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1화.
‘하아, 하아.’
아름답다. 비대칭으로 컷을 해 한쪽 눈을 가리며 목 부근에서 찰랑이는 검은 단발머리가 아름답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와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 눈동자가 날 매도하듯 보는 것 같지만 아름답다.
매끄럽고 백옥 같은 피부가 아름답다. 보기만 해도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풍만한 그 끝에 달린 복숭아 빛 과실이 너무나 아름답다.
한 팔로 안으면 폭 안길 것 같은 가는 허리와 그와는 달리 넓고 둥글게 퍼진 골반이 아름답다. 넓은 골반으로 인해 그 사이를 매울 수 없는 다리사이 틈과 그 틈에 자리한 숲이 없는 복숭아계곡이 아름답다. 결코 마르지만은 않은 건강하고 시원스레 뻗은 다리가 아름답다.
“진짜 아름답다.”
‘누가? 내가! 으아아악! 시발!’
미칠 것 같았다. 내 강철 멘탈을 한 순간에 쿠크다스 멘탈로 변화시키는 이 상황이 두려웠다. 그리고 더 급한 상황은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이 상황에서 알바를 생각하다니 내 멘탈 칭찬해! 그냥 째면 안 되냐고?
노노. 아무리 비상사태가 걸렸다지만 말도 없이 펑크를 내는 것은 내 가치관에서 어긋난다. 내가 말도 없이 펑크를 내면 다른 사람이 보는 피해는 어쩌겠는가?
난 나름 성실한 사람이다.
집에서는 귀차니즘에 청소도 미뤘다가 한 번에 하지만 대외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이기에 밖에서 욕먹을 짓은 하지 말자는 것.
“하-진짜 가기 싫다.”
입으로는 계속 시부렁대며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였을 적 건장한 체형과는 달리가늘게 변한 지금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걸쳤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모양새다.
갓뎀. 일단 시간이 없으니 대충 나온 나는 모자를 눌러쓴 채 근무지 근처에 있는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에 들리기로 하고 택시를 잡고 출발.
택시 안에서 계속 끈적이는 시선을 주며 대화를 시도하는 아저씨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준 난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매장으로 향했다.
“여자 친구와 사귈 때에도 와본 적 없던 곳을 내가 여자가 돼서 찾아올 줄이야.”
뭔가 기부니가 요상해졌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대충훑어보며 뭔가에 홀린 듯 적당히 예쁠 것 같은 옷들을 빠르게 골라 탈의실로 직행.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막 옷을 벗었을 때 깨달았다.
‘아차……속옷…….’
날 주무르고 싶지?! 어서 주물러! 주무르란 말야! 라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듯한 맨가슴과 사각팬티의 조합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하아-일단 입고 나가자.’
어쨌든 옷은 입어야 했기에 주섬주섬 옷을 입은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예쁘네.’
몸매가 드러나는 하늘색 폴라티와 하얀 스키니 면바지. 집에서 보고 또 거울로 보는 얼굴이지만 진짜 내 몸이란 것이 너무나 아깝다. 헌데 그 와중에 옷을 늘리고 있는 주범인 수박의 첨단엔 소심하게 안녕? 하듯 톡 튀어 나와 있는 하우두유두가 보여 조금 흥분했다.
‘…조금 움직여 볼까?’
괜히 찔려서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린 난 거울을 보며 가슴을 내밀고 허리를 돌려보았다.
“읏.”
부드러운 옷감에 스치는 감촉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어제까지의 내 몸이 여장을 한 채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니 급격하게 자괴감이 몰려왔다.
“미친놈.”
진하게 몰려오는 현자타임에 한숨을 쉬며 탈의실에서 나와 계산을 마친 나는 걸치고 왔던 옷을 쇼핑백에 넣다 가슴을 가려야 할 거 같은 느낌에 남방을 빼 걸쳤다. 직원이 어울리지도 않게 그런 걸 왜 입냐는 듯 봤지만 애써 무시하며 속옷매장으로 향해 속옷도 구매.
또 한 번 탈의실에서 속옷만 입고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다가(이번엔 셀카까지 찍었다) 또다시 밀려오는 자괴감에 죽은 눈으로 매장을 나오며 남방마저 쇼핑백에 넣던 나는 문득 이상한 사실을 알아챘다.
