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6화 〉1부 (136/315)



〈 136화 〉1부

그래도 아직까지는 겨울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서늘하기 그지없는 바람때문일까.


분명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노라는 것이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차분해진 머리를 가지고 생각해봤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여기서  참겠다고 유한을 덮치는 건 하책 중에서도 하책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유한과 맺어진다고 해도 한 번으로 끝날테니까.

그리고 그건 자신이 바라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건 진작에 목록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우선은··· 알아봐야겠지.'

그래 역시 그게 먼저아닐까.

언제부터 시작해서 왜까지.


꼼꼼하게 하나하나 전부 알아본 다음에 그걸 토대로 뺏을 거다.


아니, 뺏는다라는 말은 옳지 않았다.


애초에 유한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엄마 꺼도 아닌 거잖아?'

유한은 어디까지나 유한일 뿐.


그러니 이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다.


유한이 엄마보다 날 더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할 수 있냐는 것인데···

'할 수 있을까.'

솔직히 확신하긴 힘들었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영을 그런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쳐도 가영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

그렇다고 승산이 아예 없냐면 그렇지는 않을 거다.

애초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가영과는 다르게 이쪽은 망설일 이유 자체가 없으니까.

5살 차이면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이쪽은 운동도 엄청 열심히 하지 않았나.

여자들이 괜히 운동에 목을 매는 게 아니다.


그게 다 남자를 자기 아랫도리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꽉 잡아두려고 그러는 거다.


그러니 그것또한 이쪽의 강점이라 봐도 좋겠지.

다만 아직 실제로 써본 적이 없다는  살짝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그래서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한과 처음으로 하게된다면  사나운 모습만큼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헐떡거리기 보다는 헐떡거리게 만들고 싶었다.


힘들다고 울상을 지을 정도로 잔뜩 싸게 만들 거다.

불알이 텅텅 빌 정도로 잔뜩 싸게 만들면 다른 여자따윈 생각도 안 나지않을까.

물론, 말만큼 쉽지는 않겠지.

몸이 다른 여자들보다  배는  민감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ㅡ


'익숙해져야 돼.'


남자의 몸에, 정확히는 유한의 몸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겸사겸사 유한이 어딜 만져주면 느끼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유한과 가영의 사이를 방해해야만 했다.

떡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아닐테니까.


둘을 지금처럼 내버려둬서 좋을  없었다.


'그러니까 당분간 아침 운동은 패스.'

아니, 아예 아침 운동을 당분간 요가같은 걸로 대체하는 건 어떨까.


마침  명분으로 내세우기에 적당한 것도 하나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에 가영이 몸소 찾아와서 운동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았던가.


그걸 명분으로 삼아 아침에 가영을 옆에 붙잡아 놓는다면?

지금처럼 자신이 운동한다고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런 짓을 하는 것도 더는 못할테지.


물론, 그리 되면 경쟁 상대를 자신의 손으로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만한 손해였다.

어차피 운동 며칠 한 거 가지고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테니까.

오히려 운동의 효과가 어설프게 나타나서 이쪽의 강점이  도드라질 수도 있고.

그렇게  사이을 방해하면서 동시에 유한을 길들여야 했다.

물론, 그걸 위해서라도 둘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한 척 할 필요가 있었다.

이 타이밍에 둘의 관계에 대해 눈치챈 척을 해봐야 좋을  하등 없었으니까.


그러니 모르는 척, 눈치채지 못한 척 하면서 유한이 자신과의 스킨십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이쪽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들인 다음 기회가 오면 바로 선을 넘어버리면 되는 거다.

겸사겸사 유한의 몸을 길들이는 와중에 유한이 느끼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써먹을 수 있을 것이고.

이 와중에 궁금한 게 하나 있다면··· 유한이 이쪽을 이성으로, 여자로 보고 있냐는 것이었다.


유한은 과연 자신을 여자로 보고 있을까.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건 오직 유한만이 알고 있을 터.

그래도··· 완전히 누나로만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쪽을 정말 순수하게 누나로만 봤다면 그런 식으로 술에 취해 덥썩 안겨들거나 잠결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럼에도 유한이 자신이 아니라 가영하고 저런 관계가 된 것은··· 그래, 그냥 새치기를 당했을 뿐이다.

만약 그날 유한이 찾아간 곳에 가영이 아니라 자신이 있었다면?


어쩌면 유한과 저러고 있는 건 가영이 아니라 자신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이쪽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도 못할 거다.


억울하게 새치기를 당한 건 이쪽이니까.

그런 식으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슬그머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새 만족할만큼 해댄 것일까.

