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알케믹 퀘스트
* * *
“쿠훠아아앗!!!!!!”
검은 언덕이 덮쳐들었다. 지면을 박차 뒤로 뛰었다.
왼손으로 모노클을 올려 쓰며 오른손을 전방으로 지향했다.
일순간 어그러짐이 자아내진 아공간에서 눈부신 섬광이 치솟았다.
“쿠화아아아아악!?”
헬 오우거가 자신의 주먹을 우에서 좌로 관통하고 꽂힌 금속체에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눈빛을 이글댔다.
나의 마력색, 검붉은 흑적색의 반투명하게 일렁이는 기운에 휘감긴 오른손을 휘돌렸다.
그와 동시에 헬 오우거의 주먹에 박힌 검신이 크게 회전해 손등을 양단해 버렸다.
헬 오우거의 오른쪽 손등을 썰어내고는, 방향을 전환한 검신이 곧장 녀석의 목울대를 향해 직행했다.
“크어하으윽!!! 크으흐으으윽!?”
다급한 불이 눈에 켜진 헬 오우거가 얼굴로 치닫는 검신을 황급히 남은 왼손을 들어 막았다.
손바닥을 꼬챙이처럼 꿰뚫은 검신이 틀어막힌다.
염동력에 휘감긴 오른손을 휘젓자, 손바닥에 박힌 검신이 남은 왼쪽 손등도 갈라 버리고는 헬 오우거의 면전으로 직행했다.
“쿠화아아악!!!!!!”
콧대에 검신이 틀어박힌 헬 오우거가 자지러지는 흉성을 내질렀다.
검붉은 마혈을 철철 흘리며 인중과 입가를 흠뻑 적시고는, 턱밑에 거대하게 맺힌 핏줄기를 뚝뚝 흘려낸다.
염동력. 마족들과 악마들이 참으로 애용하는 기술.
“크어하아아악!!! 크거거거거걱!!!”
염동력에 휘감긴 검이라는 변칙술을 예상하지 못한 녀석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면서도 언덕만큼이나 커다란 거체를 뒤로 물리며, 손등 절반이 날아간 양손에 힘을 집중했다.
일순간 절단면들에서 검붉은 핏방울들과 살점들이 요란히 튀긴다.
매드 고블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속으로 살점들이 치솟는다.
순식간에 재생된 손가락들과 손등들이 죽순처럼 쑥 돋았다.
녀석이 돋아난 왼손의 손가락들로 콧대에 박힌 검신을 낚아채려는 순간, 염동력에 휘감긴 손날을 내려찍었다.
“크흐으으읏!!!!!!”
콧대에 박힌 검신이 그대로 직하해 입술과 턱밑을 넘어 명치 밑의 아랫배까지를 갈라 버렸다.
얼굴에서 상체를 휘가르는 기나긴 혈선에 녀석으로부터 갈라지는 흉성이 터져 나왔다.
“5급 마법검.”
가이아 세계에는 다양한 마법들이 존재하며, 1위계에서 10위계까지의 매직 클래스로 분류된다.
45골디아. 한화로 45만 원.
부여된 급수에 걸맞게, 사용자의 마력의 전도로 5위계까지의 마법을 담아 부가적인 강화를 발생시킬 수 있는 마법검.
5급에서 7급 사이를 애용하는 마족들이 흔하게 쓰는 급수의 마법 무기.
지상의 양질의 귀족용 강철검은 최소 300골디아를 호가, 마법 무기는 최하급인 10급부터 마법이 부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반값에 필적하는 가격대를 형성.
온갖 희귀 금속 광산들이 널리고, 채광술과 마법의 발달로 마도구가 흔한 마계이기에 가능한 파격적으로 싼 가격.
무구점에서 판매하는 적당한 가격 취급으로, 파손되어도 미련이 없이 쉽게 버릴 수 있는 애용품이었다.
아랫배에 박힌 검신에 손아귀를 내꽂는 헬 오우거에게 염동력으로 휘감긴 주먹을 비틀었다.
“꾸어하아악!!!!!!”
뱃가죽에 틀어박혀 소용돌이처럼 뒤꼬이는 검신에 헬 오우거가 혓바닥을 빼물었다.
악귀처럼 흉물스러운 안면에 혈관이 바짝 곤두서며 떨쳐내려던 손짓이 멈칫한다.
