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1부
지나와 함께하는 운동시간은 정말 뒤지게 힘들다.
그래봐야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 뭐 벌써부터 앓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트레이너 모드일 때 지나가 얼마나 잔혹하게 변하는지를.
농담하는게 아니고 진짜 이러다가 뒤지겠구나 싶을 정도로 숨이 목구멍에 턱턱 부딪혀대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옆에서 활기찬 목소리로 '한 번 더 할 수 있지? 한 번만 더 하자?'라는 멘트를 자꾸만 외쳐대는 모습이 그렇게 악랄할 수가 없더라.
'생각해보면 그 멘트도 좀 그래.'
물론, 지나는 특별한 의도 없이 평소 회원들을 지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멘트를 습관처럼 내뱉은 걸거다.
그런데 그 멘트가 나한테는 자꾸 '유한이 너 이것밖에 안 되는 애였어? 크기만 크고 내용물은 부실하네.. 실망이야.'라는 말로 치환되어서 들렸다.
그렇다보니 내일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악을 쓰게 되었고,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보니까 밑천까지 홀라당 털리는 건 금방이었다.
'아니 길어봐야 두 시간 정도 운동하는 건데..'
그게 뭐라고 유격훈련 받을 때보다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어쩌면 지나는 서큐버스같은 몽마였던 게 아닐까. 그래서 운동을 가르쳐주는 척하며 회원들의 체력을 몰래 쏙쏙 빼먹고 있는 게 아닐까.
오죽하면 중간중간에 그런 쓸데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 데리러 올 때마다 순순히 그녀의 뒤를 따르는 건 힘든만큼 보상또한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너 모드로 진입한 지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스킨십에 있어 굉장히 관대해지니까.
평소라면 부끄러워 하거나 당황할만한 접촉도 트레이너 모드일 때는 거 운동하다가 좀 닿을 수도 있지하는 느낌으로 넘겨버리곤 하더라.
그래서 그동안은 그 점을 이용해 은근한 스킨십을 즐겨왔었는데ㅡ
'오늘도 될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술집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그때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을 해대니 없던 일로 치부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한 듯 했지만 그게 어디 말만큼 쉽겠는가.
티는 안 내도 분명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을 터.
그렇기에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기대를 하지 않는 것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분명 달랐기에 나는 적당히 지나의 눈치를 보다가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누나, 나 등좀 눌러주면 안 돼?"
지나가 지시한대로 매트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다리를 최대한 벌린 채 상체를 앞으로 쭉 숙이는 척 하다가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매트를 팡팡 두들겼다.
"뭐야, 설마 그게 다 굽힌 거야?"
"응.. 어째 전보다 더 안 내려가는 것 같은데..?"
"그게 다 운동하다가 쉬어서 그래, 쉬어서."
그리 말하고는 으휴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 지나가 성큼 걸음을 옮겨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다른 손으로는 그 잠깐 사이에 동그랗게 굽은 내 등의 중간 쯔음을 짚고는 그대로 내 등에 대고 자신의 몸을 꾸욱하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지금 지나가 입고 있는 복장은 앙증맞은 배꼽과 탄탄한 11자형 복근을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보여주는 크롭탑과 새하얀 요가복 바지였다.
둘다 어디가서 얇기로는 빠지지 않는 것들이었고 덕분에 그 얇은 것에 감싸인 지나의 가슴이 내 등을 꾸욱꾸욱하고 압박하는 느낌이 피부로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 시발..'
운동복으로 갈아입지 말걸.
원래 입고 있었던 티가 얇기로는 훨씬 더 얇았는데.
뒤늦은 후회가 머릿속으로 피어올랐지만,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것에 매달리는 대신 등에 와닿는 감촉을 최대한 만끽했다.
덕분에 펑퍼짐한 반바지 속에다가 숨겨놓은 물건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안전범위 내였다.
이런 걸 더 당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몸에서 최대한 힘 빼. 자꾸 힘주니까 더 뻣뻣해지는 거야."
그런 내 상황을 알 리 없는 지나는 자꾸 되도 않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몸에서 힘을 빼라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몸에서 힘을 뺀단 말인가.
