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1부
관건은 역시 세나를 어떻게 집에서 내보내냐는 거다.
과연 어떤 핑계를 대야 저 집순이를, 아니 집순이의 경지를 넘어 집요정의 경지로 화한 세나를 집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어지간한 핑계는 안 대느니만 못할 것이다.
어줍잖은 걸 핑계랍시고 댔다가 세나가 한창 가영하고 '자위' 중일 때 덜컥 돌아와버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도 가영도 곤란해질테니까.
고로 핑계랍시고 댄 것을 해결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과연 뭐가 좋을까.
솔직히 말하면 이거다하고 떠오르는게 딱히 없었다.
'으휴, 진짜··· 밖에도 좀 나가고 그럴 것이지···'
오늘은 뭐 회의같은 거 안 하나?
속으로 작게 혀를 차던 것도 잠시, 그대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냥 나갈까 하다가 방 안을 뒤져 마스크와 모자를 찾아낸 뒤 얼굴 위에다가 푹 눌러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리미리 콘돔이나 좀 사다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 세나를 집밖으로 내보내는데 성공했을 때 귀찮고, 시간 아깝게 콘돔 사러 갈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1층으로 내려갔는데ㅡ
"응? 어디 가게?"
생각치도 못한 복병이 튀어나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새벽에 한 조깅만으로는 부족하기라도 했던 걸까.
거실 한복판에다가 요가용 매트를 깔아둔채 그 위에서 몸을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지나가 내 발자국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더니 이내 날 발견하고는 그리 물어왔다.
"응? 아, 편의점 좀 다녀오려고."
"편의점? 편의점은 왜?"
"어···"
나도 모르게 살짝 말끝을 흐렸던 건 편의점은 또 왜 가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실 지나의 복장 탓이 컸다.
대체 뭔 놈의 스트레칭을 그리도 격렬하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가 입고 있는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리고 흠뻑 젖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새하얀 것 위로 그 너머의 풍경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덕분에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얇은 티셔츠 안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손으로 꽉 움켜쥐고 싶어지는 가슴 외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친···'
몸을 움직이면서 살짝 흥분하기라도 한 것일까.
진한 핑크빛을 띈 꼭지가 티셔츠 위로 빨딱 서 있었다.
거기에 평소보다 더 윤기가 흐르는 것 같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마저도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 거칠어져 있으니 그 모습이 그렇게 야릇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흡사 농밀하게 섹스한 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갔다.
그렇게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지나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원래 있어야할 자리로 되돌리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후, 그나저나··· 운동을 해서 그런가 좀 덥네···"
꼴깍하고 작게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지나가 입고 있던 티셔츠의 목부분을 손가락으로 움켜쥐더니 상체를 살짝 앞으로 굽히며 앞섬을 잡고 펄럭펄럭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티셔츠 앞섬을 꼬옥하고 움켜쥔 지나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찰싹 달라붙어있던 것이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하며 보기 좋게 그을린 가슴의 모습이 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니까.
심지어 그 안에도 땀방울이 맺혀있는 건 마찬가지라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맘같아서는 가슴골 주변에 맺혀있는 땀방울들을 혀로 하나하나 핥아서 없애주고 싶을 정도였다.
"후우우···"
숨은 또 왜 그리 묘하게 내쉬는지.
누가보면 덥다는 건 핑계고 실은 날 유혹하고 있는 건 줄 알겠네 정말.
보면 볼수록 얼굴이 뜨끈뜨끈해지는 느낌이라서 억지로 그곳에서 시선을 떼어낸 뒤 현관 쪽에다가 시선을 고정한채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그··· 살짝 출출해서 간식거리나 좀 사오려고."
"그래? 그러면 같이 갈까?"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나하고 같이 가게 되면 콘돔에는 손조차 대지 못할테니까.
"아, 아냐···! 누나 운동 중이잖아. 그냥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사다줄테니까."
"그래? 그럼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다줄래?"
"···아이스크림?"
시발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나는 걸까.
분위기가 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스크림 좀 사다달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지나가 내 물건만큼이나 굵고 길다란 것을 입 안에다가 밀어넣고 혀로 핥짝핥짝 핥아먹는 모습이 마치 눈으로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어, 어떤 거···?"