놀고 있는 왼손을 내뻗으며 마석화를 발동, 꽤나 고비율의 마력을 투자하며 크기를 불려 나간다.
비스듬히 들춘 허공에 사람의 몇 배도 넘어갈 듯한 눈부신 수정체가 결집된 순간, 전방으로 마력을 주입하며 형체를 파쇄해 버렸다.
발사와 동시에 파열된 수정체들이 찬란한 빛무리를 이루며 아득히 흩뿌려졌다.
“쿠와하아아아악! 크걱거거거거걱!”
온몸에 뾰족한 형태를 이룬 석편들이 산산이 박히는 통증에 헬 오우거가 팔뚝들을 들추며 막아낸다.
초전에 아주 쉬운 먹잇감이라 오판하며 달려들던 흉맹스러운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진정한 적수를 포착한 붉은 귀화들이 타오르는 눈빛들이 맹렬히 이글댄다.
“크으흐으으으!!!”
태세를 완전히 전환한 녀석이 전신에 힘을 집중했다.
그러자 전신에 마기가 휘돌며 고속의 재생력이 발휘되었다.
발목부터 머리끝까지 벌집처럼 마구 박힌 마석편들이, 마치 타이어에 이쑤시개들이 박혔던 듯한 형상으로 마구 튕겨져 나온다.
온몸에 어지러울 정도로 가득 박혔던 자상들이 순식간에 말끔히 복원되었다.
아랫배에 박힌 검신도 재생하는 살점에 밀려 튀어나올 듯이 꿈틀댄다.
“쿳!”
녀석이 자신의 가장 큰 장기를 자랑하듯 흉악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목적은 완수된 뒤였다.
“침투 완료.”
손짓으로 다루던 염동력을 눈빛으로 전환하며 응시하자, 녀석의 아랫배에 내꽂혀 뒤꼬이던 검신이 쑥 뽑혀 나온다.
검붉은 마력에 휘감긴 비검이 응시하는 방향에 맞춰 자유롭게 떠다니며 헬 오우거의 여기저기로 날아든다.
손짓으로의 조종을 눈빛으로 전환하며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한다.
왼손으로 검지를 1회 그어 화마석의 술식을 새겼다.
“화염.”
“크아하아아악!!!”
10미터에 달하는 시커먼 거체가 온몸에서 치솟은 폭염에 나뒹굴었다.
거인족에 필적하는 거체가 요란하게 나뒹구니, 미약한 땅울림이 일어나며 지진이 일어난 듯한 착각이 자아내졌다.
왼손으로 검지를 2회, 3회 순차적으로 그어 수마석과 전마석의 술식들을 재차 새겼다.
“빙결. 전격.”
“쿠와아아아아악!!! 크허어어억!!! 구거거거거걱걱!!!”
연달아 찾아든 냉동과 감전의 재해에 헬 오우거가 온몸을 격렬히 비틀었다.
헬 오우거의 제대로 발동되기 시작한 재생력과 전신으로부터 침탈하는 속성들이 맹렬한 싸움을 펼친다.
허공에서는 그저 응시하는 눈짓에 따라 검로를 자유롭게 바꾸는 비검이 고통받는 헬 오우거의 전신에 푹푹 칼침을 내줬다.
필사적으로 재생력을 발동하며 이겨내려는 헬 오우거에 왼손의 손가락을 튕겼다.
“석화.”
“크으흐으으읏!?”
헬 오우거의 전반신에서 돌연 찬란한 빛무리가 번져 나갔다.
이미 매질로써 침투시킨 나의 마력이 상처들을 마석화시켜 버린 것이다.
“끄으흐으으읏!!! 크그그그긋!!!”
헬 오우거가 상어이빨들을 짓씹으며 자신의 육체에 일어나는 현상에 곤혹을 금치 못했다.
주변에 세찬 바람이 자아내질 정도의 맹렬한 기운을 일으키며, 보다 기운을 끌어올려서 더욱 드높은 마기를 결집한다.
하지만 전신을 침탈하는 이물들을 떨쳐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자신의 굴강한 재생력을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원천들이었기 때문이다.
비검으로는 헬 오우거의 마석막에 덮이지 않은 나머지 부위들을 쑤셔대고 도려낸다.
오른손을 내뻗어 가벼운 수인을 맺자 허공에 서서히 공전하는 복잡한 수식의 마법진이 전개된다.