아까하고는 다르게 집 안은 고요했다.

어두컴컴하니 불도 꺼져있었고.


해서 방에 들려 빠르게 갈아입을 옷부터 챙긴 다음 샤워부터 했다.


그런 식으로 몸에 남은 흔적을 지운 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니 그새 유한이 주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누나 왜 거기서 내려와?"


"아, 위에서 씻고 있었거든."

"응? 운동 벌써 다 했어?"

"어."

지금 자신의 목소리는 어떨까.

평소하고 같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유한의 옆을 지나쳤다.

그새 샤워라도  것일까.

유한에게서는 달콤한 바디워시 향이 났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묘하게 엄마의 냄새가 섞여있었다.

우유에다가 설탕을 섞어놓은 듯한 그런 냄새라고 해야할까.


그것이 콧속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내심 쓰게 웃었다.

아는만큼만 보인다고 이제보니 여기저기에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으니까.

그게 거슬렸다.


해서 들고 있던것을 대충 바구니 안에다가 던져놓고는 그대로 유한의 뒤로 다가가 장난이라도 치듯 유한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서 오늘은 뭐하려고?"

"앗, 자, 잠깐만 누나···"

"응? 왜?"

"그, 간지러워서···"

자신의 앞에서는 이래놓고서 엄마 앞에서는 틀림없이 야한 표정을 잔뜩 짓고 있었겠지.


지금은 발그레하니 물들어있는 사랑스러운 얼굴이 바로 조금 전까지 쾌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고 생각하니 배 안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유한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면서 은근히 몸을 비볐다.

부디 이쪽의 냄새가 유한의 몸에 남아있는 엄마의 냄새 위로 덧씌워지기를 바라면서.


"자, 잠깐만 간지럽다니까?"

"간지러워?"


그럼 더 간지러워 보라는 뜻으로 장난스러운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며 은근히 유한의 옆구리를 더듬었다.

"읏, 자, 잠깐···"

엄마 앞에서만 보여주는 야한 얼굴을 나한테도 보여주면 좋을텐데.


괜시리 속상해져서 티나지 않게  안쪽 살을 살짝 깨물고 있었더니 그런 기색이 유한에게 전해지기라도 했던 것일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금방이라도 품 안에서 벗어날 것처럼 꿈틀꿈틀대던 유한의 움직임이 차츰 잦아들더니 걱정가득한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물음에 속으로 답했다.

응, 있었어. 무슨 일.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거든.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 오늘따라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아보이길래."

"그냥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회원들이 막 피곤하게하고 그래?"


"아니, 유한이 너 때문에."

"나?"


어깨를 흠칫 떨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귀여웠다.

"안 그래도 바쁜 누나를  시간이나 일찍 출근하게 만들고 말이야."

"그, 미, 미안."

"미안해?"

시무룩한 얼굴을 한채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덕분에 새삼 가영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틀림없이 엄마도 이랬던 것이겠지.

유한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참지 못했던 걸거다.


그렇다고 넘겨줄 생각따위는 없었지만.

"미안하면 몸으로 사죄해."

"으, 응?"

"누나한테 미안하면 몸으로 갚으라고."

"모, 몸으로?"


역시 유한도 자신을 마냥 누나로만 보고 있지 않은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 그 말에 이토록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일 이유가 없으니까. 침을 꼴깍 소리가 나도록 삼킬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대체 뭘 상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야하고, 사랑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보고 싶을 정도로.

그럼 유한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당황할까?

그것도 아니면··· 가영을 생각해서 이쪽을  뒤로 떠밀어버릴지도 모르지.

'차라리 밀려넘어져서 다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유한의 성격이라면 틀림없이 그냥은 넘어가지 않으려 할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나을 때까지 옆에 붙어서 간병해주지 않을까.


겸사겸사 일도   있을 것이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끌렸지만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그 방법은 일단은 좀 아껴놨다가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린다 싶으면 그때 사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터


"누나 도시락 만들어준다면서?"

"···아."

"아아? 이거이거 딱 보니까 대충 말로 때우고 넘어가려고 했구만?"

"아니 그,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이래저래 바빠가지고···"

그래 엄마 때문에 바빴겠지.

이제부터는 자신 때문에 바빠질테지만.

"그래서 만들어줄거야?"

"오, 오늘?"

"그럼 또 기다리라고?"


"그으, 알겠어. 근데 냉장고에 마땅한  있을지 모르겠네···"

마트라도 가야하나 고민에 빠진 유한의 귀에 대고 가볍게 속삭였다.


