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9화 〉1부 (269/315)

너무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러니까 민망한 마음에 답을 못하고 있으니 입꼬리를 귀엽게 씰룩씰룩대던 지나가 결국 날 자기 품 안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약간의 헤프닝이 있긴 했지만 한 번 시작되고 나니 그때부터는 준비가 막힘없이 착착 이루어졌다.

"어때? 맛있겠지?"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야채들이 골고루 끼워져있는 꼬치들이 불 위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게 꽤나 고역이었다.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비쥬얼마저 장난 아니었으니까.

'의외네···'

아무래도 가영과는 다르게 집안일하고는 거리가 한 백만광년쯤 떨어져보이는게 바로 지나다보니까 솔직히 태워먹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역시 그 피가 어디가지는 않은 걸까.

답지 않게 세심한 손길까지 선보여가며 지나가 손수 구워낸 꼬치들은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모습만큼은 일품이었다.

한 입 크게 베어물면 껍질이 빠자작하는 소리를 내며 부숴질 것 같은 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일 정도였으니까.

"하나 먹어볼래?"

"그래도 돼?"

"잘 익었는지 확인은 해봐야 되니까."

싱긋 웃은 지나가 장갑을 낀 손과 집게를 이용해 꼬치 끝에 살짝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매달려있던 고깃덩어리 하나를 집었다.

그러더니ㅡ

"아, 해봐. 아ㅡ"

그렇게 말하면서 그걸 날 향해 내밀더라.

설마 이걸 노리고 일부러 그런 제안을 했던 걸까.

"내가 먹을 수 있는데···"

"그러지말고 얼른."

그러면서 하는 말이 뜨거우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으시단다.

솔직히 거절하기에는 집게 사이에 끼워져있는 고깃덩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매혹적이라서 결국 지나가 시키는대로 순순히 입을 벌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입을 벌리니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싱긋 웃은 지나가 이내 집게로 들고 있던 것을 내 입안에다가 쏙하고 집어넣어주었다.

"어때? 맛있지?"

'맛있어?'도 아니고 '맛있지?'였지만 충분히 그럴만하긴 했다.

입에 넣고 한 번 씹자마자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껍질부분이 빠자작 소리를 내며 이빨 아래에서 뭉개지더니 안에 갇혀있던 육집이 팍 터져나와 입 안을 흥건하게 만들었으니까.

역시 프로 가사러 가영의 손이 닿은 음식이라고 해야할까.

심지어 밑간까지도 완벽하게 되어있어서 나도 모르게 입가가 느슨하게 풀리더라.

"그렇게 맛있어? 어디···"

내가 먹는 걸 보니 지나도 참지 못하게 되어버린 걸까.

지나도 나처럼 한 입 맛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살짝 신음성을 흘렸다.

"뭔데?! 나도! 나도 한 입만!"

그런 우리 둘의 반응에 얌전히 앉아서 지나의 눈치만 보고 있던 세나가 끼어들어온 건 그 직후였고.

그렇게 세나한테도 한 입 맛보게 해주고 나니 가영만 쏙 빼놓기도 좀 그래서 조심스레 각을 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유한아?"

살짝 떨어진 곳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가영이 갑자기 날 불렀다.

"네?"

"이거 간좀 봐줄 수 있니?"

"간이요?"

"응, 고모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 입에는 어떨지 모르겠어서."

"아, 넵. 잠시만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가영에게 합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누나 나 한 조각만 더 주라."

"응?"

"고모도 맛은 보셔야지."

그런 내 말에 지나는 살짝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럼에도 순순히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내주었다.

이미 본인의 욕망을 어느 정도 채운 상황이기에 이 정도는 양보해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렇게 받아낸 것을 접시 위에다가 올리고 가영 쪽으로 다가가니 그녀가 자애로워보이는 미소로 날 맞이해주었다.

"자."

그러더니 빨간 양념이 인상적인 비빔국수를 돌돌 말아서 날 향해 내미는 게 아닌가.

덕분에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가영이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은근히 나와 지나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도착하자마자 저런 걸 내밀어올 이유가 없으니까.

심지어 가영은 단순히 먹여주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지나의 시선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어서 최대한 작게 입을 벌려서 가영이 내미는 걸 받아먹었는데ㅡ

"정말··· 입술에 다 묻었잖니."

손가락 끝으로 내 혀를 은근히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내 입술에 묻은 양념을 손가락으로 쓱 훑더니 그대로 자기 입쪽으로 가져가 슬그머니 핥는 게 아닌가.

민망함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채 꿋꿋이 그런 행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처럼 느껴졌던 건 과연 기분 탓이었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가영이 그런 행동을 보이자마자 뒷쪽에서 까득하고 살짝 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만만치 않구만···'

첫 날부터 이 정도라니.

이게 바로 하렘의 무게인지 뭔지 하는 것일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준비하는 단계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던 것과는 별개로 저녁 식사 자체는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진짜는 역시 그 다음이었지만.

안 그래도 식사 자체를 좀 늦은 시간에 시작했다보니까 벌려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치우고 하다보니까 어느새 바깥이 어둑어둑해졌고, 바깥이 어두워질수록 별장 안의 분위기 또한 어색해져갔다.

