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5화 〉1부 (155/315)



〈 155화 〉1부

"아윽···"

부딪힌 곳이 아팠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 눈물이 핑하고 돌 정도로 얼얼했다.


거기에 혀도 아팠다.

하필이면 말하는 와중에 부딪혀버린 바람에 살짝 혀를 씹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울컥하고 치솟는데 더 짜증나는 건ㅡ

"뭐야, 누나 갑자기  그래? 괜찮아?"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의 반응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냐니.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걸까.

"씨이이···"


짜증이 커질수록 머리에 열이 올라서  그래도 욱씬거리는 곳으 더 욱씬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통증이 올라오는 곳에 손을 가져다 대보니 아주 그냥 뜨끈뜨끈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곳보다 약간  볼록하게 솟아있는 느낌이기도 했고.


"괜찮아? 많이 아파?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그 와중에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난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듯한 유한의 발언을 들은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졌다.


"니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울컥한 마음에 빼액하고 외쳤던 건 그래서였다.

"응? 내가? 내가 뭘?"

정말 모르는 걸까.

목소리만 들으면 진짜로 그런 듯 해서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한  잘 생각해봐."


"아니, 생각해보고 자시고 내가 뭘 어쨌··· 아."


나지막하게 탄식 비스무리한 걸 흘리는 걸 보면 이제서야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은 걸까.

아무래도 그런 듯해서 곧이어 들려온 유한의 말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유한이라면 틀림없이 이걸 빌미로 깝죽거릴테니까.


그래서 여전히 욱씬대는 머리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유한이 깝죽거리는 즉시 그걸 받아칠 수 있을만한 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ㅡ

"아, 아니 나는 그냥··· 누나가 자꾸 땀을 흘리니까 후드티라도 벗으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가지고···"

반응이랍시고 돌아온 것은 내심 예상하고 있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깝죽거리기는 커녕 크게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허둥지둥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덩달아 당혹스러워졌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머리, 아니 얼굴 쪽에 열이 올랐다.

"그, 미안···"


정말 면목이 없다는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건네진 유한의 사과를 들은 순간 그 느낌은 배가 됐다.


'더워···'

당황스러워서 그런 걸까.

분명 바로 조금 전까지는 그럭저럭 참을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확 더워진 느낌이었다.

"···됐어."


사과를 받았으니 뭐라도 답을 해야할  같아서 튀어나오는대로 내뱉었는데 내뱉고 나서 후회했다.

 더 길게 말하든지 했어야 했는데 짧게 내뱉어버린 바람에 분위기만  어색하게 변해버렸으니까.

"그, 정 그러면 에어컨이나 좀 틀어보던가."

"어? 아, 응!"

책상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발이 반대방향으로 홱 돌아가더니 이내 어딘가를 향해 호다닥 달려갔다.

거 서둘러봐야 몇  차이도 안 날텐데 그럼에도 서두르기를 택한 유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좀 그래서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동안은 조립하고 세팅에 집중하느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땀을 많이 흘리긴 했으니까.

좁디 좁은 책상 밑에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두 개나 되는 컴퓨터 본체들하고 낑겨있으려니 확실히 좀 덥기도 했고.

그래서 벗어던졌더니 확실히 시원하긴 했다.

동시에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땀을 좀 많이 흘렸다는 걸.


그 탓에 속옷 대신 후드티 밑에 받쳐입고 있었던 티가 땀에 젖어 피부에 철썩 들러붙어 있었다.


그 위로 바깥 공기가 슥 훑고 지나가는데 그 느낌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

하필 또 티셔츠가 흰색이라서 안에 비쳐보이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유한이야 신경도 안 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후···"


짧게 한숨을 내쉬는 척 하며 가슴에 철썩 들러붙어 그곳의 풍경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던 티셔츠를 손으로 잡고 펄럭펄럭 흔들어댔던 건 그래서였다.

"에어컨 틀었어 누나."

"···그래."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 묵은 냄새가 코로 후욱하고 끼쳐왔다.

