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84)화 (84/303)

84화 #17 – 결국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야 (6)

[떠오르는 주연 배우, 진희성 & 백영훈. HS 엔터 집안싸움의 결과는?]

[HS 엔터 내에서 벌어진 시청률 싸움. 승자는… 결국, 진희성!]

[HS 한솥밥을 먹는 식구 사이에도 분명한 위아래는 존재… 백영훈의 참패. 남은 시청률에 달렸다.]

“X 같네.”

백영훈은 휴대 전화를 뒤집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드라마 촬영 중 하루 쉬는 날, 회사에 연습을 하러 온 백영훈이 자리에 앉아 가장 처음 본 기사.

바로 진희성과 자신의 비교 기사들이었다.

진희성이 출연한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백영훈의 드라마는 마지막 화를 몇 화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기사들은 백영훈의 드라마 시청률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백영훈은 매번 촬영을 하면서도 부담스럽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쾅!

백영훈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테이블 위로 올렸다.

“아니, 캐스팅에서 이긴 건 분명 나였다고….”

그의 꽉 쥔 주먹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백영훈은 옆에 펼쳐져 있던 대본을 덮어버렸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건, 내 탓이 아니잖아. 드라마가 재미없는 거지.”

자신이 대본을 보고 고른 드라마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드라마의 대본조차 보기 싫어진 듯 대본을 옆으로 밀어냈다.

“하아- 진짜 열 받네.”

백영훈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며 화를 식혔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옷깃을 잡아 펄럭이며 열을 식혀내기에 바빴다.

그래도 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벌컥 열자 들려오는 소리.

“하하하, 아니, 다시 해보자.”

“알겠어. 제대로 봐주라니까? 하하.”

하하 호호 웃는 소리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고.

고개를 살짝 내밀어 소리가 나는 쪽을 쏘아보았다.

그의 시선 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진희성’이었다.

“젠장, 하필 또 진희성이네.”

자꾸만 자신과 비교되는 진희성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는데.

눈앞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몸까지 파르르 떨려왔다.

진희성과 그의 매니저인 김 실장은 신이 난 모습으로 주차장에서 떠들고 있었고.

백영훈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운전석에 올라탄 진희성이 창문을 열더니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형, 이번에는 주차 잘하지 않았어?”

“어, 늘기는 한다. 두 번만 더 해보자.”

“오케이!”

백영훈은 팔짱을 낀 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는 이러고 있는데, 진희성 넌 뭐가 좋다고 운전 연습이나 하냐. 꼴 보기 싫게….”

순간.

아래로 눈을 깔고 있던 백영훈과 차에서 내려 허리를 펴던 진희성의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못 봤을 거라 생각한 백영훈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희성이 밝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영훈아!”

그의 부름에 백영훈은 흠칫 놀라 팔짱을 풀었다.

‘하아, 날 또 봤네.’

그는 서둘러 얼굴에 미소를 장착한 채 소리쳤다.

“아, 네. 형.”

“구경하지 말고, 심심하면 내려와서 같이 놀자.”

입가에 양손을 가져다 대고 외치는 진희성.

이에 백영훈이 눈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대본 연습하고 있어서요.”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다가 심심하면 내려와.”

“네, 형. 운전 조심하세요!”

“그래, 열심히 해.”

진희성은 백영훈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는 진희성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고는 곧장 창문이 부서질 듯이 닫았다.

쾅-.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웃으며 차에 올라타는 진희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양 볼이 부르르 떨려왔다.

“진희성… X 같은 새끼….”

***

똑똑.

“어, 들어와.”

노크 소리에 강 본부장은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강 본부장님,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홍보팀 한성민 팀장은 널따란 책상 위에 있는 강 본부장의 명패 앞에 섰다.

“응, 한 팀장.”

한 팀장이 챙겨온 파일을 그의 책상 위에 올렸고.

강 본부장은 곧장 그 파일을 당겨 펼쳤다.

심각한 얼굴의 한 팀장과 달리, 강 본부장의 얼굴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한 팀장이 가져온 서류는 진희성과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회사로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게 이거야?”

