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90화 (290/303)

290화 #52 – 진가가 발휘되면 (3)

“희성아, 왔어?”

“어, 형.”

회사에 도착하자, 김 실장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오늘은 웬일로 회사로 불렀어?”

“일정 이야기 좀 하려고. 오늘 운동 말고 약속 있어?”

그의 물음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요즘 계속 액션 스쿨, 헬스장, 집. 이것뿐이지.”

내 말에 김 실장이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유나 씨는?”

그의 말에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답했다.

“유나도 이번에 작품 들어가잖아. 못 본 지 좀 됐어.”

“그래?”

“응, 한참 된 것 같은데.”

“저번에 박 감독님이랑 미팅하고 봤었잖아. 그 뒤로 안 만났어?”

그의 말에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때 이후로 안 만났어. 아니, 못 만났지. 유나는 작품 준비에, 광고 촬영에… 바쁘니까. 서로 시간이 잘 안 맞더라고.”

“역시 연예인들의 연애는 다르기는 하구나?”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도 형수님이랑 연애할 때, 연예인처럼 잘 못 보던데?”

“그건 그래. 내 스케줄이 연예인인 너랑 똑같잖냐. 하하.”

“맞지. 그래도 형은 결혼까지 잘 가셨잖아요.”

“그게 내 매력이다, 희성아. 하하.”

“아휴,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일 이야기 하시죠?”

김 실장이 웃으며 다이어리와 탁상 달력을 끌어당겼다.

“최근에 WG 엔터에서부터 시끄러웠잖아. 그래서 작품 활동도 좀 쉬고 해서, 팬들과 좀 멀어지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렇긴 하지. 배우는 특히 더 팬들과 만날 일이 적으니까. 무대 인사에서나 팬들 만나는데, 그것도 오래됐고….”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했다.

“그래서 가볍게 팬 미팅이라도 한 번 하는 건 어떨까 하는데. 어때?”

“팬 미팅?”

“응, 이제 어수선한 상황도 다 정리됐고. 이 회사도 정상적인 업무 볼 정도로 정리했고, 이제는 팬 미팅해도 될 것 같은데. 희성이 네 생각은?”

그의 말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팬들.

그들을 만나는 일을 마다할 연예인이 있을까?

가수는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무대를 하고, 행사에도 가기 때문에.

팬들과 소통하고 만나는 일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배우는 팬들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가수에 비해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지.

드라마든, 영화든 작품을 하는 동안은 팬들을 만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작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팬들 앞에서 직접 선보이는 게 아니라.

매체를 통해 인터뷰로 홍보하고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홍보를 하는 편이다.

그러니 배우가 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건, ‘팬 미팅’뿐이었다.

“나야 너무 좋지. 나도 팬들 만나서 감사함도 표하고 싶고, 인사하고 싶지.”

내 말에 김 실장이 미소를 지으며 달력을 펼쳐 들었다.

“오케이. 그럼 스케줄 확인하고….”

들뜬 김 실장의 말을 잘라내며 답했다.

“형,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건?”

“응, 가끔 아이돌들이 하는 음반 앨범 있잖아. 수백 장 사서 추첨하는 그런 거.”

“아… 어, 그런 식으로도 많이 하지. 그래야 앨범 판매량을 늘릴 수도 있고.”

“나는 그렇게 돈을 써야 하는 건 싫어.”

김 실장은 내 의견을 경청했다.

“그냥 담백하게, 나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아무 조건 없이 누구나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내 말에 김 실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너 진짜 팬들 생각 엄청 하는구나?”

“당연하지. 팬들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잖아. 아무리 배우가 연기만 하고 발버둥 친다고 해도, 팬들이 없으면 한계가 있을 거야.”

“그렇지.”

“팬들한테 너무 고맙잖아. 나랑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나를 좋아하고 응원해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김 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다이어리에 적힌 팬 미팅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의견은 따를게. 근데 대신 팬 미팅 좌석 금액은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좌석 금액이라면 어떤….”

