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210)화 (210/303)

210화 #36 – 시야를 넓히면 (7)

“컷, 오케이!”

제프리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현장에 울려 퍼지고.

동시에 오늘의 촬영이 끝이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은 뒤.

나는 김 실장과 함께 내 전용 대기실인 트레일러로 향했다.

“희성아, 오늘도 수고했어.”

“고마워. 형도 챙기느라 고생했어.”

트레일러로 향하는 김 실장은 손목시계를 자꾸만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형, 무슨 일 있어?”

내 물음에 그는 내게 시간을 보여주며 조급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시트콤 나오는 날이잖아.”

그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입을 벌린 채로 소리쳤다.

“맞다. 몇 시야?”

“지금 세 시간 뒤에 시작이야.”

“얼른 집에 가자.”

3시간 뒤에 시작하는 시트콤.

아직 시간은 넉넉히 남은 편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내 모습이 비치는 건, 지금 촬영 중인 제프리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

시트콤에서 찍은 내 단역 모습이 처음이기에.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할리우드에서의 내 연기는 어떻게 표현될지도 너무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또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기사가 한국에 퍼지고 나서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았기에.

그들의 반응 또한 궁금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남은 3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긴장되는 마음속에 서둘러 트레일러에서 마무리 짐을 챙기고 있었다.

김 실장 역시 짐을 챙기며 내게 말했다.

“우리 어차피 주말 지나서 또 촬영할 거니까, 대충 정리하고 얼른 집에 들어갈까?”

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몇 시간 뒤.

우리는 영어가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TV 채널을 틀어놓았다.

“오오, 이제는 한 시간도 안 남았어.”

“그러네. 진짜 떨린다.”

둘 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긴장한 채, 소파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기만 했다.

“내가 한국에서 영화가 나올 때도, 주연으로 드라마를 할 때도 이렇게 떨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맞아. 근데 이게 미국에서 작품이 나온다고 하니까, 이렇게 떨리네.”

우리는 그저 물로 목만을 축이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뜬눈으로 TV를 바라보던 그때.

시트콤의 알림이 울려왔다.

“형, 시작한다!”

그는 내 말에 마른침을 삼키며 자세를 고쳐 잡았고.

김 실장은 옆에 미리 세팅해둔 삼각대.

거기에 설치한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눌렀다.

“형, 근데 어차피 시트콤도 다 인터넷에 올라오고, 요즘은 OTT에도 올라오는데. 꼭 이걸 촬영해야 해?”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물었고.

김 실장은 내 웃음에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건 하루가 지나야 나오잖아. 이렇게 촬영해서, 어디에 올리는 거 아니고. 소장용이야. 자랑스럽잖아, 우리 희성이의 첫 할리우드 데뷔니까.”

나보다 더 뿌듯하다는 얼굴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나는 연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결국, 촬영 버튼을 누른 김 실장은 TV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어어… 시작한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했다.

그렇게 내가 등장한 첫 번째 신이 10여 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희성아, 너 나왔다.”

나와 김 실장은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 동공으로 TV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이야, 카메라 잘 받았는데?”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흐뭇하게 나와 TV 속의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 역시 TV에 나온 내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러네. 확실히 한국에서 보이는 모습이랑 다른 느낌이기는 하다. 그렇지?”

“응, 이게 할리우드 시트콤의 감성인가? 하하.”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잠시.

우리는 시트콤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바라보며 웃는 것 빼고.

아무런 대화도 주고받지 않은 채, 온 마음을 다해 진심을 담아 시청했다.

팟-!

시트콤이 끝나자, TV를 껐고.

서로를 마주 보며 손뼉을 부딪쳤다.

짝짝-.

“이야, 희성아. 할리우드 첫 TV 시트콤 축하한다.”

“하하, 고마워, 형.”

“우리 한국인 정서에도 맞을까 싶었는데, 충분히 잘 맞고 웃기는 것투성이야.”

그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니까. 나도 이게 우리 웃음 코드에도 맞을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완전 대박인데?”

