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0/21)

24...

“필민씨는 왕따 같은 거 안 당해봤죠?”

“.....왕따?”

“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해본 적 없죠?”

“나야 뭐.. 너무 평범해서.. 그리고 남학교엔 그런 거 별로 없어. 일진이나.. 지금 빵셔틀이라고 불리는 꼬봉같은 건 있었지만..”

“그렇구나..”

“떡볶이를 먹다가 갑자기 무슨 왕따 타령이냐?”

“저 여고 다닐 때 왕따였어요.”

“...네가?”

“네.”

“말도 안 돼!! 누구를 따 시킨 건 아니고?”

“참나.. 내가 누굴 왕따 시킬 여자같이 생겼어요?”

“그건 아닌데.. 집안이나.. 생김새나.....”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은 뭔가 모자란 사람일까요? 아니면 괴물처럼 생긴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나 약한 사람?”

“글쎄... 싸가지가 없거나.. 겁쟁이??”

“겁쟁이.... 그럼 겁이 많은 사람은 다 왕따를 당하게요?”

“그럼?”

“타겟이 되는 대상이 자기들과는 틀린.. 아니..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아빠의 과보호라고 해두죠.. 약혼자가 있다는 놀림은 그런대로 놀림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

“아빠가 학교에 절 데리러 왔을 때요.. 아!.. 전 항상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왔었어요.. 그래서 분식집도 못 가봤죠.. 하여튼.. 정말.. 그나마 있던 친구들하고 수다라는 걸 떨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약속부터 잡고 하굣길에 아빠한테 1시간만 놀다가면 안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엄마한테 부탁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땐 무서운 아빠지만 그래도 절 생각해주는 마음은 남다르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뒤에 있는데..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병균 옮는다고..”

“병..균??”

“..네. 병균..... 바이러스, 박테리아.... 요겡낑..빙쥰.....”

“아아!!”

보영이는 뭔가를 떠올리듯 초점 없는 시선으로 날 넘어 먼 곳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읊조렸다.

“죄송해요.”

“그래서? 아버님이 친구들 앞에서 그런 얘길 한 후에...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 거야?”

“왕따라기 보단.. 제가 병균이 되어버렸죠. 대화만 나눠도 옮는다고.. 밥을 같이 먹어도 옮을 수 있는 병균이요...”

“....”

“그래서..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대를 다니면서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또래 여자들이 찜질방이란 곳도 가고 노래방이란 곳도 간다는 말을 들을 땐.. 많이 부러워요.”

“..어떻게 견뎠냐?”

“...네?”

“고등학교 생활.. 그리고 대학생활까지.. 어떻게 버텼냐고..”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으니까... 상관없었어요.. 그냥 그런 사치는 나와는 거리가 먼 감정들이라고.. 어차피 민우씨의 아내가 될 여자로 교양이나 덕목만 갖추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지.. 우정이나 사랑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 억!”

얘기를 하는 보영의 표정이 너무나 씁쓸해서 보여 나도 모르게 꼭 끌어안게 된다.

“숨..막혀요.”

“네..”

“숨을.. 못 쉬겠다고요.”

“그래요.”

내 등을 툭툭 치던 보영의 손이 부드럽게 날 끌어안는다.

“필민씨는요.. 너무 따뜻해요.”

“뜨겁죠..”

“...”

“우리.. 친구 할래요?”

“....예?”

보영의 팔뚝을 잡은 채 난 몸을 떨어트려 보영의 시선과 똑바로 마주했다.

“친구요. 남자.. 여자를 떠나서 친구.”

“...친구끼리는 섹스 같은 거 안 하잖아요.”

“왜 안 해. 섹스프렌드란 단어도 있잖아요.”

“.....억지예요!”

“하여튼! 우리 친구해요. 사랑은 고통이나 아픔을 줄 수도 있지만.. 진정한 우정은 눈물만 준다잖아.”

“눈물이라뇨?”

“감동의 눈물.. 기쁨의 눈물... 같은 슬픔에 대한 동조의 눈물....”

“........”

“그러니까 우리 친구하자. 보영씨랑 친구하면 전 항상 감동, 기쁨의 눈물만 흘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 사랑보다는 차라리 친...욱!!”

갑자기 날 꽉 끌어안은 보영의 행동에 숨까지 막혀왔다.

그래도 가슴에 느껴지는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너무나 좋았기에 지그시 눈을 감게 된다.

“필민씨를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 매력의 늪에 빠져서 바둥거리다가 숨 막힐 텐데!?”

“으~.. 썰렁해!!”

“크크~~..”

“거기다가 음흉하기까지.. 아마 변태로 신고부터 했을 걸요.”

“까짓것 한 번 살다 나오지 뭐~. 사랑을 위해서라면.. 아니.. 우정을 위해서라면!!”

“필민씨는 1절만 하면 진짜 로맨틱한데..”

“그래?”

“네!!”

“이런 고릴라도 로맨틱 할 수 있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보영의 웃는 얼굴로 잠에서 깨게 된다. 

삭막한 병실 안이란 공간에서도 보영의 웃음소리가 잔상처럼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이곳도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일어나자마자.. 

사실 1시간정도의 쪽잠도 아닌 앉은 채로 졸던 난 보영의 웃음소리를 쫓듯 침대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걸어갔다.

보영의 고통스러운 섹스소리를 듣고 난 후 이틀이나 지난 오늘까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퇴원을 시켜 달라 협박과도 같은 강요를 했고, 생각보다는 쉽게 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퇴원 후 마디마디가 전부 끊어질 듯 한 몸으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청계천 4가의 세운상가였다.

“피..필민씨!!!”

