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1부 (52/315)



〈 52화 〉1부

가영은 진작에 출근했을 것이고, 모종의 이유로 밤잠을 설쳤을 지나도 이만하면 슬슬 골아떨어지고도 남았을 시간.

그 시간에 난 뭘하고 있었냐면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상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돈 삭제 버그에 걸려 3천만원에 달하는 금액이 허공으로 증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려 6천만 캐쉬나 되는 돈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돈이란 갓 입금되었을 때 써줘야 제맛인 법.

마침 돈 들어오면 사려고 눈여겨 봐두었던 것들도 있겠다 겸사겸사 좀 둘러보다가 쓸만하겠다 싶은 거라도 있으면 하나 정도는 구매할 생각으로 느긋하게 물품 리스트를 훑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눈으로 들어온 건 남자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품목이었다.

[정력제-500만 캐쉬]

무려 4500만에 달하던 캐쉬를 한 번에 순삭시켰던 주범을 보고 있으려니 그새 습관이라도 된 것마냥 손가락이 슬금슬금 그쪽을 향했다.

'그래도 하나 정도는ㅡ'


괜찮지 않을까?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번까지만 채우는 거다.

아홉 번에서 끊는  솔직히 좀 찝찝하지 않은가.


묘하게 아홉수라는 말도 생각나고 말이다.


그에 비하면 10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깔끔한가.

게임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

기본 스텟이라고 하면 보통 10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그래,  하나만 더 사먹자.'

망설임은 배송 시간만 늦추는 법.


나름대로 길었던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정력제를 하나 구매하는 것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은근한 단맛을 남기며 목구멍을 타고 사라지는  느끼면서 미리 눈여겨 봐두었던 두 가지 물건 사이에서 고민했다.


[체력 증진의 아대-1500만 캐쉬.]


[끈기있는 자의 신발-3000만 캐쉬.]

흔히 테니스같은 거  때 손목에 끼우곤 하는 아대와 깔끔한 디자인의 흰색 운동화.


두 가지 물건 모두 장점이 굉장히 뚜렷했다.

아대는 단순히 손목에 끼기만 하면 체력을 복사시켜주는 편리한 물건이었고, 신발은 그걸 신고 운동을 해야한다는 제약이 붙어있긴 하지만 꾸준히만 한다면 장기적으로  효과를 볼  있다고 설명에 떡하니 적혀있었으니까.


'이거 완전 그거네.'


단타를 칠 것이냐 아니면 미래를 보고 장기 투자를  것이냐.

솔직히 말하면 아대 쪽이 좀  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편리하지 않은가.


거기에 신발과는 달리 집 안에서도 계속 차고 있을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대를 택하자니 장기적으로 본다면 신발 쪽이 몇 배는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렸다.


왠지 모르게 아대를 구매하게 되면 스스로 흑우라고 인정하는 꼴이 될 것만 같달까.

그리고 뭣보다 어차피 개강하기 전까지는 매일 지나의 손에 잡혀 체육관으로 끌려가게될 운명 아니던가.


그 점까지 고려하면 아대보다는 신발을 지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시발  둘다 질러버려?'

둘 사이에서 쉬지 않고 갈팡질팡하다보니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러자니 만만치 않은 신발의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1500만캐쉬인 아대에 비해 신발은 그 두 배 가격이었으니까.


'둘이 합치면..'

무려 4500만 캐쉬다.


거기에 이미 구매하기로 결정한 보충제 가격까지 더한다면 5천만 캐쉬고.


정력제 사는데 이미 500만 캐쉬를 썼으니 그리 되면  수중에는 500만캐쉬밖에 남지 않아버리는 거다.


그래도 괜찮을까.

500만 캐쉬면 정력제를  번 밖에  사는 돈인데?

라고 고민하던 것도 잠시 그냥 둘다 지르기로 했다.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지만 체력 부족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남자의 자존심은 어지간한 걸로는 되찾을 수 없을테니까.

그리고 뭣보다 다음 품목을 확인하고 싶다면 캐쉬를 팍팍 쓰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걸 궁금해서 어떻게 참냐고.'


지금 구매하기로 한 것까지  사면 도합 1억캐쉬를 물건 사는데 꼴아박은 셈이니 그쯤되면 뭐라도 열리겠지.

그래 분명 그럴 거다.