“아직 몇 회 더 나올 건데, 뒤에 편집도 어떻게 하셨을지 궁금하다.”

김 실장과 나는 조금 전 보았던 시트콤의 내용과 내 연기에 대해 토론을 펼치듯 대화를 이어갔다.

“아까 병원에서 나오는 장면, 얼굴 진짜 잘 나왔더라. 연기도 엄청나게 좋았어.”

그의 피드백에 나는 다시금 집중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어, 그 부분에서 연기가 아주 물이 올랐던데?”

“하핫, 다행이다. 근데 그다음 신에서는….”

나와 김 실장은 시트콤을 본 시간보다, 이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대화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내 연기를 누구보다 오랫동안 봐온 사람과 내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곧바로 주고받으며 나누는 이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졌다.

그때.

지이잉.

울리는 휴대 전화 알람에 나는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형, 잠시만.”

“응.”

“같이 시트콤 찍었던 배우들한테 연락 와.”

내 말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답했다.

“연락하고 있어. 나는 잠깐 한국에 연락 좀 해봐야겠다.”

“알겠어.”

나는 서둘러 휴대 전화를 열었고.

연락이 온 건, 브라이언과 함께 촬영한 배우들이었다.

-진, 첫 할리우드 시트콤 축하해. 방금 방송 봤는데, 정말 잘 나왔더라!

-희성 씨, 연기 잘 봤어요. 같이 촬영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 조만간 얼굴 봐요.

-희성 씨를 TV에서 다시 보니 반가웠어요. 이번 화 웃기다고 반응 좋던데요? 곧 다 같이 얼굴 보게 만나요~!

세심하게 연락이 온 그들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아주 잠깐인 2주 동안의 촬영이었지만.

그들과 정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들 바쁠 텐데, 본방송을 보고 내게 연락을 줬다는 사실에 너무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에게 모두 답장을 보낸 뒤.

현지인들의 실시간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인터넷을 열었다.

반응은 생각보다 꽤 좋은 편이었다.

아니, 내 예상보다 엄청난 반응이었지.

-뭐야, 오늘 나온 동양인 연기 잘한다.

-K-POP이 유명한데, 이제 한국인도 시트콤에 나오네?ㅋㅋ. 근데 연기도 잘하네.

-오오, 한국인인가? 저 동양인 얼굴 내 스타일이야.

-다음 화 빨리 보고 싶다.

-저 동양인은 몇 화까지 나오는 걸까?

└몇 화 더 나올 듯. 계속 고정으로 출연했으면 좋겠다. 완전 내 취향임.

-저 배우는 한국인 ‘진희성’이라고 함. 나는 결국 한국 영화까지 찾아보려고ㅋㅋ.

내게 쏟아지는 관심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데?”

***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 전화.

일주일 중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주말이었지만.

수없이 울리는 알람에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뭐지, 아침부터?”

겨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고.

흐릿한 시야로 들어오는 휴대 전화 화면.

알람들은 한국 배우, 지인들.

그리고 SNS로 쉴 새 없이 오는 팬들의 메시지였다.

지난 밤사이 한국에도 내가 미국 시트콤에 출연한 영상이 퍼졌던 모양이다.

내게 직접 연락이 온 내용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축하한다는 내용과 연기가 대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내 직접적인 지인이나 팬이었기에.

모진 소리를 하지는 못할 터.

내게 쏟아지는 칭찬을 보며, 기분 좋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곤 보다 더 객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보기 위해,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한국 사이트에 접속해, 나와 관련된 기사나 댓글을 찾기 시작했다.

“오오, 벌써 기사도 뜨기는 했네?”

내가 미국 시트콤에 출연했다는 기사가 많이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내 이름을 검색하면, 간간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할리우드의 큰 영화도 아니고.

미리 한국에 알리지도 않은 시트콤 출연이었기에, 기사가 적은 것은 당연했지.

그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

생각보다 화제가 되었는지, 댓글의 개수는 꽤 많은 편이었다.

-헐, 진희성 할리우드 진출함?

-할리우드 진출한다더니, 시트콤이었다고?ㅋㅋㅋ.