마력을 주입하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남발되는 사격형 마법진으로부터 마탄들을 폭격하듯 내쏟았다.
온몸을 비틀며 마기를 집중하는 헬 오우거가 자신의 재생력을 둔화하는 이물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현란한 검로로 날아다니는 마법검은 마석막이 덮지 않은 부위들에 절묘하게 칼침들을 놓으며, 오른손으로부터 끊임없이 난사되는 마탄들은 거체의 피부를 두드리고 살을 터트린다.
왼손을 네 차례 휘저어 풍마석의 술식을 새겼다.
“풍인.”
“그아하아아악!?”
검은 거체를 뒤덮은 마석막들로부터 연녹빛의 반월형 칼날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전반신을 뒤덮은 근원지들에서 바람의 칼날들이 수없이 일어나 주변부를 난도질한다.
“크하아아아악! 그, 거거거거거거걱!!!”
마침내 끊임없이 닥쳐드는 속성들의 재해에 굴복한 헬 오우거가 비명에 가까운 포효를 내질렀다.
내찌르는 비검과 두드리는 마탄들은 거들 뿐이다.
증식을 발동해 녀석을 크고 아름다운 마석으로 탈바꿈하려던 찰나였다.
“쿠, 아아아아아악!!!!!!!!!!”
일순간 헬 오우거의 쩌렁한 분노가 대기를 갈랐다.
자신의 패력에 굳건한 자신을 갖추고 있었으나, 결코 대적할 수 없는 적에 대한 원초적 감정의 폭발이었다.
증폭된 검붉은 마기가 검은 거체의 표면을 감돌며 맹렬하게 휩싼다.
상반신을 증식하듯이 뒤덮은 찬란한 마석막들이 일소되듯이 걷혀 나간다.
이전보다 비할 수 없이 강맹한 마기의 기세가 감돌며 여지껏 입은 상처들을 일시에 치유한다.
비검의 조종과 마탄의 난사를 정지하고는 녀석을 주시했다.
등판에서 검붉은 살점들이 날개의 형상을 이루어 비집어져 나온다.
어깨의 위와 겨드랑이가 갈라지며 위아래로 두 쌍의 팔들이 더 돋아난다.
허리춤에서는 영락없는 꼬리뼈의 형색이었던 것이 기나긴 형태를 이루어 치솟는다.
“진화하냐?”
나에게 입었던 모든 상처들을 완치한 녀석이 서서히 거체를 일으켰다.
기존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하게 더욱 흉악해진 풍모의 녀석이, 무던한 살기를 담아 세찬 광소를 터뜨렸다.
“크, 카카카카캇!!!”
마계에는 지상과는 다른 고유한 전력의 분류법이 존재한다.
마강계(??).
폐마(??). 투귀(?). 암영(??). 적혈(赤血). 칠흑(??). 재해(災?). 멸계(??). 종언(??).
평균적인 마족의 힘은 투귀급과 암영급의 사이에 위치하며, 종언급은 마계의 정점에 서는 존재인 마왕과 지상의 용사와 같은 최강자들이 해당된다.
거칠고 투박한 분류법이나 적혈급은 마을을, 칠흑급은 도시를, 재해급은 왕국을, 멸계급은 대륙을, 종언급은 세계를 날릴 힘을 지닌다.
동일한 영역이라도 갓 진입한 자와 진입하고 수백 년이 되는 자와 다음 단계의 진입을 앞두는 자도 터무니없이 거대한 격차가 난다.
평범한 마족들은 지상의 중상급 모험가들과 비슷하며, 마계의 마물들과 마수들은 폐마급보다도 아득한 이하에서 지상의 견습 용사들이 해당되는 재해급보다도 강한 개체들이 출몰하곤 한다.
그런 존재들은 자연의 특별한 영역을 잠식해, 해당 지역의 마물들과 마수들에 군림하며 터줏대감처럼 행사할 맹주가 된다.
물론 맹주가 나타났다는 소문만 돌면, 피와 싸움에 미쳐 사는 마족들이 몰려들어 신나게 사냥당할 뿐이지만.
마계의 상징적인 마수인 블랙 베히모스와 눈앞의 헬 오우거가 그런 극소수 존재들의 예시다.
자연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맹주가 되기에 적합한 패력의 그릇.
맹주라면 현재의 나로서는 단신의 토벌이 불가능할 장벽.
