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41 – 결실 (1)
영화 개봉과 동시에 여러 작품과 광고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연락에 응하거나 거절을 하지는 않았다.
아직 영화 개봉을 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고, 다음 작품을 고르거나 광고를 찍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 흥행에 따라 몸값이 천차만별로 오르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는 이 모든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아니 몸값을 떠나, 다음 작품은 조금 더 신중하게 고르고 싶었다.
이번 작품이 첫 할리우드 영화였으니, 다음에도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이어갈지 혹은 다시 국내에서 연기를 할지조차 정해야 했다.
회사에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와 광고 연락에 대한 회의가 끝이 나고.
김 실장과 나는 함께 회사에서 빠져나와 카페로 향했다.
“아침부터 회의하느라 힘들었지, 커피나 한잔하자.”
“좋지.”
김 실장과 회사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고, 우리는 곧장 커피를 들이켰다.
“형, 그럼 광고는 전부 보류해두는 거야?”
내 말에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답했다.
“응, 아마. 아니면 대부분 거절할 거야. 흥행에 따라 네 몸값이 더 오를 걸 아는 광고주들이 지금 급하게 광고 제안을 하는 거니까.”
“와아, 근데 여기서 더 오른다고?”
이미 내가 받고 있던 광고 금액에도 나는 늘 놀라웠다.
예전에는 내가 광고를 찍을 수 있다는 상상조차 못 하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첫 광고 제안을 받았을 때.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연기를 하며 몸값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연예계의 대단함에 감탄했고.
이제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몸값은 배가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 흥행에 따라 광고비가 천정부지로 오른다니….
내겐 이 모든 일이 여전히 꿈만 같았다.
김 실장은 놀랍다는 듯한 내 말에도 대수롭지 않게 눈썹을 들썩였다.
“놀라긴, 너 이제 시작이야.”
그는 웃으며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나를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희성아, 오늘 할 일 뭐 있어?”
“아니. 스케줄 없으니까, 따로 할 일은 없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바쁠 줄 알았지만.
모든 일을 흥행 여부에 따라 미루다 보니, 막상 스케줄이 빡빡하지는 않았다.
영화 홍보는 개봉 전부터 조금씩 이뤄지기도 했고, 라디오나 간단한 프로그램에 나가 홍보를 계속 이어갔다.
그래서 개봉을 한 후에는 따로 스케줄을 잡지 않았지.
김 실장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조금 이따가 같이 영화 보러 갈래?”
“형이랑 나랑?”
김 실장과 단둘이 영화를 본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연기가 직업인 내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예인 신분으로 홀로 영화관에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
그래서 늘 매니저인 김 실장과 단둘이 영화를 보러 가고는 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심야 영화를 즐겨 봤지만.
지금처럼 대낮부터 영화를 보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놀라 그에게 되묻자, 김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당연하지.”
“심야 영화도 아니고, 지금 가면 사람 엄청나게 많을 텐데?”
“그래서 가자는 거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김 실장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영화, 지금까지 찍었던 것과는 다르잖아. 현장에서 관객들 반응을 직접 보고 싶지 않아?”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늘 내가 찍은 영화가 나오면, 시사회를 통해 영화관에서 내 연기를 보고는 했다.
하지만 일반 극장에 스스로 관람을 하러 가지는 않았지.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의 말대로 관객들의 반응이 더욱 궁금했다.
해외 배우들 사이에서 연기하는 내 모습.
그리고 영어로 연기하는 나에 대해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하고, 어떻게 영화를 볼지가 너무나도 궁금했지.
나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다 곧장 머리를 흔들었다.
“좋아, 가보자. 근데 지금 가면 사람 너무 많은데, 괜찮으려나?”
“관객들 반응 보려면, 지금처럼 사람 많을 때 가야 좋지. 모자랑 마스크 쓰고, 영화 시작 직전에 어두워졌을 때 들어가자.”
“알겠어.”
우리는 남은 커피를 털어 마시고, 영화관으로 향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몇 시간 뒤.
회사 근처에 있는 영화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김 실장과 나는 구석에 앉아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지금 나간다면 많은 사람과 밝은 곳에서 마주칠 터.
혹시라도 알아보게 된다면, 나를 향해 몰릴 수도 있고.
그리고 내가 내 영화를 보러 왔다며 인터넷에 이야기가 퍼질 수도 있기에, 자리에서 가만히 사람들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렸다.
극장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가지 않은 채 엔딩 크레딧을 보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야, 영화 대박이잖아.”
“그래, 이거 지금 1위라고 하더라.”
“헐, 진희성 연기 대박이네. 우리 그 다른 9·11 테러 영화도 보자.”
“이야…. 나 아까 테러 터질 때 완전 철철 울었어.”
“진희성 연기 진짜 잘한다. 걔 유학했나, 영어 발음 미쳤더라.”
사람들은 각자 영화에 대한 평가와 내 연기에 대한 평들을 늘어놓았고.
생각보다 호평만 이어지는 반응에 나와 김 실장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번졌다.
사람들 틈에 숨어 있던 우리는 목소리를 낮춘 채 대화를 나눴다.
“와아, 형. 영화 반응 좋은데?”
“당연하지. 봐, 이렇게 와서 실시간 관객 반응을 보니까 기분 좋지?”
“응.”
김 실장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다음 영화도 예매할까?”
“그럴까?”
***
‘9월 11일’ 영화의 스코어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리고 있었다.
