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1부 (84/315)



〈 84화 〉1부

쿵쿵쿵쿵ㅡ


꼭 마치 한창 미친듯이 운동에 매진하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시합에 나가기 직전의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만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래서 그런  몰라도 심장 뛰는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들렸다.


혹시 누가 사극 드라마라도 틀어놨나 싶어 티비가 있는 곳을 향해 흘깃하고 시선을 던져봤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까맣게 물들어있는 화면 뿐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다.

지금 귓가로, 아니 몸 전체로 울려퍼지는 듯한  심장 소리가 자신에게만 크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소리가 옆에 앉아있는 유한이한테까지 들리면 어떡하지.

그래서 왜 저러지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기라도 하면 어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이라는 것이 목구멍을 턱하고 막히게했다.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혹시라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밥그릇 안에 든 것을 젓가락으로 살짝 떠서 입 안에 넣고는 잘근잘근 씹어보기까지 했건만 평소와는 다르게 모래 씹는 듯한 느낌만 났다.


그리 넓지 않은 주머니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의 감촉이 자꾸만 허벅지를 툭툭 건드려댔다.

평소였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그 사소하기 그지없는 그 감촉이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미칠 것만 같았다.

밥그릇 안에 밥이 아직 절반도 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켰던 건 그래서였다.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유한의 옆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정확히는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계속 느끼면 안 될  같았다.


그만큼 이상한 감정이었으니까.


난생처음 느껴보는 그 감정이 하도 기묘해서 계속 그것에 노출되면 자신도 덩달아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켰던 것인데ㅡ

"지나 누나?"

그렇게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살짝 질투마저 느낄 정도로 철저하게 세나 쪽에 집중되어 있던 유한의 시선이 갑자기  날아왔다.

그게 워낙 갑작스러워서 그러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만 몸을 움찔하고 떨고 말았다.

"혹시.. 오늘 메뉴는 별로였어?"

"아, 아냐..! 그런 거.."


순식간에 시무룩하게 변해버린 유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유한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열심히 만든 것들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가 있고, 잘못된 게 있다면 자신이겠지.

"그, 그냥 운동을 너무 격하게 했더니.. 입맛이 좀 없네.."


"그래도   먹지.."


걱정 가득한 유한의 시선을 받고 있으려니 가슴 한쪽이 콕콕 쑤시는 느낌이었다.


죄책감.

그것이 가슴 안쪽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주머니 안에 든 것이 그 전보다 더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꿀꺽ㅡ


무엇으로 인한 초조함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레 침을 삼켰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유한은 걱정은 해도 식탁 앞을 떠나려는 걸 붙잡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무사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더는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필요가 없는 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 닫힌지 얼마 되지 않은 문에 기대어져 있던 지나의 몸이 그것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꼭 마치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듯한 모양새였다.


어느새 손으로 자신의 왼가슴을 꽈악하고 움켜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기껏  안으로 대피했건만 이 순간만을 기다렸노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방에 있을 때보다 더 격하고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느끼며 지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여전히 주머니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한의 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그 답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간단하게 나왔다.


해결법이라고 해봐야  하나 뿐이었으니까.


'그래..'

돌려놓으면 되는 거다.


이것이 원래 있어야할 자리에다가 돌려놓기만 하면 될뿐인 일이다.

하필이면 유한이 그 타이밍에 다용도실로 들어와버린 바람에 얼떨결에 주머니 안에다가 집어넣긴 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그랬던 것뿐이지 절대 자신의 본심이 아니었다.


'그 전에 조금.. 유심히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그거야 젖어있으니까.

보란듯이 젖어있는데 어떻게 눈길을 안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어찌보면 유한이 잘못한 것이기도 했다.

빨랫감을 대충 던지는 대신 제대로 바구니 안에다가 넣었다면 하필이면 팬티가 바닥에 떨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에 시선을 주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테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이 한 행동 중 일부를 유한의 탓으로 돌리면서 지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달그락달그락하고 그릇과 식기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얼추 식사가 마무리 되었는지 늘어놓은 접시들을 차곡차곡 포갤 때나 날법한 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왔다.


이내 그 뒤로 따라붙은 것은 촤아아악하고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풍덩하고 뭔가가  속에 빠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들마저도 완전히 멎었을 때 지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대로 문쪽으로 돌아서서 문고리 위에 왼손을 올렸다.

그런 지나의 오른손은 이미 유한의 팬티가 들어있는 주머니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주머니 안에 든 것을 바로 바구니 안에 던져넣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방을 빠져나갔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기로 한 것일까.


싱크대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설거지거리 외에 딱히 눈에 띄는  없었다.


'지금.'

그래 지금이야말로 기회였다.


자꾸만 신경쓰이는 것도, 거기서부터 비롯된 이상하고 기묘한 감정도 모두 던져버릴 수 있는 기회.


확신이 든 순간 지나는 주머니 안에 반쯤 밀어넣은 채 차마 거기서 더 전진하지 못하고 있던 손을 과감하게 밀어넣어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을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다용도실의 문이 열리는 즉시 그것을 바구니 안에 던질 준비를 끝마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대로 문제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는 굳게 닫혀있던 문을 밀어젖히며 주머니 안에 든 것을 꺼내 그대로 빨래바구니를 향해 던졌다.

아니, 던지려고 했다.

문을 벌컥 연 순간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필시 그랬겠지.


닫혀있던 문이 갑자기 확 열리니 그것 때문에 놀라기라도 것인지 쪼그려 앉은  몸을 움찔하고 크게 떠는 가영을 보며 지나는 주머니 안에서 반쯤 빠져나와 있던 것을 황급히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정신이 없었던 지나는 보지 못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뭔가를  안에 숨기기라도 하듯 한쪽 손을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가영이 그것을 황급히 자신의 등 뒤로 감추는 광경을 말이다.