“제일 앞좌석부터 가격은 차등으로 두고 판매해야 할 거야. 우리도 대관료에 수많은 스태프, 시간, 준비 비용. 그 비용이 어마어마한데, 손해 보고 할 수는 없으니까.”

“수익이 나야만 하는 건가?”

“수익을 보고 하기도 하지만, 손해는 보면 안 되니까.”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답을 망설였다.

팬 미팅을 여는 건, 팬들과 나의 만남이라 내 사비로 열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 실장의 말에 고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손해도 손해인데, 업계에서 우리만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거든. 다른 팬 미팅에도 영향을 줄 수가 있으니까.”

“하긴, 그럼 다른 연예인들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겠네.”

“응, 희성이 네가 팬들을 위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우리만 이런 식으로 팬 미팅을 진행하면 다른 연예인들은 앞으로 다 손해 보면서 하게 될 테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네. 내 마음만 생각하고, 진행할 수는 없겠네.”

“응, 그래도 업계를 생각해서 이 정도 선으로 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알겠어. 그럼 팬들 다른데 돈 쓰게 하지는 말고. 아무나 참여할 수 있게 해줘. 거기에 좌석 금액 차등만 두자.”

“어, 그렇게 진행할게.”

* * *

“아니, 그래서 이날로 여행 픽스하자는 거야?”

박순희가 자신의 앞에 앉은 친구들을 향해 날짜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래, 순희 너는 그날 무조건 가능?”

“당연하지. 주말이면, 그날은 완전 가능. 너네도 다 되는 거지?”

“어, 나는 그다음 주도 가능하고… 너네 편할 대로.”

박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 전화를 들었다.

“그럼 앞뒤 3주 동안 호텔 방 가장 값싼 날로 골라서….”

그때.

지이잉-

박순희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 전화에 진동이 울리며, 화면에 새로운 알람이 떴다.

“헐, 뭐야!”

그리고 그녀는 급히 호텔 예약 화면을 끈 채, 진희성의 팬 카페 ‘진희성수기’를 클릭했다.

“왜, 호텔 엄청 싸?”

그녀의 반응에 친구들이 박순희에게 물었다.

“아니, 그것보다 급한 게 있어서. 잠깐만.”

“뭐야, 뭔데?”

박순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급히 팬 카페에 올라온 글을 확인했다.

팬 카페에 올라온 글은 다름 아닌, 진희성의 팬 미팅에 관한 내용이었다.

진희성을 관리하는 매니저, 소속사에서도 가입되어 있는 팬 카페.

그의 소속사에서 올린 글이었고.

팬 카페에 대한 날짜와 내용이 페이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와아… 미친!”

박순희는 글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고.

모든 글을 확인하자마자 흥분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에 친구들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뭔데?”

“야, 우리 오빠, 팬 미팅한대.”

그 말에 친구들은 단번에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진희성 팬 미팅?”

“어, 우리 팬 미팅 날짜랑 여행 안 겹치게 잡아야 하니까, 내가 호텔 다시 알아볼게.”

“참나… 우리랑 잡은 날짜보다 팬 미팅이 먼저야?”

친구들의 말에 박순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리 오빠 팬 미팅 처음이란 말이야. 이걸 내가 어떻게 빠져?”

“어휴, 근데 진희성 팬 미팅이라면 인정. 우리는 그다음 주에도 가능하니까, 그때로 여행 가자.”

“고마워, 얘들아.”

박순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올라가 있었고.

몇 번이고 팬 미팅 공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대박. 우리 오빠를 드디어 팬 미팅에서 본다니…. 나 진짜 운다, 울어.”

* * *

WG 메디컬, 박주성 대표실.

그는 소파에 앉아, 한 본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진희성, 이렇게 바로 촬영 들어간다고?”

