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35화 (35/86)

35화

“비시아?”

자신을 부르는 친구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알잖아? 라디트 성격.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던 길 가도 돼. 내가 알아서 잘 챙길게.”

이상하다고 느끼기 전에 간신히 그녀들을 향해 대답을 하자, 시선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 줘야 해?”

“알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사제님께 말해 둘까?”

“아냐. 정말 가벼운 현기증 같은 거라 그냥 놔두면 금방 회복될 것 같아.”

“고마워. 나중에 다시 봐.”

그들이 떠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까지 나는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신음을 참아 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 제 가슴을 빨아들이는 감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제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목이 파인 부분으로 가슴 둔덕을 핥던 그녀의 입이 점점 내려가 유륜을 찾아내자 단순에 삼켜 제 입안에 밀어 넣었다.

“……읏!”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신음 소리에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멀리 가지 못한 그녀들이 들었을까 싶어 재빠르게 뒤를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제 입을 틀어막은 손은 그녀들이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제 가슴을 만지고 빠는 라디트의 행동 또한 그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후우.”

이윽고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자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손을 점차 아래로 내려 원피스 아래에 있는 둔덕을 그녀의 손이 막 찾아낸 것과 동시였다.

“라디트!”

다시 한 번 더 큰 소리를 치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이상 두었다간 기어코 물웅덩이 위에서 일을 치를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아직도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할 순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제발 물웅덩이 위에서 일 치르진 말자. 더럽잖아.

“라디트! 내 말 들어 봐요.”

다시 한 번 더 크게 부르자 놀란 라디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새빨개진 얼굴로 날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예전의 차가움 일색이었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발갛게 물들어 눈동자에조차 흥분의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 그녀의 얼굴을 조금은 귀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당신이 급하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여긴 아니죠. 알잖아요?”

문지기에게 써먹었던 방법을 이용해 은근슬쩍 그녀에게 압박을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 본능에 젖어 혼탁했던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됐다! 엄마에게 배웠던 것들이 겨우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무언가 괴롭다는 듯이 그녀가 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괴롭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흥분감으로 인해 매우 낮아진 상태였다. 괜히 자신 때문에 그녀가 이런 상태가 된 것 같아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고 생각해요.”

아이를 달래듯이 그녀를 어르고 달래었다. 그녀의 감정에 저 스스로의 양심이 매우 찔리고 있었으나 이 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내 엉덩이가 촉촉하다 못해 축축해지고 있으니까.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고민할 게 뭐가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잠시 생각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잠자코 기다려 줄 뿐이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날 바라보았다.

“그럼 해 줘.”

“뭘요?”

다짜고짜 해 달라는 말에 영문을 알 수 없어 되묻자 조금 더 선명한 눈빛의 그녀가 날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키스해 줘.”

“뭐?”

뭘 해 달라고? 생각 외의 말에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줘.”

올곧은 그녀의 눈빛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차라리 아까 전처럼 향기에 취해 있는 눈동자였다면 정신이 몽롱하다는 이유를 대어 피하기라도 했을 텐데. 지금 그녀는 아무리 보아도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정말요?”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해 주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몸을 누르고 앉아 있는 이 엉덩이를 떼어 내지 않을 것처럼 굴어 대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녀의 태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보다는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제 행동이 곧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자 그녀의 눈빛이 뚫어져라 날 향했다. 일말의 기대감마저 보이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잠시 몸을 멈추었다.

잘못 조절해 덤벼들면 어떻게 할까. 의외로 힘이 강한 그녀가 아까 전처럼 달려든다면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괜찮을까. 여전히 자신만을 바라듯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가만히 입을 닫았다. 처음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듯한 눈동자가 내게 닿자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앞으로 천천히 몸을 내밀었다.

그래.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엄마에게 배운 것도 있었고 한 번 제대로 성공한 적도 있었던 난, 이 이상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상태가 한결 차분해 보이는 것 또한 제 자신감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자 그녀의 말간 시선이 날 따라왔다.

“일어난다면 더 해 줄게요.”

제 말을 듣자마자 곧장 일어나는 그녀의 행동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말을 잘 들을 거였다면 진즉에 해 보는 거였는데.

무릎이 완전히 더러워진 순백색의 옷을 입고서도 여전히 나만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찰박이는 소리와 함께 여태까지 머금고 있었던 물들이 빠져나가는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웅덩이에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찝찝함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으으, 더러워. 돌아가면 몇 번은 다시 씻을 생각이었다.

제게 기대와 부품을 안고 있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더 입맞춤을 해 주고 몸에 있던 물기를 완전히 짜내었다. 무언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 내며 몸을 탈탈 털었다.

안 돼. 이 이상은 내가 무리라고.

지금의 난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약초도, 사제님도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 장소를 빨리 벗어나 씻고 싶다는 욕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일단 씻고 생각해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 또한 흙탕물에 자진해서 뛰어든 사람이라 그런지 옷이 엉망진창이었다. 누가 본다면 아마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인 줄 알 터였다.