"음··· 누나는 유한이가 사다주는 거면 아무거나 다 괜찮아."
이제 좀 더운 게 진정되었는지 펄럭펄럭 흔들어대던 앞섬을 놓은 채 이쪽을 향해 싱긋 웃는 모습이 누가봐도 참된 누나의 귀감 그 자체였다.
"그러면 봐서 적당한 걸로 사올게."
"그래, 갈 때 차 조심하고."
"응."
그런 식으로 중간에 잠시 지나에게 발목이 잡히긴 했지만 무사히 집을 빠져나와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에 오를 수 있었다.
편의점은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동네가 좀 특이한 곳인지라 막 손님으로 붐비고 그런 편은 아닌 걸까.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한채 카운터를 지키고 서 있는 알바생말고는 딱히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그대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앗, 어서오세···!"
인사를 할 거면 끝까지 하던가 왜 중간에 멈추는 걸까.
라는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알바생의 얼굴 위로 떠오른 홍조가 그녀가 말을 하다말고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뭔지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마스크에다가 모자까지 푹 눌러쓴 탓에 제대로 드러난 부분이라고 해봐야 눈뿐인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무슨 좋아하는 연예인의 실물이라도 영접한 것만 같은 알바생의 반응에 속으로 쓰게 웃으며 그녀의 옆을 지나쳐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눈속임용으로 쓸 과자들부터 집어들기 시작했다.
봉지에 든 것하고 상자에 든 것을 딱 반씩 섞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집어든 바구니를 적당히 채워준 뒤 그대로 콘돔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콘돔 코너 의외로 출입구하고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콘돔 코너 앞에 선 순간 깨달았다.
내가 내 사이즈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는 것을.
'시발···'
사이즈를 뭘로 사야하지?
엑스라지? 아니면 더블 엑스라지로 가야하나?
아니,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뭔 놈의 콘돔을 이렇게 종류별로 진열해놓은 걸까.
간밤에 자위할 때 썼던 얇은 비닐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겉면에 뭔가가 좀 많이 달려있는 기능성(?) 콘돔에 이르기까지.
진짜 전 세계에 존재하는 콘돔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풍경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려니 옆쪽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저···"
아니 얘는 또 언제 카운터를 벗어난 걸까.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바로 조금 전까지 카운터에 서서 날 힐끔거리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아서 잘 돌아다니던 내가 갑자기 한 곳에 우뚝하고 멈춰선채 뭔가 곤란해하는 기색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으니 그런 날 돕기 위해 나온 것일까.
조심스레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런 듯 했다.
그런데 막상 나와서 확인해보니 내가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곳이 하필 온갖 종류의 콘돔들이 쭈르륵 진열된 코너라서 아차한 듯 싶었고.
여기서 말을 한 마디라도 잘못 내뱉으면 빼도박도 못하고 그대로 성희롱범을 향해 직행이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으··· 으···'하는 소리만 내고 있는 게 나름대로 귀여웠다.
아까 볼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가슴도 꽤 컸고.
'그래도 우리 누나들만큼은 안 되지만.'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가영도 그렇고 지나도 그렇고 워낙 규격 외니 말이다.
세나야 뭐··· 둘하고 비교하면 좀 작기는 해도 대신 그만큼 귀여운 맛이 있으니까.
아니,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얘를 어쩌면 좋담.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어버버하고 있던 편의점녀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손가락으로 한곳을 딱 가리켰다.
"마, 마스크···! 차, 찾으시는 거면 여기 진열된 게 전부입니다···!"
동시에 터져나온 외침에 눈을 움직여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쫓아보니 과연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콘돔 박스들 위에 온갖 종류의 일회용 마스크들이 얇은 비닐로 포장된채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좀 웃겨서 피식 웃으며 편의점녀의 말에 대꾸했다.
"마스크 찾는 거 아닌데요."
"에? 네? 그, 그럼···"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더니만 몸을 흠칫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나름대로 귀여웠다.
왠지 모르게 더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흠···'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비스나 좀 해줄까?
아까 보니까 편의점을 찾는 손님도 별로 없어서 많이 심심해보이던데 말이다.
