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68화 (75/83)
  • (16) 통일의 꽃 [미래역사소설] 21世紀 地球史 (16) 통일의 꽃 ④

    2008년 1월 7일 오전 평양

    보위국 리순천은 보위국에 끌려온 이후 고문부터 당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고문기술자들의 여러 가지 고문을 맛보기

    로 보여준 다음 아침이 되자 한 사내가 질문을 시작했다. 사내는 자신을 김

    주임이라고 소개했다. "무단 방송한 이유는 묻지 않겠소."

    김주임은 어울리지 않게 존대어로 질문을 시작했다. "어차피 인민들을 위

    하고 언론의 자유니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일 테니....나는 그런데는 관심 없

    소. 짧게 질문 할 것이니 짧게 대답하시오."

    리순천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김주임이 손수건을 꺼내 리순천의 이

    마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러나 그 손길이 더 할 수 없이 소름끼치는 것

    이었다. "자, 시작합시다. 방송한 테이프는 어디서 났소? 아니지, 그 한세

    연이 어떤 방법으로 동무에게 전달했소?"

    "중국에서 우편물로 부쳐왔습니다. 중국 CCTV가 발신지로 되어 있었습네다.

    테이프가 NTSC 방식으로 녹화되어 있는 걸 내가 PAL 방식으로 디코딩을 했

    소."

    "그게 이건가?"

    김주임이 언제 찾아 왔는지 리순천의 책상 위에 있던 소포 포장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리순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아주 용의주도한 일이

    야. 중국방송사에서 조선중앙방송사로 보내는 소포에 내용물도 방송용 테이

    프인데 누가 의심을 했겠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아주 마음에 들었소

    .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자세로 협조해 주기 바라오. 그럼 두 번째 질문이요.

    복사본은 누가 가지고 있소?"

    리순천은 그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했다.

    "복사본 같은 건 없습니다. 그게 원본입네다."

    "리선생, 왜 이러시나? 나는 복사본이 있나 없나를 묻고있는 게 아니오. 누

    가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 지를 묻는 것이요." "정말 복사본은 없습니다."

    "정말 실망이요. 난 산책이나 할 테니 그동안 열심히 생각해보시오."

    김주임이 나가자 고문기술자가 들어왔다. 고문기술자는 리순천의 앞자리에

    앉자마자 벤치를 꺼내더니 리순천의 왼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새끼

    손가락의 손톱을 뽑아버렸다. 김주임이 다시 돌아온 것은 10분쯤 후였다

    . 그러나 리순천은 그동안 한시간은 넘은 것처럼 느껴졌다. 리순천은 왼손의

    손톱이 모두 빠져나갔다. 고문기술자는 손톱을 하나 뽑고 나서는 리순천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다가 고통이 조금 줄어들려고 할

    때를 기다려 다음 손톱을 뽑았다. 그런 식으로 다섯 개의 손톱을 모두 뽑고

    야 고문기술자는 방을 나갔다.

    "자, 동무! 내가 돌아오니까 반갑지 않소? 적어도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은

    고통이 없을 것이오. 자 대답을 들어볼까요? 테이프는 누가 가지고 있소? 아

    참! 또 동무가 실수할까봐 미리 말하는 데, 내가 복사본을 가진 사람이 따

    로 있다는 것을 무엇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시오?"

    리순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유도심문에 걸리게 된다. 김주임이 주

    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더니 펼쳐서 보여주었다. '어제 방송을 놓친 분

    들을 위해.....1월 9일 새벽 1시 재방송 실시'

    리순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재방송이라니? 애초에 귀홍과의 계획은 복

    사된 테이프를 각 학교의 학생회와 공장의 노동연맹에게 배포한다는 것이었

    다. 재방송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재방송을 한다는 것은 불가

    능했다. 어디서 어떻게 재방송을 한다는 말인가?

    김주임이 리순천의 턱을 감싸듯 모아 잡고 치켜올렸다. "도대체 다음은 어

    떤 방법으로 방송할 계획이지? 그리고 복사본은 누가 가지고 있는 거냐고?

    우리가 다 지키고 있는 데 방송을 하기는 하는기야?"