내 손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뻗어 잡았다. 그녀와 내 손이 얽히자 나는 두말할 것 없이 곧장 앞으로 질러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깊이 들어온 것 같았다. 서로 투닥대기만 하느라 몰랐는데 막상 빠져나가려고 하니 그 끝이 보이질 않고 있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일까. 웬만하면 빨리 도착하고 싶은데. 화창한 날씨에 옷의 물기는 바르게 말라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좋지 않았다. 옷이 말라갈수록 같이 마르는 모래가 제 몸에서 잔뜩 바스러지고 있었다.

얼마나 왔을까.

어느덧 저 멀리에 백색의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여태껏 손을 잡고 걸어온 라디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너, 너!”

자신의 손을 치며 큰소리를 외치는 그녀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나……?”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의 말에 오히려 저 자신이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머리를 기울였다. 무슨 짓을 했냐니. 헤매던 길을 되찾아 돌아온 것밖에 없는데?

“내, 내, 내가 너한테 그런 일을! 아무리 고팠다고는 하지만 그런 일을!”

뺨을 감싸 쥔 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연신 중얼거리던 그녀가 돌연 날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너! 너 때문이야!”

아, 그러세요……. 제멋대로 꽥꽥거리는 라디트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맞부딪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저 아이의 변덕에 달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야!”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평소의 냉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녀가 내게 외쳤다. 제 몸의 물기가 메말라 가자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의 얼굴은 때 이른 가을을 맞이한 것 같았다.

그녀도 그녀였지만 나 또한 그녀의 행동이 당혹스러운 건 아니었다. 이제 라디트의 갑작스러운 태도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저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를 향해 말하자 그녀의 얼굴에 한층 더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너 말고 지금 여기 다른 누가 있다고!”

“저는 아무런 짓도 안 했는걸요?”

“하지만! 내가 너한테……!”

다다다 쏘아 대던 그녀의 입이 일순 멈추었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붉은빛으로 시시각각 변해 갔다.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잠깐 그녀를 귀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잖아! 네가 무슨 일을 작당하지 않는 이상 그런 행동을 너한테 할 이유도 없고!”

순간, 하려던 말을 생략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꿋꿋하게 화내는 그녀의 당당한 태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라디트의 말을 들어 보자면, 제가 시켰다는 게 되네요?”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 그건…….”

귀엽게도 그녀는 내 역질문 단 한 번 만에 다시 입을 닫았다. 얼굴에 올라오는 색이 붉지 않은 것을 보아 그녀가 단순히 부끄러워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 제 향에 홀린 사람들이 무릇 그랬듯이 그녀의 행동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해 가는 그녀의 행동에 맞춰 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모든 일들이 그녀가 날 물웅덩이에 빠트려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이렇게 무작정 발끈만 하고 있으니 제아무리 착한 나라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몰아치던 그녀 또한 자신의 행동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믿을 수 없어……. 내가 아무리 이곳에 오래 갇혔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일을…….”

제 머리를 박고선 한참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결정을 마친 것인지 고개를 들었다.

“아, 아무튼! 이번 일은 비밀로 해 줘!”

“지금 저한테 부탁하시는 거예요?”

그런 말투로? 부탁하는 이 치곤 상당히 재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녀의 이성이 끊어지게 만든 원인 제공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참으로 본의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다.

자신의 행동이 두려워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꽤나 절박한 모양새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 흙탕물을 뒤집어쓴 내 몸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밥을 먹게 해 주었다는 제일 큰 공로를 생각해 이번 한 번만 봐줄까.

“알겠어요.”

“……저, 정말?”

자신이 부탁해 놓고선. 못 믿겠다는 말투로 말하는 그녀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밥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아이 달래듯 어르고 달래지도 않았을 터였다.

“당신이 부탁해 놓고 되물으면 어떻게 해요?”

“진짜로 협력해 주는 거지?”

“그래요.”

제 말대로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자 한껏 순해진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편하게 말해. 라디트야.”

이름 정도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말할 뻔했으나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킨 후 똑같이 받아쳐 주었다.

“나는 비시아야.”

제 이름을 말하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자 잠시 멈칫한 라디트가 쭈뼛 손을 잡았다.

“그럼 아까 전에 일어난 일들은 다 없었던 일이다?”

“그래.”

“재수 없이 헛디뎌 물웅덩이에 빠진 거고.”

“네가 그렇게 말하길 원한다면 그래 줄게.”

믿지 못하겠는지 재차 확인하는 라디트를 향해 대충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내가 순순히 답을 하자 그녀가 살짝 한숨을 지었다.

그리곤 무언가 말을 하려다 힐끗, 날 보고선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잊지 마.”

“응? 뭘?”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워낙 작게 말한 라디트의 말을 사정없이 먹어 삼키고 말았다.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말을 되묻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아냐! 됐어!”

싱겁기는.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없었다.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사제님에게 돌아가자 그녀에게서 놀란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당황한 그녀가 말을 지어내기 전에 재빠르게 입을 열어 사정을 설명했다.

아까 친구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라디트의 갑작스러운 빈혈로 인해 넘어졌고, 그로 인해 흙탕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는 정황을 전하자 사제는 별 의심 없이 나의 말을 믿어 주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걱정스레 날 바라보는 아이들의 증언이 한몫 단단히 하는 것 같았다. 별문제 없이 상황을 이해시킨 나와 라디트는 그날 수업 점수를 최악으로 받는 사태를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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