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1부
용케도 중간에 넘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방까지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다리가 격하게 후들거렸다.
움직이고 있는 중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랬다.
그저 침대 위에 힘없이 풀썩 엎어져만 있을 뿐인데도 다리가 당장 쥐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경련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정도로··· 강렬한 감각이었다.
"읏···"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면서 날카로운 쾌감이 몸을 헤집어대는 듯 했다.
어찌나 강렬한지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끔씩 갖곤 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얻었던 쾌감들이 다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유한과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바꿔놓은 '그 행위'를 통해 얻은 쾌감또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쾌감이라는 감각 자체가 몸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며 새겨지는 듯한 느낌.
머릿속에 대고 누군가 표백제같은 걸 왕창 때려붓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며 쾌락밖에는 남지 않는 감각은 한 번 맛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각별했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소리다.
너무 좋아서··· 고통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로.
내가, 내 몸이 타인의 손에 의해서 내가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로 변해가는 듯한 감각.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각별한 쾌락을 옆에 곁들인채 나타나곤 하는 그것이 새삼 두렵게 느껴졌다.
두려운데···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한에게 목줄을 잡혀버린 상태였으니까.
문제는 단순히 그것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한이 틀어쥔 약점을 핑계삼아 이쪽을 단순하게 가지고 놀기만 했다면?
일단은 들어주는 척 하면서 벗어날 기회를 노렸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관계를 평생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기회를 노리려고만 하면 유한은 마치 이쪽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것처럼 태도를 싹 바꾸곤 했다.
그게··· 그 변화가···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유한이 자신을 상대로 과격한 행동을 하는 거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쪽의 행위 때문에 느낀 배신감이 그만큼 크고 깊을테니까.
그렇기에 그와 관련된 행위는 좀 힘들더라도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허나 때때로 유한이 정반대의 태도를 취할 때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몸에다가 쾌락이라는 걸 잔뜩 주입시켜서 그걸로 몸을 푹 절인 다음 그 영향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약해진 틈을 교묘하게 찔러들어오는데 그 간극을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한은 늘 그랬듯 봐주려고 하지 않겠지.
그러니 아마 내일은··· 평소와는 다른 유한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여태까지 보여왔던 패턴대로라면 틀림없이 그렇겠지.
상대가 어떻게 나올 지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
상식적으로 질 수가 없는 상황이건만··· 자신이 없었다.
내일 달라진 유한을 상대할 때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흔들리면 안 돼···'
그래서 그런 식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었는데ㅡ
"깨끗하게 씻었어 누나?"
눈을 살짝 접으면서 사르르 웃어보이는 유한을 보니 기껏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물씬 품고 있는 심장의 박동이 꼭 강아지가 주인을 앞에 두고 반가워서 꼬리를 파바바박 흔들어대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자, 다 씻었으면 이리와."
그런 자신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한이 예의 그 미소를 얼굴 위에서 지우지 않은 채 슬쩍 팔을 벌려보였다.
얼른 여기로 와서 안기라는 의미가 노골적으로 담겨있는 그 몸짓에 그만 침을 꼴깍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남의 품에 안겨도 될만한 몰골이 아니었으니까.
하물며 그게 피로 이어진 진짜 친동생은 아니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동생보다도 더 동생처럼 생각했었던 유한의 품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방금 막 씻고 나온 탓에 몸에 걸친 거라고는 샤워 중에도 벗는 걸 허락받지 못한 정조대와 물기 뿐인데 이런 몰골로 유한의 품으로 가서 안긴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데··· 팔을 거두지 않은 채 물끄러미 이쪽을 쳐다보는 유한을 상대로 거부나 거절의 뜻을 밝힐 수가 없었다.
여기서 저걸 거절하게 되면 유한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야 안 봐도 뻔했으니까.
태도가 바뀌고 난 후에는?
어제보다도 더··· 격렬하게 당하게 될지도 몰랐다.
"얼른."
그렇기에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유한 쪽으로 향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찰싹찰싹ㅡ
아프지도 않은 지 유한이 싱긋 웃으며 본인의 무릎을 손으로 두들겼다.
마치 다른 데 가지 말고 그 위에 앉으라는 것처럼.
"으읏···"
자신이 그 위에 앉길 원하는 걸까.
다른 이도 아니고 유한의 무릎 위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미묘하면서도 침을 절로 꼴깍하고 삼키게 만드는 수치심이 얼굴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침입을 허용해버린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하는게 느껴졌다.
"안 앉을 거야?"
"그, 무거울···"
"그건 걱정하지 말고, 자 얼른."
이쯤되니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유한에게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다는 걸.
"수건은 나한테 주고."
"으, 응···"
조심스레 유한의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허벅지 뒷쪽과 엉덩이를 통해 난생 처음으로 맛보게된 그쪽의 감촉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딱딱했다.
그리고 뭔가가 자꾸··· 허벅지 깊은 곳을 쿡쿡 찔러댔다.