하지만 지금 이 헬 오우거는 가능하다.
아직 맹주가 되지 못하고, 현재 거듭나려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에 걸쳐 온갖 마종들의 마석들을 포식하고, 길드에서 측정을 마친 나의 힘은 공식적으로는 암영급.
공방에서 기다리는 리나 씨는 초기에는 폐마급이었으나, 내게 꾸준한 흡정을 통해 암영급의 초입까지 강해졌다.
내가 강해질수록 나의 정기를 먹는 그녀 역시 강해지며, 몽마는 강해 봤자 암영급인 한계를 나와 만남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다.
나의 전력은 암영급의 정점이며, 파워 스톤을 발동했을 시의 방어력만큼은 명백한 적혈급의 영역.
지금의 헬 오우거는 모든 면모가 적혈급에서 시간적 경과를 통해 맹주가 되려는 강자.
상성과 재생력의 싸움이었다.
“크하아아아악!!!!!!”
여섯 팔들과 날개들을 활짝 떨친 헬 오우거가 육편으로 이루어진 혈익을 펄럭여 서서히 비상한다.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하고도 검은 거체가 서서히 떠오르는 모습이 파괴신의 재림을 연상시킨다.
살점과 핏물을 흩날리는 날개를 펄럭이는 녀석이, 붉은 상공의 드높은 고도에 도달해 내려본다.
힘껏 들춰진 오른팔에 일대의 대기가 떨려 울릴 정도의 터무니없는 힘을 결집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검은 태산이 되어 낙하했다.
“카아아아아앗!!!!!!”
10미터의 육완 거인이 날개를 펄럭이고 꼬리를 휘가르며 급강하한다.
상공이 아득하게 떨리며 요란한 흉성이 일대에 울려 퍼진다.
이 일격으로 끝내 버릴 기세.
“최종 페이스냐?”
나의 존재성과 신념을 걸고 입증할 때가 되었다.
공격이 강한지, 방어가 강한지.
방어가 굳건하다면, 그 어떤 공격도 무너트릴 수 있는지.
“하아아아아압!!!!!!”
양팔을 떨친 나는 전력을 개방했다.
일순간 눈부신 빛기둥이 나의 전신에서 치솟아 사위를 아득하게 물들여 나갔다.
마계의 붉은 풍광을 일시적으로 환한 빛으로 채울 정도였다.
섬광이 걷히고 난 뒤에 나의 모습은 완벽히 변화해 있었다.
나는 마석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되었다.
나의 진정한 모습이자 본질을 이루는 구성.
한없는 마력적인 성질을 지녔으며, 마력에 따라 그 어떤 굴강한 금속보다도 굳건하게 거듭나는 존재.
가장 단단할 수 있는 원천.
눈부시게 빛나는 찬란한 마석인이 된 나는 왼팔을 하늘로 들췄다.
상공으로부터 쇄도하는 대충돌에 대비했다.
사명이 걸린 신념을 입증하기 위해.
보다 상위의 단계로 들어서기 위해.
“크후우우우웃!!!!!!”
하늘로부터 쇄도하는 검은 파괴신에 노골적인 비소가 걸린다.
네깟 작고 하찮은 놈이 과연 막을 수 있을까나의 덧없는 비웃음.
바로 코앞에 쇄도한 거체가 드리워지면서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커다란 재해가, 어떤 태산조차 으깰 듯한 전력의 주먹을 내질렀다!
“크르으으으으!!!!!!”
일순간 주변의 공기가 터져 나갔다.
충돌의 여파를 버티지 못한 대기가 모조리 떨리며 부르짖는 것이다.
세찬 황사가 폭발적으로 발생하며 일대에 광풍이 휘몰아쳤다.
어떤 굳게 치솟은 요새도, 일격에 가루로 분쇄할 일격이었다.
“크, 크흐, 크흐으……!”
필히, 내가 처참하게 짓뭉개졌으리라 믿는 헬 오우거가 주먹을 서서히 풀어 갔다.
그러고는, 놀라움에 시뻘건 눈알을 치켜떴다.
경악으로 완벽하게 부릅뜨인다.
“크흐아아아아악!? 쿠와아아아아악!!!”
나는 헬 오우거의 전력의 일격을 왼손만으로 받아낸 채 가볍게 웃었다.