‘근데 내가 어떻게 사이즈를 알고 치수도 안 재고 단번에 산거지? 아니, 그러고 보니 이 외모. 어디서 본 것 같은…….’
지금 알아챈 것이 우습지만 그랬다. 이 외모는 분명 어제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캐릭터. 한창 커마로 체형을 만지며 캐릭터의 살을 늘렸다 줄였다 하고 있을 때 숫자가 자동으로 신체치수를 맞추는게 보이긴 했었다.
‘이거 설마 내가 설정한 캐릭터대로 변한 건가?’
허미……설정이 왜이리 자세히 있나싶었더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아니, 그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난 지극히 판타지적인 일을 좋아하지만 현실이 이렐리…아니,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어제 설정대로라면…….’
용변유무x. 몸에서 나오는 모든 분비물의 향은 과일향. 갓뎀. 설마 진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레알? 만약 사실이면 어디 끌려가서 인체실험이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이런 두려운 생각에도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이상향이 구현되었다고 생각하자 슬그머니 흥분감이 몰려왔다.
‘후욱. 후욱.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이 몸을 찍고 싶다! 후에 자괴감이 몰려올 테지만 상관없어!’
광기가 느껴지는 내 안의 욕망. 하지만 지금은 알바가 먼저다. 하아. 하아. 참자.
-부우웅.
한창 흥분감이 몰려오는 와중에 느껴진 핸드폰 진동.
-150,000원-
-남은 잔고 1,301,350원-
다른 간단한 여러 글씨가 몇 개 더 적혀 있었지만 저 15만이란 숫자와 남은 잔고만이 내 뇌리에 각인됐다.
‘현자타임 씨게 오네.’
집에서 몰려올 현자타임이 벌써 몰려와버린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근무지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하세요.”
밝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얼굴을 붉히며 얼떨떨하게 인사를받아주는 전 근무자. 허허……형님 마음 잘 알고 있소.
“다음 근무자 대타로 왔어요.”
“아…네. 사장님한테 연락 받긴 했습니다.”
도착하기 전 미리 사장님께 초코톡으로 개인적인 큰 일이 있어 일에 대해 인수인계 필요 없는 대타가 갈 거라고 연락은 해 두었다.
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냐고 걱정의 톡을 엄청 보냈지만 그런 걱정 하지 말라고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톡까지 보낸 난 여전히 어버버하는 알바생의 옆자리로 가 정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 없네요. 따로 전달사항 있어요?”
“아뇨아뇨. 그런데……하, 한국말 잘 하시네요.”
“네? 아……하하. 제가 생긴 건 이래도 나고 자란 곳은 한국이라 한국말 잘 해요.”
순간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곧 떠오른 내 외모를 생각하며 답했다. 음……아무래도 내 욕망을 담아내던 커스텀이라 이국적으로 생기긴 했었지. 북유럽계와 동양의 중간정도?
“근데 일에 대해 안 가르쳐 드려도 괜찮나요?”
음……아무래도 그냥 일 투입하면 뭔가 이상하긴 하겠지. 그럼 간단한 것만 알려 달라 하자.
“제가 얼마 전까지 다른 곳에서 여기랑 비슷한 피시방 알바를 했었거든요. 무인기도 똑같고 운영프로그램도 같아 이건 알 거 같아요. 조리기구도 비슷하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간단히 비품장소나 주의사항만 좀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네. 그럼 대충 간단히 알려드릴게요.”
뭔가 평소와는 달리 쭈뼛거리는 자세로 말과는 달리 상세히 알려주는 그의 모습에 애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는 빈자리에서 게임하고 있을게요. 혹시 궁금한 사항 있으면 저한테 오시면 되요.”
“네. 감사합니다.”
자리에 가면서도 슬쩍슬쩍 느껴지는 시선. 형님. 예쁘죠? 저도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 된 알바는 뭔가 평소와 달랐다.
‘이 미친놈들이 오늘따라 뭐 이리 시켜먹어?!’
평소와 달리 미친 듯이 밀려드는 주문. 라면류에 밥류에 간식까지……손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카운터PC엔 주문창이 시간차를 두고띵동 거렸고, 난 속으로 욕을 하며 요리와 설거지 자리정리를 해나가며 손님들에게 주문이 밀려 음식이 늦게 나와 죄송하다고 미소 띤 얼굴로 사과를 해야 했다.