아래서부터 허벅지를 꾸욱꾸욱하고 떠밀어대는 것의 존재가 신경쓰여서 슬쩍슬쩍 몸을 움직여 앉은 자세를 고치고 있으려니 수건을 빼앗아간 유한이 그것을 이용해 아직 물기가 남아서 뭉쳐있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혹스러운데 유한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흐으음···"
코인지 입인지 모를 곳에서 새어나온 뜨거운 숨결이 어느새 목덜미 위에서 부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올라오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게 안 그래도 두근두근하고 이상한 박자로 뛰어대던 심장을 더욱 빠르게 뛰도록 만들었으니까.
유한이 달가워할리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슬그머니 어깨 쪽을 움츠렸던 것도 다 그 이상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좀 막아보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유한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 했다.
"흐음, 냄새 좋다···"
근처를 맴도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유한의 콧대로 추정되는 것이 목덜미 쪽을 꾸욱꾸욱하고 떠밀어대기 시작했다.
유한이 뭔가 말을 할 때마다, 하다못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거기에 맞춰서 미약한 바람이 불었다.
그게 목덜미를 따라 난 솜털을 간지럽힐 때마다 몸이 정신 못 차리고 흠칫흠칫하고 떨어댔다.
"쯉···"
순간 장난기라도 동한 것인지 목덜미에다가 입술을 가져다 붙인채 그곳을 부드럽게 빨아대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덜미 쪽에서부터 짜르르한 느낌이 번져나가는 것이 꼭 감전이라도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작게 소리를 내며 빨던 부분을 혀로 핥을 때는 평소에 비하면 한결 둔감해진 감각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맞다. 누나. 가슴 한 번 만져봐도 돼?"
왜 허락을 구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만지고 싶으면 얼마든지 만질 수 있으면서.
무엇을 요구하든 이쪽이 거절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이쪽의 허락을 구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머릿속이 단번에 혼란스러워졌다.
"···그, 만지든가 말든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말았던 것도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내뱉고 나서 뒤늦게 아차했지만, 유한은 전혀 신경쓰는 듯한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라도 허락해준 것이 기쁘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가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ㅡ
'아···'
그 눈빛에 반응한 몸이 곧 제게 다가올 운명을 직감하고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배 안쪽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한 열기가 조금씩 몸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동시에 몸에, 특히 하체 쪽에 절로 힘이 들어가며 몸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끈적끈적한 것이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게 너무나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럴 때는 이런 식으로 하자고 미리 약속이라도 해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변화.
봄이 되면 당연히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그 감각이 새삼 두렵게 느껴졌다.
이래버리면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조금씩 유한의 손길에 몸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이, 그 변화가 두려웠다.
이런 처지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이래버리면 나중에는 정말로··· 유한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반응하지 못하게 되어버릴지도 몰랐으니까.
그리 되어버리면 언젠가는 끝내야만 하는 이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오히려 유한에게 매달리게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매달리게 될 거다.
그때쯤이면 유한이 선사해주는 감각들이 몸에 빼곡하게 새겨져있을테니까.
그래서 그렇게나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거였는데ㅡ
"흐읏···♡"
몇 번이나 만줘졌다고 진정한 주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적극적으로 반응해대는 몸이 그러질 못하게했다.
슬그머니 가슴을 틀어쥐는 손길에 가슴 쪽에서 짜르르한 쾌감이 확 솟구치더니 허리쪽에 제멋대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더니 움찔움찔하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야하게 떨리기 시작하는데··· 그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고작 가슴 한 번 만져진걸 가지고 마치 만져주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해버린 것도 그랬고, 아까보다 좀 더 축축하게 젖어든 다리 사이의 상태도 그랬다.
밑에 정조대를 차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거라도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유한의 허벅지 위에다가 애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겠지.
이래서야 유한이 매번 들먹이곤 했던 '조루 보지'라는 멸칭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은 끓어오르는 수치심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유한은 그런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선보여왔다.
"흐··· 따끈따끈해서 기분 좋다···"
어느새 허리를 꽉 감싸안은 팔의 존재감을 느끼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으려니 살짝 나른한 목소리를 냈던 유한이 그걸 그대로 귀에다가 던져왔다.
"키스하고 싶다···"
그 말에 꼴깍하고 침을 삼키게 된 것도 다 유한 때문이었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로인해 알게 되어버렸으니까.
키스라는 행위가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기분 좋다는 것을.
유한으로 인해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던 키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버린 탓일까.
몸안을 달구고 있던 열기가 조금 더 극심해지며 숨이 제멋대로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거기에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며 그것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 무언가를 요구해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참았다.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했었기에 참았다.
참으려고 했는데ㅡ
"키스···"
참아야 되는데ㅡ
"할래? 누나?"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유혹이 먼저 들어왔다.
"키스, 하고 싶으면은··· 눈 감아."
눈꺼풀이··· 제멋대로 스르륵 닫혔다.
시야가 순식간에 까맣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