대처하는 적의 세기와 형태에 따라 세분화된 방어의 단계를 지닌다.
포스 배리어. 매직 배리어. 실드. 마석막. 아다마스. 마석화.
마법, 무장, 마석의 기본적 조합에서 발생하는 도합 육중의 시너지가 극강의 방어를 구사한다.
그렇게 강하지 않은 공격이라면 아다마스 내부의 피부에 마석막을 엷게 코팅하는 식으로도 능히 받아낼 수 있지만, 피부와 근육과 골격까지 통째로 마석화하는 전신의 방어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헬 오우거의 전력의 일격은 도합 육중의 방어식에서 마석막까지를 깨고 아다마스 너머의 마석화된 육체에 막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안 했다면 결국 깨졌을 것이기에.
실시한 마법들은 현재 나의 수준인 5위계 이하의 마도서들을 독학으로 습득한 것들.
이후에도 여러 다채로운 속성들의 방어계 마법들을 습득한다면 십중, 이십중의 규격화된 방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쿠하아아아아악!!! 크하아아아아악!!!”
헬 오우거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경악성을 질러댔다.
10미터도 넘지 않을까 싶은 거인이 불과 2미터도 되지 않는 인간에 막힌 형상이다.
철벽의 돌부리처럼.
“어떤 강대한 공격이라도, 버티면 결국 기회가 온다.”
여전히 내뻗은 왼손에서 완전히 깨져 버린 마석막을 재차 전개해 헬 오우거의 체고에 필적하게 확장했다.
경악한 헬 오우거가 육중한 기둥 같은 여섯 팔들을 마구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요란한 타격음들이 찬란한 수정체의 물결처럼 펼쳐진 마석막 표면에서 울려 퍼졌다.
깨트릴 수가 없다. 전력을 담은 일격으로만 나의 방어를 뚫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에 깨진 유리처럼 간헐적으로 금이 가나 주입하는 마력에 금세 수복된다.
“극강의 방어로, 극강의 공격마저 무너트릴 기회가.”
생명의 공포에 가깝게 발광하는 헬 오우거에 마석막을 밀어붙였다.
“크어허어어억!?”
헬 오우거의 건물만큼이나 커다란 거체가 전진하는 마석막에 거짓말처럼 떠밀려 나갔다.
마석막에 세찬 마력을 주입해 밀어붙였다.
“방어가, 공격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헬 오우거가 튕겨져 나갔다.
“쿠하아아아악!!!”
장벽처럼 거대한 마석벽에 강타당한 10미터의 헬 오우거가 헝겊 인형처럼 나가떨어졌다.
파열한 수정체들이 눈부신 빛무리로 산란하는 속에, 족히 100미터는 넘어가게 지반에 거대한 궤도를 생성하며 나뒹굴었다.
배리어 크래시.
보호용의 마석막을 공격용으로 발사하는 기술.
“크, 흐, 으으으으……!”
전신의 골격이 으스러진 헬 오우거가 엇갈린 여섯 팔들과 두 다리들을 비꼬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시마법 블링크를 실시, 단 몇 번의 점멸만에 아득히 멀리 나가떨어진 헬 오우거의 발치에 도달했다.
마석막의 충돌에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헬 오우거가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내게 전력의 일격을 날리느라 마기가 소진, 재생성이 극도로 저하된 것이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극강의 공격이 있다면, 극강의 방어도 있는 법이다.”
나는 철벽이다.
나는 극강의 탱커를 지향한다.
나는 극한의 방어를 구사하는 존재다.
헬 오우거의 시뻘건 눈알들이 희미하게 떨렸다.
힘으로 자부하던 자신보다 더 강한 방어력을 갖춘 존재에 대한 체념, 그리고 인정이었다.
오른손으로 차원구를 열어 다시 패검된 상태의 검집을 세로로 붙잡아 꺼냈다.
염동력의 주입과 함께 패검된 마법검에서 검신이 발검, 방향을 뒤집은 검극이 곧장 누운 헬 오우거의 이마로 날아갔다.
퓨슛! 두부를 꿰뚫는 선명한 관통음.
두뇌가 관통당했음에도 헬 오우거의 눈알들이 미약하게 깜빡대며 사지가 꿈틀댄다.
헬 오우거는 두뇌와 심장을 모조리 파괴하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절명하지 않는다.
목적은 현재 나의 마력의 매질인 마법검을 헬 오우거에 고정하는 것이었다.