그런 식으로 복합적인 이유를 대가며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했다.


그리고는 구매하기로 한 것들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니ㅡ

[일정 부피 이상의 상품은 배송 방법을 직접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지금 당장 받을 거냐, 아니면 좀 기다리더라도 남들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택배로 물건을 받을 거냐라고 묻는 듯한 선택지가 눈앞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택배 쪽을 선택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세 개나 되는 물건이 갑자기 뿅하고 튀어나와버리면 괜한 의심을 사게될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좀 기다리게 되더라도 택배로 수령하는 쪽을 택했던 것인데..

[택배 수령을 선택하셨습니다.]


[택배 요금으로 회원님의 통장에서 일정 금액의 수수료가 인출될 예정입니다.]

[물건은 수수료가 인출되고 나서 하루 뒤에 배달됩니다.]

'시발?'

아주 그냥 알뜰하게 택배 수수료까지 챙겨가더라.

수수료랍시고 통장에 있는  싹다 털어간 건 아닐까 싶어서 은행 앱으로 들어가 확인해보니  운동화 값하고, 아대 값, 보충제 값에다가 일반적인 택배 수수료를 더한 금액만 빠져나가 있었다.

꽤 그럴 듯해보이는 상호명은 덤이었고.

아무튼 그렇게 총합 1억캐쉬를 소모하고 나니 상점 등급이 올랐다는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품목이 입고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눈앞으로 떠올랐다.

맘 같아서는 새로 뭐가 추가되었을지 당장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것들보다도  시급하게 확인해봐야할 게 있었으니까.

해서 조심스레 밑으로 내려가니 세나가 스튜디오로 쓰는 방에 불이 켜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오늘 휴방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휴방날 왜 스튜디오 안에 기어들어가 있는 건지 참으로 궁금했지만 지금부터 하려는 짓을 생각하면 괜히 그녀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기에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그 앞을 지나쳤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와 굳게 닫혀있는 지나의 방문을 한 번 힐끔거린 뒤 그대로 가영의 방 안으로 진입했다.

물론, 당연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서두르는 편이 좋겠지.

일단 구석에 쳐박혀있던 노트북부터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매트리스 밑으로 손을 밀어넣어 그 안을 더듬거렸다.

'분명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설마 일정 주기마다 방주의 은닉장소를 바꾸기라도 하는 건가.


나도 그랬기에 가영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손가락 끝으로 딱딱한 것이 툭하고 걸려들었다.


참으로 다행히도 그 정도로 치밀하게 숨기는 타입은 아니었던 모양.

그렇게 찾아낸 것을 침대 밖으로 끄집어내 노트북에다가 연결시켰다.


그리고는 소리부터 껐다.

장치가 연결되었음을 알리는 띠롱하는 소리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중요한  그런 게 아니니까.


'어디보자..'

뭐가 추가 되었으려나.


저번에 한 번 쭉 둘러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외장하드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전부 기억해둔  아니었기에 안에 든 파일들을 수정한 날짜 순으로 정렬시켰다.

만약 그동안 새롭게 방주에 합류한 영상이 있다면 분명 옆에 최근 날짜가 찍혀있는 게 맨 위로 올라올테지.


뭐, 솔직히 말하면 그럴 가능성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이었다.

아무래도 가영에게는  며칠동안의 일이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이었을테니 그런 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굳이 확인을 하는 건 혹시 모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뿐더러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ㅡ

'음..'


역시는 역시였던 걸까.


'최근께 없네..'


파일 옆에 찍힌 것들 중에서 그나마 최근이라  수 있는 게 약 2주 전이었다.

그렇게 나타난 결과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뭔가 좀 묘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필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달까.

물론,  복잡하기 그지없는 기분에 마냥 젖어있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영이 운용하는 방주는 한 대가 아니라 총 세 대였으니까.


이  대는 아닐  있어도 남은 두 대는  다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안전 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첫 번째 방주를 원래 있던 자리에다가 되돌려놓고는  번째와 세 번째의 검사를 연달아 진행했다.

 번째에서도 꽝이 나왔다.

그래서 세 번째 녀석을 노트북에 연결할 때 그리  기대를 품지 않았는데ㅡ

'..어라? 이것 봐라?'

수정한 날짜 순으로 나열시키기 무섭게 불과 이틀 전 날짜가 노트북 화면 위로 찍혔다.