다들 한 마디도 안 하고 각자 하고 있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 꼭 중요한 뭔가를 앞에 두고 잔뜩 긴장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제 곧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심장이 자꾸만 이상한 박자로 뛰어대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로 이상했냐면 지금 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지 아니면 느리게 뛰고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요상했다.

'미치겠네 진짜···'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확실한 건 상당히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입 안이 자꾸만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 애꿏은 그릇들만 달그락달그락대면서 초조함을 달래고 있으려니까 물 쏟아지는 소리를 뚫고 자그맣지만 또렷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온 걸까.

지나?

가영?

아니면 설마 세나?

그런 의문 자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예의 그 발자국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지더니 까맣게 물들어버린 창문 위로 지나의 모습이 비춰졌으니까.

"유한아."

"으, 응?"

아까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목소리가 제멋대로 떨렸다.

"아직 안 끝났어?"

지나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응? 아··· 이제 헹구기만 하면 돼."

실은 진작에 끝낼 수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그랬더니만ㅡ

"그래?"

지나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더니 이내 어깨 위로 뭔가가 올라왔다.

어느새 뒤에서부터 허리를 휘감은 팔은 덤이었다.

"그러면은··· 먼저 방에 들어가있을래? 헹구는 건 누나가 대신 할테니까···"

내 어깨 위에다가 머리를 올려놓는 건 물론, 귀에다가 입술을 바짝 가져다 붙인 채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것이 참··· 사람을 미치게 만들더라.

"아니면은··· 같이 할까?"

뭘 같이 하자는 걸까.

문맥상 당연히 설거지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째 그렇게 들리질 않더라.

"그, 그럼 부탁 좀 할게."

"···그럴래?"

아니나 다를까 먼저 들어가 있겠다고 말을 하니 살짝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역시 설거지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던 모양.

그렇게 그릇들을 헹구는 작업은 지나한테 맡겨두고 다같이 쓰기로 한 1층 맨끝방으로 들어왔다.

다들 아직인 걸까.

맨끝방은 불조차 켜져있지 않았다.

'먼저 샤워라도 하고 있어야 되나···?'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잠시 방을 빠져나와 갈아입을 옷부터 챙긴 뒤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방에 딸려있던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있으니 불투명한 유리로 된 문 너머에서부터 달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들어온 걸까.

문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일렁거렸다.

그래서 대체 누가 들어온 걸까.

궁금해하고 있으려니 문을 앞에 두고 왔다갔다하던 이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 엄마?"

놀랍게도 가장 먼저 방을 찾은 건 세나였다.

"잠깐만 나와주면 안 돼? 나 좀 급한데···"

답지 않게 어쩐 일인가 했더니만 침실을 찾아온 게 아니라 화장실을 찾아온 거였나 보다.

그게 참 세나답다면 세나다워서 피식 웃으며 대답을 돌려주었다.

"고모 여기 없는데."

"···"

"많이 급해?"

날 가영으로 착각한게 민망하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버린게 좀··· 그랬던 걸까.

간절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냈던 사람치고는 세나는 말이 없었다.

"누나?"

설마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한계인 걸까.

'에휴···'

하여간에 불장난 칠 때부터 내 알아봤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해서 잠시 샤워기 아래를 벗어나서 잠궈놓았던 문부터 열어주니 불투명한 유리 위로 일렁거리던 세나의 실루엣이 흠칫하고 몸을 떨어댔다.

"문 열어놨으니까 들어올거면 들어와."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요의였던 걸까.

문을 열어주고 다시 샤워기 밑으로 돌아가서 하던 걸 마저 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끼릭하고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화장실 벽을 타고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내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그 사이로 세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펑하고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한채로.

"지, 진짜 들어가도 돼···?"

많이 급하기도 했고, 들어와도 된다고 문을 열어준 것이니만큼 일단 들어갔다.

들어가기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과 두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 유한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데 볼 일을 봐야한다는 상황 자체도 그렇게 느껴지긴 했지만 사실 유한이 보여준 태도 탓이 컸다.

'···남자가 되서 경계심이 너무 없는 거 아냐?'

샤워 중일 때 이렇게 막 문을 벌컥벌컥 열어주고 말이다.

물론 그런 것따위는 개의치 않을 정도로 이미 서로 이런저런 꼴 다 본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평소에 이렇게 막 경계심없이 생활하고 그래버리면 나중에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도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와 버릴지도 몰랐다.

'진짜···'

들어온 게 자신이기에 망정이지 언니였다면 어쩌려고 저렇게 대책없이 행동한단 말인가.

'어휴···'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유한 쪽을 힐끔거렸던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기껏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했으면서 보라는 볼 일은 안 보고 변기 위에 엉거주춤하게 앉아있기만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고.

절대로··· 유한에게 뭔가를 당할까봐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절대로.

그렇게 슬금슬금 유한의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거품이 잔뜩 묻은 손으로 조심스레 머리를 헹궈내던 유한이 이내 샤워기를 꺼버렸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데ㅡ

'그, 그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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