“네, 보시면, 진희성 배우 공식 팬 카페 운영진에게서 온 메일입니다.”

강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팬 카페에 올라온 게시물들인데요.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저희에게 제보를 보내 줬더라고요.”

한 팀장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내용을 읽어보니까, 저희와 판단으로도 이상한 것 같았습니다.”

“어떤 점이?”

“일반 팬들과는 좀 다른… 사생의 느낌이 풍겨 왔습니다.”

그의 말에 강 본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종이를 넘겼다.

종이에는 진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그를 향해 묻는 팬 카페 질문들이었고.

그저 진희성을 좋아하는 팬심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살짝 들 뿐,

크게 대수로운 일 같지 않아 보였다.

“그냥 진희성한테 빠진 팬인데, 뭘.”

한 팀장은 그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지만, 본부장님. 아무래도 위험 요소가….”

강 본부장은 그의 말을 툭 잘라냈다.

“됐어. 그런 팬이 어디 한두 명이야?”

“하지만 초반에 확실히 확인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로 발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잖습니까, 사생팬들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강 본부장은 파일을 툭 덮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그냥 넘겨.”

“그래도 저희 판단에는 많이 위험해 보이는….”

“하아, 한 팀장. 연예계 하루 이틀 있니?”

그의 핀잔에 한 팀장은 고개를 푸욱 숙였고.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연예계 사업은 어떻게 할 거야. 요즘 홍보팀에 할 일이 별로 없나, 한가해?”

한 팀장이 한숨을 겨우 삼켜내며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 홍보팀은 어떻게 해야 한 명이라도 더 홍보해서 돈을 벌어올 수 있나. 그런 거나 고민하란 말이야.”

“네.”

“그리고 지난번에 홍보팀에서 올렸던 안건, 수정해서 오늘까지 보고 올려.”

“알겠습니다.”

강 본부장은 파일을 한 팀장의 품으로 확 던지듯 밀어내며 말했다.

“이건 가져가고.”

“예.”

서류를 받은 한 팀장은 찜찜한 마음을 누르며 본부장실을 빠져나갔다.

***

차가 나온 뒤, 처음으로 가는 장거리 운전.

긴장한 탓에 음악 소리는 최대한으로 낮춘 채,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기어를 변경하자.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린 듯했다.

“하아, 그래도 한 번 운전해 보니까, 별거 아닌데?”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차에서 내렸고.

서둘러 집을 향해 올라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본가.

문 앞으로 다가가니 벌써 어머니의 음식 냄새가 코끝까지 풍겨오는 듯했다.

벌컥.

“아들.”

문을 열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환한 미소로 웃으며 반기셨고.

동시에 내 손을 바라보셨다.

하지만 오늘 내 손에는 어느 것 하나 들려 있지 않았고.

부모님은 실망한 기색 대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다행이다.”

“네?”

“너 온다길래 또 뭐 이상한 거, 비싼 거 잔뜩 사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어.”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오늘은 빈손으로 와서 오히려 서운해하시는 거 아니에요?”

“전혀 아니야. 우리 아들 돈 쓸까 봐 걱정도 되고, 부담돼서 그렇지.”

곧 아버지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안으로 이끌었고.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른 채 내게 말했다.

“밥은 거의 다 됐으니까, 손 씻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네.”

어머니는 서둘러 부엌으로 총총히 달려가셨다.

지이잉.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울리는 휴대 전화.

[발신인: 연극 영화과 이명진]

본가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귀신같이 알고 전화하는 동창 이명진이었다.

피식 웃으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야, 희성아. 내려왔으면 연락을 해야지.

“뭐야, 나 내려온 거 알고 있었어?”

-그럼, 알고 전화했지.

“정말로?”

이명진의 말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본가에 온다는 걸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김 실장과 부모님에게만 말했지.

하지만 그들이 내 동창인 이명진에게 말했을 리가 없다는 걸 알기에.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인마.

“아니,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알았어?”

-하하, 야, 희성아. 역시 스타는 스타네.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야지.”

-너 SNS에 이미 올라왔어.

“뭐가?”