깜짝 놀란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보영의 얼굴은 끔찍했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쉿~!!”

“네??”

우선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고 가방에서 무전기와도 같이 안테나 같은 뿔이 두 개 솟아있는 검정색 기계를 꺼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듯 귀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며 보영의 집 안의 온 구석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삐....삐....삐삐삐삐~~.... 삐..삐..............삐삐삐삐삐비~~..삐삐...’

“그게 뭐예요?”

“..”

“필민..씨??”

거실에 3개..

보영의 방에 2개..

욕실에 2개.....

드레스 룸엔 1개의 도청장치만이 있는 듯 보였다.

“뭐하는 거예요?”

“간호 좀 받으려고요..”

“네??”

“병원에서 퇴원했어요. 보영씨한테 간호 좀 받으려고요.”

“미..미쳤어요!? 민우씨가 보면 어쩌려고..”

내 예상대로 보영은 몰카나 도청장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이겠어요?”

“필민씨!!!!!”

“그것보다.. 괜찮아요?”

“...뭐..가요?”

“이리 와봐요.”

“뭐..뭐하게요!?”

난 보영의 손을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

“피..필민씨.. 뭐..”

회사를 그만 둔 후 전화조차 없던 보영의 행동으로 이틀 동안 민우놈에게 시달렸을거라는 내 짐작대로 보영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방금 갔어요..”

“..예?”

“민우..씨요.. 여기서 바로 출근한다고...”

“이틀...도안 여기서 자고 갔어요?”

“...”

“보영씨 침대에서 같이 잔거예요?”

당연한 걸 묻는 나였다. 약혼자 사이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당연한 걸 확인하듯 묻게 된다.

“아니요.”

“..그럼요?”

“여기서 출퇴근했어요.. 그리고 민우씨는 침대에서.... 전 거실에 있었어요....”

“.......아팠죠?”

“..네? 아니에요... 아플 리가 없잖아요. 민우씨 물건이...”

“.....”

“왜..그러세요?”

“이렇게 많이 부었는데.. 안 아파요?”

“....”

“왜 거짓말을 해요...?”

“........”

조용해진 욕실 안에서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이마에 한 방울의 물방울이 떨어진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짤 것만 같은 물방울은 두 방울이 되어 내 볼에 아픔을 선사하듯 두드리며 연이어 떨어졌다.

난 보영의 보지 언저리에 샤워기 물주기를 가져다 댔다.

차가운지 움찔거리길 잠시.. 보영이 엉덩이를 조금씩 빼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봐요.”

“그..만 해요.. 

“뭘!!! 그만..해요. 가만히 있어요.”

“.....”

“배는.. 안 아파요?”

“....괜찮아요.”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 좀 하라고요!!”

“....”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게 된다.

“......”

“왜 자꾸 참기만 해요!? 바보에요!? 천치냐고요!”

“필민씨....무서워요.” 

“....”

“전.. 정말 괜찮아요. 필민씨야말로..”

“전 괜찮으니까.. 여기 앉아 봐요.”

난 보영의 팔을 잡고 욕조로 이끌어 앉혔다.

머뭇거리는 보영의 태도에 또 화를 내며 허벅지를 잡고 크게 벌린 뒤 한참동안이나 차가운 물줄기를 계속 뿌려댔다.

그나마 붓기는 좀 가라앚은 듯 보였지만 피가 조금이었지만 분명 물줄기에 섞여 바닥에 흐르는 걸 보며 더 세게 샤워기를 쥐게 된다.

“전 정말 괜찮은데...”

“세수도 못 했죠?”

“...네?”

“앉아요. 이것도 다 벗고..”

“자..잠깐..”

민우놈은 자신의 여자라는 보영에게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이 삼일동안 보영을 구속하고 괴롭힌 게 분명했다.

난 보영의 손을 뿌리치며 옷을 완전히 벗겨 알몸으로 만들곤 욕조 안에 앉혀 씻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씻기듯 몸의 구석구석 전부를 적신 후 비누칠을 하기 위에 손을 비벼 거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거 말고...”

“...네?”

“저기.. 바디 샤워....”

“......”

“민감해서.. 알러지가..”

“.....”

끓어올랐던 화가 풀린 것도 누그러진 것도 아니었지만 보영이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가리킨 펭귄모양의 통을 보게 되자 살짝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통의 모양도 모양이었지만 쪼그리고 앉아 홀딱 젖은 보영이가 손가락을 치켜세운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난생처음으로 여자를 씻겨본다.

난 샤워를 할 때 3분 안에 끝을 내는 버릇이 있다. 비누칠을 온몸에 하며 이빨까지 닦았고 귀찮을 땐 그 와중에 머리까지 비누로 대충 감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보영이를 씻기는 지금은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하게.. 온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보영의 목덜미로 시작 된 거품은 곧 온 몸을 뒤덮었고 볼륨감이 최대조인 가슴과 엉덩이는 더 집중해서 닦이게 되었다.

간지러운지 움찔거리며 피하는 보영이었지만 난 무시하고 최대한 열심히 씻겼다.

사심없는 마음으로 보영의 부드러운 피부를 손 전체로 느끼면서 말이다.

“병원에 가요..”

화장대 앞에 앉혀 놓고 머리까지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내게 조심스럽게 꺼낸 보영이의 말이었다.

“교통사고였잖아요. 이렇게 빨리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삼일전에.... 스피커 폰이 안 끊겼었어요.”

“..네?”

“다 들었다고요.”

“..무.뭘요?”

“.....”

“전 차가 받은 거지만.. 보영씬 아니잖아요. 아침까지 울었죠?.. 그것도 숨어서..”

“....”

