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내가 왔다.
검은 재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뜨거운 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이게 대체……?”
“습격인가?”
낙양처럼 전체가 불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불이 나고 각각 병장기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실수로 인한 화재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전쟁, 이것은 검과 창이 오가는 전쟁터였다.
하필이면 여포랑 내가 없을 때……!
“여포! 빨리 동탁 님이 있는 곳으로!”
“적토!”
“자, 잠깐만요! 저는요!?”
“……일단 저희를 따라오세요. 이대로 돌아가기엔 위험하니 저희 곁에 있는 게 안전하실 거예요.”
적토마와 호버바이크가 장안의 성문으로 향했다.
게다가 마운록까지 휘말렸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지? 대체 누가 수도인 장안을 습격한 것이지?
“조조? 아니야, 지금 민심을 살피기에 바쁠 테고, 원소는 공손찬이랑 전쟁 중이고, 장로는 우리를 칠 병력이 없어.”
짐작이 가지 않는다. 군웅 중에 우리를 직접 공격할 세력은 없었다.
“여포, 누군지 짐작이 가나요?”
“모르겠습니다, 최근 저희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봐야 마신교 정도가…….”
“마신교!”
맞다, 마신교!
초패왕의 부활을 꿈꾸는 멍청한 교단, 황제를 납치할 때부터 씨를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말이 안 돼요, 마신교 따위에 여포가 없다고 해서 장안이 뚫리는 것은 있을 리가 없는 상황인데…….”
“전쟁에 확정이란 없습니다. 수많은 상황과 그에 맞는 전략이 있죠.”
“그럼,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요?”
“간단합니다.”
씨익.
나왔다, 여포의 흉포한 미소.
“상황, 전략, 수적 차이, 그 모든 상황을 뒤엎기 위해 저는 항상 한 가지 길을 고집해왔습니다.”
“……설마?”
에이, 설마 아니지?
힘 하나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겠다는 소리는…….
“다 때려 부수고 아군을 찾은 뒤에 주동자를 찾아 족치면 됩니다.”
그게 맞네요.
잠시 여포의 지력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전쟁이다, 혼자서는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 아무리 여포가 일인 군단에 적합하다고 한들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엔…….
‘어?’
하지만 지금은 여포 혼자가 아니다.
지금 멋지고 잘생기고 머리 좋고 정(精) 속성 마법의 특화된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래요, 바로 저랍니다!
“여포 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그거 좋네요!”
“초, 초선님!?”
마운록이 마치 미친 사람 바라보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짜 가능성이 있는 전략이었다.
여포의 무력은 비유하자면 병장기로 싸우는 시대에 떨어진 탱크다. 멀리서 대포도 쏘고 가까이 가면 깔려 죽고 화살을 쏴도 전부 다 튕겨내는 규격 외의 존재. 하지만 단점은 제어가 안 되고 앞이 늪지대 같은 함정이 있어도 밀고 들어가는 저열한 AI에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포를 제어할 수 있는 남자! 여포를 (양물로)굴복시킨 남자가 바로 나다!
“마신교 딱 기다려라!”
야이 마신교 새끼들아!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여포를 끌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역적놈의 새끼들!
*
*
*
꺄아아악-!
“역발산기세의 마신님을 위하여!”
“초패왕을 위하여!”
장안의 안은 혼란 그 자체였다.
마신교 놈들이 장안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물들이 들이닥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마신교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장안에 울려 퍼지고 있을까?
“그만해 여보! 제발 정신 차려!”
“마신교를 위하여!”
바로 장안의 백성들이 스스로 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황궁을 향해 마신교를 찬양하는 백성들. 그 모습을 본 여포가 초선에게 마력 보호막을 씌어주며 말했다.
“……정신 조종? 아니, 느껴지는 속성은 흑 마법은 아닌데…….”
“뭔가 이상한가요?”
“제가 아는 정신을 조종하는마법은 흑 마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흑 속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군요.”
확실히, 흑 마법에 조종당하는 사람들에겐 어두운 기운이 풍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색깔은 흑색이 아니었다.
“붉은색…… 아주 새빨갛네요.”
“마치 피 같아요…….”
무슨 속성인지 궁금했지만, 생각만으론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황실 서고에서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고 게다가 장안의 있는 대규모 방어막을 뚫고 백성 대부분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라면, 상당히 실력자일 것이다.
“일단 놔두죠, 싸우지도 않고 그저 연호만 하고 있을 뿐이니…….”
