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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1부 (46/315)



〈 46화 〉1부
대체 언제 오나 했더니만 설마 이런 타이밍에 도착할 줄이야.


방금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목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서늘하게 굳어있는 것 같은 지나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아주 나쁜 욕망이 가슴 속으로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지나가 당황해서 어쩔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어..? 지나 누나다.."

그리 말하며 꼬물꼬물 지나의  속으로 파고들어가 그녀의 몸을 꼬옥하고 끌어안았던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분명 바이크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텐데 신기하게도 지나의 품 속은 하나도 차갑지 않았다.


차갑기는 커녕 딱 기분 좋게 뜨끈뜨끈하기만 했다.


운동 많이하는 사람은 대사율이 높다더니 그래서 이런 걸까.

만졌을  기분 좋기만 하면 됐지 아무럼 어떻겠냐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라이더용 재킷으로 덮여있던 지나의 가슴께에 대고 볼을 부비적거렸다.

"지나 누나아.."

따뜻한 품 속과는 달리 옷은 바깥의 냉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그게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술기운으로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볼을 그곳에다 대고 마구잡이로 비벼댔다.


"헤헤..  데리러  거야?"


확실히 많이 마시긴 했나 보다.


평소였다면 낯부끄러워서라도 이런 행동은 절대로 못했을테니까.

물론, 그런만큼 효과또한 확실했다.

언제 화를 냈었냐는  지나는 몸을 움찔움찔 거리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니까.


얼굴은 어떠려나.


문득 궁금해져서 지나의 가슴에다가 슬그머니 파묻고 있던 것을 조심스레 들어올려보니 두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연신 헛기침을 해대고 있는 지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민망해하던 것도 잠시, 이내 피식하고 웃은 지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 어쩌려고 이렇게 많이 마셨어?"


그야 데리러 온다니까 많이 마셨지.

그러지 않았다면 적당히 사양하고 그랬을 거다.


그게 진실이었지만 왠지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냥 헤헤 웃으며 다시금 그녀의 품에다가 얼굴을 파묻었다.


"응? 유한아. 얼마나 마셨어?"

"별로.. 별로  마셨는데.."


"으휴.. 별로  마시기는 무슨.. 조금있으면 개가 자기랑 친구먹자고 그러겠구만."

"진짜 별로 안 마셨는뒈ㅡ"

"네에네에, 그러시겠죠. 그나저나 짐은?"

"으음.. 기억 안 나.."


그리 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유린의 목소리가 나와 지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선배 짐이라면 자리에 있을 거에요."

"ㅡ누구?"


당연히 지나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유린이 잔뜩 취한  붙잡으려던 걸 그녀도 봤을테니까.

"저, 저는.. 그게.. 그러니까.."


유린에게 최종보스나 다름없는 지나를 상대하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겠지.

해서 유린이 당황해서 어쩔  몰라하는 틈을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적당히 둘러댔다. 쟤 이름은 유린이고, 정체는 같은 과 후배라고.


내 딴에는 도와주려 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유린은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입에서 후배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순간 유린이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걸 놓칠 지나가 아니었다.


"흠, 유린 씨? 일단 유린 씨라고 부를게요."


"네? 아, 네.."


"유한이 혹시 얼마나 마셨는지 알아요?"


"그.. 같은 자리가 아니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마도?"

"두 병 정도.. 드셨을 거에요."


"두 벼엉ㅡ?"


아이고, 유린아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구나.

내가 보지까지 열심히 빨아줬는데 어떻게 네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마음 속으로 나마 따지고 있으니 볼을 꼬집는 손길이 느껴졌다.


"악ㅡ!"


"어쩐지 오늘따라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니만.."

"느우나 아프아."


"넌 좀 혼나야 돼."


그렇게  볼을 손으로 잡고 쭉쭉 늘려대던 것도 잠시 한숨을 푸욱하고 내쉰 지나가 유린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 유린 씨? 괜찮으면 유한이 가방 좀 가져다 주실래요?  상태도 많이 안 좋고 하니 이만 데리고 가봐야할 것 같네요."

"네, 네에.."


가방을 가지러 떠난 걸까.

타다다닥하고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기 무섭게 지나가 엄한 얼굴을 한채 반대쪽 볼까지 꼬집기 시작했다.

유한을 아끼는 마음에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이런 식으로나마 걱정했던 걸 풀려는 모양.


'근데 왜..'

표정이 은근히 만족스러워 보이는 걸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에게 시달리고 있으니 다시금 유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그게 끝이었다.

