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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6화 (6/86)

6화

무언가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 또한 요란하게도 덜컥댔다. 늘어진 몸은 축축하게 젖어 찝찝한 기분을 자연스럽게 유발하게끔 만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말 특유의 냄새가 공간 안에 진동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털어 내며 그 조건들을 조합해 보았다. 그 결과 짧은 사태 파악으로 어딘가로 운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비가 오고 있는지 조잡한 판자를 얼기설기 덧대 놓은 마차 천장 사이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탓에 이 좁은 공간에 말 냄새와 내 특유의 체향이 뒤얽혀 뒹굴고 있었다.

냄새의 본인마저 진하게 맡을 정도니 얼마나 강한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날 좀 먹어 줘,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진데, 이거. 아무리 보아도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다. 지금 당장 이 장소에 남자가 온다면 자신을 덮치지 않고선 배기지 못하리라.

으아아아! 싫어, 싫다고! 여전히 배는 고팠지만 이미 말라 버린 감정과 냉정하게 돌아온 정신은 아무 남자나 받아먹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무리 사태가 급하다고는 하지만 당장 달려드는 남자를 받아 줄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싶단 말이야! 나는 투덜대며 내 자신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등 뒤로 포박돼 있는 내 손과 단단하게 묶인 발목을 보건대 이건 틀림없는 납치였다. 게다가 대우마저 한 단계 낮아졌다. 가축처럼 실려 가는 것 같아 심히 불쾌했다.

누구지? 누가 나를?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먹잇감 일당들이 한 것 같지는 않은 행동에 더더욱 의구심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기절한 터라 뭔가를 추측하는 것도 힘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배가 너무 고파서 머리도 제대로 안 돌아갔다. 심지어 앞이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워, 워!”

굵은 목소리가 한차례 들려온 후, 말이 투레질하며 멈췄다. 덩달아 사정없이 흔들리던 내 몸도 잠잠해졌다.

세상에, 이대로 토하는 줄 알았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더니 내 주변으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은 이내 점점 더 커지다 한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일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꺼내.”

설마 저 꺼내라는 게 나는 아니겠지? 불안한 눈길로 문을 바라보았다.

“…….”

나였다.

너덜너덜한 문짝이 거칠게 열리더니 두꺼운 근육질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와 나를 그대로 들쳐 업었다. 오, 유레카! 그와 맞닿은 동안 기력이 조금이나마 흘러들어 왔다. 살았다. 아니, 그런데 사람을 너무 물건 취급하는 거 아냐?

“내려놔.”

그 말과 동시에 진창길에 내동댕이쳐졌다. 와, 세상에. 대우가 하도 극진하여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엉덩이가 차디찬 바닥에 부딪치자마자 날 내동댕이친 이를 향해 강렬하게 노려보았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 있으세요? 빗물이 세차게 내 몸을 때렸지만 진흙은 씻겨 나갈 기미가 안 보였다.

“이 여자가 그자와 몸을 섞었다 이거지?”

그자? 혹시 도망간 내 밥? 나는 멍청하게 그들의 말을 듣다가 기가 막혀 입을 벌렸다. 아닌데! 못 먹었는데. 몸 안 섞었거든요? 먹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설마 날 그와 섹스한 걸로 알고 납치한 건가?

이렇게 억울할 데가. 내가 섹스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억하심정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먹지 못해 서러운 걸 먹었다고 하니 괜히 덤터기 쓴 기분이었다.

있는 힘없는 힘 다 끌어모아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눈을 돌려 내게 무례한 언행을 거침없이 쏘아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한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깨어 계셨군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싸늘한 어투로 나를 물건 취급할 땐 언제고 이젠 친절함을 가장한 미소로 나를 대했다.

왜 갑자기? 나는 당황해 눈에 힘을 풀었다 이내 정신 차리고 재빠르게 눈에 힘을 주었다. 오히려 이런 유형이 더 위험했다. 그를 경계하다 소리를 빽 질렀다. 말하지 않고는 답답해서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섹스 안 했어요!”

“…….”

“안 했다고!”

진짜 안 했단 말이야. 고작 손밖에 안 넣었는데 무슨 몸을 섞었대. 오버 쩐다, 진짜.

내 외침과 함께 주위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나를 바닥에 내팽개친 근육질의 사내가 침묵을 깨고 작게 읊조렸다.

“아무래도 미친 여자인 것 같습니다.”

“무슨 그런 실례되는 말을.”

지금껏 나를 실례되는 말은 자기가 다 해 놓고. 푸른 눈동자의 남자는 비에 푹 절은 내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진창 묻은 몸이 개의치도 않은지 나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차디찬 흙에 엉덩이를 깔게 만든 건 언제고 날 소중히 안아 드는 건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내가 직접 데리고 들어가겠다.”

“예!”

이제야 좀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았지만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 남자는 도망간 밥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떠한 목적으로 관계성을 이용하려 했겠지. 허나 그는 내가 달아난 밥과 그 무슨 사이도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일단 씻으시죠. 사용인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정중한 그의 태도가 꺼림칙했다. 그는 단출한 방에 나를 내려놓고 손과 발의 밧줄을 풀어놓고 나갔다. 어찌나 세게 묶었던지, 손목과 발목엔 새빨간 생채기가 그대로 오리듯 그려져 있었다.