“아뇨, 연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포는 연호를 외치는 백성을 쳐다보았다, 여포의 눈에만 보이는 작은 선.
“수명, 지금 수명을 바치고 있군요.”
“수, 수명을요!?”
“예, 아주 미약하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놔둬봤자 평생의 수명중 일부만 빠져나갈 뿐, 하지만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황궁으로 향하는 아주 가는 붉은 실선.
하지만 그 수는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도 남았다.
그 말을 들은 초선의 고민은 짧았다.
“황궁에 무슨 일이생긴 것이 분명해요. 어서 빨리 황궁으로 가요!”
황궁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는 것은 동탁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 초선은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제발, 제발 무사해…….”
제발 아무런 일도 없기를, 초선은 하늘에 기도하며 계속 빌었다. 그 사이 순식간에 황궁에 도착한 적토마와 호버바이크, 여포는 닫힌 문을 부수고 황궁에 들어섰다.
“아…….”
초선은 단말마를 질렀다.
-크엨!?
-크르르…….
“마물…….”
황궁에는 더러운 마물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다,”
초선은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몸에 하얀 증기가 보일 정도로.
“다 쓸어버려! 여포!”
여포의 방천화극이 빛을 발했다.
피처럼 붉은 하늘보다 더욱 진한 검붉은 마력의 파동이 수많은 마물들을 향해 날아갔고.
푸슈우욱-!
그 많던 마물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져 붉은 피를 쏟아내었다. 역겨운 광경에 마운록은 헛구역질을 했고 여포는 익숙하다는 듯이, 초선은 냉정한 눈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키엑?
-크라라라략!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훨씬 더 많은 마물들이 초선 일행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포는 한 번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한번 방천화극을 가볍게 휘둘렀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물들과 피로 물들어진 바닥. 초선은 그것을 냉정하게 바라보다 여포에게 말했다.
“……무시하고 가죠.”
“마물이 더 오고 있습니다.”
“황궁을 점령한 폭도에 비해 너무 약한 마물이에요, 아마도 양으로 발목을 잡으려는 거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약한 마물들을 계속 달고 다니면 귀찮을뿐더러 여포가 아닌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병력이 필요해.
초선은 말했다.
“연무장으로 가요.”
이 큰 황궁에서 동탁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더욱 인원을 늘리면 될 일.
“함진영을 찾아야 해요.”
끄덕.
마운록과 여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 적토마와 호버바이크.
연무장에 가는 길에도 수많은 마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포의 방천화극과 마운록의 창술에 순식간에 썰리는 마물들.
“확실히 약하네요, 시간을 벌려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함진영이 필요해요, 고순과 함진영이 모인다면이 정도의 마물들은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째서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함진영의 정신력과 단합력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들이라면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정신 조종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술법은 위력이 좋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최악의 가정이지만…….”
“설마…….”
“모두 죽었다면 움직이지 못하겠죠.”
마운록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 끔찍한 가정, 하지만 초선은 고순을 믿었다.
“그러진 않을 거예요, 고순은 그리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에요.”
“일 대 일이라면 몰라도 전쟁에서 고순은 쉽게 지지 않지.”
초선과 여포에 말에 안심한 듯 마운록이 숨을 내쉬었다.
곧 있으면 연무장에 다다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급박한 목소리가 연무장에서 들려왔다.
고순의 함성, 반가운 목소리였지만 급박해 보이는 목소리에 안심할 수 없었다.
서둘러 도착한 연무장엔 붉은 결계에 갇힌 고순과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함진영이 마물들의 포위에 갇혀 있었다.
“오호호호-! 그 유명한 함진영도 별거 아니군요!”
그리고 마신교로 보이는 한 여자가 마물들을 부리며 건방지게 웃으며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함진영은 무너질 듯이 위태로웠고 책임자는 그저 함성밖에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에 상황.해결하기엔 너무나도 전세가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그런 룰을 부숴버리는 존재가 있었다.
“젠장, 여기서 죽는건가.”
“초선 님의 공연, 한 번 더 보고 싶었어…….”
절망에 빠진 구원할 규칙 파괴자.
“야이 마신교 새끼들아──!!”
“……어? 이 목소리는?”
“저, 저기! 저기 붉은 말이 있어!”
“……장군!”
고순은 절체절명에 빠진 순간에 등장한 한 말과 여인을 보자마자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앞에 있는 초선은 장군과도 같은 톤으로 크게 외치며 함진영을 안심시켰다.
“이제 괜찮다!”
왜냐고?
“여포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