짐작대로 보영은 며칠 동안이나 한 숨도 못자고 아파한 게 분명했다.

심하게 부은 보지와 붉게 멍든 그 주위까지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하게 된다. 

“뭐였어요?”

“...”

“민우 ㄴ.....씨가 가져온 게 뭐였냐고요. 아직 안 버렸죠?”

“.....저기... 저거요.”

발가벗은 채 의자에 앉아 있던 보영이 또 손가락을 세워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인 물건들을 가리킨다.

티슈와 수건..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살짝 형태만을 드러낸 검은색의 덩어리를 발견한 난 두 손가락을 세워 조심스럽게 들어본다.

두께가 내 팔목만한 검은색의 고무덩어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변강쇠 콘돔이었다.

흉하게 돌기까지 여기저기에 나있는 검은색의 콘돔은 정말로 내 손목만큼이나 두꺼워 보였다. 

“......”

“그거...버..려요.”

보영이는 지금까지 차마 만질 수 없었던 물건인양 내가 손에 들자 겨우 버리라고 부탁을 한다.

수건 위에 던져놓고 돌돌 말아 쓰레기통을 찾아 거실로 나간 난 아까 울렸던 경고음의 방향을 향해 아주 잘 보이도록 걸어가 수건채로 버렸다.

“보영씨!!”

“..”

“보영씨!!”

내 부름에 수건으로 대충 몸을 가린 보영이 얼굴만 빼꼼 거실로 내민다.

“배 안고파요?”

“.....별로요.”

“그래도 먹어야죠. 어제부터 한 끼도 안 먹었잖아요.”

“별로 생각 없는데..”

“샐러드 만들어 드릴게요.”

“그런것도 만들 줄 알아요?”

“그럼요!. 내가 누군데.. 아!.. 그것보다.. 옷부터 입어요.”

“.....네”

말을 하곤 드레스 룸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 난 뒤쫓아 온 보영에게 가디건을 집어 건넸다.

부드러운 양모와도 같은 재질의 분홍색 가디건을 받아 든 보영은 평소처럼 속옷을 챙겨 입으려 했다.

“그것만 입으라고요.”

“......네??..그거라뇨.. 이 가디건이요!???”

“네!”

“미..미쳤어요?”

“누가 봐요?”

“..네?”

“여기 집안인데 누가 보냐고요.”

“필민씨가 있잖아요. 그럼 속옷만 입고.. 이걸 입을게요.”

“안 돼요.”

“.....”

“붓기 빼는 덴 공기가 최고에요. 다른 건 입지 말고 그 가디건만 입어요.”

“....참나... 필민씨 병원에 안 가요!?”

“네!! 샐러드 준비할게요.”

“...”

냉장고 안엔 양배추...... 고추..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보영이는 집에서 밥을 잘 안먹는다는 얘길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큰소리를 치긴 했는데.. 재료가 너무 부실해서 난감하게 된 나였다.

우선 양배추를 씻어 잘게 썰기 시작한 난 고추를 한 입 베어 먹어 본다. 아삭이고추가 아닌 청량고추란 걸 알게 된 건 입속에서 전쟁이라도 치룰 정도의 메움을 느끼고 난 후였다.

이 재료로 샐러드는 도저히 무리라 판단한 난 즉흥적으로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고추장을 풀기 시작했다.

“냄..새 좋다.. 뭐 만들어요?”

“....”

“떡볶이 만들어요?”

“기다려 봐요.”

“치~.....”

“뭔 여자 집에 음식이 하나도 없......”

“....왜...요?”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 보영의 모습에 말을 잃게 된다. 완전한 나신보다 살짝 보이는 실루엣과 살짝 드러난 주요 부위의 모습을 드러내는 분홍색 가디건 차림의 보영이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래요?”

“...예뻐서요.”

“네?..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말하고 싶었어요.”

“.....치~”

“와~... 진짜... 앗!! 뜨뜨...”

프라이팬을 잡고 있던 손을 황급히 빼며 흔들게 된다.

보영의 모습에 얼이 빠져 달아오르는 프라이팬의 손잡이와 경계선을 잡고 있던 손에 화상을 입었다.

“내가 미쳐!!.. 미련하게..”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요.. 이렇게 벌겋게.. 줘봐요!!”

“.....”

‘샤아아~~..’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물에 새 손목을 잡고 들이미는 보영의 바로 옆에서 난 은은한 향기에 취해 코평수를 넓히게 된다.

“뭘 만든다고.. 이게 뭐에요?”

“...”

“떡볶이 아니었어요?”

“양배추고추장국물샐러드..요.”

“..........”

“먹..을만 할텐데..”

“....떡이라도 넣지.”

“떡이 없던데요.”

“왜 없어요.. 냉장실에 있지..”

“아~...”

내 요리는 완전히 실패였다.

너무 늦게 떡을 넣어 국물을 이미 졸아버렸고 뒤늦게 넣은 물 양도 조절에 실패해 민밋해진 떡국물만이 존재했었다. 양배추는... 이게 양배추인지 실타래인지 모를정도로 푹 삭아버려 입안에서 녹아버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이게 뭐에요!? 큭하하하.”

“맛..만 좋구......”

“큭큭... 맛이 좋아요?”

“...아뇨.”

“밥이라도 있으면 말아 먹겠는데.. 필민씨는 요리하지 마세요.”

“그러게요. 배..고프죠.. 이거 어떻게 하지..”

“큭큭~.. 정말 괜찮아요..크크크크크~”

웃음을 참으며 보영은 연신 숟가락으로 실타래같이 되어버린 양배추를 떠올리며 배를 잡고 있었다.

“빵이라도 사올까요?”

