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1부
이 게임, 내가 이겼다.
확신이 든 순간 조작하고 있던 캐릭터를 그대로 세나의 타워에다가 때려박았다.
그렇게 세레머니까지 롸끈하게 해준 다음 세나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이긴 거 맞지?"
"아니, 이게 무슨.. 이게 뭔.."
많이 황당한가 보다.
하긴 그렇겠지.
애초에 패배조차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상태였을텐데 방금처럼 허무하기 짝이 없는 반칙패는 정말 생각도 못했을테니까.
[아니 거기서 플을 왜씀 ㅄㅅㅈㅄㅂㅈㄳㅂㅈㅅㅂㅈㅅ]
[병니 언신이야? 병니 언신이야? 병니 언신이야? 병니 언신이야? 병니 언신이야?]
[제에에에에엔장 동생 분 믿고 있었다고~~]
[아니 이걸 52배가 터진다고?]
[52배면 25만 건 사람은 얼마임?]
[1300만 포인트 ㄷㄷㄷㄷㄷ]
[아 ㅋㅋ 포인트 독점 에반데]
[77ㅓㅓㅓㅓㅓㅓㅓ억 너무 달어ㅓㅓㅓㅓㅓㅓ 너무 달아서 이빨 썩을 것 같어ㅓㅓㅓ]
[세나야.. 실망이다..]
[이게.. 다이아? 어라..? 나 생각보다 게임 잘할지도..? 이게.. 다이아? 어라..? 나 생각보다 게임 잘할지도..? 이게.. 다이아? 어라..? 나 생각보다 게임 잘할지도..?]
[다이아 ㄴㄴ 다딱이 ㅇㅇ]
[이로써 언랭=아브실골플다<마<챌이라는 게 증명됐죠?]
[나 마스턴데 저거 마따]
[아니 이겤ㅋㅋㅋ 말이 되나 ㅋㅋㅋㅋ]
[당연히 말이 되죠~ 당연히 말이 되죠~ 당연히 말이 되죠~ 당연히 말이 되죠~]
[말이 안 되는 건 느그 게임이었구연]
[방장!!!!!! 뭐해!!!!!! 믿으라며!!!!!!!]
[유 사장 나 우리 아들 병원비까지 다 박았는데 어떻게 책임질거야!!!]
[ㅅㅂ 다음 학기 등록금 다 정배에 박았는데 망했네 아 ㅋㅋ]
[유 사장 거기 있는 거 알아!! 문 열어!!!!]
[아니 개 웃기네 ㅋㅋㅋㅋ 이게 뭐냐고...]
[ㄹㅇ 어이 없어서 헛웃음만 나옴 ㅋㅋㅋㅋㅋ]
[근데 동생 분 마지막에 스킬 샷 다 맞추시던데]
[ㅇㅇ 제대로 안 해서 그렇지 배우면 쫌 치실듯 ㅎ;;]
[유 사장~ 정산해줘~ 나 역배에 25만 걸었다고~]
[저 년이었누 ㅋㅋㅋㅋ]
[25만좌 ㄷㄷㄷ]
[야수 그 자체시다]
[아니 근데 진짜 뭔 생각으로 25만 박음?]
말 그대로 상정 외의 사태에 제대로 당황해버린 이들의 채팅이 그대로 세나의 몸을 두들겼다.
그럴수록 세나의 고개는 밑을 향했다.
"누나 혹시 울어?"
그런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슥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물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야야 우냐? 울어?]
[얘들아 얘 운다!!!!!!!]
[이 년 겜하다 우는 찐따래요~ 겜울찐이래요 겜울찐~]
[방금 목소리 뭐야..]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좀 정신이 들었나 보다.
"뭔 소리야 울긴 누가."
[촉젖눈 하고서 그런 말 해봐야 아무 소용 없죠?]
[우리 세나 쥬시하네 이런 걸로 울고]
[나도 한 쥬시 하는데]
[네 안물어봐꼬요]
[세나 벌써 갱년기 온거야?]
[(대충 눈가 촉촉히 젖은 짤)]
"다행이다. 미안할 뻔 했잖아."
눈을 가늘게 뜬채로 그리 말하니 채팅창이 세나가 졌을 때하고는 다른 의미로 뒤집어졌다.