-뭐야, 난 또 엄청난 영화에 나오는 줄ㅋㅋ.

└인정, 나도 할리우드라길래 적어도 영화로 나오는 줄.

-얘 제프리 감독이랑 영화 찍는다고 하지 않았음? 제임스 감독 오디션 안 보고 도망갔다더니, 이것도 도망간 거 아님?ㅋㅋㅋ.

-엥? 시트콤이 웬 말이냐ㅋㅋ.

-근데 진희성, 이제 그냥 하나 한 거 아님?

└내 말이. 그냥 할리우드에서 시트콤 하나 찍고, 계속 뭐 하고 있을 듯.

└내 생각도! 우선 중립 기어 넣어둡니다.

-솔직히 그냥 시트콤만 찍었다고 해도 대단한 거 아님? 연기 보니까 엄청 잘하던데.

-와, 미국인들 사이에서 안 꿇리고 연기 잘하네. 완전 국위 선양이쥬?

-진희성 역시 연기 잘하긴 한다. 그리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키도, 얼굴도 전혀 안 꿇려.

-진희성 얼굴 미쳤다.

-나 저 배우들 다 아는데, 저기에 진희성 있으니까 합성 같아. 진심 개 멋있다, 진희성. 괜히 국뽕 차오름!

-진희성 이것도 하고, 그럼 제프리 감독 영화도 하는 건가? 뭐지? 궁금한데, 소속사에서 왜 말 안 해주냐.

댓글들은 찬반으로 갈려,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뉜 듯 보였다.

할리우드 진출한다더니, 그게 시트콤이었냐, 라는 반응.

그리고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를 지지하는 반응.

댓글은 서로 갑론을박을 펼치며, 끝없이 댓글이 달리고 있었고.

좋든 나쁘든, 생각보다 화제가 된 것을 바라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

“희성아, 준비됐지?”

“응.”

나는 김 실장의 말에 옷매무새를 만지며 자리에 앉았다.

시트콤에 출연하는 대신, 한 본부장의 인터뷰 조건이 붙었지.

오늘은 첫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고.

수많은 추측 댓글이 달린 날.

우선 영상으로 한국에 있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내 화면이 밝아지며, 한국의 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희성 배우님.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나를 보며 인사를 보냈고.

“네, 처음 뵙겠습니다.”

-와, 이렇게 영상으로 봐도 잘생김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하하.

처음 보는 기자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제 미국 시트콤에 나오셨던데, 원래 할리우드 진출이 그 시트콤이었나요?

“그건 아닙니다.”

-맞아요. 제가 알기로도 제프리 감독님 작품으로 진출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 좀 부탁드립니다.

“네, 지금 제프리 감독님 작품은 열심히 촬영 중에 있습니다. 어제도 촬영을 하고 왔고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빠르게 타이핑하고 있었고.

“시트콤은 제가 이곳의 환경과 연기를 너무 배워보고 싶어서 촬영하게 됐습니다. 제 예상대로 영화와는 다른 매력과 배울 점이….”

그렇게 인터뷰는 이후 몇 가지의 질문이 추가로 나왔고.

나는 보탬이나 거짓 없이 내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십 분 뒤.

생각보다 금방 끝난 인터뷰.

기자는 밝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제가 준비한 건 여기까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기사 잘 부탁드릴게요.”

-네, 댓글들 보니까 내용도 잘 모르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 기사 나가면, 악플러들 싹 조용해지겠는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러게요. 그렇게 되도록, 기사 내용 잘 좀 써주세요.”

-당연하죠. 얼른 정리해서 기사 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다음에 한국 가면, 또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님.”

-네, 촬영 잘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그녀와 훈훈하게 인터뷰를 마친 뒤.

몇 시간이 흐르고.

곧바로 기사가 떴다.

그러자 그 기사의 댓글에는 온통 나를 응원한다는 댓글들뿐.

그 어디에도 아침에 보았던 내용의 악플은 보이지 않았다.

“와아, 악플이 이렇게 한순간에 다 사라져 버린다고? 악플러들… 진짜 신기한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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