유린과 더 이야기를 나눌 가치를 느끼지 못한 사람마냥 대화를 단칼에 끊어낸 지나가 꼬옥하고 움켜쥔 내 손을 잡아끌며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역시나라고 해야할까.


가게 입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지나의 바이크였다.

지나의 손에 이끌려  앞에 도달한 순간, 지나가 바이크 옆쪽에 걸려있던 자신의 헬멧을 집어들어 그대로 내 머리 위에다가 씌웠다.

그러더니 그대로 바이크 위로 훌쩍 올라탔다.

"자, 가방."


그와 함께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가방을 등에다가 둘러메니 지나가 자신의 뒷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들겨댔다.

"얼른 타. 집에 가게."

"벌써?"


"벌써는 무슨 벌써야 곧 있으면 열두 시구만."

"좀 더 있다가 들어가면  돼?"


"응,  돼."

단호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작게 혀를 차고는 그대로 지나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누나 잘 잡고 있어. 힘들면 말하고."


그리 말하길래 팔로 지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정확히 말하면 가슴 바로 밑부분이라고 해야할까.

그곳을 팔을 이용해 감싸니 지나가 흠칫하고 몸을 떨어댔다.

그렇게 동요하던 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능숙하게 바이크에 시동을 넣은 지나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술집이었기에 큰길 가로 접어드는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때부터 지나의 질문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재밌었어?"

"응..?"

"놀러갔던  말이야. 재밌었냐고."


"그냥.. 술 마시고 그랬지.."

"거기서도?"

"응, 다들 술 엄청 좋아하나봐. 난 쓰기만 하던데."

"그러게 그런 걸 왜 먹는  모르겠다."


"누나는  마셔본 적 있어?"

"왜? 없을 것 같아?"

"아니?"


내 대답이 어이가 없었던 걸까. 지나가 피식하고 실소를 흘렸다.


"아, 아까 걔는 누구야? 유린이라고 했었나?"


"말해줬잖아."

"후배?"

"응."

"후배면은 신입생이겠네?"


"그렇지..?"

"그런데 벌써 그렇게 친해졌어?"

그 순간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던 말은 '응, 서로 빨아주다 보니까 친해졌어.'였다.

'시발 좆될 뻔했네..'


농담하는  아니고 바람때문에 추워서 뒤질 것같은데 그와는 별개로 식은땀이 미친듯이 흘러나왔다.


그게 입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입을 틀어막았기에 망정이지 정신차리는 게 조금만 더 늦었다면?

진짜 대참사가 났을 거다.


'아니..'

술 마시면 충동적으로 변한다는 거야 이미 겪어봐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줄이야.

그래봐야 반 병정도 밖에 마시지 않았던 유린 때와는 달리 지금은 대충 세도 최소 두 병 이상은 마신 상태다보니 더더욱 거침이 없어져버린 걸까.


아무튼 덕분에 자다가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마냥 어딘가 후에후에하던 정신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유한아? 자?"

"아, 아니.."


"그 유린이라는 애하고는 어쩌다가 친해진거야?"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을까.


고민할 시간을 벌기 위해 말을 끌었다.


"..그래보여?"


"응."

"흐음, 그런가.."


시선을 전방에 고정하고 있는 지나에게 보일 리 없지만 고개까지 갸웃해보였다.


"생각해보니까 신기하긴 하다."


"응? 뭐가?"

"아니, 다른 신입생 애들은 뭔가 좀.. 낯설었거든?"


"..그럼 유린이라는 애는?"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친해졌나봐."


지나에게는 의미심장하게 들릴 게 분명한 내 발언에 지나가 그대로 침묵했다.


그런 그녀로 하여금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누나랑 닮아서 그런가.."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그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어느덧 집근처에 다다랐는지 약간이지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풍경들이 눈으로 박혀들기 시작했다.


살짝 느슨하게 하고 있던 팔에 힘을 줘서 지나의 허리를 꽈악하고 끌어안았던 건 그래서였다.


내 팔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니 놀랐던 걸까.

팔 안에 갇힌 잘록한 허리가 흠칫하고 떨렸다.


그 떨림을 모르는 척 하며 지나를 불렀다.

"누나."

"..응? 왜? 추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밖에서 좀만 더 있다가 들어가면  돼?"

은근하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던진 질문에 지나의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해졌다.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지나에게서 흘러나왔다.

"추워 죽겠는데 밖에서 뭐하려고."

"아니이, 왠지  아쉬워서 그렇지."


"..뭐가."

"응?"

"뭐가 아쉬운데."