후우. 밥만 먹고 싶을 뿐인데 별 취급을 다 당해 보네. 오랜 시간 묶여 있었던 탓에 손목이 뻐근했다.

대체 어떻게 그 남자와 내가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지?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였을까. 그냥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었는데. 잘생긴 남자를 노린 대가인가. 그냥 분수에 맞게 오징어나 먹었어야 했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하는데, 누군가 정갈하게 노크했다.

이윽고 그가 말했던 사용인 둘이 들어왔다. 그들은 인사도 없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나를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잔뜩 묻어 있던 진창을 씻어 내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손님이 아니긴 하지. 남자사냥을 나선 후로 무시와 괄시는 너무도 익숙했다. 그래도 좀 서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죄인이 아니야. 사랑받기 좋아하는 여자고, 부드럽고 소중히 대하는 행동을 누구보다도 좋아한단 말이야!

물론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얌전히 목욕 시중을 받자 그들은 나를 청결하게 씻긴 후 옷까지 입히고 밖으로 나갔다. 으음……. 나는 어색한 내 옷차림에 가볍게 빙 돌았다. 가슴 부분이 조금 조이는데, 이거.

누군가가 들어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금방 문이 열리진 않았다. 씻는다고 몸을 긴장했더니 피로가 겹쳐왔다. 나는 방 중앙에 있는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탁자 위에 있는 쿠키를 씹었다. 그러나 맛만 느껴질 뿐 허기짐이 채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웃긴 게 나 외의 종족의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도 어느 정도 허기가 채워지고는 했다. 그래서 그들은 열일곱이 되어도 느긋하게 사냥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음식은 하등 소용이 없었다. 또 유난히 기력이 빨리 소모되기도 하고. 엄마는 나더러 우등한 유전 인자가 감내해야 할 조건들이라고 칭했다. 아직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종족 중에서 내가 유난히 예쁘다는 거지.

문제는 내 미모가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고. 나는 괴로움에 양 뺨을 감싸 쥐었다. 남자사냥을 나선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한 명도 수확이 없다는 게 그 증거였다.

“맛있네.”

그래도 맛은 있어서 쿠키를 전부 해치웠다. 입을 오물거리며 재빠르게 쿠키를 해치우자 탁자 위에는 쿠키의 모습은 없어지고 내가 흘린 부스러기가 잔뜩 남게 되었다.

“치워야 하려나?”

어차피 내 목욕시중을 해 준 이들도 있는데 내가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정중하게 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몇 초 후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푸른 눈과 청은발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사내였다. 그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냈다.

“이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무슨 이야기 말하는 거예요?”

진짜 뭘 말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앞뒤 말 다 잘라먹고 말하면 도대체 누가 알아듣는단 말인가. 나는 샐쭉하게 그를 향해 대답하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에 대한 얘기,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가오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거침없이 내게 걸어오더니 몸을 낮춘 후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을 질끈 감자 입가를 핥아 올리는 혀의 감촉이 느껴졌다. 키스와는 또 다른 야릇한 감각이 샘솟았다.

“입가에 좀 묻어서.”

아, 이거 위험한데. 떨떠름하게 눈을 뜨자 좀 더 가까이에서 호선을 그리는 그의 얼굴과 마주칠 수 있었다. 새로운 밥의 출현에 나는 쨍하고 얼어붙었다. 이거 먹어도 된다는 표시지? 그렇지?

나는 그를 빤히 올려다보다 이내 천천히 손을 올려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먹으라고 이렇게 대놓고 차려 주는데 마다할 리가.

어, 음. 엄마가 뭐 어떻게 하라고 그랬지? 나타나 준 건 정말 고마운데 말이야. 나는 잠시 고민하며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가까이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입술을 보자 이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돌진했다.

에라, 모르겠다! 다짜고짜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입술을 부딪친 난 부딪친 힘에 비해 부드럽게 입술을 핥았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남자가 잠깐 굳어 있더니 이윽고 웃음을 흘리며 벌려진 내 입안을 침범해 자유롭게 헤집기 시작했다.

그의 타액이 넘어옴과 동시에 정기가 흘러 내게 들어오자 나는 입안에 남아있던 쿠키의 맛이 깔끔하게 잊히는 것을 느꼈다. 아, 살 것 같다. 능숙한 키스에 더욱 목에 매달리자 양질의 기운이 내게 흘러들어 왔다.

그래! 이거지 역시, 응응. 쿠키 따위는 상대도 안 되는 진미였다. 성급함에 거칠게 다루었던 그와는 달리 부드럽게 입안을 애무하는 혀 놀림에 짜릿해져 그의 옷깃을 꽉 잡았다.

그와의 키스에 열중하느라 숨 쉬는 것마저 잊고 혀를 놀리자 그가 투명한 실을 남기며 입을 떼어 내었다. 막혔던 숨이 터지며 내가 아쉬운 듯 숨을 내쉬자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그가 날 향해 속삭였다.

“미인계를 쓰려는 겁니까.”

하지만 그의 말에 나는 오히려 되묻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미인계? 무슨 소리야. 그냥 잘 차려진 밥을 맛나게 먹으려는 것뿐인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행동에서 그가 날 배려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허기진 나에게는 조금 답답할 지경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입술을 맞댄 것처럼 다시 한 번 더 먼저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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