‘이거 설마 설정에서 특기 여러 개 중에 요리가 발동 돼서 그런 거야?!’
그게 아니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었다고 생각한 나. 하지만 내가 바빠진 계기는 특기인 요리와는 별도로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너무 바쁜 나머지 알아채지 못했다.
-야야. 뭐하냐?
=겜중
-개쩜
=뭐가
-사진
=미친, 누구?
-피시방 알바
=어디냐? 리본?
-ㅇㅇ
=당장 감
이런 비슷한 초코톡이나 문자가 퍼지고 있는 한 피시방. 손님들은 모두 오늘 처음 보는 알바생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몇몇은 평소 TV로만 볼 수 있던 연예인보다도 더 파괴력이 넘쳐나는 여알바의 외모에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슬쩍슬쩍 일하는 모습을 찍어 자신들이 주로 가는 웹사이트에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게시글은 급속도로 퍼져가며 조회수를 높여가고 있었고, 다른 평범한 손님들은 조금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 보기위해 평소라면 안 시켜먹던 음식들까지 시켜댔다.
헌데 그녀의 모습을 보기위해 시켰을 뿐인 음식은 왠지 모르게 맛있었고, 피시방 특성상 남이 시키면 식욕을 불러오는 음식의 향기에 너도나도 시키게 되어 결국 오늘 첫근무로 보이는 여알바만 죽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네.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지친다. 몇 시간 안 되지만 진이 쭉 빠지는 시간이었다. 쉴 틈이 너무 없던 일. 거기에 이 외모는 말없이 무표정으로 있으면 살짝 도도해 보이거나 무뚝뚝해 보이기에 나도 모르게 이미지를 위해 입가가 당기도록 웃어 얼굴 근육이 마비된 것 같았다.
그래도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에 신나는 기분.
빨리 가서 셀카찍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에 도착한 나는 신이 나서 폰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렇게 덕질을 하다가 문득 들은 생각.
‘이거……야사 함 찍어 봐?’
충동적으로 든 생각에 내 안의 천사가 잠시 말렸지만 뭐 어떤가? 나 혼자 사는 곳에서 내가 내 사진을 찍는다는데! 그리고 이 몸은 내가 나! 아니, 수많은 남자들의 이상향이야!
암. 그렇고말고! 란 생각이 들자 조금 있었던 천사의 마음은 본능이란 악마에게 집어삼켜졌다.
-찰칵. 찰칵.
옷을 조금씩 벗으며 계속 혼자만의 촬영회를 가졌다. 속옷을 벗어 첨단의 과실이 튀어나온 가슴을 팔로 그러모아 찍은 사진.
바지를 살짝 벗어 보름달같이 희고 통통한 뒤태를 강조한 사진. 속옷만 입은 채 침대에서 여성의 유려한 곡선을 강조하며 찍은 사진 등 이런저런 사진을 찍다 최종적으론 손등으로 입술을 제외한 얼굴을 가린 채 다리를 M자로 벌리고 찍었다.
굴욕적인 포즈에 치욕스럽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상스러운 자세를 취한 이 사진은 내게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손등으로 가려 안 보이지만 이 외모의 특징인 도도한 얼굴을 잘 알기에 더욱 흥분이 된 난 폰을 동영상으로 전환하고 잘 찍히도록 고정했다.
한 손은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빈손으로 핑크빛의 커다랗고 부드럽지만 탄력 있는 가슴을 주물러 보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좋은 기분. 남자였을 적 여자 친구의 가슴을 만지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손바닥뿐만 아니라 가슴에서도 느껴지는 충족감에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고양감이 들었다.
“흐읏. 기분…좋…아.”
아무래도 성감이 높다는 설정은 잘 적용 된 듯하다.
“자, 그럼…….”
실컷가슴을 주무르던 나는 이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다. 과연 평소에 만지던 불기둥과는 달리 어떤 기분일지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세차게 뛰는 가슴의 박동이 잘 알려주는 듯 했다. 그리고 내 손이 부드럽게 갈라진 계곡을 터치하는 순간.
-띵동!
“헤끅!”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에 도둑질하다 들킨 것 마냥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앗. 이 몸! 딸꾹질 소리도 귀여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