내가 힘을 주고 있어서 몸이 뻣뻣해진 게 아니었다.
지나 때문에 빳빳해져버린 바람에 자연스레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이 이상은 좀 위험할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매트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들기며 항복을 외쳤다.
"그, 그만.."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아쉽다는 투로 그리 중얼거린 것과는 달리 지나는 순순히 내게서 몸을 떼어냈다.
그렇게 지나에게서 해방되자마자 벌려놓고 있던 다리를 뒤로 젖히며 매트 위에 드러누웠다.
풀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커져있는 상태라 바로 일어나기는 좀 그랬다.
해서 힘들다는 핑계로 물건이 얌전하게 변할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핑계가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지나는 따로 터치를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대신 다음 동작은 어떻게 하는 지 시범을 보여줄테니까 잘 보고 있으라고 하긴 했지만.
"내가 볼 때 유한이 너는 골반하고 하체 쪽이 특히 뻣뻣한 것 같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일단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스트레칭할 때 다른 부위보다 그쪽을 더 신경써서 풀어줄 필요가 있어."
귀찮다고 대충하다간 햄스트링이 나갈 수도 있다는 말에 이번에는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무튼 다치는 건 되도록 사양하고 싶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 지 보여줄테니까 잘 보고 따라해봐."
일단 첫 자세는 굉장히 쉬웠다.
"우선은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서 몸을 최대한 이완시켜."
굳이 힘들게 자세를 취하거나 그럴 필요 없이 그냥 매트 위에 편안하게 누워서 심호흡을 반복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몸이 이완됐다 싶으면은ㅡ"
진짜는 그 다음부터였다.
양쪽 무릎을 굽혀 발바닥을 서로 맞붙게한 지나가 그렇게 붙인 것을 자신의 골반 쪽으로 쭉 잡아당겼다.
묘하게 모 격투게임에 나오는 요가쟁이 캐릭터를 생각나게 하는 자세였다.
그 상태로 아예 손까지 한데 모아 머리 위로 들어올린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이 자세를 30초 정도 유지해줘야 돼."
그리 말하고는 눈을 꼬옥하고 감는 게 뭐랄까.. 묘하게 야릇하더라.
아무래도 입고 있는 복장이 하나같이 얇은 것들이다보니 몸의 굴곡은 물론이거니와 다리 사이에 존재하는 둔덕의 윤곽또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으니까.
그 유명한 뒷치기, 아니 고양이 자세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눈 둘 곳을 찾을 수가 없는 건 이것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자꾸만 거칠어지려고만 하는 호흡을 지나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나눠서 뱉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30초가 지났다 싶으면 손끼리 깍지를 낀 다음에 그걸 배 위에다가 올려놓고 그 상태로 다시 30초."
"배 위에?"
"응, 혹시 단전이라고 알아?"
그리 말한 지나가 깍지를 풀고는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자신의 아랫배에 대고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여기가 단전이야. 여기다가 올려놓으면 돼."
"..."
곧게 뻗은 가느다란 손가락이 탄탄하고 매끈한 복부를 따라 미끄러지며 원을 그리는 그 광경이 왠지 모르게 야하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유한아? 듣고 있어?"
"어? 어, 어, 듣고 있어."
"보여줄 때 집중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살짝이지만 엄한 표정을 지어보인 지나가 이내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은 이렇게ㅡ"
서로 딱 붙여놓고 있던 발바닥을 떨어뜨린 지나가 이번에는 무릎끼리 맞붙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상체 쪽으로 쭉 끌어당기더니 허벅지가 상체와 맞붙도록 깍지를 낀 손을 이용해 무릎을 끌어안았다.
'저건 힘들겠구만.'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감이 딱 왔다.
다른 자세라면 몰라도 저 자세만큼은 무리일 거라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해피 베이비 자세를 취하고 끝내면 되는데ㅡ 아, 해피 베이비 자세가 뭐냐면은.."
서로 딱 붙어있던 무릎이 좌우로 슬며시 벌어졌다.
동시에 깍지를 푼 지나의 손이 이번에는 각각 오른발과 왼발의 발등 부분을 조심스레 감아쥐었다.
