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5화 〉1부 (205/315)



〈 205화 〉1부

"그래서 뭐부터 할 건데?"

당장 그리 묻기는 했지만 솔직히 질문까지 할 정도로 궁금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세나였으니까.

이런 쪽으로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뿐더러 방송에 올인하느라고 이성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이 바로 세나다.

그런 사람이 데이트 코스를 짜봐야 얼마나 독창적으로 짰겠는가.

보나마나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무난무난하게 구성했겠지.


안 봐도 뻔했다.


"그, 일단은 점심부터···"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데이트의 3대장  하나라 할 수 있는 식사가 세나의 입을 뚫고 튀어나왔다.


"점심? 벌써?"


"벌써는 무슨 벌써야. 열두  넘은 지가 언젠데."


"그래?"

그럼 슬슬 먹을만한 시간대긴 하지.

그래도 좀 이르다는 느낌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애매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데이트 초짜한테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모습을 바랬던 건 확실히 내 과욕이었던 모양이다.

이럴 때를 위해서 시청자들에게 조종을 맡겨놓은 건데 대체 저 방 시청자들은 뭘하고 있는 걸까.

저 눈치없는 사람도 안 말리고 말이다.


"으음, 그 가게가···"

귀에 낀 이어폰은 장식이라도 되는지 아주 그냥 성실하게 미리 알아봐둔 가게를 찾기 위해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대던 세나가 어느 순간 덜컥하고 멈추었다.

찾던 가게라도 찾은 것일까.

대체 어떤 가게길래 이래도 찾는데 오래 걸렸나 싶어서 조심스레 세나의 시선을 쫓아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음식점이 아니고 오락실이었다.

다만 저번에 가영하고 방문한 바 있는 곳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그곳은 레트로한 느낌이 물씬 풍겼던 반면 지금 세나의 시선을 한몸에 사로잡고 있는 곳은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기라도 했는지 깔끔하게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으이구··· 하여간에 진짜···'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세나가 오락실 쪽에서 억지로 시선을 떼어내려 하는 걸 보고 잽싸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직 점심 먹기엔  이른  같은데 아침 먹은  마저 소화나 시킬겸 잠깐 어디서 시간이나 좀 때우는 건 어때?"

"으, 응? 어디서?"


약간이지만 기대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음, 글쎄 어디가 좋으려나···? 카페는 어때? 잠깐 둘러보니까 근처에 괜찮은 곳 꽤 많던데."

"···카페?"


그래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해봤더니만 언제 기대하고 그랬냐는 듯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짓더라.


방금 내 입으로 직접 내뱉었던 말을 곧바로 부정하고 나선  그 모습이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카페는  그러려나? 음, 그럼 어디로 가지···"


일부러 고민하는 척을 하고 있으려니 때마침 내 등을 떠미는 도네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까 보니까 세나년 오락실 뚫어져라 쳐다보던데 오락실  가주죠 ㅋㅋ 그거면 뻑갈듯


"음? 오락실이요? 오락실이 있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온 익숙한 단어에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는 사람마냥 어깨를 움찔대던 것도 잠시, 세나가 입꼬리를 부르르 떨면서 스리슬쩍 한쪽을 가리켰다.

"저, 저기에 하나 있긴 한데···"

"그래? 아, 그러네."

"왜? 너희 방 시청자분들이 오락실로 가래?"

 들었으면서 모르는 척 하기는.

하긴 고양이가 생선을 끊겠냐만은.


"어, 누나는 어때? 오락실 괜찮겠어?"

오늘의 데이트에서 주도권을 가진 쪽은 다름아닌 세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그림이 괜찮을 것 같다고 이미 합의한 바 있으니까.

 점을 고려해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봤더니만 순간 움찔하며 위를 향해 치솟으려 하는 입꼬리를 꽤나 다급하게 밑으로 끌어내린 세나가 좋으면서 괜히 안 그런척을 하더라.


"나? 나야 딱히 상관없긴 한데···"

"그럼 저기나  번 가보자."


가영과 함께 방문했던 곳은 건물 안에 있었는데 오늘 방문하게된 곳은 길가와 접해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접근하기 무섭게 갖가지 전자음들이 요란하게 귀를 때려댔다.

"게임 종류가  많네."

"···그러게."

불과 몇  전에 세나가 본인의 입으로 직접 내뱉었던 말과 지금 보여주는 모습을 서로 비교해보니 웃음이 안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었다.

뭐?


나는 딱히 상관없다고?

그런 것치고는 고개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있는데.

