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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34화 (34/86)

34화

제 앞을 먼저 나서서 나가는 라디트의 눈엔 어떻게든 빨리 약초를 찾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만이 가득했다.

이젠 정말 끝이야……. 이번 기회를 빌미로 삼아 그녀와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와장창 깨어졌다.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아까처럼 더 이상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취할 만한 방법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조금이라도 몸이 부딪치는 순간 으르렁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여린 귀로 고스란히 받아 내어야만 할 것 같았다.

“같이 가요!”

부러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렸으나 눈짓 한 번 주지 않았다.

“라디트!”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는 순간 걸음을 멈춘 그녀가 날 향해 휙 돌아보았다.

“가까이 오지 마!”

얼마나 성이 난 것일까. 성급하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잘 내지 않던 그녀의 얼굴에 열이 화르륵 달아오르고 있었다. 씩씩대며 거칠어지는 숨소리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 수 있었다.

“라디트…….”

“이름으로도 부르지 마. 나한테 신경 쓸 시간에 잡초나 한 번 더 보지그래?”

차갑게 대꾸한 그녀가 여태껏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발견하자 더욱 얼굴이 발그레졌다.

“내 몸에 손도 대지 마!”

더러운 벌레라도 붙은 것마냥 확 쳐 내는 순간이었다. 일순간 받아 내는 힘을 견디지 못한 내 몸이 크게 휘청였고, 발을 제대로 딛기도 전에 몸은 크게 뒤로 기울어졌다.

첨벙-!

“…….”

최악이다. 모든 것들이 저가 미처 행동을 하기도 전에, 제대로 탄식도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벌어졌다. 제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의 느낌에 그저 멍하니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운이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있을까. 하필 넘어져도 물웅덩이 위에 안착할 수 있다니. 자신의 최악의 운수에 이젠 넌더리가 날 것만 같았다.

제 머리에 뒤집어 씌워진 흙탕물도 모자라 하얀 옷 위로 뚝뚝 떨어지는 흙물이 티 하나 없이 깨끗하던 순백색을 오점으로 더럽혀가고 있었다.

“하.”

땅을 짚고 있는 제 손에 찰박이는 물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입에 탄식이 세어 나왔다. 이젠 정말 질렸다. 옷부터 시작해서 머리끝까지 사방에 튄 흙탕물이 자신을 얼마나 추하게 만들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잘 알 것만 같았다.

일반 물이 아닌 진흙이 섞인 물이라 기분이 더욱 더러워져만 갔다. 엉덩이도 축축한 것이 아무래도 안에 속옷까지 완전히 젖은 듯했다.

“아…….”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위로 올리자 라디트 또한 놀란 것인지 뒤로 주춤거리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어딘가 이상했다. 여전히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과 내 눈동자가 마주치자 그녀는 더더욱 농익은 얼굴로 제 뺨을 부여잡았다.

뭐야? 왜 더 발그레지는 건데……?

“너, 너 뭐야?”

“나?”

“그래! 너!”

이젠 울먹이다시피 말하는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누가 화를 내야 할 판인데. 오히려 그녀는 적반하장으로 내게 화를 내며 제 분을 못 이겨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너…….”

“너?”

“너, 너 때문에 내 가슴이 두근거려서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말과 행동이 일어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내가 순식간에 넘어진 것처럼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은 것 또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의 혀가 다급하게 내 입술 안으로 침입하는 순간 나는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은 제가 미처 사태를 파악하기 전에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제 입을 헤집은 그녀의 입술의 형태를 알아보기도 전에 성급하게 밀고 들어왔다.

“라, 라디, 읍.”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행동을 멈추고자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발버둥 치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뺨을 단단히 잡은 그녀가 조금 더 몸을 붙여 안아 대는 통에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요.

당황하다 못해 놀라는 바람에 사태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밀쳐져 물웅덩이에 자빠진 것도 황당한데, 그 장본인이 일으켜 주기는커녕 키스를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깜짝 놀라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시야 속에서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키스에 열중하고 있는 라디트가 들어왔다. 그녀의 뺨에 붉게 맺혀진 홍조가 그제야 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화난 거 아니었어?

제 손에 찰박이는 물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다른 장소도 아니고 더러운 흙탕물 위인지라 그 느낌은 더해져만 갔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해야 할 것만 같은데.

하지만 제 뺨을 쥐고 있는 그녀의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입맞춤에 놀라 고개를 돌리려고 했을 때도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그녀의 손 덕분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그녀의 키스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거기다가.

점점 배불러지는 기분에 저 자신의 기분도 몽롱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래간만에 흡입하는 밥의 기운은 미약하기는 해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랑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이렇게 물웅덩이에 빠지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밥이 들어온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져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것이 새삼 억울했다.