“석화.”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헬 오우거의 이마에 박힌 마법검이 마석화해 얼어붙었다.
“증식.”
재차 손가락을 튕김과 함께 헬 오우거의 이마로부터 눈부신 마석의 장막이 뻗어져 나왔다.
헬 오우거의 전신이 순식간에 찬란한 마석막에 뒤덮였다.
마석상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손가락들을 까닥이는 게 보인다.
실로 강대했던 대적의 근성을 찬사하며, 왼손으로 14회의 술식을 그었다.
“창검.”
파차아아앙!
헬 오우거의 전신에서 마석으로 이루어진 검신들이 고슴도치처럼 치솟았다.
육신 내부로부터 치솟은 무수한 검신들에 형체가 완전히 갈려 전방위로 흩날렸다.
아득한 허공에 떠올라 떨어지며 돌아오는 마법검에 세로로 붙잡고 있는 검집을 내밀었다.
“토벌 완료.”
카앙, 칼자루가 검집에 맞물리는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전신의 마석화를 해제한 나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른손의 마법검을 차원구에 재차 수납하며 다시 왼손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종식.”
구현되는 마석화 현상에 대한 중단 명령과 함께 석편이 된 헬 오우거의 육체가 다시 풀렸다.
본래의 빛깔들을 되찾은 살점들에서 끈덕진 유혈과 육편이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완전히 신체 한복판에 폭탄이라도 직격해 산산조각이 난 형색이다.
재차 손가락을 튕겨 휴대용 차원구를 열자 시험관, 플라스크, 잭나이프, 핀셋들이 개당 몇백 개도 넘게 둥실둥실 흘러나온다.
나의 포켓 디멘션에는 언제나 여러 상황에 대비해 거의 모든 도구들을 완비하고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염동력에 휘감긴 실험 도구들이 의지에 발해 여기저기에서 절단하고, 분리하고, 수납하며 열일한다.
재생력의 상징인 오우거의 피는 그 자체로 포션의 농도를 폭증시키는 최고급 소재다.
포션의 용도로 쓰이는 혈액, 온갖 무구나 밧줄을 만들 때 쓰이는 힘줄, 자체로도 갑옷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가죽, 건축물과 비품의 합성재로 쓰이거나 여전히 연금술을 비롯한 다양한 마술들의 소재로 쓰일 수 있는 근육과 골격.
하나하나가 귀중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팔아도 돈이고, 써먹어도 돈이 굳는다.
전생의 버릴 부위가 없다는 소와 같은 녀석이다.
“어떻게 한다…….”
눈앞의 여전히 마석화를 유지하고 있는 헬 오우거의 심장을 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완전한 마석으로의 변환을 실시하고 있지 않기에, 이대로 풀면 심장으로 돌아가고, 실시와 함께 온연한 마석으로 변화한다.
분주히 수납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팔짱을 낀 손가락들을 토닥이며 거닐었다.
“무엇을 택한다…….”
돈과 힘.
꿩을 잡으러 왔다가 공작이라는 월척을 낚은 형색이다.
헬 오우거 하트.
킹 코카트리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익의 최소 네 배는 가뿐히 상회할 물품이 나왔다.
이거야말로 헬 오우거를 잡는 가장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이유라 할 수 있었다.
헬 오우거의 심장을 마석화한다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걸 수익화하면 에우포리아의 몇 개월분 수입에 해당하는 이익이 발생한다.
힘과 돈.
무엇을 선택할까?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힘.”
나의 의지의 발현과 함께 헬 오우거의 심장이 급격히 형상을 이루었다.
중앙에 마소가 특정한 흐름의 형태를 이루고 일렁대는 마력의 돌덩이.
헬 오우거의 심장이 완벽한 마석이 되었다.
지반을 박차 쏘아진 추진력의 발차기로 마석의 중앙을 깨부수고 반대편에 착지했다.
깨진 마석으로부터 즉각 일렁이는 마소가 방출되어 나의 명치로 빨려들었다.
심장에 이식된 호문쿨루스의 영핵이 맥동하며 발생한 에너지를 흡수한다.
여지껏 흡수했던 어떤 것보다도 방대한 에너지가 세차게 순환하며 육체를 진화로 이끈다.
그러고는, 내부에서 전신의 단위를 재구축하듯 일어나던 세찬 변화가 가라앉았다.