개봉한 지 2주 만에 한국에서의 관객 수는 500만을 돌파했고.
연일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희성아, 영화 천만 찍겠는데?”
김 실장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관객 수 화면을 보여주었고.
나는 미소를 삼켜낸 채 입을 열었다.
“너무 기대하지 않고 기다려 보려고.”
내 말에도 그는 여전히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답했다.
“이건 무조건 천만 각이야. 지금 북미에서도 박스 오피스 계속 1위 달성 중이야.”
나는 휴대 전화로 영화 순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2위가 ‘테러’네.”
“어, 제임스 감독 영화가 2위. 그래도 개봉하고 나서 한 번도 ‘테러’가 ‘9월 11일’을 이긴 적은 없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영화의 흥행 여부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제임스 감독의 영화를 이기느냐 하는 거였다.
제프리 감독과 제임스 감독이 라이벌이라서 내가 출연한 제프리 감독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도 당연히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제임스 감독의 작품을 버리고, 제프리 감독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제프리 감독의 작품만을 선택했다면 제임스 감독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그와의 손을 잡았다가 놓은 것.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감독의 작품에도 동양인이 출연했고, 그 작품의 동양인은 일본인이었다.
그래서 한국인인 내가 출연한 제프리 감독 작품이 한국에서 흥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영화가 너무 재미없지 않는 한, 일본인이 출연한 작품보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선호할 터.
그래서 한국에서의 흥행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에서의 순위와 흥행 정도가 궁금했다.
그게 더욱 객관적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할리우드 반응을 좀 봐야겠다.”
내 말에 김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들을 찾았고.
나 역시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할리우드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김 실장이 입을 열었다.
“여기도 네 작품이 1위야.”
김 실장은 내게 화면을 내밀었고.
나는 1위인 작품 바로 아래 보이는 제임스 감독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근데 1위치고는 성적이 2위랑 엄청나게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았네?”
내 말에 그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제임스 감독이랑 장르가 너무 겹쳐. 단순히 테러라는 게 겹치는 게 아니라, 9·11테러라는 주제가 같으니까.”
김 실장은 한숨을 삼켜내며 내게 말했다.
“응, 그래서 관객들이 두 개의 작품으로 갈리거나, 두 작품을 모두 보거나. 그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 그래도 정면 승부해서 1위가 이 작품인 게 어디야.”
“맞아. 그래서 다행이긴 하지.”
그는 내 말에 서둘러 휴대 전화를 뒤적이더니, 이내 기사와 댓글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거 봐. 할리우드에서도 동양인 배우 누구냐는 글이 엄청 많아.”
김 실장의 말에 휴대 전화를 보니, 나를 향한 댓글이 꽤 많은 편이었다.
-저 동양인 배우 연기 진짜 잘한다. 게다가 신선해.
└맞아. 한국인 배우인데, 다른 작품들도 추천해.
└배우 이름이 ‘진희성’이야.
-동양인 뽑은 게 신의 한 수인 듯!
-나 이 영화 보고 K-영화 보기 시작했어. 재밌는 거 많더라.
-동양인 저 배우 출연한 다른 영화 없어? 한국 영화 말고.
└이번이 처음이래.
└헐, 말도 안 돼. 근데 저렇게 연기를 잘한다고?
└당연히 할리우드 배우인 줄 알았는데.
댓글을 바라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김 실장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희성아, 진짜 월드 클래스 되는 거… 얼마 안 남은 거 같은데?”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
쾅-!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에 앞에 앉은 해리슨이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하아….”
제임스 감독은 태블릿 PC 속에 재생되고 있는 영상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슨은 그 모습에 입술을 말아 넣은 채 제임스 감독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였다.
“이런 식으로 제프리 그 자식 영화랑 내 영화를 비교해?”
그가 보고 있던 영상.
같은 주제를 다룬 9·11테러 영화인, ‘9월 11일’과 ‘테러’를 비교하는 영상이었다.
탁-.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제임스 감독은 태블릿 PC를 꺼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았고.
“아무리 봐도 각본은 제프리 영화보다 우리 작품이 훨씬 나아. 어떻게 생각해?”
그의 말에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감독님. 제가 감독님 밑에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도 저희 작품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해리슨은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답했다.
“네, 실제로 비교 영상들을 보면, ‘테러’ 작품의 내용이 좋다는 의견이 압도적입니다.”
“하아… 근데 왜 우리가 계속 2위냐는 말이야!”
제임스 감독은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며 짜증을 표출했고.
이내 눈을 희번덕거리며 읊조렸다.
“…이건 배우 탓이야.”
그러고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작품에 히로토도 연기를 잘하기는 했는데… 제프리 영화에 진희성이 미친 사람처럼 너무 연기를 잘했어.”
그의 말에 공감하듯 해리슨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진희성이 열연을 펼쳤더라고요. 대중들의 평가를 봐도, 저희 영화의 후기에서는 히로토의 이야기가 없는데, ‘9월 11일’ 후기에는 진희성에 대한 평가가 엄청납니다.”
제임스 감독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어이가 없어. 진희성 그 한국인은 내가 발굴해서 할리우드에 데려온 건데 말이야.”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그 주먹이 부르르 떨리도록 힘을 주며 읊조렸다.
“그때 일본 배우랑 오디션을 붙일 게 아니라, 그냥 섭외해야 했어. 하아, 진희성을 놓친 게 실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