그렇다고 해서 밥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외면하는 것이 아닌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입술을 헤집는 감각이 간만에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혀를 옭아매는 감각과 자신의 이를 훑는 야릇한 감정이 제 몸의 흥분을 빨리 일깨웠다.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릿속으로는 장소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자신이 고대했던 밥이 들어오자 제대로 된 상황을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자꾸만 그녀가 내게 건네는 달콤함에 넘어가 저도 모르게 키스에 임하게 만들었다.

입천장을 쓸어 올리는 감각과, 숨이 곤란하지 않도록 입술을 떼었다 다시 붙이며 감질 맛나게 굴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을 찾아 고개를 위로 살짝 올릴 뻔한 걸 간신히 참아내야 할 정도로 그녀는 능숙하게 행동했다.

반항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제 뺨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얇은 목을 타고 쓸어내리듯 내려가던 손이 옷 위로 가슴을 크게 빙 돌렸다.

“앗…….”

부러 옷 안으로 손을 밀어 넣지 않고 밖에서 크게 빙 도는 느낌에 몸이 살짝 떨려왔다. 금방이라도 정점을 만지면 바로 극한 절정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알기라도 하듯 그녀는 자꾸 주변만 어르듯 만질 뿐이었다.

자꾸 입술을 떼었다 붙이며 하던 키스는 어느덧 농밀하게 붙어 점점 입술과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이 적어지고 있었다. 마치 딱 달라붙어 마지막 숨결까지도 다 흡입해 버리겠다는 듯 구는 그녀의 행동에 머리가 아득해져만 갔다.

제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던 손이 옷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사제님은 왜 이런 곳에 약초를 숨긴 거야?”

“그러게 말이야.”

미약하지만 분명한 사람의 소리인 것을 알아차리자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완전히 떠졌다.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 열중하느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라디트는 내 눈이 떠진 것을 확인하고 더욱 강하게 입맞춤을 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라디트!”

단호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가 일순 멈추었다. 달아오른 금빛의 눈동자가 조르듯 날 바라보고 있자 일순 마음이 흔들렸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자 단호하게 그녀를 향해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라디트. 사람이 오는 것 같으니까 진정하고 흣……!”

등을 천천히 쓸던 그녀의 다른 큰 손이 다시 앞으로 와 제 가슴을 쓸어 올리자 달콤한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랫배를 짜르르하게 만드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자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아니! 하지 말라니까?

사람이 오는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그녀를 향해 애원하듯 바라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제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던 그녀의 입이 아랫입술을 살짝 머금었다.

가슴을 만지는 그녀의 손이 쉬는 일은 없었다. 감미롭게 감아올리듯 주변을 모아 만지는 그녀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양을 그대로 쓰다듬듯 일그러트리는 그녀의 행동에 겨우 다잡았던 결심이 흐트러지는 순간이었다.

“비시아?”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라디트의 손이 가슴에 향해 있던 터라 쉬이 그녀의 키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으, 응?”

“그리고 라디트……?”

심히 수상쩍다는 듯한 그녀의 눈초리에 재빠르게 앞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몽롱한 눈빛을 하고 있는 라디트는 내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던 참이었다.

“너네 같은 조였어?”

“으, 응. 정하다 보니까.”

“그래? 그런데 이런 곳에 앉아서 뭐 하고 있어? 그리고 이 달콤한 향은 뭐고?”

그녀의 말에 눈이 동그래져 깜빡였다. 달콤한 향……?

“아!”

그제야 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옅은 물웅덩이라고 하더라도 물은 물이었다. 다리부터 가슴 밑까지 촉촉하게 젖은 몸에서부터 달짝지근한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지금 라디트는 내 향에 취해서 이렇게 달려드는 것인가? 다행히 이제 들어온 일행들 눈에는 라디트가 무얼 하는지 잘 안 보이는 사각지대에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애써 감싸듯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디트가 몸이 안 좋은 모양이야. 나한테 기대려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어.”

“뭐? 그럼 큰일인 거 아냐?”

놀라 도와주러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황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여전히 꼼지락거리며 제 가슴을 만지고 있는 그녀를 도저히 다른 이들에게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 탓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유일무이하게 밥을 줄 수 있었던 이였던 것만큼 제 향에 취해 이렇게 된 거라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아냐. 괜찮아.”

“정말? 라디트가 많이 아파 보이는데. 안 도와줘도 괜찮겠어?”

“정말 괜찮아.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어. 거기다가 라디트가 남한테 약한 모습 보이는 거 싫어해서…….”

말을 하려다 순간 혀를 씹을 뻔했다. 기어코 제 살갗에 혀를 대는 라디트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을 뻔했다. 이게 진짜!

제아무리 향에 취해 본능만이 도드라진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유독 심했다. 주변 상황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제 욕심만 채우려는 모습이 꼭 비에 젖어 버려 테이젤과 에드아르를 함께 상대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니, 그때보다 더한 것 같았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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