“됐다니까요. 냄새만 맡아도 배불러요.”

“...”

“아~.. 배 아플정도로 웃었더니....”

“.....너무 그러지 말고, 나가서 먹을 거 금방 사올게요.”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그것보다.. 정말 병원에 안가요?”

“네!”

“......몸 상해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간호 받으러 왔다고.”

“.....”

“회사는 예정대로 그만 뒀죠?”

“네...”

“그럼 결혼전까지 프리잖아요.”

“프..리는 아니죠.. 민우씨하고 준비할..”

“프리에요!”

“...네?”

“민우..씨가 전부 알아서 할 거라고요.”

“....????”

내 말 뜻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 날 빤히 쳐다보는 보영의 시선을 뒤로하고 난 거실 구석에 있는 작은 점을 노려본다.

정말로 붙이기 싫은 ‘씨’자를 일부러 사용하며 강조하듯 말을 한 후 다시 보영에게 시선을 옮겨 부드럽게 얘길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성스럽게 간호 좀 부탁드려요.”

“....안 된다는 거 알잖아요.”

“안 되는 게 어딨어요.”

“...”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필민씨!!!”

“..깜짝..이야.”

“다시는 죽는다는 얘기.. 꺼내지도 말아요...”

“...”

“그렇지 않아도 사고 소식 듣고 애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제 가슴이 얼마나 철렁 했는지 알아요!?”

“..미안해요.”

“........정말 몸은 괜찮아요?”

“아니요. 여기저기 쑤시고.. 목도 아프고... 고치도.. 아프고.”

“.....”

“진짜예요! 막.. 아파서.. 붓기도 했다고요.”

“알았으니까.. 우선 누워요. 마트 가서 요리 할 것좀 사올게요.”

“그럼 칫솔하고.. 속옷하고.. 그런 것좀 사와 줄래요?”

“.....”

“진짜로 간호 받으러 왔다니까요!”

“...알았어요. 금방 다녀올테니까.. 누워 있어요.”

“...엇!! 왜 벗어요!?”

“그럼 이러고 나가요?”

“..네!”

“미쳤어요!?”

“좀 심한가?”

“....참나~.”

“그럼.. 으윽!.. 잠시만 기다려봐요.”

“또 뭘.....”

난 서둘러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아까 고민했던 원피스 같은 흰색 긴 티셔츠를 집어 들고 나온다.

아침보다 많이 밝아진 보영을 위해,, 그리고 수많은 녹음기와 몰카로 날 지켜보고 있을 놈을 위해 배려보다는 내 욕심을 조금 더 챙기게 된다.

“이거 위에 그 가디건만 입어요.”

“......”

“왜요?”

“진짜 미쳤어!!”

“아으으윽..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던데.. 이렇게 아픈데.... 아으윽!!”

“엄살 부리지마요!”

“으윽!!..나.. 죽을 거 같아..요....”

“알았다고요! 알았으니까... 에휴....”

벗던 가디건을 완전히 벗은 보영이가 티셔츠를 입고는 거울에 모습을 비춰본다.

허벅지 위를 겨우 가리는 티셔츠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볼록 솟아오른 가슴에 아주 작은 점을 그리고 있는 유두의 자국까지.. 가까이서 자세히 본다면 노브래지어라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는 복장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이건 입으나마나..”

“그러니까 가디건도 입으라고 했잖아요.”

“....”

“아잉~~”

“.....내가 미쳤지........”

가디건을 그 위에 입은 보영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하의 실종 차림의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다.

그나마 유두의 볼록함이 가려지자 날 한 번 흘겨보곤 지갑을 들고 현관문으로 향하게 된 보영이다.

몸은 정말 아팠다.

안전벨트를 메고 있었다고는 해도 택시 꽁무늬가 반파될 정도의 충격을 받은 후였기에 안아픈 곳이 없던 난 긴장이 좀 풀리자 곧 눕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보영의 방으로 걸어가 누우려 하다가 난 시트를 보게 된다.

응어리가 진 핏자국이 남아 있는 시트에 좋아졌던 기분이 다시 더러워졌고 거칠게 시트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쓰레기 봉지에 그 시트를 통째로 처넣고는 장롱에서 새로 꺼내 아픈 몸으로 낑낑대며 새로 깔고 나서야 눕게 된다.

이마에 느껴지는 시원한 기운에 눈을 뜨게 된다.

“일어났어요?”

“....몇.. 시에요?”

“음.. 4시가 조금 넘었어요.”

“새벽이요?”

“아니요..”

“..”

“병원에 가요. 열이 많이 나요.”

“..”

시원한 기운의 정체는 물수건이었다.

몇 번이나 갈았는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바가지 아래로 흥건히 젖은 수건이 깔려 있었다.

“괜찮아요?”

“..네?”

“아래.. 거기는 괜찮냐고요.”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게 걱정해주면서 저보고 시장을 봐오라고 해요?”

“...맞다.”

“큭~...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아까 차가운 물로 씻겨주신 게...”

“이리 와 봐요.”

“..”

내 옆에 앉은 보영을 부드럽게 잡아 끌어 눕힌다.

보영의 침대 위에 나란히 누운 난 조용히 눈을 감고 보영을 조금은 세게 끌어안는다.

“이러니까.. 꼭 신혼부부 같지 않아요?”

“....네.”

“보영씨랑 같이 살면.. 이런 은은한 향기에 매일 취해서 일도 못하겠다.”

“풋~.. 그럼 돈은 누가 벌어요?”

“원래 제비는 여자 등쳐먹고 사는 거래요.”

“뭐야!~ 그럼 저 등쳐먹고 살라고 작정한 거예요?”

“안되겠죠?”