나는 내게 일어난 극적인 변화에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적혈급에 진입했네.”
마왕군의 중급전사들과 필적할 전력.
투귀급들인 준전사들과 암영급들인 하급전사들로 이루어진 통상적인 마족들은, 무더기로 덤벼들어도 먼지털이로 털어 버릴 수 있는 영역에 마침내 들어선 것이다.
그래야 같은 적혈급이라도 나보다 수백 년 이상의 경험치를 지닌 강자들, 아예 칠흑급 이상부터는 어떤 저항을 해도 일격에 즉사하겠지만.
빨리 더욱 좋고 강한 마석들을 포식하고 더 강해질 필요성이었다.
돈도 벌어 집도 좀 크게 늘리고, 집에서 기다리는 여자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한동안의 일을 마친 도구들이 최후의 갈무리를 마치고는, 줄줄이 차원구로 되돌아갔다.
차원구를 닫으며 문득 지평선을 돌아보자, 거대한 왕관들을 쓴 수많은 닭대가리들이 기웃대고 있었다.
킹 코카트리스들이 둥지에 남기고 간 새끼들이 걱정되서 돌아왔으나, 헬 오우거를 쓰러트린 내가 두려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수들이라 해도 어엿한 이 마경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
딱히 이유도 없는데 새끼들까지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목적은 이루었다.
헬 오우거를 솔플한 것만으로 수익의 배분 문제도 없이, 한화로 수천 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원큐에 벌어들였다.
돈은 충분히 벌었다. 나의 여자가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텔레포트 스크롤 따위는 몇백 개도 살 돈을 벌었기에,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미련한 짓은 불필요하다.
하늘을 올려보았다.
붉던 하늘이 어느새 검붉어져서는, 검은 해가 빨간 달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5일이나 지내다 보니 이젠 아늑한 집처럼 느껴지는 마경의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허공에 손을 흔들어 차원구로부터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위아래를 붙잡고는, 중간의 봉인지로부터 청량한 마력의 기운이 은은히 감도는 두루마리를 즉각 찢었다.
일순간 발끝이 붕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주변에 흩어진 풍광이 빠르게 흘러간다.
통에 넣은 배경을 고속으로 휘돌리는 것처럼.
초반에는 익숙해지기 힘들었던 현기증.
잠시 시간이 지나자, 너무도 그리웠던 형상들이 서서히 느릿하게 재구축되었다.
“마이 스위트 홈.”
어둠 속에서도 마석등으로 상시 밝게 타오르기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문양.
에우포리아의 상징인 금장미가 현관 위에 매달린 간판에서 발광하고 있다.
이제 완전히 어둑해진 사위, 공터 주변의 숲에서 희끗하게 보이는 자줏빛과 보랏빛과 분홍빛이 아름다운 나뭇잎들.
리나 씨가 기다리는 곳.
몽환의 숲 루스카의 초입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왔다.
“후련하다.”
나와 리나 씨가 정하고 사용하는 텔레포트 스크롤은 습격과 위장과 잠복에 대비해 세 가지 용도로 나뉜다.
공방의 거실. 공방의 전방 50미터 정도의 숲길. 공방의 후방 100미터 정도의 숲속.
그중 내가 찢은 것은 공방의 현관이 바로 보이는 50미터 정도 떨어진 외부였다.
어차피 돌아가니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아무 스크롤이나 찢은 게 이렇게 되었다.
“상관없으니까.”
홀가분하게 집으로 터덜대며 돌아가던 때였다.
나의 호문쿨루스의 예민한 감각들은 이질적 냄새들을 감지했다.
코를 찌르는 불쾌한 짐승 냄새. 화산 한복판처럼 진한 유황 내음.
터벅, 묵직한 무게를 담은 발소리가 울린다. 명백히 인간이 아닌 것.
“밤손님들이 있으시군.”
어둠 속에서 네 발로 서성이는 말만한 시커먼 형체들.
붉게 일렁이는 눈들에서는 눈꼬리들이 이어지며, 벌어진 입새들에서는 유황의 숨결들이 넘실댄다.
“크르르륵……!”
“컹…!”
명백하게 낮게 내리깐 저음들이나, 목청을 돋워 짖는다면 우레 같을 성량들.
“지옥의 개새끼들이 여기에는 왜?”
헬하운드들이 공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