[소악마 무쳤냐고!!! 소악마 무쳤냐고!!! 소악마 무쳤냐고!!!]
[헤으응.. 오빠 나도 괴롭혀조.. 헤으응.. 오빠 나도 괴롭혀조.. 헤으응.. 오빠 나도 괴롭혀조.. 헤으응.. 오빠 나도 괴롭혀조..]
[어라.. 나 이런 거 좋아했구나.. 어라.. 나 이런 거 좋아했구나.. 어라.. 나 이런 거 좋아했구나.. 어라.. 나 이런 거 좋아했구나..]
[완전 수컷 강아지 같네 ㄷㄷㄷ 완전 수컷 강아지 같네 ㄷㄷㄷ 완전 수컷 강아지 같네 ㄷㄷㄷ]
물론, 세나의 반응도 상당히 격렬했다.
유한에게서 그런 표정을 보는 게 처음인지 그녀가 몸을 흠칫하고 떨었으니까.
흥미로운 건 그녀의 두 뺨에 미약하게나마 홍조가 어려있다는 점이었다.
'흐음..?'
설마 이런 쪽이 취향인가?
일단은 기억해놓기로 하고, 세나로 하여금 보란듯이 벌칙, 아니 소원에 대해 고민하는 척을 했다.
"뭐가 좋으려나아.."
그러다가 시청자들에게도 의견을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가 좋을까요?"
[사쿠란보 드가자~ 사쿠란보 드가자~ 사쿠란보 드가자~ 사쿠란보 드가자~ 사쿠란보 드가자~]
[아니 여자가 사쿠란보 추는 걸 뭐하러 봄 ㅋㅋㅋ]
[그러니까 더 시켜야지 동생 앞에서 사쿠란보? 오우 쒯 ㅋㅋㅋ]
[씹 상상만해도 소름돋누 ㅋㅋㅋㅋ]
[수치플 에반데 ㅋㅋㅋ]
[아니 근데 그러면 우리도 같이 벌칙받는 거 아님?]
[재밌으면 됐지 뭐 ㅋㅋ]
"사쿠란보? 춤같은 거에요? 흠.. 춤.."
그에 대한 세나의 의견은 어떨지 궁금해서 슬쩍 시선을 던져보니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가 보다.
내가 고민하는 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움찔거림이 잦아지는 걸 보면.
"그건 좀 너무한 것 같고.. 음, 그냥 가벼운 걸로 할게요."
[아 이걸 봐주네]
[님 저 년 웃고 있는데요?]
[언랭한테 미드빵 져놓고 웃고 있어요!!]
[아 ㅋㅋ 너무 착한 거 아니냐고~]
[ㄹㅇ 누구는 동생 어떻게 괴롭힐까 그 생각만 하던데]
"즈용히 해라아.. 배내 버리기 저네.."
"응? 누나 뭐라고?"
"아, 아냐."
[동생 님, 님네 누나가 저희들 협박함 ㄷㄷ]
[조용히 안 하면 밴해버리겠대요]
[패배자 주제에 너무 건방진 거 아닙니까?]
[ㄹㅇ 이건 정의구현해야된다]
[참교육! 참교육! 참교육! 참교육!]
[헤으응.. 오빠아.. 나도 교육해조.. 헤으응.. 오빠아.. 나도 교육해조.. 헤으응.. 오빠아.. 나도 교육해조.. 헤으응.. 오빠아.. 나도 교육해조..]
[저 10련은 아까 전부터 저지랄이누]
[매니저 뭐해!!!]
[근데 동생 분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러고 보니 나이를 안 밝혔었구만.
"저요? 22살이요."
[남대생 ㅗㅜㅑ..]
[휴 다행히 성인이시긴 하네;;]
[앗.. 이러면 오빠라고 부를 수 없게 되어버렷..!]
[뭔 소리임 잘 생겼으면 나이 상관없이 오빠지 ㅋㅋㅋ]
[그건 맞찌~]
[남대생이라는 단어는 왤케 꼴리는 걸까]
[넌 왤케 왤케임]
[멀리 안 나간다~ 잘 가고~]
"아, 결정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슬금슬금 선을 넘기 시작한 채팅창을 째릿하고 노려보며 주의를 주고 있던 세나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를 향해 싱긋하고 웃어보였다.