지금 세나의 모습은 뭐랄까··· 난생처음 수산시장이라는 곳에 방문하게된 고양이를 보는 듯 했다.

그 정도로··· 고개를 가만히 두질 못했다.

"혹시 뭐 해보고 싶은 거 있어?"

"그, 글쎄···"


저건 끌리는 게 없다기 보다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선뜻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진짜 종류별로 다 있긴 했다.


심지어는 무슨 놀이공원이라도 되는 것마냥 사격부스도 있더라.

사격 부스의 존재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침을 꼴깍꼴깍 삼켜대며 주변을 가득 채운 게임기들을 둘러보기 바쁘던 세나의 시선이 마침내 나와 같은 곳에 닿았다.


그러더니만 부스 옆에 상품이랍시고 진열해놓은 것들이 그대로 고정되어버렸다.


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2등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인형 쪽에 찰싹 들러붙어버리더라.

'혹시 가지고 싶은 건가?'

아무래도 그런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탐욕으로 가득 찬 눈으로 인형을 뚫어져라 쳐다볼 이유가 없으니까.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세나는 이쪽 세계 기준으로 '여자'답지 않게 귀여운 걸 좋아하는 편이니까.

그건 그녀의 방만 봐도 알  있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세나가 방송용 방하고 잠자는 방을 따로 구분해서 쓰고 있는 것도 방송에 내보내기 좀 그런 것들을 마음껏 방에다가 가져다두기 위함이니까.


"혹시 저건 어때?"

"응?"


"아니, 그냥 게임만하면 좀 심심하잖아. 그러니까 저걸로 점심 내기 콜?"

"점심 내기면···"


"당연히 점수 비교해서 지는 사람이 점심 쏘는 거지."

뭘 그런 걸 묻냐는 식으로 대꾸했더니만 돌아온  가소로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호오··· 괜찮으시겠어요? 오늘 가기로 한 가게 꽤 비싼 곳인데."

"그 정도 돈은 있거든? 그리고 누가보면은 벌써 이긴 줄 아시겠어요."


"아이,  누나한테 그렇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으셨으면 그냥 말씀을 하시지."

"와···"


"왜? 뭐?"

"아니, 이러다가 나한테 지기라도 하면 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업보를 잔뜩 쌓으시나 싶어서요."

그리 말하기 무섭게 세나가 푸헿하고 요상한 소리까지 내며 대차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만 그대로 깔깔대며 웃는데  모습만 보면 내가 세기의 개그라도 친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져? 내가?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왜? 모르는 거 아닌가?"


"야, 이래뵈도 누나가 특급전사 출신이거든?"


"네에네에, 그러시겠죠."


"늬예늬예 그루시겠죠오."


깝죽대는 세나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고로시 마렵네 진짜···'

아무튼 그래서 점심빵 사격내기를 하기로 했다.


사격은 한 번 쏘는데 5천원이었는데 누가봐도 방송쟁이임을 알 수 있는 나와 세나의 모습을 확인한 주인 아저씨가 특별히 5천원에 우리 둘다 쏘게 해주었다.


"자, 뒤에서 잘 보고 있어. 이 누나가 특.별.히 먼저 시범을 보여줄테니까."


"아니, 요즘 군대에서는 실탄사격을 권총으로 해? 왜 이렇게 혀가 기세요."

"응, 나중에 이건 인정 못한다고 울고 불고 해도 절대로 안 봐줘."

그리 말하더니만 유치하게 혀까지 베에하고 쭉 내밀어대길래 중지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걸로 가볍게 응수해주었다.


꼴받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히죽히죽대던 세나가 이내 사로를 향해 돌아섰다.

나름대로 어디서 본 건 있는 걸까.

권총을 쥔 손을 사로를 향해 쭉 뻗는데 나름대로 있어보이긴 하더라.


"으휴, 진짜··· 어디서   있어가지고."

 순간만큼은 나와 내 방 시청자들의 뜻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만다. 진짜."


[세나꿀밤딱대!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제발 정의구현! 제발 정의구현! 제발 정의구현!


[세나꿀밤기원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제발 이겨주세요 세오님 지금 꿀밤 마려워서 미칠 것 같아요 헤으읏...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잘 해볼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쏴봐야 얼마나 잘 쏘겠나 싶었다.

군대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맨날 특급전사 특급전사하는데 그 말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잠깐만 뛰어도 헉헉대는 주제에 특급전사는 무슨···'

폐급전사라면 또 몰라.


그러니 만발이니 어쩌니하는 말도 다 뻥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ㅡ


탕-!

'음?'

탕-! 타당-!


'으음···?'