-진희성 배우 본가 내려가는 길이라고 SNS에 퍼졌더라. 네 소식을 SNS 통해서 들어야겠냐? 하하하!

웃고 있는 이명진의 말투에서는 질투가 아닌, 오히려 뿌듯해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보다 너무나도 신기했다.

본가에 오는 것까지 SNS에 올라왔다니.

문득 내가 연예인, 스타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들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희성아, 온 김에 술이나 한잔하자.

“좋지. 안 그래도 며칠 쉬다가 가려고 했거든.”

-그럼 오늘 바로 나와.

“아, 오늘 내려온 거라 오늘은 좀 그렇고. 주말은 어때?”

-콜. 지온이랑 현수도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보자.

“동창회야 뭐야, 이미 주말에 만나기로 했어?”

-그러게. 애들도 이번 주말에 내려온다더라고. 시간 맞아서 보기로 했는데 너까지 오니까 딱 좋다.

“그래, 나도 애들 오랜만에 보고 좋지.”

일을 시작하고 본가에 잘 내려오지 못했기에.

친구들을 볼 시간도 없었던 터라 이런 자리가 너무나 반가웠다.

-아, 그리고 민준이도 부를까 하는데 괜찮지?

박민준… 드라마가 방영 중지된 이후로 뭐 하고 있나 했더니.

고향에 내려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전혀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좋았다.

동창회라면 항상 참석해 자기 자랑을 하기 바빴던 박민준이기에.

이번에는 친구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특히나 나를 누르느라 바빴던 박민준이 이제 어떤 태도로 날 대할지 보고 싶었다.

-그래, 주말에 보자.

“연락할게.”

전화를 끊은 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박민준… 잘 살고 있나 보자.

“희성아, 밥 먹자!”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응, 나가요.”

식탁으로 향하자 눈앞에 펼쳐진 가득한 한상 차림.

“와아! 엄마, 이걸 또 언제 다 했어?”

감탄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뜨끈한 된장찌개에 잡채, 그리고 한눈에도 야들야들해 보이는 갈비찜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지.

어머니는 휘둥그레진 내 눈을 보며 뿌듯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아들이 좋아하니까 됐네. 얼른 먹자, 식겠다.”

“그래, 얼른 앉아서 먹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 의자를 빼내어 앉았고.

곧바로 수저를 된장찌개에 푸욱 담가 한 수저 떴다.

“이야, 진짜 맛있다, 엄마.”

“그래? 다행이네. 서울에 맛있는 밥집들에 길들여져서 이제 엄마 음식 안 좋아하면 어쩌나 걱정했지.”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집밥이 최고지.”

띵동.

그때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마주쳤다.

“점심부터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런 아버지에게 손사래를 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빠, 내가 나갈게요.”

현관으로 가자, 부모님은 어느새 내 뒤를 따라왔고.

인터폰에 비치는 사람을 보며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뭐야, 배달 온 건가. 뭐 시켰어?”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엄마가 하도 빈손으로 오라고 하길래, 아무것도 안 가져오기는 했는데… 뭘 좀 배달시켰어.”

“아이고, 그냥 된장찌개에 집밥 먹으면 되는데, 뭘 또 시켰어?”

그때 문이 벌컥 열렸고.

“안녕하세요. 물건 왔습니다.”

전자 제품 회사 조끼를 입은 직원이 문 앞에 서 있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뭘 시켰냐면… 가전제품이요.”

“뭐라고?”

부모님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고.

동시에 시선을 돌려 직원이 끌고 들어오는 물건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떡 벌렸다.

뒤이어 여러 명의 직원이 차례로 커다란 박스를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TV, 식기 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와 에어컨까지.

연이어 들어오는 가전제품에 어머니는 고개를 번쩍 들어야 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엄마, 냉장고 집에 있는 거 먼저 빼야 한다는데요?”

어머니는 내 말에 서둘러 손뼉을 부딪쳤다.

“어머어머. 맞네. 기사님, 여기요….”

소녀처럼 신난 어머니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 역시 휘둥그레진 눈으로 설치하는 가전제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그런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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