뭐, 알바 입장에서 보면 그것만큼 개꿀인 상황도 또 없긴 하지만 그렇게 꿀 빠는 데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꿀빠는 입장에서 봐도 과할 정도로 손님이 없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법이니까. 혹시 이러다가 가게가 폭삭 망하는 건 아닐지, 장사 안 된다고 짤리는 건 아닐지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때 꿀좀 빨아본 입장으로서 그 마음이 어떤지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내 옆에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편의점녀가 대충 어떤 마음으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을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뭐, 이것도 얼굴이 영 별로였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ㅡ
'귀여우니까.'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
노콘섹스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몰라도 마침 또 기분이 좋기도 하고.
"콘돔이요."
"···네, 넷?!"
"콘돔 좀 사려고 하는데 사이즈를 어떤 걸로 사면 좋을지 모르겠어서요."
"아, 네, 그···"
"엑스라지면은 혹시 길이가 대충 어느 정돈가요?"
"그, 글쎄요···"
남자 손님한테 콘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는 이 상황이 어딘가 현실감이 없기라도 했던 것일까.
새빨갛게 물든 얼굴 안에 자리한 눈동자가 팽이 돌아가듯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엑스라지는 좀 작을 것 같은데···"
꿀꺽-
이쪽은 줄 마음도 없는데 왜 침을 삼키고 그러는 걸까.
"그 혹시 이 중에 써본 거 있어요?"
순진하기 그지없는 반응을 보면 틀림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네에···"
안타깝게도 아니더라.
"진짜요? 어떤 건데요?"
해서 그리 물으니 잠시 망설이던 편의점녀가 이내 살짝 떨리는 손가락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가리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지목당한 것의 수가 꽤 됐다.
순진해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좀 노는 타입이었던 걸까.
그런 것치고는 반응이 너무 순진해서 살짝 의심하는 척을 해봤더니ㅡ
"···진짜요?"
"그, 호, 혼자서··· 할 때···"
묻지도 않은 사실이 편의점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하고 나서 뒤늦게 아차하기라도 한 것일까.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는 편의점녀의 행동에 피식 웃으며 바로 조금 전에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것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눈으로 확인했다.
그게 이상할 정도로 긴장이 되기라도 했던 것일까.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그에 맞춰서 꼴깍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흠···'
생긴 건 순진해빠져서는 이렇게 과격하게 생겨먹은 것까지 써본 적 있단 말이지.
"그럼 써본 것들 중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요?"
"네, 네···?!"
"그 왜 있잖아요. 안에 닿는 느낌이라던지 뭐···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려나?"
어떤 게 가장 사용감이 좋았냐고 물으니 편의점녀가 안 그래도 빨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아까 가리켰던 것 중에 하나를 조심스레 찍었다.
쌀알만한 크기의 돌기들이 표면을 따라서 빼곡하게 나 있는 것이었다.
"흐음, 왜요?"
"그, 긁어주는 느낌이···"
마음에 드셨단다.
그러더니 횡설수설하며 콘돔 돌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라.
나름대로 여러 종류를 사용해본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방금 가리킨 것 이상으로 돌기가 촘촘하고 굵으면 그때부터는 기분좋다기 보다는 차라리 아프다나?
그래서 추천받은 걸로 하기로 했다.
물론, 사이즈는 넉넉하게 더블 엑스라지짜리로.
"그럼 이걸로 한 박스 주시겠어요?"
"그, 으, 여, 여기요···"
"아뇨, 이 한 박스 말고요."
한 박스라고 해봐야 끽해봐야 열 개밖에 안 들어있는데 그걸 누구 코에 붙인단 말인가.
농담 안 하고 상대가 가영이라면 상자를 까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써버릴 자신이 있었다.
대신 다음날 침대에서 못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 이것도 한 박스 주시고요."
사는 김에 겸사겸사 돌기가 작은 대신 더 촘촘한 걸로도 한 박스 구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나가 부탁한 아이스크림까지 적당히 골라서 구매한 뒤ㅡ
"아, 안녕히 가세요···"
여전히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있는 편의점녀를 뒤로한채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촘촘한 돌기로 무장한 물건을 이용해 보지를 푹푹 자위시켜주면 가영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오직 그 모습만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