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3화 〉1부 (163/315)



〈 163화 〉1부

간혹가다가 느끼는 건데 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특이한 도시다.

중심부만 보면은 그야말로 최첨단의 극치를 달리는 곳인데 이렇게 외곽으로 나오면 레트로한 냄새가 물씬 풍기니까.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이야···'


바로 조금 전까지는 분명 잘 발달된 도시 한복판에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택시 주변을 감싸고 있는 풍경은 어느새 시골 읍내에 내려온 듯한 정겨운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때 가영이 다녔다던 서하고등학교는 그 풍경 한복판에 액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재밌게 놀아요."


"감사합니다!"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멈춰선 택시에서 내려 확인한 서하고등학교의 인상은 내심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가영에게 듣기로는 세워진지 백 년도 더  곳이라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처럼 외관이 깔끔했으니까.

물론, 그런 느낌을 풍기는 건 학교 건물만이었고 학교 부지를 감싼 담장같은 것은 지나간 세월을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내가 느낀 인상은 딱 거기까지였는데 한때나마 학생의 입장에서 눈앞에 있는 학교를 다녔었던 가영의 감상은 또 달랐던 모양이다.

가영이 이곳을 몇 년만에 방문하는 건지 나야 잘 모르지만 아무튼 상당히 오랜만에 방문하는 건 틀림없어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아련한 눈을 한채 학교 정문을 바라볼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가영의 눈동자 속에 그리움이나 아련함같은 것만 있었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내 것이 아니기에 확신까지는  수 없지만 회한이라 불러야 마땅할 감정또한 가영의 눈동자 속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유는 아마도 눈앞의 학교가 가영이 다녔던 곳은 맞지만 졸업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겠지.

말해 무엇하랴.


가영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영이 지나를 갖게 된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의 일이니까.


더 분위기 있고, 즐길거리또한 넘치는 곳들을 내버려두고 굳이 이 동네를 택했던  그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대한 기억이라고 해봐야 후회와 미련밖에는 없을 가영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으니까.


물론, 이게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쯤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추억 만들기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가영에게 사별한 남편을 떠올리게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점까지 전부 고려하고서 이 동네를 택한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ㅡ

"어··· 개교기념일인가 본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금 이 시간이면 학교 안에 바글바글거려야  이들의 모습이 어째 보이질 않는다는 것 정도?

이왕이면 학교 안에 몰래 숨어들어 그 안쪽까지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래서야 그건 포기해야할 것 같았다.


'씁···'


어쩌지.


일단 학교 안부터 둘러본 다음에 주변 거리를 돌아다니든지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초장부터 꼬여버리는 바람에 속으로 난감함만 곱씹고 있으려니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허기를 호소해왔다.


생각치도 못한 타이밍에 터져나온  소리에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긴 했지만 마침  됐다고 생각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계획을 살짝 틀어서 밥부터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일단 점심부터 먹을까요?"

그리 말하며 가영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그녀의 손을 꼬옥하고 움켜쥐었던  그래서였다.

학교의 풍경을 감상하는데 푹 빠져있다가 한 발 늦게  접근을 알아차린 가영이 움찔하고 어깨를 떨었지만 그런 것치고 그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아, 응··· 그, 혹시 먹고 싶은 거 있니?"


"음, 글쎄요···"

맛있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가영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에 가보고 싶었다.

"간단하게 분식같은 거나 먹을까요?"

많고 많은 메뉴 중에서 굳이 분식 쪽을 택했던 건 그래서였다.


학교 앞 분식집만큼 추억 쌓이 좋은 장소도 또 없으니까.

"분식···?"

"네, 전 이 동네는  모르니까 선배가 안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하니 가영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난감함'이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이 동네가 아예 처음인 나보다는 사정이 낫겠지만 그래도 주변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가영또한 마찬가지일테니까.


그런 유한의 예상은 정확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가영은 난감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도 이 동네에 방문하는 건 자퇴한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그 배를 훌쩍 넘는 세월만에 방문한 것이니  정도면 사실상 처음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학교의 모습은 그나마  익숙했지만, 익숙한 건 딱 거기까지겠지.


아마  근처를 조금만 벗어나도 낯설기 그지없는 풍경에 이리저리 헤매지 않을까.

그래도 지금처럼 학교 앞에 오도카니 서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기라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조심스레 앞장을 섰다.


'분식···'

분식이라고 하니 마침 또 떠오르는 곳이  곳 있었으니까.

물론, 시간이 엄청나게 흘렀음을 고려하면 그런 가게가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어차피 움직이기로 한 거 이참에 확인이나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어디까지나 그런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던 것인데 솔직히 쉽지는 않았다.

달라지지 않은 건 학교 뿐이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시간이 엄청나게 흘렀음을 증명하듯 싹다 바뀌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립다는 느낌보다는 낯설다는 느낌이 먼저 확 와닿았지만 그래도 곳곳에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어찌어찌 걸음을 옮길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 순간 가장 먼저 눈으로 들어온  녹색의 낡은 간판이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보다 색이 바랜 빨간색 글자였고.

그것들이 하나가 되어 눈동자 속으로 박혀들어온 순간 꼭 마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달라진 풍경 한 가운데에 과거가 벽에 박힌 못처럼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괜스레 입술을 꾹 깨물게 되고, 이상하게 가슴이 술렁거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 가게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던 건 그래서였다.