“....와~.. 진짜 제비다.”

“목숨 받쳐 사랑하잖아요. 벌써 몇 번째야..”

“...”

“안 그래요?”

“하긴... 뭐 내가 필민씨보다 능력이 조금 더 좋으니.. 집에서 아이나 키우면 되겠네.”

“그니까요!”

“참나~.. 자존심도 없냐?”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허~.. 진짜 대박이다!”

“대박?”

“이럴 때 그런다면서요! 대박이라고!”

“요즘은 헐..이라고 해요.”

“.....입만 살아가지고.”

“큭큭~.. 아~~~ 좋다... 아픈데 가 치유되는 느낌이네..”

“그런 게 어딨어..”

“여깄잖아. 그런데 왜 말이 짧아지냐? 너무 자연스러운데?”

“크크큭~.. 필민씨가 왔다갔다 하니까 그렇죠.”

“.....”

“왜요? 기분 나빠요?”

“그것보다.. 호칭부터 고치자.”

“....호칭이요?”

“보영씨.. 보영아.. 이러니까.. 나도 헷갈려서 자꾸 존댓말하고 반말을 섞어 쓰게 되잖아.”

“..그럼 뭐라고 불러요?”

“....자기?”

“..웩!!”

“여보??”

“우웩!!!!”

“......”

“낯간지럽게..”

“이럴 땐 또 터프하네..”

“터프한 게 아니고.. 그런 말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든요.”

“....음~. 오빠.. 오빠 좋다!”

“.......”

“왜? 오빠도 근질거려?”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있어야죠.”

“그럼 내가 처음이네! 영광이다!”

“피~~”

“해 봐.”

“..”

“오빠~..라고 불러보라고.”

“....천천히요.”

“헐!!! 이럴 때 헐! 이라고 하는거야.”

“.....”

“둘이 있는데 어때. 해봐.”

“오......아윽!.. 진짜 소름 돋아서..”

“어때서.. 으응~~”

“자꾸 앙탈부릴래요? 징그럽게...”

“그러니까! 더 징그럽게 만들기 전에 해 보라고.”

“오...빠.........으윽!!”

말을 하곤 내 품에 머리를 처박는 보영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크크~.. 진짜 어색하다.”

“참나~ 자기가 시켜놓곤..”

“자기도 좋네!!”

“이 자기가.. 그 자기가 아니잖아요.”

“하여튼 필민씨라고 부를 때마다 벌 줄 테니까!”

“벌?”

“벌 몰라? 벌! 벌칙!!”

“제가 왜 벌을 받아야 되요?”

“그거야........”

그러게.. 왜 보영이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벌을 받아야 되는 거지...

“하여튼!”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억울하면 너도 벌칙을 걸던가.”

“......”

“없지? 그럼 필민씨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잠깐만요. 생각 좀 해보고... 혼자 벌칙정하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그러시던가~..”

“열이 이렇게 오르는데 장난을 치고 싶어요?”

“응!”

“.....”

“네가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

“....”

“희안하지.. 나보다 훨씬 멋지고, 잘 살고,, 모자랄 게 하나 없는 넌데.. 왜 자꾸 불쌍해 보이는지.. 그래서 웃게만 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막 생기는지..”

“..........”

“그렇게 파고들면 땀 냄새에 질식사 할 수 있어..”

“좋겠네요.. 필민씨 땀 냄새를 맡으면서 죽을 수 있다면..”

“푸하~~~.. 밥 먹어요! 밥!!”

“밥?”

“네! 밥도 해 놨고 반찬도 해 놨어요. 배고프죠?”

침대에서 일어나며 요란을 몸짓을 일부러 보여주는 모습 중에 난 촉촉이 젖어 있는 보영의 두 눈을 찰나지만 볼 수 있었다.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애써 괜찮은 척 하는 보영의 모습에 몸이 아닌 마음이 더 아파왔기에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몸이 아닌 마음을 정화시킬 감동을 줘야 한다는 충동이 몰려 왔다...

“보영..”

[따르르릉~~ 따르르릉~~]

타이밍 하곤.....

미희였다.

“왜!!!?”

[참나.. 왜 신경질이야!]

“왜?”

[이거 어떻게 하냐고?]

“가져왔어?”

[응. 그런데 집 좀 치워라. 지저분해서 난 도둑이라도 든 지 알았다.]

“지저분하다니?”

[옷도 다 헤집어 놓고.. 서랍은 왜 다 열어 놨어?]

“.....”

[나한테 고마워 해! 간 김에 집 청소까지 다 해놨어!]

“미희야.. 혹시....”

[응? 뭐?]

“아니다.. 내가 부탁한 건 잘 챙겼니? 혹시 이상은 없었고?”

[응. 신주단지 모셔놓듯 잘 짱박아 놨던데.. 나도 듣고도 찾는데 헷갈리더라.]

“그래.. 고마워.”

[이거 어떻게 해?]

“가지고 있어.. 나중에 전화할게..”

[응... 병원 밥은 먹을만 해?]

“나 나왔어.”

[뭐!? 집에 왔어?]

“아니.. 다른데..”

[어디?]

“...여자 친구 집에.”

[뭐!!! 여자친구??? 오빠 여친도 있었어!??]

“나중에 전화할게.”

[오빠!! 야!!!!!!]

“누구에요?”

“미희년....이요.”

“.....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 여자분은 필...”

“....”

“오빠랑.. 무슨 사이에요?”

“왜요? 질투 나?”

날 필민이라 부르려던 보영이가 흠칫하곤 오빠라 고쳐 부른다.

피식 웃고는 나도 잊고 있던 반말로 응대를 하게 된다.