"마트 갈 거면 같이 가."


일부러 바람을 불어넣는 느낌으로 속삭였더니 그게 간지럽기라도 했던 것일까.

품 안에 가둬놓았던 몸이 흠칫하고 경련하는 게 사랑스러웠다.


동시에 몸을 살짝이지만 엉거주춤하게 움크리는게···

'살짝 섰나 보네.'


그래, 그런 게 틀림없었다.

 때문에 자지를 세우고 있다니.


입꼬리가 제멋대로 움찔거릴 정도로 기뻤다.

그리고 그 사실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또 귀여웠다.


그래서 더 골려주고 싶었지만 슬슬 떨어져야할 것 같았다.

아까 전부터 가영의 방쪽에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뚝 멎은 걸 보니 슬슬 나올 때가 된 듯 했으니까.

맘 같아서는 가영이 방에서 나오든 말든 계속 유한을 품 안에다가 가둬두고 싶었지만 아직 유한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티를 내서 좋을 건 없겠지.


그랬다가 가영이 뭔가 눈치채고 이쪽을 경계하기라도 하면 귀찮아지기만 할테니까.

"알겠지? 마트 갈 때 같이 가는 거야?"


"으, 응."

해서 속으로나마 아쉬움을 곱씹으면서 그대로 유한에게서 떨어져나왔다.

그리고는 적당히 주변을 얼쩡거리며 식사 준비를 돕는 척 하고 있으니 이내 가영이 방에서 빠져나왔다.

틀림없이 야한 냄새를 풀풀 풍길게 분명한 것을 손에 돌돌 말아서 들고 있는 가영을 보니 속이  뒤틀리려고 해서 조금이라도 침착해질수 있도록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기침하셨습니까 유 여사님."

"으, 응. 지나 너도 잘 잤니?"

"뭐, 그럭저럭?"

손에   신경쓰이는 걸까.


하긴 그렇겠지.


야한 냄새가 풀풀 풍길텐데 신경이 안 쓰이실 리가 있나.


당분간 아는 척은 삼가기로 했기에 적당히 유한를 돕는데 집중하는 척을 하고 있으려니 슬금슬금 이쪽의 눈치를 살피던 가영이 이내 다용도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로 흔적을 없애버릴 생각인 걸까.

가영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용도실 쪽에서 삑삑하고 세탁기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영이 묘하게 안도한 듯한 얼굴을 한채 다용도실에서 걸어나왔다.

"아, 맞다. 엄마."

"응?"

"저번에 그, 운동 좀 가르쳐달라고 했잖아."


역시나 유한 때문에 그런 부탁을 했던 게 맞았나 보다.


무슨 부끄러운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뺨을 빨갛게 물들인채 유한 쪽을 힐끔거리는 걸 보면 틀림없이 그런 거겠지.


유한은 듣지 못했는지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그런데 내가 가르쳐주고 싶어도 이게 초심자 혼자서 하기에는 위험한 동작들이 많더라고."

"그, 그러니?"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당분간 좀 피곤하더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랑 같이 운동하는 건 어때?"

"···아침에?"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는 듯한 눈치라고 해야할까.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유한 쪽을 힐끔거리는데 슬그머니 몸을 옆으로 움직여 그런 가영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 괜찮겠니?"

"나야 뭐, 상관없어. 안 그래도 슬슬 아침마다 조깅하는 것도 질리던 참이었거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내 가영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할 거야?"


그렇게 아침마다 이루어졌을 밀회를 차단하는데 성공했건만 신경쓰이는 게 하나있었다.


자꾸만 유한의 눈치라도 보는 것처럼 행동하는 가영의 태도가 그랬다.

설마 의외로 가영이 아니라 유한이 관계를 주도하는 쪽이었던 걸까.


아니,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ㅡ

"야, 이유한."


"응?"


"그, 밥 다 먹고 잠깐 내 방으로 와봐."

세나 저 년은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설마  년도?

확실히 의심이라는 게 무섭기는 했다.

한  의심하기 시작하니 그럴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도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렇지만··· 아마 쟤는 아닐 거다.


애초에 세나한테는 그런 짓을 저지를 담력 자체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가영도 그랬으니까.


설마 그 누가 알았겠는가.


진심으로 유한을 친아들처럼 여기던 가영이 유한과 일선을 넘어버리라는 걸 말이다.


만에 하나 정말 자신만  빼놓고 다들 그러고 있었던 거라면ㅡ


'하···'

그때는 정말 눈이 확 돌아버릴지도 몰랐다.



누나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돼?

알겠지? 유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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