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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화 〉1부 (96/315)



〈 96화 〉1부

미용실에 왔으니 당연히 그에 걸맞는 변명을 해줘야하지 않겠는가.


마침 또 가영의 직업이 헤어 디자이너기도 했고.

그런만큼 체류 시간을 늘리는데 그것만한 변명이 또 없다고 생각했는데ㅡ


"머, 머리를··?"


살짝이지만 가영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생각치도 못한 제안이라도 받은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설마··'


여태까지 한 번도 머리 좀 잘라달라고 한 적이 없었나?

솔직히 그게 아니면 저런 반응은 말이  되긴 했다.

'이런.'


실수한 건가?

라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일단은 밀어붙이기로 했다.

까짓거 내가 뻔뻔하게 나가면  어쩔텐가 싶었으니까.


당황하는 대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그를 위해서였다.

"네."

"··머리는 왜?"


"아, 최근 들어서  불편해서요. 자꾸만 눈을 찌르더라구요."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좀 긴 편이긴 했다.

해서 가영으로 하여금 보란듯이 살짝 떠있던 앞머리를 손으로 꾸욱하고 눌러주니 그렇게 내려온 것이 아슬아슬하게 눈에 닿았다.


"보세요? 길죠?"


"그, 그렇긴 한데··"


더듬거리던 것도 잠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가영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가영이 부하 직원 중 한 명에게 짬을 때리려 한다는 것을.

"솔직히·· 고모 솜씨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쳤다.


하필이면 가영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에 그 말을 내뱉은 탓에 그녀는 기껏 벌린 입이 무색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걸 닫아야만 했다.


"여기 연예인들도 자주 온다면서요?"

"그·· 정도까지는··"

"에이, 제가 들은 게 있는데."


싱긋 웃으며 말을 하니 가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침묵했다.


부정하자니 뭔가 좀 그랬던 모양.


"아무튼·· 부탁드려도 될까요?"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영이 내세울만한 핑계라고 해봐야 바쁘다는 것 뿐인데 그건 이미 못 쓰게 되어버린지 오래니까.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조금 전에 본인의 입으로 따로 예약같은 게 없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그래, 이것만 치운 다음에 해줄게."


그렇기에 가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영의 허락도 받았겠다 더는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기에 조금 전보다  적극적으로 그녀를 거들었다.

도시락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고, 물티슈로 테이블까지 깔끔하게 닦아내고 나니 그제서야 미용실 의자에 앉을  있는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혹시 따로 원하는 스타일같은 거 있니?"

"음, 글쎄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게 있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머리 좀 잘라달라고 했던 것 자체가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럴 때는ㅡ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줘야지.'

마침 또 내 바로 뒤에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상대이자 전문가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눈을 살짝 감은 채 '으음··'하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슬쩍 눈을 떠서 가영을 바라보았다.

물론, 직접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마침 앞에 거울도 있겠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도구를 활용해 줘야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거울을 이용해 가영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던져줬더니 순간 눈이 마주친 그녀가 작게나마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내 모발 상태를 살펴보는 척하며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하더라.


따지고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행동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영 맥을 추지 못하는 가영의 모습이 귀여워서 더 놀려주고 싶었다.


"읏··"

그런 소리와 함께 가영의 손과 닿아있던 목을 살짝 움츠렸던 건 다 그래서였다.

어디까지나 내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그곳을 어루만지고 있던 것뿐인데 설마하니 내게서 그런 반응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일까.


목덜미와 맞닿아있던 가영의 손가락이 움찔하는 떨림을 전해왔다.

그와 함께 가영의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황이라는 감정이었다.


"죄, 죄송해요. 뭔가 좀·· 느낌이 이상해서··"

그렇게 굳어버린 가영을 향해 민망한 척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얼굴 위에 그대로 남겨둔 채 아까 나누던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힘쓰는 척을 했다.

"아, 아무튼·· 고모는요?"

"··으, 응?"


"어떤 스타일이 저한테 잘 어울릴까요?"