“질투는.... 그냥 궁금해서요.”

“걱정 마. 지금까지 만난 본 여자 중에 어느 누구도 너랑은 비교도 안 되니까.”

“무..뭐라고요!!? 참나..”

“왜?”

“진짜 저질이야...”

“무슨 소리야. 너같이 마음 착하고 따뜻한 여자는 처음이라는 건데.”

“....”

“뭐야.. 그거 생각한 거야?”

“누..누가!!.. 필민씨가 말을 하면서 제 다리를 봤잖아요!”

“필민씨?”

“아!!!”

“..방금 오빠가 아니라 정확히 필민씨라고 했지!? 방금도 봐줬는데.. 이건 아니지!”

“무..뭘요? 내가 언제!”

“15초 전이었지.. 내가 ‘뭐야.. 지금 빠굴만 생각한 거야?’ 라고 물었더니! 네가 ‘누가욧! 필민씨가 제 엉덩이만 봤잖아요!’ 라고 했었지!”

“......내가 언제 엉덩이만 봤다고 했어요!?”

“필요없어. 벌칙은 벌칙이니까!”

“꺄!~~~”

‘띵똥~~’

“!???”

“!!!!!!!!!!!!!!!!!!”

내가 보영의 가디건과 티셔츠를 단번에 가슴까지 올리며 끌어안으려 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야?”

“...올 사람 없는데..”

“...”

“!! 어..어떡해요! 미..민우씨에요.”

“......”

“수...숨어요.”

“알았어..”

난 서둘러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일부러 문을 완전히 닫지 않는 모습으로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며 벽 한 쪽을 장식하고 있는 옷장을 열어 몸을 숨겼다.

“어..어쩐일이세요?”

“...”

“.....”

“뭐 했나?”

“바..밥 준비하고 있었어요.”

“밥?”

“....네.”

“목소리가 들리던데...”

“TV요.. 잠시 뉴스 좀 보느라..”

“한가한가보군.”

“....”

“옷이 그게 뭐야?”

“..네?....”

“아무리 집에 있다고 해도 너무 한 거 아닌가?” 

“아...파서요..”

“........”

“그런데... 오늘도 오셨네요...”

“왜? 내가 오면 불편한가?”

“네?...아니요.”

“하긴.. 조금 있으면 매일 같이 있을 테니 자유가 그립기도 하겠지..”

“...아니에요.”

“아니긴.. 뭐 됐고.. 그 물건 어디 있지?”

“...?”

“내 가방에서 꺼냈던 물건 말이야.”

“...아!... 버..버렸는데요..”

“뭐!? 누구 마음대로?”

“....”

“빨리 찾아내라..”

“..아..알겠어요.”

문 너머에서 보영의 발소리와 봉지를 뒤지는 소리가 연차적으로 들려 왔다.

옷 장속에 숨어 밖의 작은 소리에도 숨죽여 긴장하던 내 귀에 문을 차례로 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의 크기로 보영의 방과 화장실을 먼저 열어 본 듯 했다.

“왜...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계속 찾으라고.”

발소리가 점점 내가 있는 드레스 룸에 가까워졌다.

“미..민우씨!!”

“....”

‘끼이~~~’

“왜?”

“우선 식사부터 하시라고요.”

“..그것보다.. 그거 씻어 와.”

“..이..이걸 또요?”

“왜? 좋지 않았나?”

“싫..어요.. 정말....”

“상관없으니까 씻어오고.. 옷 좀 다른 걸로 갈아입어. 원피스 같은 거 없나?”

“....”

“보영씨..”

“....”

드레스 룸으로 들어온 보영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죄송해요. 오늘은 분명히 안 온다고 했었는데..”

“됐어.. 이거.. 음료수나 물에 넣어서 저 새끼한테 먹여?”

“...이게.. 뭐에요?”

“걱정마.. 강력수면제야.”

“수..면...”

“아직 멀었나!!?”

“나..나가요..”

난 말 대신 눈빛으로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은 보영에게 명령을 마무리했다.

“어디가?”

“모..목이 말라서요.”

“와인 없나?”

“...있어요.”

“나도 한 잔 부탁해.”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탐지기를 사며 혹시 몰라 한 알에 2만원이나 주고 사온 수면제를 당일에 사용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던 나였지만 상관없었다.

오늘도 보영의 보지에 저 흉측한 물건을 집어 넣게 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계획에도 없던 수면제를 사용하게 된다.

“자넨 와인 안마시나? 줄질 않아..”

“요즘엔 별로에요..”

“와인을 그렇게 좋아하던 자네가.. 변했군....”

“.....”

“그럼 시작하지.”

“....네.”

‘후르..쩝쩝~~’

민우놈은 오늘 느긋하게 즐기려는 건지 오럴을 받는 시간이 더 길었다. 분명 한 손엔 와인을 들고 소파에 앉아 무릎을 꿇고 있는 보영의 모습으로 5분을 넘어 10분 가까이 시간이 흐르게 된다.

약이라도 먹은 게 분명했다. 사정지연제나 비아그라 같은... 평소라면 2~3분의 오럴 시간을 보낸 후 곧바로 꽂고 사정부터 준비할 놈이었는데..

“됐어.. 그거.. 가져오라고.”

“..민..우씨.”

“뭐하나!?”

“.....”

미세하게 들리는 보영의 발소리..

아마도 욕실로 향하는 듯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곧 조용해진 거실 쪽의 상황에 더 귀를 기울인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날 덥게 만들었다.

‘끼이익~’

“.....”

“필민씨..”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쫀득해진 심장을 느끼며 바짝 장롱속으로 숨던 난 보영의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장롱의 문을 연다.

“민우는?”