그렇게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채ㅡ
"세나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달콤한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외모가 외모다보니 효과는 말할 것도 없이 폭발적이었다.
검은색보다는 차라리 갈색에 가까운 세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오빠 해봐."
"..뭐, 뭐?! 갑자기 뭐뭐뭐뭐, 뭔 소리야..!"
"오늘 방송 중에 할 수 있는 거로 하라면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춤 출래?"
"씨이이이이..."
많이 부끄러운가 보다.
삐쭉하고 튀어나온 세나의 입술 사이에서 팔팔 끓는 주전자를 생각나게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확실하게 딱 정해줄게. 오늘 방송 끝날 때까지 날 오빠라고 부를 것."
"하.."
"내가 오빠니까 나한테 존댓말 써야겠네?"
"아, 아니 무슨.. 너, 너도 나한테 존댓말 안 쓰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왜? 불만있어?"
[어굴하면 이기시등가~]
[언랭한테 발린 패배자 주제에 말이 많으시네 아 ㅋㅋ]
[근데 이게 왜 벌칙임?]
[ㄹㅇ 우리한테는 포상인데]
[아무튼 세나가 수치스러워하니까 된 거 아닐까?]
[솔직히 좀 속 시원하긴 해 ㅋㅋ]
[77ㅓㅓㅓㅓㅓㅓㅓ억 아 덕분에 체한 거 싹 내려갔네 ㅋㅋㅋ]
[평소에 아브실골 무시하더니 꼴 좋누 ㅋㅋㅋ]
[근데 솔직히 '아'하고 '브'는 사람 아니긴 해 ㄹㅇ]
[윗련 실버네]
"아니 발리긴 누가 발렸다고..!"
"그래 발리진 않았지. 근데 내가 이겼잖아?"
그러니까 한 번 불러보라는 뜻으로 세나를 향해 양 팔을 쫙 펼쳐보였다.
그런 날 바라보며 허허로이 웃던 것도 잠시 세나가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웅얼 뭔가를 내뱉었다.
"오?"
[오?]
[오.. 좀꼴]
[근데 몬가.. 몬가 기분이 이상한 건 나뿐만임?]
[왜죠?]
[헤으응.. 오빠 나 기분이 이상해..]
[기분만 이상함?]
[어허 선 넘으면 목이 날아가는 수가 있어요~?]
[목만 날아가면 다행이지 고소장 받을 수도 있다 ㅋㅋ]
[그러니까 다들 얼른 메모장 켜!!]
"오, 오.. 빠.."
"왜 세나야?"
"..아아아아아아악!!!!"
미칠 것 같나 보다.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세나가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결국.. 미쳐버리고 말았누..]
[그동안 즐거웠다 세나야]
[언랭한테 진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벌써 그립읍니다..]
[수치심 대폭발 ㅋㅋㅋㅋㅋㅋㅋ]
[오빠라고 부르기 싫으면 그 벌칙 나한테 넘겨!! 내가 더 잘 할 수 있으니까!!]
[헤으응 오빠아..]
[오빠..]
"미칠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아아아아아!"
끓어오르는 수치심과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리고만 세나를 다시 자리로 데리고 왔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꼭 하얗게 불태운 재를 보는 듯 했다.
"이걸.. 이런 걸.. 오늘 방송 끝날 때까지 하라고..?"
"존댓말 써야지."
"아니 존댓말은 뭔 놈의 존댓말이야..!"
"존댓말."
"ㅡ요."
[이야요는 대체 어느 나라 말임? ㅋㅋㅋ]
[무야호는 아는데]
[무야~ 호~!]
[그만큼 신나시는거지~]
[그립읍니다..]
"음, 아직 더 있어야 되는 거지? 세나야?"
"그런 것 같아.. 요."
"그러면 시간 남는 김에 어깨 좀 주물러 줄래? 운동하고 바로 왔더니 몸이 좀 쑤시네."
"쓰으으으으으.. 하아아아..."
"응? 세나야 오빠한테 뭐 할 말 있어?"
"방송 끝나고 보자.. 요."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고. 자, 얼른."
