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1부
유한이 기대감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뛰는 걸 느끼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다용도실 안으로 들어선 지나의 얼굴은 귀찮음이라는 감정으로 물든 채 슬며시 찌푸려져 있었다.
'귀찮게시리..'
평소였다면 틀림없이 바구니 안으로 쏘옥하고 골인시켰을 거다. 솔직히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까.
허나 그러지 못했던 것은 하필이면 그것들을 던지려던 순간에 일전에 다용도실 앞에서 있었던 일들이 불현듯 머릿속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냥 되살아난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방금 있었던 일인 것처럼 그때 느꼈던 온갖 감각들이 기억과 함께 선명하게 되살아나는데 덕분에 그만 힘조절에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그게 본래라면 빨래 바구니 속으로 쏘옥하고 들어갔어야 했을 것들이 저 멀리까지 날아간 진짜 이유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기억과 함께 그 때 자신의 밑에 깔려 아둥바둥하던 유한의 몸이 주던 감촉이, 평소보다 훨씬 가까운 유한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온 것이 피부 위에서 흩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그만 몸에 힘을 바짝 줘버리고 말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당혹스러웠다.
몇 시간도 아니고 일어난지 하루도 더 된 것들이 이리도 선명할 수 있나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당혹감은 지금도 여전했다.
'혹시 유한이가 뭔가 눈치챈 건..'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입밖으로 낸 것도 아니고 속으로만 생각한 걸 유한이 알 리 없으니까.
아마 유한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순간적으로나마 그런 걸 생각했다는 걸 말이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이 사실을 들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소재로 삼아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걸 유한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주 잠깐 상상해봤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뭐라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절망감과 불안함이 어디선가부터 울컥울컥 솟구쳤다.
그렇기에 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것들을 얼른 머릿속에서 치워버리지는 못할 망정 들키면 어쩌지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요즘 진짜 왜 이러지..'
배란기 전후로 성욕이 들끓는 거야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이상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저번 달에는 어땠는지만 떠올려봐도 그랬다.
저번달에는 유한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혹시 운동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서 미처 다 해소되지 못해서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고마는 것일까.
그걸 핑계로 삼자니 저번 달하고 비교하면 확연하게 늘어난 운동량이 그러질 못하게 했다.
"후우.."
뭔가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니 가족인 유한을 상대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유한이 조금만 덜 엉겨붙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텐데.
그 전에도 자신을 잘 따르는 편이긴 했지만, 최근 들어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건지 전보다 한결 친근해진 태도가 자꾸만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개운해야할 마음이 묘하게 무거운 걸 느끼고 있으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귓가로, 아니 머릿속으로 울려퍼진 것은ㅡ
-누나랑 나랑 커플이다?
자신에게 선물해준 것과 똑같은 것을 손목에다가 찬 채 그저 기쁘다는 듯이 웃고 있었던 유한의 목소리였다.
그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울려퍼진 순간 가슴 안쪽이 살짝 간질거리더니 이내 그곳이 꽈악하고 죄어드는 듯한 느낌이 몸을 타고 엄습해왔다.
그렇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 콕콕 쑤시는 가슴을 푸욱하고 내쉰 한숨과 함께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지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들기 위해 슬그머니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그렇게 집어든 것을 빨래 바구니 안에다가 대충 던져놓고 그대로 그 앞을 떠나려던 순간 그 옆에 떨어진 채 홀로 방치되어있던 것 하나가 지나의 눈에 띄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나름대로 철저하게 설계된 것 위에서 피어난 우연이라는 꽃이 지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렇게 누가봐도 유한이 입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는 팬티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지나가 느낀 건 흥분따위가 아닌 편안함이었다.
참으로 기이하게도 지나는 그걸 본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진짜..'
어른스러운 척 해도 아직은 애라니까.
바구니 안에 옷을 제대로 집어넣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이렇게 칠칠맞게 흘리고 다닌단 말인가.
뭐,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지는 솔직히 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자신처럼 바구니 안에다가 빨랫감을 던져넣으려다가 조준에 실패해서 떨어뜨린 거겠지.
왠지 모르게 머쓱하게 웃는 유한의 모습이 상상이 되서 피식거리고 있던 것도 잠시, 지나가 슬그머니 바닥에 떨어진 유한의 팬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왕 발견한 것 이대로 방치해두는 것도 좀 그랬으니까.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바닥에 떨어져있는 그걸 바구니 안에 집어넣기 위해 그리했던 것이었는데ㅡ
'...!'
그렇게 몸을 천천히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순간 깨달았다.
그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색이 서로 달랐다.
앞섬 부분은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짙은 색을 띄고 있는 반면에 다른 곳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꼭 마치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딱 그 부분만 젖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젖어..?'
라는 의문이 머릿속으로 떠오르기 무섭게 지나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하지 않으면 또 이상한 상상을 하게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 그래..'
저건 자신이 상상하는 것이 절대 아닐 거다.
그냥 잠결에 볼일을 보다가 살짝 실수한 거겠지.
그래, 그런 게 틀림없었다.
틀림없어야 하는데..
'왜..'
진짜 그런 거라면 으레 풍겨야할 불쾌한 냄새가 전혀 나질 않는 걸까.
그렇다고 아예 무취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냄새가 나긴 났다.
그것도 상당히 묘한 냄새가.