애초에 겨울동안  한 번도 틀지 않았던  몇 개월만에 틀어제꼈으니 그런 냄새가 나는  당연하겠지만서도.


그래도 뭐, 시원하긴 했다.

창문도 열어놨으니 환기야 알아서 되겠지.


"야, 그 파워에 꽂는 코드 좀 줘봐. 컴퓨터에 꽂는 부분 보면 약간 돼지코 비슷하게 생긴 거 있거든?"


"아, 응. 누나 코처럼 생긴 거 말하는 거지?"

"···뒤질래?"

그리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스럭부스럭하고 박스 안을 뒤지는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 잠깐 사이에 볼을 타고 흘러내린 것을 손등을 이용해 훔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거 맞지?"


그 말과 함께 쪼그려앉은 유한이 부탁했던 것을 슥 내밀어왔다.

"어, 어···"


그런데 거리가 좀··· 가까웠다.

책상 밑으로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서랍 쪽에 바짝 붙어서 코드를 내미는데 그래서 좀 당황했다.


"그, 이것도."

그 당황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유한이 등뒤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은 티셔츠였다.

수건도 아니고 티셔츠를  닦는데 쓰라고 건네줄 리는 없으니 이걸로 갈아입으라는 걸까.

여기서?

어찌 반응하면 좋을지  수가 없어서 애꿏은 눈만 꿈뻑꿈뻑거리고 있으려니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라도 했는지 유한이 고개를 슥 옆으로 돌리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찝찝할 것 같아서."

그야 당연히 찝찝하긴 했다.

송출용으로  본체하고 모니터에다가 이런저런 장비들을 3층까지 실어다 나른다고 끙끙댔을 뿐더러 조립하는 동안 흘린 것도 상당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그렇지 않나?


"그리고 그, 컴퓨터에 땀같은 거 들어가면 안 되잖아."


그것도 그렇긴 헀다.


혹시라도 그리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긴 하지만, 아까처럼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면 아차하는 사이에 땀같은게 부품 위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 점까지 고려하면 유한의 말대로 갈아입는 게 맞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좀 그랬다.


뭐가 그리 마음에 걸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을  같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갈아입을 옷이 유한의 것이라는 것도 솔직히 좀 그랬다.

"그, 나는 뒤돌아 있을테니까···"


누구 덕분에 자신의 머릿속이 꼬일대로 꼬여버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에 들고 있던 티셔츠를 조심스레 바닥에다가 내려놓은 유한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한채 쪼그리고 있던 몸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이내 귓가로 울려퍼진  유한이 뒤로 돌아서면서 난 소리였다.


그와 함께 유한의 발뒤꿈치가 눈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더 기분이 요상해졌다.


허나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유한이 바닥에다가 고이 내려놓은 티셔츠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한의 말대로 컴퓨터에 땀이라도 떨어져서 고장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는 건 유한이 아닌 이쪽이 될테니까.

책상 밑에서 슬그머니 기어나와 유한이 바닥에 내려놓은 것을 조심스레 집어들었던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똑바로 서서 확인해보니 확실히 몰골이 좀 심각하긴 했다.


뭔 놈의 땀을 이리도 흘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서 가슴하고 등을 덮어주는 부분이 피부에 철썩 들러붙어 있었으니까.

이래서야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해도 임시방편에 불과할텐데···

유한이 갈아입으라고 가져다 준 것을 손에 꼭 움켜쥔 채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다가 일단은 입고 있던 티셔츠부터 벗었다.

그리고는 가슴 사이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유한이 건네준 것으로 갈아입으려고 하니 유한의 방에 딸려있는 화장실이 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멈칫했다.

이왕 이렇게 된  갈아입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몸을 씻는 편이 나을 것 같았으니까.

"야, 나 그럼 갈아입는 김에 샤워  한다."


"으, 응?"


"뭐, 왜."


"아, 아냐···"

할 말이 있으면 할 것이지 답지 않게 왜 저러는 걸까.


아까 자기 때문에 책상에다가 머리 박은 게 그토록 마음에 걸렸던 걸까.

하긴, 지금이야 괜찮아졌지만 아까는 정말 뒤지게 아팠으니까.