여기서 네가 답한대로 하겠다.

대충 그런 뉘앙스로 말을 내뱉었더니 가영의 얼굴 위에 자리하고 있던 당혹감이 살짝이지만 짙어졌다.

"나, 나한테 물어봐도··"


"에이, 당연히 고모한테 물어봐야죠. 전문가시잖아요."


하물며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스타일에 예민한 편인 연예인들조차도 가영의 솜씨에 의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가영의 센스라면 이 외모에 꼭 맞는 스타일을 골라줄 수 있을 터.


"으으음··"


내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 가영이 눈을 살짝 감더니 그대로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흥미로운 건 그 와중에도 손만큼은 계속해서 내 머리카락을 사르륵 훑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 때문에   먹은 게 바로 조금 전의 일이니 당연히 멈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습관같은 거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머릿결이 좋아서?


둘 중에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느다란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르륵 헤집는 느낌이 살짝이지만 야릇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까처럼 묘한 소리를 내서 가영을 놀리는 대신 느긋하게 그 감촉을 즐겼다.


그러다보니 드디어 내게 잘 어울릴만한 스타일을 떠올리는데 성공했던 것일까.


가영이 꼭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제 입만 떼면 되는 상황.

허나 가영이 뗀 것은 입이 아닌 손이었다.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이 습관적으로 내 뒷머리를 만지작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하고 떤 가영이 내 목덜미 부근에서 놀고 있던 손들을 황급히 떼어냈다.

"아··"

그에 아쉬움이라도 느낀 척 그런 소리를 입밖으로 내주니 가영의 몸이 다시 한 번 흠칫거렸다.


그러더니 바로 조금 전까지 내 뒷덜미 쪽에서 놀고 있던 손으로 걸치고 있던 앞치마를 꼬옥하고 움켜쥐더라.


"··유한이 너는 숱이 많고 머리카락이 아래로 처지는 편이니까 펌을 해보는 건 어떻니?"

"파마요?"

"응, 과하게 말고 살짝만."

그리고 커트까지 하면 분명 괜찮을 거라는 가영의 말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고모 말대로 할게요."

"그, 그래."


자신의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도 되는 것마냥 신봉하는  태도가 뭔가 좀 민망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다시  번 앞치마를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가영이 파마를 하려면 일단 머리부터 감아야 한다며 날 원장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샴푸하는 곳으로 이끌었다.

"··여기 베고 편하게 누워보렴."


"네."

삼푸용 의자 위에 드러눕다시피 한채로 올려다보는 가영의 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야하게 느껴졌다.


밑에서부터 올려다보고 있으니 안 그래도 커다란 편인 가슴이 확 도드라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위로 가영의 얼굴이 살짝 보이는데 왠지 모르게 수유대딸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수건 덮어줄게."

샴푸하는 동안 내 얼굴을 직시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말한 가영이 곱게 접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덮었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그로인한 불만과 아쉬움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머리쪽에서부터 시원하고 묘하게 짜릿짜릿한 감각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혹시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면 말하렴."


그 말과 함께 시작된 가영의 샴푸 솜씨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일단 온도조절부터가 기가 막혔다.

혹시   온도를 1도 단위로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라도 달려있는 것인지 딱 기분 좋게 따뜻한 것이 뒤로 젖혀진 머리카락 위로 흩뿌려지며 거기서부터 살짝 노곤노곤한 느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오늘 좀 빡세게 움직이긴 했지··'


아침밥에 이어 도시락도 두 개나 쌌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노곤노곤한 느낌에 굳이 저항하려 하지 않고 편하게 몸을 늘어뜨리고 있으니 머리카락 위로 흩뿌려지는 물과 비슷한 온도를 띈 가영의 손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친··'

농담이 아니라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두피를 꾹꾹 누르는 손길은 시원하지, 거기에 가영의 손이 뒷덜미 쭉을 쭉 훑으면서 올라갈 때마다 오싹오싹한 쾌감이 몸을 타고 내달렸다.