그 묘한 냄새가 유한과 같이 운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맡게 되는, 딸기향인지 체리향인지 알 수 없는 달달한 샴푸향과 교묘하게 뒤섞인채 자연스레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그 달콤하면서도.. 야한 냄새로 코가 가득 찬 순간 지나는 얼굴로 피가 확 쏠리며 심장이 쿵쿵쿵쿵하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동시에 아침 운동으로 기껏 사그라들게 만들었던 것이 다시 배 안에서부터 화악하고 피어오르는 느낌에 지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다가 만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유한이 교묘하게 깔아둔 덫에 걸려 패닉에 빠져버린 지나를 일깨운 것은ㅡ
똑똑-
"지나 누나?"
다름아닌 그것을 설치한 장본인이었다.
"그 안에서 뭐해?"
뭐라도 발라놓은 것마냥 불투명한 유리문 위로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실루엣이 안 그래도 빠르게 뛰고 있던 심장에 대고 채찍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그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
그 광경이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온 순간, 지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금 이 모습을 유한에게 들키게 된다면 남동생의 팬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누나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테니까.
'어, 얼른..'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일으켜야하는데..'
그새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평소에는 원하는대로 잘만 움직여주던 것이 갑자기 말을 듣질 않았다.
"누나?"
심지어는 허리뿐만이 아니라 입도 그랬다.
자신이 대답을 하질 않으니 의아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문 위로 드리워져 있던 실루엣이 일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으로 추정되는 것이 문고리를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고리가 보란듯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순간 지나가 대처랍시고 한 행동은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먹잇감을 낚아채는 솔개마냥 홱 휘둘러진 것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유한의 팬티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것을 주머니라는 좁디 좁은 틈에다가 억지로 쑤셔박아버렸다.
그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스스로가 유한의 팬티를 집어들어 바지 주머니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걸 깨달은 지나가 몸을 퍼뜩하고 떨며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을 꺼내 황급히 빨래 바구니 안에다가 던져넣으려 했지만ㅡ
"지나 누나? 거기서 뭐해?"
스스로 주머니 안에다가 밀어넣었던 것을 다시 밖으로 끄집어내기 무섭게 도로 밀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유한이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보나마나 유한의 팬티를 손에 꽈악하고 움켜쥐고 있는 광경을 유한에게 보이게 되었겠지.
그런 걸 상상해버린 탓일까.
아니면 얼굴로 날아와서 꽂히는 의구심 가득한 유한의 시선 때문일까.
심장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유한의 팬티에서 나는 야하고 음탕한 냄새를 맡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뛰었다.
"아, 빠, 빨래 좀 돌리려고.."
그리고 그 당혹감은 입밖으로 흘러나간 목소리에도 그대로 전염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의심받을만한 짓을 하고 있었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그토록 덜덜 떨리는 목소리라니.
내뱉고 나서 뒤늦게 아차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유한이 그런 자신의 목소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대충 넘어가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했건만 지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애초에 유한은 다용도실로 들어서기 전부터 지나가 덫에 걸려버렸다는 걸 눈치챈 상태였으니까.
"아.. 빨래?"
빨래라.
"어, 어.."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한채 짓고 있는 표정만큼이나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나를 보며 속으로 고민했다.
'저걸 어쩐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일단 지나를 다용도실 밖으로 끄집어내기로 했다.
이제 곧 가영도 나올텐데 언제까지고 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빨래는 내가 나중에 돌리면 되니까 일단 나와서 아침부터 드셔요."
"으, 응?"
"아니면 혹시 뭐 급한 거야?"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 그런 건 아닌데.."
"그러면 나중에 해도 되겠네. 얼른 나와. 밥 다 식겠다."
피식 웃고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재촉하니 지나가 예의 그 어색하기 그지없는 고갯짓을 다시 한 번 선보였다.
그러더니 무슨 고래라도 잡은 것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는 걸음걸이를 선보이며 다용도실 밖으로 나왔다.
그쯤되니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쳐놓은 덫에 걸려버렸다는 것 정도야 진작에 눈치챘지만 대체 덫을 어떻게 밟았길래 저런 반응인가 싶었으니까.
혹시 뭐 내가 떨어뜨려놓은 팬티를 손에 쥐고서 거기서 나는 냄새를 킁카킁카하며 냄새를 맡기라도 했나?
사실상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저토록 과민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는데..
아무튼 그렇게 다용도실을 빠져나온 지나를 그녀의 자리에다가 앉혀놓으니 오늘도 어김없이 가영이 맨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묘하게 초췌해보이는 얼굴.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시선을 두고 있으니 뭔가 고민하기라도 하듯 얼굴 위로 작게나마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가영이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몸을 흠칫하고 떨어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싱긋 웃으며 가영을 향해 아침 인사를 건넸다.
"나오셨어요? 고모? 얼른 식사하세요."
"으, 응.. 그래.."
팔과 겨드랑이에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던 순간의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에 선명하기라도 한 건지 가영은 차마 나와 눈을 맞추질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말리지는 못했어도 확실하게 샤워한 티가 났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그녀에게서 그런 기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혹시..'
샤워할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서 그 시간마저도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쓰기라도 했던 걸까.
그러다가 이제 슬슬 나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샤워기로 대충 다리 사이만 닦은 다음에 그대로 나온 것이고?
스스로를 달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는 걸 깨달은 가영이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자신의 다리 사이를 흠뻑 적시고 있는 것들을 닦아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물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 와중에 궁금한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썼나?'
가영이 내가 어제 보내준 것을 반찬으로 사용했는지의 여부였다.
그게 참기 힘들 정도로 궁금해서ㅡ
"아, 저 잠시 화장실좀 다녀올게요."
적당히 밥을 깨작깨작하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