그만큼 부딪히는 소리도 요란하게 났으니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묘하게 당황스러워하는 유한을 뒤로 한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것들을 훌훌 벗어던져 입구 쪽에 가지런히 쌓아놓고 있으니···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가슴을 훌러덩 깐채 유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걸.


물론, 유한은 본인이 말한대로 뒤돌아서  있긴 했지만··· 자신이 반쯤 알몸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변치 않았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뭔가 좀 요상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라서 더 그랬다.

설마 유한이 묘하게 허둥지둥했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읏···'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고개를 치켜들기 무섭게 난생처음 겪는 감각이 몸을 타고 올라와 얼굴을 뜨겁게 만들었다.

차곡차곡 쌓고 있던 것들을 발로 대충 구석에다가 밀어놓고는 그대로 샤워기 아래로 호다닥 뛰어갔던 건 그래서였다.

어떻게 찬물이라도 맞지 않으면  묘하디 묘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

확실히 찬물의 효과는 확실했다.

손잡이를 끝까지 돌려놓고 샤워기를 트니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차가운 것이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쓸데없이 달아올랐던 몸이 금세 차갑게 식어버렸으니까.


"으아···"


그리고 후회했다.

그래도 아직 겨울이라고 상상한 것 이상으로 차가웠으니까.

얼음물에 입수해본 적은 없지만, 예능같은데 보면 간간히 나오곤 하는 얼음물 입수가 대충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차가워서 턱이 제멋대로 떨리며 딱딱하고 이빨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황급히 손잡이를 중간까지 돌려놓고는 욕실 한 켠에 곱게 놓여져있던 것들을 이용해 땀으로 젖은 몸과 머리를 헹구기 시작했다.

아직 조립할 것도 세팅할 것도 한참 남은만큼 거창하게  생각은 없었기에 빠르게 샤워를 끝마치고는 수건을 꺼내 몸을 타고 줄줄 흐르는 물기를 닦아내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똑똑ㅡ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아직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 왜."


퉁명스럽게 답하고 말았던 것도 사실은 그래서였다.


"아니, 그··· 생각해보니까 바지도 필요할 것 같아서···"

설마 아래까지 빌려주겠다는 걸까.

"문 앞에다가 놓아둘게···"

그 말 뒤로 이어진 건 자박자박하고 문 앞을 떠나는 발자국 소리였다.

예상했던 것이 그대로 들어맞은 탓에 간신히 가라앉혔던 요상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억지로 외면하고 일단 유한이 가져다  티셔츠부터 몸에 걸쳤다.

'좀·· 크네.'

내심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유한의 티셔츠는 살짝 컸다.


특히 어깨 쪽이 문제였다.

자꾸만 흘러내리려고 했으니까.


그 탓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좀 묘했다. 그런 식으로 사이즈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니  것이 아닌 남의, 유한의 옷을 빌려입고 있다는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으니까.

'이제 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맘 같아서는 땀이고 뭐고 그냥 원래 입고 있던 것을 그대로 다시 입고 싶었다.

헌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티셔츠를 빌려입은 상황에서 아래는 원래 입고 있었던 걸 그대로 입고 나가면 유한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닫혀있던 문을 조심스레 열어 그 틈 사이로 손을 내밀어  너머를 더듬거리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아씨···'

문 앞에다가 놔뒀다면서  손에 잡히질 않는 걸까.


아무리 더듬거려봐도 바지같은 건 흔적조차 느낄  없어서 더듬거리는 수준을 넘어 파리라도 잡듯 바닥을 탁탁 두들기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여기ㅡ"

조심스럽게 그지없는 목소리와 함께 유한이 바지를 손수 손에 쥐여주는 게 느껴졌다.


유한의 손가락이 손바닥을 스윽하고 스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그 느낌이 이상해서 화들짝 놀라버린 심장이 쿵하고 크게 뛰었다.

동시에 기분이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요상해졌다.


요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아래는 서늘하기만 한데 얼굴은 모닥불 앞에 앉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뜨끈뜨끈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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