목 안쪽이 까끌까끌하기라도 한 것일까. 지나의 목소리는 어느새 퉁명스러움이라는 가면을 잃어버리고 버석버석하게 변해있었다.


"음.. 둘이서 술이나 마실까?"


"또?"


"안 돼?"


"누나 바이크 있잖아."


"바이크야 집에다가 주차시켜놓으면 되잖아."


어차피 집 근처 아니냐.


그러니 바이크야 집에다가 주차시켜놓고 걸어서 다녀오면 되지 않겠느냐.

그런 논리를 앞세우고 있는  발언에 지나가 그대로 침묵했다. 보아하니 반박할만한 구석을 찾지 못했던 모양.


"안 돼."

아니, 사랑스러운 동생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이걸 안 들어준다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오직 술에 취한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금단의 비기를 꺼내드는 수밖에.

아마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때 높은 확률로 이불을 걷어차게 되겠지만.. 지나와   잔 하는 대가가 고작 그거라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희생 아닐까.

'원망 안 했으면 좋겠네.'


이건 전부 지나가 자초한 일이다.


그녀가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면 내가 이런  꺼내들 결심을 할 일도 없었을테니까.

'후..'


입을 열기 전에 가볍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ㅡ

"아 왜에 누나랑 술 마셔보고 싶단 말이야."

금단의 비기, '필살의 조르기'를 시전했다.


남동생의 애교라니.


'우욱..'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미는  했지만 그게 '유한'이라면, 거기에 남녀의 정조관념이 뒤바뀐 세계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진다면?

이건 다를 수밖에 없고, 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나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면 오늘 말고 다른  마시면 되잖아. 응? 오늘은  참자."

내가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아무 효과가 없었냐면 그건 또 아닌 듯 했다.

효과가 아예 없었다면 지금 팔을 통해 느껴지는 이 뻣뻣함을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감이 딱 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더  지랄을 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진짜  돼? 쪼금만, 쪼금만 마실테니까.."

"..."

"어차피 누나랑 같이 마시는 거잖아. 내가 너무 많이 마신다 싶으면 누나가 알아서 커트하면ㅡ"


"후우..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해."


 번 더 이어진  공세에 결국 지나가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외쳤고, 그렇게 지나와의 술자리라는 위대한 과업을 성취해내는데 성공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동시에 다짐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지나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그녀에게 최고의 술자리를 선물하겠다고.

그런 식으로 유한이 이상한 다짐을 하고 있을 때 지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심경을 몇 번이고 곱씹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유한이 뭐라고 했든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한은 이미 충분히 많이 마신 상태였으니까.


그럼에도 결국 유한의 손을 들어주었던  문득 든 생각 때문이었다.

유한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너무 자신의 의사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건 아닐까.

방금처럼 생전 안 하던 행동까지 해가면서 자신을 졸라대는 것도 또래들과의 자리를 더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워서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유한을 계속 둔단 말인가?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뻔한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데리고 나왔다.


그만큼 화가 났으니까.


유한이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틈을 타 그를 탐하려는 추잡스럽기 짝이 없는 년들이.

그년들이 자길 보며 어떤 상상을 하는 지도 모르고 속 좋게 그저 건네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마셨을 유한이.

그래도 여러 명이서 마시는 자리인데 설마 별 일 있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그래서 더는  안에 있을 수가 없었고,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질 못하는 유한을 억지로 잡아끌다시피 해가며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왔던 건 그래서였다.


아쉬움이 듬뿍 담긴 유한의 애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유한이 아쉬움을 느낀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 벌충해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으니까.

해서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유한이 말한대로 차고 안에다가 바이크를 주차시켜놓은 뒤 거치적거리는 짐들을 그 위에다가 올려놓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으음, 글쎄.."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유한이 그런 곳을 알 리가 없었다.

어지간하면 집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 게 유한이니까. 그러니 저런 식으로 고민을 한다해도 답이 나올 리는 없겠지.

결국 자신이 선택해야한단 소리였다.

'어디가 좋을까.'

두 눈을 꼬옥하고 감은 채 여전히 고민에 잠겨있는 유한을 보며 한 번 생각해봤다.  근처에 있는 곳들 중에서 어디를 가장 좋아할지를.

그 순간 눈으로 들어온 것은 술에 취해 발그레하니 달아오른채 흐물흐물하게 풀어져있는 유한의 얼굴이었다.


평소보다 더.. 위험한 얼굴.


그것이 시야 속으로 파고들어온 순간 결심했다.


어디든 일단 무조건 룸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속으로 그리 되뇌이면서 유한을 데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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