“....”

소파에 널브러진 채 민우가 어렵게 잡고 있는 잔에서 쏟아진 와인이 바닥에 분홍빛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코끼리도 10분이면 잠들게 만든다는 강력 수면제의 효과는 대단했다.

그 아저씨의 뻥이 뻥이 아님을 보여주듯 민우 놈은 말 그대로 소파에 앉아 기절해 있었다.

난 그런 민우놈을 내려다보다 거실 구석의 카메라를 향해 잠시 동안 시선을 옮겼다.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건..”

“걱정마. 잠만 자는 거니까.”

“...무..서워서 혼났어요.”

손에 꽉 쥐고 있는 저 변강쇠 콘돔이 무섭다는 말이 아님을 알기에 민우를 쳐다보는 보영을 쳐다보게 된다.

“필민씨...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위험한 거 같아요. 차라리 필민씨 집으로 가시면 제가 자주 찾아 뵐..”

“벌 받아야죠.”

“....벌?”

“아까. 필민씨라고 얘기하면 벌 준다고 했잖아요. 지금도 몇 번이나..”

“......”

“왜요?”

“지금 농담이 하고 싶어요?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서도 그러고 싶냐고요.”

“......야!! 야!!”

난 민우놈의 멱살을 잡고는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깜짝 놀란 보영이 뒤늦게 달려와 내 팔을 잡고는 놀란 표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저지했고 난 피식 웃게 된다.

“걱정 말라니까요. 코끼리도 세상모르고 재운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벌 받을 준비 해요.”

“...”

“에고~.. 아직도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쩐데...”

“필...자기도 계속 존댓말 하잖아요.”

“...”

“....나만 벌 받는 건 불공평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요?”

“...”

“저한텐 어떤 벌을 주려고요?”

“..몰..라요.”

“모르니까 우선 제 벌부터 받아요.”

“.....헉!”

난 보영을 그대로 끌어 안아 키스를 퍼부었다.

방금 전까지 민우 놈의 자지를 빨았을 보영의 사랑스러운 입을 씻어내듯 격렬하게 혀를 집어넣으며 그대로 끈적한 키스를 시작했다. 

민우놈의 자지가 들어갔던 보영의 입속이라 찝찝했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곧 보영의 혀가 움직이자 그런 기분 따위는 개나 줘버려가 됐다.

긴 시간의 키스를 끝낸 건 보영이었다. 날 밀어내며 민우놈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왜요?”

“여기서.. 이러지 말아요.”

“...”

“이런 거 싫어요.”

“못 느낄 거 같아?”

“.........당연하잖아요.”

“당연하다... 당연한 가 볼까?”

“무..뭘요?”

“저 테이블 위에 누워 봐요.”

“네!????”

“벌이잖아요. 벌칙 자는 시키는 대로 다 한다! 몰라!?”

“미..미쳤..악!! 흑!”

소리를 지르던 보영이 민우놈을 여전히 의식하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상관없었다.

그대로 테이블 위에 눕힌 난 보영의 원피스를 위로 올렸고 허벅지 사잉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미..미쳤어요!? 비..비켜요!!”

“쉿~”

“그..그만해요.. 진짜!! 윽!!”

난 대답대신 보영의 클리토리스가 있는 둔턱을 팬티 째 한 입 크게 깨물었다.

내 행동에 보영의 탄력있는 허벅지가 내 머리를 꽉 조여 왔다.

무릎을 굽혀 내 이마 부위의 머리를 꽉 조인 채 보영이가 입을 연다.

“아..아파.”

“그러니까! 그만해요.”

“그렇게 크게 말하면 민우 놈이 깰텐데..”

“.....진짜!”

“큭큭.. 허벅지에 힘 좀 빼지.”

“싫어요.”

“그럼 이러고 있던가.”

난 더 얼굴을 들이밀며 손가락을 세워 보영의 항문이 있는 부위의 팬티를 지그시 눌러 댔다.

허리까지 들썩이며 보영이가 필사적으로 내 손가락을 피하려 한다.

“호..화 낼 거예요!”

“쭙쯥~~”

“그..그만...”

팬티를 흠뻑 적시듯 빨아대며 더 집요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보지와 항문위의 공간을 동시에 자극하자 보영의 손까지 내 머리를 밀어대기 시작했다. 허리가 꺽이는 힘에도 머리까지 밀리지 않기위해 더 힘을 줘 집요하게 빨아대자 결국엔 보영이의 허벅지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흑~...그..그만해요...”

“으음~.. 이건 내 침이 아닌데.”

“....”

“와~.. 많이 나온다.”

“그..만 하라고요.. 진짜 화... 낼 거예요.”

여전히 보영의 시선은 민우를 훔쳐보고 있었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몰입감이라 생각한 난 두 손으로 보영의 팬티를 무릎까지 내렸고 다시 얼굴을 들이 밀었다. 보영의 클리토리스를 직접 혀로 자극하며 엄지를 세워 입구를 비비기 시작하자 말을 이어가던 보영이가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올려 자신의 입을 다시 틀어막는다.

“으웁!!!”

끈적한 점액이 보영의 보지 언저리까지 적시며 내 손을 미끈거리게 한다.

아직도 약간 부운 보영의 보지였기에 결코 가하지 않게, 오히려 상냥하게 보영의 보지를 문지르듯 쓰다듬으며 클리토리스에 더 집요한 자극을 준다.

혀를 내 핥길 반복하다. 아이가 젖꼭지를 빨아먹듯 입을 오무려 강한 자극을 번갈아가며 주자 보영의 등이 새우처럼 휘어갔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손을 뚫고 작은 신음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검지를 세워 아주 조심스럽게 보영의 보지속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동굴 안의 모든 돌기들과 주름들을 하나하나 인식하듯 만져가며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밀어 넣는다.

