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80)화 (180/303)

180화 #32 – 한솥밥 먹는 사이 (3)

“엄마, 아빠. 비행기 오래 탈 건데, 그래도 편한 자리로 가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부모님은 잔뜩 설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라. 네 아빠는 비행기 타는 거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니까.”

“맞아. 나는 비행기 타는 게 좋아. 아예 며칠 내내 비행기에 있고 싶다니까?”

아버지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아빠, 제주도 가는 30분짜리 비행기만 타 보셨잖아요.”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부모님.

제주도 여행 또한 아는 부부와 두 번 가신 게 전부였다.

내 말에 아버지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그러니까 비행기가 오래 타고 싶지. 제주도는 너무 감질나는 비행이야.”

“하하, 맞죠. 아버지, 이번에 비행기 타고 나서 질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부모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국내선만 타본 부모님이 인천 공항에 온 것은 인생 처음이었으니까.

“이야, 공항이 이렇게 커?”

“그럼. 얼른 우리 들어갈까?”

“그래.”

부모님과 함께 공항 라운지에 들어와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긴 비행도 처음이었지만.

비즈니스석에 타는 것은 더더욱 처음인 부모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하신지, 좌석에 달린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 보시고는 했다.

“우와, 희성이 아빠, 이거 좀 봐요. 진짜 좋네.”

아버지는 무뚝뚝한 얼굴 뒤에 잔뜩 신남이 보이는 듯했고.

나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뿌듯함과 동시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나 역시 해외에 나간 게 불과 작년이 시작이었지만.

부모님은 평생 나를 키우느라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시지 못했다는 죄송한 점과.

이제야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밝은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결심했다.

최대한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꼬박 하루를 걸쳐 도착한 이곳.

“우와!”

“이야… 이건 말도 안 돼….”

부모님은 감탄을 쏟아내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이곳은 신혼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

몰디브였다.

신혼여행으로 손에 꼽히는 이 여행지를 굳이 고른 이유.

바로 부모님이 신혼여행을 가지 못하셨다는 점을 떠올렸던 것이다.

당시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에게 있어 신혼여행은 사치였다고 한다.

그저 국내로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은.

이후 나를 낳으신 뒤, 더더욱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라도 부모님에게 신혼여행다운 곳에 함께 여행을 오고 싶었고.

또 이제는 나이가 있으신 부모님이기에,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지보다 이렇게 섬에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에 오고 싶었다.

유럽에 가게 되면, 부모님이 일정을 즐기지 못하셨을 거고.

동남아로 간다면, 나를 알아보는 팬들이 있어 자유롭게 부모님과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여행지, 몰디브로 선택을 한 것이지.

역시나 내 예상에 맞게, 부모님은 잔뜩 신이 나신 얼굴로 몰디브를 만끽했다.

“와아! 희성아, 여기 물색 좀 봐.”

바닥의 모래가 보일 정도로 맑은 물색.

나 또한 처음 오는 몰디브였기에.

감탄을 쏟아내며 답했다.

“진짜 너무 예쁘다….”

내 말에 아버지는 무뚝뚝함을 해제하신 채 한껏 밝은 얼굴로 읊조렸다.

“천국이 있다면, 이럴 것 같은데…?”

아버지의 말에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아빠, 몰디브 어때요?”

“말해 뭐 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곳인데?”

“하하, 여기서 우리 수영도 하고, 내내 힐링하다가 가요.”

“좋지.”

우리는 그렇게 멍하니 맑디맑은 바다를 함께 바라보았다.

***

바다 위에 떠 있는 숙소.

침대의 휘장을 열고 나가면, 방 안에 펼쳐진 넓은 풀장.

그리고 풀장 옆에는 바다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있지?”

어머니의 감탄은 몰디브에 도착한 이후로 멈추지를 않았다.

나 역시 감탄을 자아내는 자체에 놀라고 있는데.

어머니는 나보다 더한 기쁨을 느끼실 터.

“어머. 희성이 아빠, 희성아. 이것 좀 봐.”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를 급히 불렀고.

그녀에게로 다가가니.

방 한가운데가 뚫려 유리를 통해 바닥.

그러니까 바다가 보이도록 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우와! 엄마. 여기 물고기 지나가는 게 다 보이네.”