의자를 다시 세나의 방송용 컴퓨터 앞으로 끌고 와서 그 위에 앉아 어깨를 팡팡 두들기니 한숨을 포옥하고 내쉰 세나가 이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내 뒤에 서서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꽈악-하고.
"악!! 힘!! 손에 힘!!"
"아, 미안.. 요."
전혀 미안한 것 같지 않은 얼굴로 히죽하고 웃은 세나가 이번에는 제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별 기대 안했는데 은근히 손이 야무졌다.
덕분에 오늘 하루동안 잔뜩 혹사당해 딴딴하게 뭉쳐버린 어깨가 세나의 손아귀 안에서 녹아내렸다.
"으.. 뭐야, 왜 이렇게 잘해?"
"맨날 엄마 주물러주니까 그렇지.. 요."
[뭐지? 포상 타임인가?]
[일단 이어폰 꼈읍니다]
[30만원짜리 헤드셋을 샀던 건 사실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ㅗㅜㅑ..]
[헤으응.. 오빠 목소리 넘모 섹시해옹..]
그 채팅들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아, 님들 리아 언니한테 전화 좀 해야되서 잠시 마이크 좀 끌게요."
세나가 되도 않는 전화 핑계를 대며 마이크의 온오프 버튼을 밑으로 내려버렸다.
[방장!! 뭐해!!!!!!!]
[좋은 거 왜 너만 들어!!]
[미칠 것 같애.. 정신 나갈 것 같애.. 나도 들려줘.. 미칠 것 같애.. 정신 나갈 것 같애.. 나도 들려줘.. 미칠 것 같애.. 정신 나갈 것 같애.. 나도 들려줘..]
[혼자 듣지마.. 왜 혼자들어? 혼자 듣지마.. 왜 혼자들어? 혼자 듣지마.. 왜 혼자들어?]
[줬다 뺏기 무냐고!!!!]
[아 방장!!!!!!!!!!]
그제서야 좀 못마땅한게 풀린 모양이다.
송출용 컴퓨터 화면 위로 비치던 세나의 얼굴 위로 히죽하고 속 시원하다는 미소가 번졌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캠을 향해 혀까지 살짝 내밀어보이더라.
메롱하고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 소리아라는 여자와 통화를 할 생각이긴 했는지 그리고 나서 바로 휴대폰을 집어들었지만.
"들고 있어봐."
"존댓말 안 쓸거야?"
"즉당히 해라 진짜아..."
"네엡."
그렇게 졸지에 휴대폰 거치대 역할을 하고 있으니 뚜루루루하고 쉬지 않고 울려퍼지던 신호음이 딸칵하고 끊어지더니 아까 들었던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어, 세나야."
"언니? 어떻게 됐어? 다 수습했어?"
"응, 이제 쓰레기 봉투 안에다 넣고 묶기만 하면 돼."
"그럼 바로 방송킬 수 있겠네?"
"응, 애들이 발톱으로 못 할퀴게 베란다에다가 내놓기만 하고 바로 킬게."
"게임은 깔아놨지?"
"아침에 미리 깔아놨지이."
"디코는 어제 합방할 때 썼던 채널 그대로 쓸 거니까 거기로 들어와."
"세나놀이터 채널?"
"응, 거기."
"이름이 세나놀이터야?"
참 세나다운 작명법이라 생각해서 스리슬쩍 끼어드니 정작 그에 대한 반응은 세나가 아닌 다른 이에게서 흘러나왔다.
"아, 동생 분?"
"아, 넵.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아녜요. 제가 초대했는데 초대한 사람이 늦기나 하고 참.. 민망하네요."
그래도 흔쾌히 출연을 수락해줘서 고맙다며 그녀가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즐겁고 좋은데요 뭐."
내가 소리아, 아니 소라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어딘가 신경에 거슬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언니, 그러면 빨리 마무리하고 얼른 방송 켜. 이러다가 잘못하면 아침까지 하겠다."
"그래, 알겠어."
"그러면 이만 끊을게."
잽싸게 우리 둘 사이로 끼어든 세나가 제멋대로 통화를 마무리지어 버렸다.
그러더니 내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홱하고 뺏어가 버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