    김주임의 말이 약간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아주 주도면밀하더군. 전화

    는 철저히 방송국공용의 전화를 쓰고, 만나는 장소도 아주 은밀하게 한 것

    같소. 집 전화는 사용한 적도 없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무에게도 안 들키

    게 한 것 같더군. 하지만 우리도 바보는 아니오. 거의 다 풀어 가는 중이요

    . 최근 방송국 전체의 전화사용내역을 일일이 대조해서라도 언젠가는 찾아낼

    거요. 내가 꼭 그런 수고를 해야 하겠오? 나는 수고로 끝이지만 그 동안 동

    무는 몸으로 견디어내야 할거요."

    리순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결국 이들은 귀홍의 존재를 알아차릴 것

    이다. 리순천은 귀홍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귀홍에게 알릴 방법이 없

    었다. 오히려 귀홍은 복사 테이프를 학교를 중심으로 배포하기 시작할 것이

    다. 그러다 순간 리순천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귀홍에게 알려서 위험하다고

    경고해도 귀홍은 결코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귀

    홍도 결국 잡혀오겠지만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그러나 재방송은 리순천

    도 모르는 일이었다. 귀홍이 혼자 힘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었다. "솔직히 말하리다. 복사본은 우리 집에 가면 비닐에 싼 채로 뒤

    뜰에 묻혀 있소. 장독을 묻은 데서 1m 서쪽쯤에 있을 것이요. 또 가정용 비

    디오테이프에 복사한 게 수백 개 있는데 이건 오늘 새벽에 방송되는 걸 시청

    자들이 스스로 복사한 겁니다. 아마 사람들은 방송을 미쳐 못 본 사람들을

    위해 이 테이프를 빌려주고 돌려보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리순천은 만약을 위해 만들어 놓은 위장 복사본의 위치를 말했다. 그것으로

    수사가 끝나기를 바라면서. 리순천은 김주임을 정면으로 쏘아 봤다. "그

    런데 정말 재방송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요."

    김주임은 리순천의 눈을 보고 재방송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느낌

    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하긴 재방송을 하는 방법이 있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 아닌가?

    김주임이 리순천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재방송에 대해 쓸 데 없는 기대를

    할까봐 말해 주는 건데. 그 날 재방송이 될 거란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소.

    전국 각 연주소마다 경비가 서고, 결정적으로 그 날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까지 전국적으로 정전이 될 예정이요."

    2008년 1월 8일 서울 여의도 배달 대사관 전쟁의 와중에 현격히 줄었던

    배달 방문 신청자들이 다시 증가하고 있었다. 대사관은 배달의 방문 신청을

    하러 온 사람들과 오혜린 팬클럽들이 로비를 지키고 있어 번잡했다. 지난

    해에 준공된 대사관은 한국 언론들에게 짧은 공사기간과 조용한 건축방식으

    로 화제에 올랐었는데, 완성된 후 건물의 모습에 사람들이 모두 경탄했다.

    지상 4층의 높지 않은 대사관은 소나무와 대나무 숲으로 조성한 뒤뜰을 배경

    으로 동양풍의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는데, 대사관의 치외법권적인 품격과 열

    린 공간의 친근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한국인

    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사실은 2048년 프랑스 파리에 처음 건축된 이후 전

    세계의 한국대사관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디자인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 내

    부의 모습도 세연이 평상시에 알고 있던 일반적인 대사관의 구조와는 많이

    달랐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충분한 휴식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방문객 위주의 공간을 조성해 놓고 있었다. 세연은 접수 창구에

    가서 직원에게 말했다. "배달의 현지 취재 허가를 받으려고 하는 데요?"

    "예, 어느 언론사죠?"

    "한국방송사의 한세연 PD입니다."

    "한세연님이시라고요?"

    "예. 절 아세요?"

    "아-. 예. 아. 아뇨. 잠깐만 기다리세요."

    여직원이 세연이 접수한 서류를 가지고 뒤쪽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

    시 뒤 사무실에서 여직원과 함게 다른 직원이 따라 나왔다. 그는 세연에게

    와서 말했다. "한세연씨 대사님이 뵙자고 하시는데요. 3층으로 올라가시겠

    어요?"