“피..필민씨...그..그만....으흑~~”

“필민씨?”

“아흑~...지..진짜...”

말과는 달리 보영의 완전히 힘이 빠진 허벅지가 더 작게 구부러지며 들어 올려졌다.

“와~. 장난 아니네.. 안된다고 하면서 이 홍수는 뭐래?”

“....흑~ 시..싫어...”

“윗 입은 싫다고 하면서 아랫 입은 좋다고 벌렁거리고.... 진짜 이중적이다.”

“그..그런 말 하지 말고... 차..라리 방으로 들어가요.. 우리 방으로 가..아흑~~ 아학~~~”

조금은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클리토리스를 다시 빨아댄다.

이젠 입을 틀어막던 손조차 잊은 듯 두 손으로 테이블의 끝을 움켜쥔 채 내 혀와 손가락의 움직임에 크게 반응하며 보영이가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손을 때고 일어나 보영이를 내려 본다.

테이블 위에서 겨우 호흡을 진정시키는 보영이의 모습은 내 생각 이상으로 뇌쇄적으로 보여졌다.

“흑흑... 흑~..”

“모순적인 거 알아?”

“..흑~... 무..가요?”

“이렇게 음란하면서...”

“....우리 방으로.. 헉!!”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는 보영을 다시 짓누르며 이번엔 원피스를 가슴이 다 드러나도록 위로 올려 버린다.

출렁이는 가슴을 움켜 쥔 채 바로 눕게 된 보영의 옆에서 나머지 한 손을 보영의 허벅지 안에 밀어 넣었다.

궁금해졌다.

야동에서 봤던 행위를 민우가 있는 이 곳에서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야동속에서 물줄기까지 뻗어내며 경련을 일으키던 여자의 모습처럼 보영을 만들 수 있을지가..

야동을 흉내내며 난 보영의 보지속에 밀어 넣은 손가락을 구부리며 요도가 있을 질벽을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아흑~~~ 흑~~흑~~~”

보영의 손이 더 꽉 테이블을 움켜쥐었다.

솔직히 힘들었다.

강하게 힘을 주면 자칫 고통을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부드럽게 자극을 줘야 했으며 급격히 빨라져도 안된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씩 속도를 붙여야 했기에 그랬다.

등에 땀이 방울을 넘어 줄기를 이루며 옷을 적시기 시작했을 때 보영의 몸이 조금씩 더 움찔거렸다. 움찔거린다는 말보다는 들썩인다는 말이 맞게 연신 허벅지를 움찔거리며 떨었고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테이블을 잡고 있던 손을 올려 하나는 자신의 사타구니 속에 숨어든 내 팔을, 하나는 다른 내 팔을 세게 잡고는 숨을 헐떡이며 어렵게 입을 연다.

“그..그만... 아흑~~”

“...왜요?”

“그..그만해요.. 미..미칠 거 같아요.”

“...어떻게요?”

“아흑~~..흑흑~!! 흑!!.... 그..그만...”

“어떻게 미칠 거 같은데요?”

“아~!!...마..막... 나..나올 거 같아.......흑..흐!! 그..그만....”

“.....”

“아흑!!.. 피.필민씨!!! 그..그만!!!”

보영의 시선엔 더 이상 민우 놈은 없었다,

들어오린 다리를 본능적으로 더 크게 벌리며 잡은 두 손을 더 세게 잡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 크게 숙인 채 입을 악 다물어보지만 내 손이 빨라지자 연신 신음소리를 뱉어내며 다시 젖히게 된다.

이젠 허리까지 들어 엉덩이와 머리만으로 몸을 테이블위에 지탱한 채 요동치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던 보영이었다.

“아악!!.. 그..그만!!! 그...아학!!!! 악!!!!!!!!!!!!!”

‘솨아!!!~~~~’

줄기를 이루며 바닥을 적시는 보영의 액체들이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허리를 더 띠운 채 질퍽거리는 엉덩이를 연신 움찔거리며 연달아 쏟아내는 보영의 몸서리침에 난 만족감을 가득 담은 얼굴로 민우가 아닌 구석의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이런 큰 쾌감을 더 연결시키기 위해 손을 빼 클리토리스를 쓰다듬듯 좌우로 비비기 시작했다.

보영의 움찔거림은 경련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액체들을 뿜어 냈다.

소변과는 전혀 다른 무색의 액체가 온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좋아?”

“아...흑!~~!!”

대답을 할 정신도 없는지 계속해서 미세한 경련을 이어가는 보영의 모습에 난 바지를 내렸다.

그런 내 움직임도 모른 채 겨우 호흡을 진정시키던 보영은 곧 자신의 보지입구에 닿은 내 물건의 감촉에 어렵게 눈을 뜬다.

“혼자 가면 억울하잖아.”

“...진,,,짜 못 됐어...”

“못 됐다..라....”

“그럼요.. 비겁.. 흑!!!..”

놀라웠다.

오르가즘에 도달한 보지는 연신 움찔거리며 내 자지를 받아들였고 서서히 꺼져가던 그 쾌감을 다시 이어가듯 날 꽉 껴안으며 탁한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보영의 몸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바닥에 미끈거리는 액체 따위는 우리 둘에게 전혀 상관없다는 듯 테이블 아래로 내려와 서로의 몸을 격렬하게 탐하기 시작했다.

난 내 등에 손톱자국을 내며 할퀴는 보영의 몸부림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소파에 세상모르고 잠이 든 민우 놈이 아닌 카메라를 다시 쳐다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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