“그러네. 희성아, 이런 데 데려와 주고 고마워.”

촉촉한 눈빛으로 내게 말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짓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이제 데려와서 미안해. 앞으로는 우리 자주 여행해요.”

“어휴, 그럼 돈은 언제 모아. 여기 오는 것도 돈 엄청나게 썼을 텐데.”

아버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빠. 나, 진희성이야. 아빠 아들 이제 유명해. TV에도 매일 나오고, 영화관에도 있잖아. 하하.”

내 말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우리 아들 덕에 너무 호강한다. 그렇지, 희성이 아빠?”

“그러게. 우리가 자식 하나는 진짜 잘 키웠다. 하하.”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그러니까 부모님이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나는 가족과 함께하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여행에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을 꾹꾹 내뱉었다.

“엄마, 아빠.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우리 이렇게 자주 여행 오자.”

몇 시간을 물에서 놀다가 나온 뒤.

우리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는 섬 안에 식당이 엄청나게 많네?”

어머니는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떡 벌렸고.

“응, 여기는 섬에서 밥도 커피도, 그리고 액티비티로 놀 거리도 다 있으니까. 천천히 하고 싶은 거 다 즐겨요.”

아버지는 내 말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우리 저기 큰 수영장에서 먹어도 되는 건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수영장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당연하지. 저기서 먹을까요?”

“좋지.”

“역시 우리 아빠가 낭만을 안다니까? 하하.”

우리는 바다가 바로 보이는 인피니티 풀, 바로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몇 분 뒤.

이내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평소 부모님이 자주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 보겠다며 시킨 파스타와 피자, 스테이크.

한식 외의 음식을 즐겨 드시지 않을 줄 알았지만.

어머니는 서둘러 휴대 전화를 열어 사진을 찍었다.

“어머, 진짜 예쁘고, 맛있겠다.”

“엄마, 아빠. 몰디브까지 왔으면 모히또 한 잔 마셔야지.”

내 말에 부모님은 앞에 놓인 모히또를 허공 높이 들었고.

“자자, 여기 보고 포즈 취해봐. 내가 예쁘게 사진 찍어줄게.”

“희성이 아빠, 여기로 좀 더 붙어요.”

부모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다정한 포즈를 취했고.

나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부모님을 한 앵글 안에 가득 담아냈다.

찰칵-!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가족 여행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

***

어느새 몰디브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처음으로 긴 비행을 마친 부모님은 이른 저녁이었지만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방과 바다가 이어지는 문을 열고 나와.

데크에 깔린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좋다.”

바다에 어둠이 깔렸지만, 달빛을 통해 파도가 반짝이는 게 눈에 보였고.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방 안에 세팅되어 있는 샴페인을 가져와 한 잔 홀짝이며 여유를 만끽했다.

걱정도, 근심도 모두 사라지는 듯한 이 기분.

고개를 돌려 부모님이 잠든 방을 쓰윽 바라보았다.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부모님이 이렇게 좋아하시는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여행 올걸….”

서둘러 휴대 전화를 열어, 오늘 찍은 사진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하, 엄마 또 눈 감았네?”

부모님의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짓던 나는, 나를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SNS를 열었다.

그러고는 내가 나온 사진과 몰디브의 풍경.

거기에 부모님의 얼굴이 나오지 않은 뒷모습을 SNS에 게시했다.

“이 좋은 사진은 팬들한테도 보여줘야지.”

***

다음 날 아침.

몰디브의 뜨거운 햇살에 절로 떠진 눈.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침대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도 보이는 푸른 바다.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상상 속에만 있던 색상이었다.

커피 한 잔을 내려 밖으로 나가는 문이 아닌.

수영장이 있는 침대 앞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수영장 물보다 더 맑은 것 같은 바다.

그 바다를 바라보며, 야외 소파에 몸을 푸욱 기대앉았다.

나만큼 여유롭게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고.

커피 한 잔을 들이켜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상상한 것 그 이상의 색을 보여주는 라군.

흔히 알고 있는 파란 바다색이 아닌, 맑은 에메랄드색의 이 바다는 바닥의 하얀 모래까지 모두 비춰보였고.

커피를 마시며 라군을 바라보자,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듯했다.

“이래서 신혼여행으로 몰디브를 오는 건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금 커피를 삼켰고.