'이틀 전이면ㅡ'


새터 이틀차에 해당하는 날짜였고, 내가 한창 유린을 피해다니던 때기도 했다.


그때 가영은 자기 방에서 몰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후회라는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시발 내가 새터를 왜 갔지?'

새터만 안 갔어도 어쩌면 가영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달픈 신음성을 숨죽여 뱉어내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말은 그리 하긴 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가영이 그런 짓을 한 건 내가 집을 비웠기 때문이라는 걸.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신경쓰여서 그런 짓을  생각조차 못했을테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가영이 이틀 전에 딸감으로 쓴 건 어떤 장르일까.

이전처럼 능욕물이나 치한물일까.

아니면 새로운 장르에 속하는 녀석일까.


'혹시..'


수면간?


그 부분만큼은 하늘이 두쪽나더라도 필히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해서 굳게 닫아놓은 문쪽을 한 번 힐끔하고 쳐다봐준 뒤 이틀 전에 가영에게 사용되었던 영상을 클릭해 재생시켰다.


왠지 모르게 눈에 익숙한,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가 다른 불법도박 사이트 광고가 잠시 재생되더니 이내 남성의 물건을 형상화 시켜놓은 듯한 로고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이윽고 화면 위로 등장한 건 술집같은 장소였다.

솔직히 말하면 보자마자 실망했다.

이렇게 되면 이 뒤의 전개야 안 봐도 뻔했으니까.


보나마나 적당히 뭣좀 마시며 하하호호 인터뷰 하다가 그대로 호텔같은데 들어가서 쭈왑쭈왑 키스도 좀 하고 애무도 좀 하는  하다가 이내 열심히 떡을 쳐대겠지.

수많은 영상을 섭렵한  직감대로라면 그랬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희망을 놓치 않고 오른쪽 방향키를 연타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오른쪽 아래에 찍힌 시간이 5분을 넘어섰고ㅡ


'이만하면 슬슬 장소가 바뀌어야 되는데..?'


내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도 그쯤이었다.


인터뷰하는 장면부터 보며 느긋하게 즐기는 타입은 있어도 인터뷰하는 것만 주구장창 보려고 야동을 보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구성이 그런 식이면 그건 야동이 아니겠지.

그런데 누가봐도 야동임이 분명한 이 영상은 벌써 5분째 배우들끼리 대화만 하고 있었다.


'뭐지 이거.'

그렇기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는데..

영상 기준으로 5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대체  얼마나 쳐마신 건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히끅히끅 딸꾹질을 하고 있던 꼬추 새끼가 어느 순간 그대로 테이블 위로 스르륵 엎어졌다.


그리고 맞은 편에 앉아있던 여배우가 당황한 듯 꼬추 새끼의 옆으로 옮겨앉아 놈의 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다급해보이는 표정은 덤이었다.

'이거 설마..'

그 장면을 보며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기 무섭게 여배우의 태도가 극변했다.

술에 취해 쓰러진 남자를 걱정하는 여자는 더이상 화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남자의 몸을 요리조리 더듬어대는 변태년만이 그곳에 존재할 뿐.


그런 식으로 남자의 몸이 주는 감촉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위로 남자를 만지작 거리던 것도 잠시, 여자가 테이블 위에 박혀있던 남자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 그것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진득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만약 소리를 켜놨다면 분명 추잡스럽기 짝이 없는 소리가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겠지.

의식을 잃은 남성을 향해 퍼부어지는 여성의 키스는 그 정도로 집요했다.

오늘 아침에 내가 가영에게 한 것도 저거에 비하면 가볍겠다 싶을 정도로.

 거기까지였다.


거기까지만 보고 영상을 껐다.

이 영상이 어쩌다가 가영의 간택을 받게 되었는지 그 장면을 보니 알 것도 같았으니까.


'그랬구만..'

그랬어.


나는 새터에서도 어떻게 하면 가영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진도를 뺄 수 있을지 그것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이런 거나 보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구나.


문득 가영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뭐라도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문제는 어떻게 벌을 주냐는 건데ㅡ

'아.'

속으로 그리 되뇌이다가 이내  웃었다.

마침 괜찮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으니까.


'야한  보는 게 그렇게 좋으면..'


까짓  보여주면 되지 않겠는가.


야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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