한때 같은  친구들과 넘나들었던 문턱을 유한과 함께 넘어섰다.

그렇게 들어선 가게 안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풍경보다 낡았을지언정 모습만큼은 그대로였다.


등받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불편한 원형 의자가 그랬으며 본래는 새하얬을 벽을 빼곡하게 덮고 있는 낙서들같은 것도 그랬다.

그게 신기했다.

설마 이 가게가 여전히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설마 주인 아저씨도 그대로일까.

"일단 앉을까요?"

"응? 아, 응···"


참으로 공교롭게도 유한의 손에 이끌려 앉게된 자리또한 고등학생 때 자주 앉던 자리였다.

설마 알고서 이 자리를 고른 것일까.


그럴 리는··· 없겠지.

다시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서 속으로나마 피식하고 웃었다.

그나저나 유한이 쟤는 정말 여기로 괜찮은 걸까.

남자애들은 낡은 곳을 싫어한다고 하던데···


혹시 이쪽의 눈치를 본다고 억지로 참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서 조심스레 유한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그런 기색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흥미 가득한 얼굴을 한채 열심히 가게 안의 풍경을 눈으로 훑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래봐야 오래된 분식집일 뿐인데 대체 뭐가 그렇게 신기하길래 저렇게 꼼꼼하게 훑어보는 걸까.


"신기하니?"

구경하는데 푹 빠진 유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리 물었더니 유한의 반응이 내심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네? 아, 네···"

묘하게 부끄러워한다고 해야할까.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음에도 그랬다.


그러면서도 눈으로 벽을 훑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거기서 뭔가를 찾고 있기라도  것처럼.


"선배는 여기 몇 번이나 와보셨어요?"

유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선배라는 호칭은 여전히 익숙치 않았지만 그래도 몇  들으니 처음 들었을 때보다는 당혹감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여전히 볼쪽이 뜨거워지는 것만큼은 똑같았지만.

"으음, 글쎄···"


몇 번이나 와봤냐고 물어도 정확하게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기억이 불분명했으니까.

그래도 학교 다닐 때는 꽤나 자주 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들리지 않았을까.


"그래요?"


"응, 그때는··· 근처에 갈만한 가게가 여기밖에 없었거든."


지금이야 프랜차이즈다 뭐다 많이 생겼지만 그때는 그랬다.

"흐음, 그렇구나···"


그나저나 대체  저렇게 열심히 찾는 걸까.


"그런데 뭘 그렇게 보니?"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길래 궁금한 마음에 그리 물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는 사람마냥 자꾸만 벽쪽을 힐끔거리던 유한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그러더니 누가봐도 억지로 지은 것임을  수 있는 미소를 얼굴 위에 머금은채 말을 얼버무리는게 아닌가.

"아, 아니에요. 그냥 벽에 낙서가 신기해서···"


 모습이 왠지 모르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맨날 유한에게 당하기만 하다가 저렇게 살짝이지만 당혹스러워하는 유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놀려주고 싶었다.

그동안 유한으로 인해 느꼈던 당혹감을 조금이라도 되갚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교복을 몸에 걸쳤더니 생각하는 것마저도 그때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봐야 어울릴 리도 없고 나이에 안 맞게 유치해보이기만 할텐데ㅡ

"아니기는 엄청 열심히 쳐다보던데."


해버렸다.

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얼굴이 뜨거워지려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곡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유한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근질거렸다.

동시에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벽에서 뭘 찾고 있었길래 저토록 당혹스러워하는 걸까.

그건 곧 알  있었다.

표정을 숨기기라도 하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자꾸만 이쪽을 힐끔대던 유한이 고개를 푹 숙이며 진실을 털어놓았으니까.


"그, 혹시··· 고모 이름도 적혀있나 싶어서요. 앗···"


"내,  이름?"


한 발 늦게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겼음을 깨달은 유한이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거기에 신경  겨를같은 건 없었다.

그만큼 당황스러웠으니까.

뭘 그렇게 열심히 찾나 했더니만 설마 내 이름이 적혀있는지 찾아보고 있었던 것일 줄이야.


그제서야 벽을 빼곡하게 덮고 있는 낙서들의 모습이 눈으로 들어왔다.

아무 의미없이 적어놓은 거나 친구들끼리 이름을 적어둔 것도 상당했지만, 대부분은 커플들이 자기 이름을 하트와 함께 나란히 적어놓은게 태반이었다.


저 안에서 내 이름을 찾아보고 있었다는 건···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이쪽의 이름이 다른 남자의 이름하고 나란히 적혀있지는 않을지 걱정이라도 됐던 걸까.

'질투···'

했던 걸까.


순간 머릿속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른 생각에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과는 뭔가 좀 달랐으니까.

교복을 입으니 머릿속마저도 그때로 돌아가기라도  것일까.


전에 이랬다면 틀림없이 당혹스럽기만 했을텐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당혹스럽지 않냐면 그건 아닌데 그것의 배는 되는 충만감이  어딘가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입을 열어버리면 어느새 몸 안에 가득 차버린 것이 입을 통해 새어나갈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 감정을 유한에게 들켜버릴 것 같았으니까.

동시에 어느새 주위로 내려앉은 침묵이 묘하게 초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런 걸 방치해봐야 좋을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끼이익ㅡ

낡아빠진 문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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