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마녀, 에스테야-31화 (31/42)

〈 31화 〉 벤데타 (2)

* * *

030. 벤데타 (2)

“하극, 흑, 흐윽….”

에스테야가 내 품에 무너진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매력적이었다. 그 모습에서 꼴림을 느끼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긴 했지만.

“얼른, 에스테야.”

“미, 미쳤, 히극, 우, 움직이지, 마, 하으으….”

가볍게 허리를 놀리자 에스테야의 가냘픈 몸이 다시 발발 떨며 단물을 허벅지 사이로 내쏟는다. 내 쇄골 어림에 이마를 꽁꽁 찧으며 할딱인다.

“빼, 빼….”

“뭐라고?”

에스테야의 등줄기를 가볍게 손끝으로 훑었다. 가녀린 어깨가 바르르 경련한다.

“빼, 주세, 요….”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지도 못하는 에스테야는 귀여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빼 주기 싫을 정도로.

“어때. 이쯤이면 됐어? 복수하기에 충분해?”

놀리는 말투로 내가 속삭이자, 에스테야가 조그마한 주먹으로 내 어깨를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솜방망이였다. 몸이 움직일까봐 고작해야 팔꿈치만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너, 너도, 흑, 내 복수의 대상이, 하윽, 되는 수가 있어, 차서운….”

“그럼 안 빼줘야겠는데.”

자박꼼.

꼼짝 못하게 해줘야지, 그럼.

“미, 미쳤어…?”

나는 에스테야를 꽉 끌어안곤 그 귀에 속삭였다. 더 깊게 박혀들어간다. 진득한 삽입감을 느끼며 할딱이는 에스테야를 붙잡아 안는다.

“히윽, 하, 헤극, 하으…그, 그만….”

“그만할까?”

“응….”

이제 할딱거릴 힘도 없는지, 품에 안긴 에스테야의 상체가 잘 부풀지도 않았다. 간헐적으로 숨을 끊어 쉬는 그 애처로운호흡도 제법 예쁘긴 했지만.

나는 에스테야를 답삭 안아 들어올렸다. 굵게 달아오른 물건을 타고 에스테야의 속살이 곱게 딸려나오다, 드디어 빠졌다. 그녀를 옆에 눕혀두곤 다리 사이로 새어나온 단물을 닦아주자, 에스테야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

“왜. 부끄러워?”

“…왜 만날, 내가 몸을, 흐으, 못 가눌 때까지 하는거야….”

에스테야의 아랫배에 새겨진 각인은 죽지 않은 불씨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장난삼아 그걸 한 번 어루만져주고 싶었지만, 힘없이 늘어진 채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힘들어보였다.

장난은 여기까지겠지.

“나…조금만 잘게….”

“내일 아침에 깨워줄테니까 푹 자.”

두어 번 정도 고개를 끄덕이다, 결국 기절하듯 픽 쓰러져 잠든다. 새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벤데타는 품위를 가지고 하는 결사의 복수다.

우유 냄새가 풀풀 나는, 다 구겨진 옷을 입고 하게 할 수는 없지.

*

아침 햇살이 나무 덧창 사이로 부서져 들어온다. 세탁은 어떻게 마법으로 하는데 성공했지만, 다림질까지는 아직이어서 숯을 위에 올려놓는 인두 다리미가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구할 수 있었다.

“…아.”

에스테야가 침대 위에서 깨어났다. 다림질하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차서운…뭐 해?”

“뭐 하긴. 너 옷 다려주고 있잖아.”

“옷을…다려?”

조금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긴, 타고난 재주로 모든 걸 마법으로 해결하던 사람에게 구시대의 방식은 신기해보일 법 하지.

“…오랜만에 본다, 그런 거.”

치익, 소리가 난다. 뿌린 물이 증발하면서 에스테야의 옷이 빳빳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옷 다리는 걸 좋아했다.

세탁기 돌리고 나서 말린 옷은 누가 멱살이라도 잡은 듯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셔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구김이 마음에 들지 않기 일쑤였다.

자기 몫의 스팀다리미를 갖고 있던 유난한 사람이 나다. 인두다리미는 처음이긴 하지만, 위에 올린 숯의 온도만 잘 조절하면 나름 쓸만했다.

“근데 차서운…다림질도 할 줄 알았어?”

“신기해?”

“…응.”

하기사, 남자가 직접 다림질하는 걸 보기 어려운 시대지. 에스테야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랬다. 미묘하게 마법사보다 마녀의 권위가 아래고, 남자보다 여자의 권위가 아래다.

중근세를 뒤섞어놨으니 그럴 만 했다.

“솔직히, 태어나서 섹스만 연습한 줄 알았어.”

콜록.

“…에스테야?”