탕-! 타당-! 탕-!

"···어?"

···잘 쏘더라.

막 신들린 것처럼 다 맞추고 그런 건 아닌데 처음 쏴보는 사람치고는 굉장히  맞춘달까.

"어때? 봤냐? 이게 재능이라는 거야."


더 열받는  세나도 지가 잘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20발을 다 쓰자마자 내쪽으로 돌아서서 총구에 대고 '후우!'하고 바람을 불어대는데 꼴값도 그런 꼴값이 또 없었다.

아니, 레이저 총인데 대체 입김은 왜 불어대는 걸까.


바본가?


"아, 공짜점심 너무 좋고."


"시끄럽고 총이나 내놓으시죠?"

"네에에엥."


이 순간만큼은 손에 들린 게 레이저 총인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코르크같은 걸 발사하는 딱총만 되었어도 저 얄밉게 동그스름한 이마에다가 한  맛나게 쏴줬을 텐데.


'그나저나···'

이길 수 있으려나 이거.


솔직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내기는 어디까지나 핑계고 세나가 탐내던 인형을 따는 게 진짜 목적이었는데 어느새 둘이 서로 바뀌어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상점의 힘을 동원하자니 그것도 좀 애매해서 일단은 그냥 쏴보기로 했다.


물론, 지면 상당히 꼴받게되겠지만ㅡ

'···그냥 점심 한끼 사줬다 치지 뭐.'


 최종 목적을 생각하니 가슴의 술렁거림이 언제 그랬냐는  싸악 가라앉았다.

"준비되셨으면 그 앞에 있는 버튼 누르시면 됩니다."


"아, 네."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는 주안 아지매의 말에 대충 대꾸한  가볍게 숨을 골랐다.

숨을 고르고ㅡ

탁-!

앞에 있던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

덜컥-!

버튼을 누르고 한 5초나 지났을까.


첫 번째 표적이 올라왔다.

탕-!

어버버하다가 놓치느니 쏘기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망설이지 않고 쐈다.

"올···!"

발기한 자지마냥 빨딱 섰던 표적이 뒤로 나자빠지기 무섭게 뒤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봐야 이제 첫발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지 감탄보다는 여유로움의 비중이 더 크긴 했지만.

'이거 다 맞추면 포상휴가라고 생각해···!'


포상휴가.

모든 군인을 특급전사로 바꿔놓는 마법의 단어.

너무나도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에 어찌보면 금기이기도 한 것까지 동원해가며 마인드 컨트를을  덕분일까.

일곱 번째 타겟까지는 놓치지 않고 모두 적중시킬  있었다.

"오, 올··· 쫌 친다···?"


이제 남은  13발.

그리고 그 13발 중에서 8발만 맞추면 최소 세나와 동점이었다.


9발이면 내가 이기는 거고.

앞으로 네 번까지는 빗나가도 상관없다고 마음을 무르게 먹은 탓일까.


틱-!

맞추긴 한 것 같은데 끄트머리에 맞았는지 표적이 뒤로 넘어가질 않았다.

"아, 까비."

 틈을 놓치지 않고 세나 쪽에서 정신공격이 들어왔지만 무시하고 다시금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포상휴가 찬스는 이미 써먹어버린 상황.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조기퇴소 뿐이었다.


-슨배님들 사격 만발하시면 한시간 일찍 조기퇴소하실 수 있으심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들었던 조교의 목소리가 귓가로 메아리치는  했다.


무려 한시간이나 일찍 퇴소할 수 있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벅차오름을 만끽하며 다시 쐈다.


탕-! 덜컥-!

"올···"


덜컥-! 타앙-!

"이, 이열···!"

덜컥-! 덜컥-! 탕- 타당-!

뒤에서부터 들려오던 목소리가 어느새 살짝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그 급격한 태세전환이 너무 웃겨서 덕분에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릴  헀지만  참고 세 발을 더 맞췄다.


'자, 이제···'

남은 것들 중에 한 발이라도 더 맞추면 동점이고,  발 이상이면 역전할 수 있는 상황.


탕-!

그리고 마침내 세나와 같은 경지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아직 내게는 총알이 꽤나 남은 상황.


이제 남은 걸  날려도 최소한 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니 기이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기라도  것처럼 덜컥하는 소리를 내며 과녁이 몸을 일으켰고, 그에 그것을 향해 총을 조준한채 방아쇠를 당기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 안 돼ㅡ!"

"에겍?!"

졸지에 남자보다 총 못 쏘는 년이 되어버릴 위기에 처해있던 세나가 뒤에서부터 날 덮쳐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