그의 말에 한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대본 리딩까지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블랙코미디 작품 힘들 게 엎어놨는데, 이렇게 바로 작품을 잡아?”

박 대표는 진희성이 작품에 들어가는 게 못마땅한지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내려쳤고.

그 모습에 한 본부장은 시선을 떨군 채, 그에게 말했다.

“그 작품 좀 더 알아볼까요?”

“아니, 이번에도 똑같은 수로 엎게 되면, 송유나가 와서 지랄할지도 몰라.”

박 대표는 눈썹을 들썩이며 한 본부장에게 물었다.

“근데 거기 투자사는 어때?”

“이번 투자사가 덩치가 너무 큰 곳이라… 쉽게 건들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딘데?”

“IBH입니다.”

그의 말에 박 대표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IBH면… 작년 영화 투자 제일 크게 한 곳 아니야?”

“예, 거기 맞습니다.”

“하아… 하필 IBH네.”

“네, 이번에 거기서….”

한 본부장은 영화 ‘언더커버’의 투자사 IBH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늘어놓았고.

박 대표는 그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거기는 건들기에 위험한데.”

투자사의 규모가 워낙 크고 탄탄한 곳이었기에, 기획사의 말에 휘둘릴 수가 없었고.

송유나 또한 그런 곳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송유나가 진희성을 그 작품에 넣고 싶어 했다.

WG 엔터가 가진 힘으로 진희성을 망칠 수 없는 작품이었으니까.

“근데 대표님, 송유나 계약 기간 얼마 안 남았습니다. 계약 끝나면 나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박 대표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겠지.”

“송유나가 다른 회사로 이적하면 좀… 어떻게 잡아둘 방법을 고안해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박 대표가 음흉하게 입을 휘었다.

“그걸 최대한 이용해야지. 우리 회사에 이득이 되도록….”

“어떻게 말입니까?”

“송유나가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주기는 했지만, 계약금을 워낙 많이 줬으니까 뽕이라도 뽑아야 될 거 아니야?”

그의 말에 한 본부장은 눈을 반짝이며 경청했고.

박 대표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회사에 떠오르는 샛별 중에 괜찮은 애들로 한 번 추려봐.”

“배우들로 말씀이십니까?”

“아니, 상관없어. 순수 배우도 좋고, 아이돌에서 연기하겠다고 전향한다는 애들도.”

그의 말에 한 본부장은 노트에 내용을 끄적였다.

“아, 내부에 괜찮은 물건 없으면, 외부에서 끌어와도 괜찮아. 확실한 애들로 골라와.”

박 대표는 허공을 응시하며 입꼬리를 휘었고.

한 본부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외쳤다.

“네,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 * *

“좋아, 잠깐 쉬었다가 다시 와이어 도전해 봅시다.”

“네.”

나는 코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휴게실로 다가가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액션 연습에 뻐근해진 몸을 기대었고.

잠시 눈을 감던 그때.

김 실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급히 휴대 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희성아!

“응, 무슨 일이야?”

평소 내가 운동하는 시간을 체크하는 김 실장이었기에.

이 시간에는 전화를 걸지 않는 그였다.

그런 것을 알기에, 김 실장이 전화를 걸었다는 건, 무슨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이었지.

내 물음에 김 실장이 가쁜 숨소리와 함께 내게 물었다.

-나 방금 투자사에서 연락이 왔어.

“우리 회사에 투자한다고 연락 온 거야?”

그렇지 않아도 투자사를 찾는 중이었기에, 김 실장은 흥분한 것 같았고.

내게 기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어, 우리 매니지먼트에 투자를 하고 싶대.

“잘됐다. 형, 고생했어.”

-근데 투자사가 어디냐면….

“그래, 투자사가 어딘데?”

김 실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IBH 투자사.

“뭐? 우리 영화에 투자하는 그 IBH?”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사 전체에서 주연 배우로 나를 반대했던 곳이 IBH였으니까.

-응, 거기서 우리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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