그때.

“희성아.”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내게로 걸어왔다.

“어? 아빠, 벌써 일어났어요?”

“응, 이렇게 여행 왔는데, 일찍 일어나서 더 즐겨야지.”

“아이고, 아빠도 참. 피곤하실 텐데, 좀 더 주무시지.”

내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나도 아들이랑 이렇게 바다 좀 보려고.”

“커피 드실래요?”

“좋지.”

“잠시만요. 내가 금방 타올게.”

“그래.”

아버지는 내 말에 소파에 등을 기대며 바다를 바라보았고.

나는 서둘러 아버지에게 줄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빠, 여기 커피.”

“고맙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아무런 대화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가족끼리, 특히 아버지와는 이렇게 단둘이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고.

혹여나 아버지와 둘이 있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 불편한 상대가 아니라 가족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어?”

바로 눈앞을 지나가는 작은 상어.

내 놀란 목소리에 아버지는 내가 아닌, 내 시선 끝을 바라보았고.

“아빠, 저기 상어!”

“우와, 진짜 신기하다.”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상어를 바라보았다.

“내가 살다 살다 상어도 보고, 진짜 좋은 경험이네.”

“여기 몰디브에는 상어 보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것도 아니래. 이렇게 방 앞에 지나가나 봐.”

내 말에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바다를 빤히 바라보며 읊조렸다.

“희성아, 아빠는 네가 이렇게 성공해서 너무 좋아.”

“…….”

항상 나를 반대했던 아버지.

그리고 TV에 나오기 시작하자, 항상 나를 응원하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대놓고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 일에 대해, 그리고 내 성공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 한쪽이 찌릿한 느낌.

눈물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가슴 어딘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을 내게 툭 털어놓은 것이 머쓱했는지.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다음 여행은 아빠가 쏠게.”

아버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몸만 가요?”

“그래, 아들은 몸만 와. 아빠가 다 낼 테니까. 하하.”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고.

“아빠 먼저 씻고 올게.”

“네, 엄마 일어나면, 그때 조식 먹으러 가요.”

“알겠어. 아빠가 씻고 나서 엄마 깨울게.”

그렇게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간 후.

나는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져왔다.

그때.

딩동.

휴대 전화의 알람 소리.

SNS에 울리는 댓글 알람이었다.

“어? 내가 알람 꺼놨던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SNS를 열었고.

어젯밤 올렸던 게시물에는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몰디브에서 찍은 내 사진과 부모님의 뒷모습 사진.

-오빠, 너무 행복해 보여요!

-희성이 오빠, 가족 여행으로 몰디브라니. 아프지 말고, 조심히 갔다 와요.

-사랑해, 진희성!

팬들의 댓글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던 그때.

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댓글 하나.

-연기 못 배워 처먹은 거 보면 혹시 엄마가 토막 났나?

댓글은 내 상식선을 넘은 악플이었고.

그 댓글을 읽는 순간, 그건 내 분노 버튼을 아주 세게 누르고 말았다.

그대로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멎을 듯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어떻게 저런 말을 이런 SNS에 쓸 수가 있는 거지?

아니, 그걸 떠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모든 건 괜찮았다.

내 연기에 대해 욕하는 것도.

내 인성이나 외모를 비판하는 것도.

그래, 모두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모욕은 단 1초도, 1g도, 한 글자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욕을, 방 안의 부모님을 보며 겨우 삼켜냈고.

서둘러 그 계정을 클릭했다.

“어? 이 계정은…?”

너무나 익숙한 아이디.

예전부터 내게 악플을 달던, 유령 계정이었다.

악플을 달기 위해 만든 가짜 아이디.

평소 내게 수많은 악플을 달던 아이디였고, 나는 그동안은 아무런 조치 없이 악플을 넘겼었다.

굳이 악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 욕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부모님에 대한 욕은 넘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서둘러 한국에 있는 김 실장에게 그 아이디로 남겼던 악플을 모두 캡처해 사진을 전송했다.

-형, 저번에 내가 말했던 악플러. 사진 보냈는데, 이거 신고 가능해?

김 실장은 휴대 전화를 보고 있었는지, 곧장 답장을 보내왔다.

-응, 고소될 것 같은데? 법무 팀 통해서 알아보고 연락 줄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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