    직원이 세연을 안내했다. 두 사람은 둥근 아치형 계단을 통해 3층에 올라갔

    다. 주한 배달 대사의 방은 대사의 집무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까페가 아닌

    가 하는 착각이 들게 꾸며져 있었다. 오혜린 대사는 직접 보니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예뻤다. 세연은 혜린을 보면서 나이도 젊은 여

    성이 한국의 대사라는 직책을 밭을 수 있는 배달이라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

    이 더욱 짙어졌다. "안녕하세요. 한세연님. 준영님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

    오혜린이 세연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말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호칭

    뒤에 조사를 '씨' 대신에 '님'을 쓰는 게 이채로웠지만 느낌은 좋았다.

    "준영이 제 얘기를 하던가요?"

    "준영님 말씀으로는 세연님이 배달에 대해 취재를 요청할 것이니까 협조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예."

    의외였다. 배달의 취재에 대해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준영이 협조하라고 부

    탁을 했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준영의 말이 대사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서준영님은 배달에서

    정보부 부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달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사

    람이죠. 준영님의 말씀이라면 우리 통령님도 거절 못하실 걸요."

    세연의 표정을 보더니 오혜린이 세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고 있다

    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은 세연님의 요청 때문에 배달에서 통령님

    주재 하에 어제 긴급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랑 준영님도 회의에 참가 했

    었죠. 회의 내용은 세연님이 배달을 취재하겠다는 것을 허가하겠냐는 것인데

    결국 결론은 허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물론 그 결론을 내리는 데

    준영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죠."

    "잠깐, 잠깐만요. 대사님."

    세연은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배달 취재가 왜 장관급에서 회의

    를 해야하는 사안인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배달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이미

    몇 명 있었다. 그 때마다 회의를 했단 말인가?

    "배달을 취재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저 말고도 이미 배달에 특파

    원도 있고, 취재하는 기자도 많은 걸로 아는 데요?"

    혜린이 세연을 보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세연님이 배달

    을 취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세연님이 원래 계획했던 주한미군 관련 프

    로그램을 놔두고 배달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은 어

    제 배달은 아주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세연님

    의 자유의지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연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주한미군 관련 프로

    그램을 이 사람들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것

    이 왜 중요하다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저는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씀인지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지금 저랑 배달에 가시겠습니까?"

    오혜린이 일어나며 말했다. "예, 지금 바로요?"

    "예, 지금 당장요."

    "하지만 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라 카메라도 있어야겠고, 옷가지도

    준비할 게 많은데..."

    "오늘은 그냥 잠깐 다녀오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준영님도 지

    금 배달에 계십니다. 세연님이 대사관에 오면 안내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연은 어리둥절해졌지만 오혜린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달까지는 비

    행기를 타야 하지만 당일 왕복은 불가능했다. 비행기 시간이 안 맞는 관계로

    오늘 배달로 가면 내일이나 되어야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이 될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지만 배달에서 준영이 기다리고 있

    다는 말에 오혜린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오혜린이 윗층으로 가는 것을

    보고 아마 전용헬기나 그런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잘하

    면 오혜린의 말처럼 오늘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계단으로 걸어서 4층에

    올라온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문 앞에 섰다. 오혜린이 버튼에 손

    가락을 대자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용자 인식중입니다. 안녕하세요. 오혜

    린님. 어서오십시오."

    세연이 보기에는 지문인식기 정도로 보였지만 사실은 이 인식기는 손가락을

    대는 순간 그를 통해 지문뿐만 아니라 혈액형을 비롯한 각종 유전자 정보를

    읽어서 이용자를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세연이 생각 할 때-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에는 각 층을 알리는 숫자 대신

    버튼 위에 다른 글들이 적혀 있었다. 버튼에 적힌 글들을 보고 세연이 놀랐

    다. 광장, S구역, 명진, 대사관, 부산, 워싱턴, 애틀란타, LA, 도쿄, 신시

    성(개통준비중), 그리고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세연은 그 글들을

    보고 순간 어떤 상상이 떠올랐지만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혜린이 '광

    장'이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이동합니다."

    잠시 웅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멎은 후에 문이 열렸다. 세연의 눈앞에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갑자기 밝은 야외의 모습이 펼쳐져 세연은 눈이 부

    셨다. 그 때 엘리베이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서오십시오. 여기는 배달공화국 눈물의 광장입니다."

    세연의 머리 속에 잠깐 떠올랐던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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