"으··"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연기 따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앓는 소리를  수밖에 없었다.

고작 머리 좀 감겨줄 뿐인데 이 정도로 기분 좋을 줄은 몰랐으니까.


'··이러다가  것 같은데?'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물건을 빨딱 세우게 되면 가영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아랫쪽도 불편하신가 보네요. 아랫쪽도 편하게 해드리겠습니다ㅡ

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슥슥 만져주면  좋을텐데··


'그럴 리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예의 그 시원하면서도 오싹오싹한 감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문득 질투가 났다.


보아하니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 대부분이 여성인  같긴 한데 그래도 남성 손님이 아예 없지는 않을  아닌가.

그러면 여길 찾아오는 새끼들 전부에게 이런 걸 해준단 말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좀 많이 민감한 편인 건가?

솔직히 후자의 가능성을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가영은 정말 순수하게 머리만 감겨주고 있을 뿐인데 그런  받으면서 빨딱 세우는 놈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샴푸 받으면서 발기하면 변태새끼지 그게.'


그리고 아무래도 난 변태가 맞는 것 같았다.

세우는 게 좋을  아니면 그냥 꾹 참는  좋을 지 알 수가 없어서 여태까지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였으니까.

아까 전부터 힘이 바짝 들어가있던 허벅지를 들어올려 다른  위에다가 겹친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텐트  채 세울 것 같았으니까.

그런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가영은 손에 샴푸를 듬뿍 묻힌 채 그것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고 시원하게 문질러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은데 거기에 미끌거림까지 추가되니 뭔가·· 뭔가··

'시발··'

섰다.

그래, 결국 그렇게 되더라.

솔직히 말하면 좀 당혹스러웠다.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로 설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서일까.

볼쪽이 화끈거렸다.


괜히 목소리도 살짝 떨렸고.

"고, 고모·· 자, 잠시만요··"


"응? 혹시 물이 뜨겁니?"

"아, 아뇨·· 그런 게 아니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가영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인 듯 했다. 발견했다면 목소리가 저토록 평온할 리 없으니까.

'시발 어쩌지.'

라고 고민하다가 쇼파 팔걸이를 꽉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어 가영이 얼굴 위에다가 덮어준 수건을 움켜쥐었다.


"응? 답답하기라도 했니?"


"네, 네에·· 살짝 좀··"


숨쉬기가 불편해서 수건을 치운 거라 생각한 것일까.

순간 눈이 마주친 가영을 향해 애매하게 웃으며 움켜쥔 수건을 그대로 고간 사이에다가 드랍했다.


그리고는 그쪽을 향해 흘깃 시선을 던져보니 졸지에 얼굴 대신 사타구니를 담당하게  수건의 중간 부분이 뽈록하고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숨겨본다고 다리까지 살짝 꼬았는데도 그렇더라.


'··진짜 섰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루가 아닌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아니면 조루였을  분명한 과거의 유한을 동정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애매하게 쓴웃음만 짓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뒤통수 쪽을 꾸욱하고 눌러주고 있던 가영의 손가락이 미리 짜기라도  것처럼 일제히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꼭 마치 '나 놀랐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반응에 사타구니 쪽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홱 치켜들어 가영을 향해 던졌다.


그 순간 눈으로 들어온 것은ㅡ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귀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는 가영의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로 빨갰냐면 내게 야짤을 들켰을 때보다도 더 빨갰다.

그래서 저러다가 펑하고 터져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마저  정도였다.


'하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내가 가영의 손길로 인해 빨딱 서버린 상황아닌가.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가영으로서는 당연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

꼭 당혹감만 느끼고 있는 건 아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순수하게 '당혹감'만 느꼈다면 저런 식으로 호흡이 거칠어질 이유가 없으니까.

본인은 그 사실을 나름대로 숨겨본다고 숨겨본  같은데 거리가 거리인지라 내게는 살짝이지만 거칠어진 가영의 숨소리가 누락없이 전부 다 들렸다.


'흐음··?'

