침에 반응한 건?

흥미진진해보이는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지나와 세나였다.

"누가?"

"뭐···?! 언 년이?"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대로 보미한테 달라붙어서 명단이라도 작성할 기세인 둘을 내가 뒤에서부터 끌어안아 뜯어말리는 동안 생각치도 못한 답변에 당황했었던 가영이 침착함을 회복하고서 말을 이었다.

"그건 너희가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그런 거란다. 지금 말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은···"

"거, 거짓말···"

물론, 이번에도 쉽게 넘어갈 수는 없었지만.

전에는 보미가 따지고 나섰다면?

이번에 나선 건 다름아닌 여름이었다.

"그럼 엄마들이랑 아빠는 맨날 같이 자면서 왜 애기 안 생겨요?"

설마하니 일곱살짜리한테서 이런 식으로 논리적인 반박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걸까.

가영이 당황한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굳어있는 동안 그런 가영을 대신해서 나섰다.

"그건··· 애기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서 그런 거란다."

참으로 다행히도 그새 또 흥미가 살짝 식었는지 아이들은 그걸로 납득을 해주었고.

"자, 그러면 우유도 마셨으니까 다들 이만 자야지? 아빠가 뭐라고 했지?"

"일찍 자야 키 큰다 했어요!"

"그렇지. 그러니까 이만 자러갑시다아."

그렇게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공용 침실로 쓰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서니?

"왔니?"

"왔어?"

"애들은?"

셋이 잠옷 차림을 한 채 날 반겨주었고.

"자요. 다들 피곤했는지 금방 잠들더라고."

언제봐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풍경에 씩하고 웃으면서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뉘이니ㅡ

"그나저나 진짜··· 이제 일곱살 밖에 안 된 주제에 어디서 또 그런 말을 주워듣고 와가지고는···"

자연스레 내 왼편을 차지하고 누운 지나가 내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뭐어··· 궁금해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니?"

"그래도 그렇지. 일곱 살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요즘 애들은 빠르다잖아. 아니면···"

"아니면?"

"보미나 여름이 입장에서는 단순히 동생이 가지고 싶었던 거 아닐까?"

이미 내 옆에 누워있던 지나나 이제 막 침대 위로 누울 채비를 하던 가영의 눈빛이 살짝 변한 건 세나의 입에서 그런 추측이 흘러나온 직후였다.

"동생···"

"하긴··· 세한이가 동생같은 느낌이기는 해도 엄밀히 말하면 동갑이니까···"

그리고 그 눈빛이 정착한 곳은··· 다름아닌 내쪽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유한이 네 생각은 어때?"

"그래, 유한이 네 생각은 어떠니?"

"네? 그야···"

한 명 더 생기면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면 행복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누가 낳느냐는 거겠지.

그도 그럴 게 보미랑 여름이, 세한이를 키울 때처럼 여럿을 동시에 돌보게 되는 상황만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럴 수 밖에는 없는 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때는 진짜 힘들어서 죽을 뻔 했었으니까.

행복하기는 행복한데 그만큼 또 힘들달까.

그래서 대답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더니만ㅡ

"싫은 건 아니지?"

"싫다니 그럴 리가···!"

"그럼 됐어. 나머지는ㅡ"

그 말과 함께 지나가 내 가슴팍 위에다가 올려놓고 있던 손을 이용해 그대로 내 몸 위에 올라탔다.

"지금부터 결정하면 되니까···♡"

그리고 그런 지나의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제 2의 '누가 먼저 임신할 것인가' 사태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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