"일단 이렇게 잡은 다음에 이걸 가슴 쪽으로 잡아당긴다는 느낌으로 쭉 잡아당기는 거야."
포인트는 무릎이 겨드랑이와 최대한 가까워지도록 하는 거란다.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지금 그딴 설명에 집착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뭐라고 했었지? 해피 베이비라고 했었나?'
어째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더라니만.
시발 저거 그냥 정상위잖아.
설마 그래서 해피 베이비인가?
해피하게 베이비를 만들기 위한 자세라서?
그 정도로 야릇한 자세였다. 지나가 자세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 정도면 해피 베이비가 아니라 베이비 메이킹이나 자지 조르기 자세라고 불러야 맞지 않나?
'아무튼.. 감사합니다. 정말로.'
이전까지만 해도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딱히 관심이랄게 없었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생길 것 같았다.
그래, 역시 인도하면 요가고, 요가하면 인도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 식으로라도 생각을 억지로 다른 곳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금 지나가 취하고 있는 포즈는 위험했다.
보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니까.
맘 같아서는 지금 지나가 입고 있는 요가 팬츠의 가랑이 부분만 찢어서 그 사이로 물건을 쑥 밀어넣은 다음 그녀의 얼굴에다가 가슴을 파묻은 채 허리만 움직여서 그대로 쿵쿵 내리찍고 싶을 정도였다.
'죽겠네 시발..'
보아하니 트레이너 역할에 집중한다고 지금 자신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얼마나 노골적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꼴렸다.
성별이 다른 동생 앞에서 할만한 자세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더더욱 자각시켜줘야겠지.
지금 본인이 얼마나 민망한 꼴을 하고 있는 지를 말이다.
"그, 누, 누나..?"
당황한 척을 하는 건 솔직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 생각치도 못했던 자세인지라 실제로도 당황스럽긴 했으니까.
"응? 왜? 뭐 놓친 부분이라도 있어?"
내가 당황한 듯한 목소리까지 내주었으니 이 정도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법도 한데 내쪽을 돌아보며 그리 말하는 지나의 얼굴은 지극히도 태연했다.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저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으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지나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건 포즈도 포즈지만 그녀의 하체를 감싸고 있는 흰색의 요가 바지 탓도 컸다.
나름대로 고난도 자세인지라 안 그래도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있던 것이 쭈욱하고 늘어나서 그 위로 그 아래의 풍경이 살짝이지만 드러나 있는데 대꼴보다 은꼴이 더 꼴린다고 그런 식으로 얼핏 보이는 구릿빛 피부가 참 사람을 미치게 만들더라.
그렇다고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았다.
당황한 척을 해놓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열심히 힐끔거렸다. 그렇게 지나를 힐끔힐끔거리면서 그녀를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호, 혹시 그거 말고 다른 자세는 없어?"
조심스레 말을 했더니 지나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뿅하고 떠올랐다.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걸까.
놀랍게도 그런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 짓고 있는 표정만 보면 그랬다.
"왜?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래? 이거 보기보다 쉬워."
암요, 그러시겠죠.
확실히 편해보이긴 했다.
대신 내가 불편해졌지만.
'엎드리고 있길 잘했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거야 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지금 지나가 취하고 있는 포즈를 보며 거기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는 모습을 지나에게 들키고 말았겠지.
그 광경을 상상하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지나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참으로 궁금해졌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해서 여전히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날 향해 의아해하는 시선을 던지고 있는 지나의 눈을 피하듯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ㅡ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자세가 좀.."
지나가 여태껏 깨닫지 못한 진실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래가지고.."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면서 입밖으로 자그마하게 밀어낸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퍼진 순간, 지나의 고개가 반대편에 자리한 거울을 향해 돌아갔다.
현실에 사는 지나와 거울 속에 사는 지나.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한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렇게 거울을 통해 스스로가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순간ㅡ
지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취하고 있던 자세를 풀고는ㅡ
"여, 역시 이건 유, 유한이 네가 하기에는 좀 어렵겠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쉬, 쉬운 걸로 알아올게!"
어처구니 없는 말만을 남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