"지, 지나 네가 여긴 왜.."


"아, 빠, 빨래 좀 돌리려고.."


"그, 그러니?"


의외라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뜨고 있던 것도 잠시, 이내 살포시 웃으며 빨래는 자기가 돌릴테니 나중에 건조대에다가 널어놔줄 수 있겠냐고 묻는 가영을 보며 지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가영의  한 마디로 깨달아버리고 말았으니까.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기회가 아니었다는 걸.

"그.. 갈  문 좀 닫아줄래?"


"아, 응.."

보자마자 바로 반응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누가봐도 유한의 것임이 분명한 팬티를 손에 꼬옥하고 쥐고 있는 광경을 엄마인 가영에게 들킬 뻔했던 상황.

그렇기에 지나는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쿵쿵하고 뛰는 심장을 느끼며 허둥지둥 다용도실 앞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막 그쪽으로 돌아선 그녀를 맞이한 것은ㅡ

"응? 지나 누나?"

이제 막 1층으로 내려서고 있던 유한이었다.

살짝 눈을 크게 뜬채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꼭 거기서 뭐하고 있던 거냐고 추궁이라도 하는 듯 했다.

그렇기에  그래도 빨리 뛰던 심장이 전력질주라도 하고 난 것마냥 미친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안 돼..'

조금씩 얼굴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하는 혈류를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것도 잠시, 그럴 때가 아님을 깨닫고는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유한의 앞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분명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유한에게 보이게  테니까.

그리되면 유한이 보일 행동이야 뻔했다. 아까 식탁 앞을 떠날 때처럼 이쪽을 걱정하겠지.

그러면 자신은 또 예의  이상하고 기묘한 감정에 휩싸여버릴 것이고.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것만큼은ㅡ


"어, 아, 빠, 빨래 좀 돌리려고 했는데 어, 엄마가 먼저 하고 계시더라."


유한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입밖으로 내밀었던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그래? 고모가?"

"으, 응.."

"흐으음.. 그렇구나."


유한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안쪽이 참기 힘들 정도로 따끔거려서 차마 그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던 지나는 또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입에서 가영에 대한 언급이 흘러나온 순간 유한의 입꼬리가 작게나마 비틀리는 모습을 말이다.


유한이 '이것 봐라?'하고 흥미로운 무언가라도 발견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허둥지둥 본인의 방으로 돌아온 지나는 아까도 그랬던 것처럼 문이 닫히기 무섭게 그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기회라고 생각하고 섣부르게 움직인 대가는  컸다.

얼굴이 금방이라도 펑하고 터져버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는 건 물론이거니와 숨이 절로 거칠어질 정도로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으니까.


뭔가를 훔쳐본 적은 없지만 처음으로 도둑질을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심장이 빠르고 격렬하게 뛰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죄책감은 덤이었다.


'지금 당장은..'

처리하기 힘들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촤아아악하고 물 쏟아지는 소리가 문밖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걸 보면 아무래도 유한이 잠시 미뤄놓았던 설거지에 착수한듯 했으니까.

그렇다는  적어도 2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고.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지나를 찾은 것은 또다른 형태의 깨달음이었다.

한 발 늦게 스스로가 여전히 유한의 팬티를 손에 꽈악하고 움켜쥐고 있는 상태라는 걸 깨달은 지나는 어깨를 흠칫하고 떨면서 주머니 안으로 쑤셔넣고 있던 손을 황급히 빼냈다.

덕분에 덩달아 딸려나와버린 것이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지나의 옆으로 툭 떨어졌다.

그에 다시  번 어깨를 흠칫하고 떨며 허둥지둥 바닥에 떨어진 유한의 팬티와 거리를 벌리던 지나의 눈으로 들어온 건ㅡ

투명하면서도 살짝 끈적한 뭔가에 젖어 번들거리는 본인의 손가락이었다.


오줌도, 그렇다고 침도 아닌 무언가.


그런 것이 손가락을 휘감고 있는 모습에 지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와 함께 지나를 찾은 것은 손가락이 유한에게서 흘러나온 것으로 젖어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었다.


냄새가 났다.


팬티에서 풍겨나오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야릇함을 넘어 음탕하기까지한 냄새가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올라 그대로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손하고 얼굴의 거리가 그리 가까운 편임이 아님에도 그랬다.

마치 그것의 냄새만 남고 다른 냄새들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저절로 거칠어질 정도로 야릇한 냄새.

그것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안쪽에서부터 뭉근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미약한 끈적거림이 손가락을 휘감아왔다.

살짝 떨어져있던 검지와 중지를 조심스레 붙였다가 떨어뜨려 본 것은 어디까지나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쯔업ㅡ

분명 손가락을 통해 전해져오는 촉감은 그리 끈적이는 편이 아니었는데 소리는 또 달랐다.

얼굴이 절로 달아오르게 할 정도로 끈적끈적하고 노골적인 소리가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한 손가락 사이에서 터져나옴과 동시에 가느다란 실들이 쭈욱하고 늘어졌다.


그 소리가, 길게 늘어지던 실들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 너무나도 야릇하게 느껴져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시선이 자꾸만 그쪽을 향했다.


'안 되는데..'

꼭 마치 뭔가에 홀린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안쪽에서부터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열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꿀꺽ㅡ

그래서일까 어느새 군침이라도 삼키는 것마냥 유한의 것이 묻어있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침을 삼키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있었다.

그 사실에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한 순간, 손이 덩달아 흔들렸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까 전부터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던 것의 농도가 한층 더 짙어졌다.

..조금 더 가까이서 맡아보고 싶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안 돼..'

 되는데..


이런 거.. 분명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자꾸만 얼굴을 향해서 다가오는 손의 모습에 지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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