이것봐라?


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날 '아들'이 아닌 '남자'라고 인식하게 된 걸까.


아까 야짤을 보고 눈이 확 돌아간 척 했던 것 때문에?


아니면 며칠동안 쌓이고 쌓인 성욕이 드디어 한계에 도달하기라도 했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없었지만ㅡ

"이, 이제 괜찮으니까·· 마저 해주세요."

언제까지고 물만 맞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부분이 신경쓰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분을 손으로 덮으며 가영을 향해 말했다.


그런 식으로 중간에 생각치도 못한 헤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장소가 장소다보니 뭔가  하기도 애매했으니까.


"다, 다시 여기와서 앉으렴··"


샴푸도, 빨딱 섰던 내 물건도 이미 해결된지 오래인데 가영은 그때 느낀 당혹감을 아직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것일까.


아까 내가 잠시 신세를 졌던 의자 쪽으로 호다닥 달아난 가영이 살짝이지만 물기가 남은 손으로 그것을 팡팡 두들겼다.


해서 곧장 그곳으로 가서 앉으니 옆에 걸린 드라이기를 뽑아든 가영이 그것을 이용해 촉촉하게 젖은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어쩐 일이니··?"

가영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흘러나온 것은 다름아닌 그 와중이었다.

내가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자신이라도 나서서 묘하게 어색하게 변해버린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한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렇게 던져진 가영의 물음에 의아한 목소리를 내어 반문했다.

"··네?"

"아니, 그·· 유한이 너 옛날에 고모가 머리 잘라준다고 하니까 싫다고 하면서 도망쳤었잖니.  뒤로는 계속 다른 미용실에 가서 잘랐고."


그런데 어떤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냐.


꼭 그런 뉘앙스로 던져진 질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시발 그랬어?'


나야 당연히 몰랐지.

이걸 어쩐다.


일단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런 일도 있었냐는 느낌으로 맞받아쳤다.

"··제가 그랬었어요?"


"기억 안 나나보네. 하긴 네가 요만할 때 일이니까."

기억 못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가영의 입가에는  당시를 회상하기라도 하듯 옅고 아련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뒤로 젖혀 가영에게 그것을 기댔다.


그렇게 그녀를 올려다보며 왠지 알 것 같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

"기억났니?"

"아뇨·· 그게 아니라·· 왜 그랬는지  것 같아서요."


"··그러니?"

배하고 맞닿아있는 게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이 정도면 가족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 걸까.

가영에게 머리를 기댄 순간 그녀가 살짝 몸을 움찔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타고 올라오는 떨림을 만끽하듯 눈을 꼭 감은 채 말을 이었다.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 아닐까요?"


그 말의 어디가 그리도 웃겼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에 가영이 작게 웃었다.

"하긴·· 한창 예민할 때긴 했지."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는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인  날 내려다보고 있던 가영과 똑바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다가 가영이 또 시선을 피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는 가영에게 들릴  있도록 꿀꺽하고  삼키는 소리를 냈다.


"고모가 너무 예쁘니까··"


"···"

"··그래서 부끄러웠나 봐요."


당연한 말이지만 가영은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는 확신이라는 걸 품은 채 내뱉어진 내 발언에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머리를 말리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을 뿐.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바로 조금 전에 내가 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꼴깍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ㅡ

"예, 예쁘··게 잘라달라고 아, 아부하는 거지 지금? 고, 고모가 모를 줄 알아··?."


가영이 간신히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가영은 단 한 마디조차 하지 않고 묵묵히 내 머리를 손질하는데 집중했다.

심지어는 그런 가영의 태도를 보다 못한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그녀는 전처럼 대화에 어울려주질 않았다.


마치 이제 더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된다고 누군가에게 단단히 주의라도 받은 것처럼.


그렇게 가영의 미용실 방문기는 내게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와 적지 않은 소득, 그리고 한결 산뜻하게 변한 머리스타일을 남긴 채 끝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ㅡ


[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운명의 그 날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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