에스테야는 날 골리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는지,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벽을 짚고 바르르 떤다.

무슨 일이지?

“괜찮아?”

곧, 나는 에스테야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그 하얗고 가냘픈 다리 사이로, 내가 어젯밤 가득 채워넣었던 정액이 끈적하게 뭉쳐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흐으, 흑….”

“…저런.”

짧은 탄식말고는 해줄 게 없었고, 에스테야는 나를 한번 가느다란 눈으로 째려보곤 욕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알아서 잘 씻겠지.

다림질은 오래지 않아 끝났고, 에스테야도 오래지 않아 나를 다시 불렀다. 이유는 등을 좀 닦아달라는 거였다. 그 조그마한 등을 닦아주곤, 뒷목에 가볍게 입을 한 번 맞추었다. 잘게 떠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차서운.”

“왜?”

“내가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욕실에서 떠나주려는 나를 에스테야의 목소리가 붙잡는다. 참방이며 욕탕의 수면 위로 에스테야의 손이 올라왔다. 조그마한 손아귀에서 물이 덧없이 흘러내린다.

“에스테야.”

“…응.”

나는 그 곁에 앉아서, 잔뜩 젖은 에스테야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못하면 어때.”

“…어?”

에스테야의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좀 못하면 어때. 하지만 그거 아냐?”

내가 손을 가볍게 수면 아래로 집어넣자, 에스테야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 도망치는 모습이 제법 사랑스러웠다.

“뭐, 뭐, 뭘. 뭘 아는데, 뭘.”

당황한 목소리가 조그마한 입술 사이에서 떨린다.

“넌 이길거야, 에스테야.”

손끝에, 닿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거리로, 에스테야의 은은하게 빛나는 각인이 있다. 에스테야의 등이 욕탕의 벽에 바짝 붙긴 했지만.

“…알았으니까 손 치워주면 안 돼, 차서운?”

“그럼 얼른 씻고 나와.”

나는 손을 욕탕에서 빼곤, 옷깃에 대충 닦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소란스럽겠네.”

*

시계탑 앞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제기했고, 학생회는 그 안건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했다.

답은 하나였다.

결투 재판.

오전 열 시 삼십 분. 에스테야와 나는 세드릭 기스테르와 마주했다. 주변 백 미터 반경 밖으로 구경꾼들이 두터운 사람의 벽을 만들었다.

더 이상 끼어들지도 못하고,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두터운 사람의 벽.

동시에 그것은 눈길의 그물이다.

이곳의 결과는 칼리지에 소속된 모든 학생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다. 그 어떤 마법이라 해도 교수진을 포함한 칼리지 전원의 기억을 조작하지는 못한다.

주관은 세리니아 아드로프가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홍염의 아드로프 가문은 명예와 위신이 높은 곳이다.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공정한 판단을 해낼 것이다.

“지금부터…교내의 폭행사건에 대한 공정하고도 성실한 판결을 위해 결투 재판을 속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도(??)는 옳으니 패하지 않는 법. 옳은 자가 승리의 열매를 딸 것이요, 열매를 손에 넣는 자는 마땅히 옳을 것입니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문명을 이뤘음에도 허용되는 복수.

단순히 치사량의 뽕을 넣기 위해 만들어놓은 조잡하고도 조야한 세계관이다. 이 세상은 어찌어찌 그런 사회시스템으로도 굴러가고 있다.

한낱 하꼬 작가의 머릿속에서 허접하게 조립된 채로.

그런 시스템이라면 부술 수 있다. 나고 자라기를 이런 곳에서 살았던 이들은 제아무리 깨우치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본다 해도 할 수 없는 발상이다.

물론 기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에스테야는 악마의 살점을 손에 넣었고, 그녀를 탐하는 나를 불러냈으며, 나에게 예속되었으므로.

셋 중 하나라도 되지 않으면 지금의 결과는 만들어지지 않았겠지.

“에스테야 체라서스.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세드릭 기스테르가 가운의 소매를 걷으며 나직하게 물었다. 에스테야는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도 알고 있겠지.

비록 지금은 갈무리하고 있지만, 자신의 가냘프고도 조그마한 몸 속에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강대한 마력이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에스테야는 천천히 허리를 펴고, 가운을 벗어 나에게 던져줬다. 머리 위의 화관에서 짙고 농밀한 벚꽃의 향이 가득 퍼진다. 에스테야의 몸 속에서 용오름처럼 몰아치는 마력이 주변의 바람을 바꾸었다.

세드릭의 커진 눈이 지금처럼 보기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세드릭 기스테르 학생회장.”

에스테야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았다.

세드릭은 비록 늑대이지만, 지금의 에스테야는 차곡차곡 분노가 쌓인 천둥새라는 것을.

지상의 미물이 재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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