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디비전 시리즈 상대가 결정되었다.
대호가 소속된 오클랜드 슬랙스의 상대는 작년 챔피언십에서 오클랜드 슬랙스를 2:4로 역전해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며 전체 우승을 달성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였다.
상대가 결정되자 대호는 그동안 참아 두었던 공격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솔직히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대호에게 작년 챔피언십은 3회차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것만큼이나 강력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다.
체력 안배를 하지 못하고 정규 시즌과 디비전 시리즈에서 무리하게 움직인 나머지, 챔피언십에서 겨우 한 게임만 뛰고 부상을 당해 버렸고 결국 팀이 역전패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규 시즌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상대할 때면 조금 무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챔피언십에서의 아쉬움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다.
장기전인 정규 시즌과 단기전인 챔피언십이 가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던 차, 올해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디트로이트를 보면서 대호는 남모르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도래했다.
디비전 시리즈 상대로 벼르고 있던 디트로이트가 지목된 것이다.
비록 챔피언십 시리즈는 아니지만, 상대를 챔피언십에 진출하지 못하고 막는 것도 복수로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나쁘지 않아! 이번 기회에 남은 감정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겠어.’
* * *
일주일의 휴식기가 끝나고 2033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야구팬이 야구 경기장을 찾았다.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팬 여러분! KBC스포츠의 김승주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하구연입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야구장을 찾은 김승주와 하구연은 평소와 다르게 침착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오늘 경기는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와 오클랜드 슬랙스가 치르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인 김승주는 별것도 아닌 것을 장황하게 떠들며 분위기를 띄웠다.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가 작년에 이어서 포스트 시즌에 또 만났네요.”
“그렇습니다.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두 팀이 만나 초반 두 경기를 먼저 가져간 오클랜드 슬랙스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게 역전패를 하였지요.”
김승주의 물음에 하구연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를 언급했다.
― 맞아! 작년에 챔피언십에서 오클랜드가 디트로이트에 역전패를 했었지.
― 그때 대호만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챔피언십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 시리즈도 우승했을 텐데…….
― 그건 너무 나간 거고. 아무리 대호가 있었다고 해도 월드 시리즈는 모르는 거다.
― 그래. 아무리 대호가 대단해도 너무 빨아 주네.
― 위에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대호가 빠진 오클랜드 이기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디트로이트가 우승한 것 못 봤냐?
― 그래도 게임은 해 봐야 아는 거지. 디트로이트가 우승했다고 오클랜드도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설득력이 없어.
중계 카메라 옆에 자리한 프롬프터에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댓글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는 KBC는 올 시즌에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실시간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이원 중계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시청자의 댓글도 중계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잡혔다.
“본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인데 시청자들도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허허, 그만큼 정대호 선수가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성적을 기대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구연 해설의 말처럼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디비전 시리즈를 구경하는 시청자들의 관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작년 애석하게 역전패를 한 오클랜드 슬랙스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한 대호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상대로 화끈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그것도 궁금해 중계를 시청하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은 본 브레스키입니다.”
김승주는 오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 본 브레스키의 이름을 언급하며 눈을 반짝였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는 1선발인 에이스 윌 베스트를 선발로 내보내지 않고,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5선발인 본 브레스키를 올린 것이다.
그에 반해 오클랜드 슬랙스는 정석적으로 1선발인 에디 프랭크를 선발로 내보냈다.
“아무래도 디트로이트에서 작전을 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디비전 시리즈 첫 경기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서 에이스가 아닌 5선발을 내보낸 것을 1차전을 버리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5선발을 선발로 내보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규전도 아니고 단기전인 디비전 시리즈에 중간 계투로 활용하는 5선발을 굳이 선발로 내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내보낸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선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구연 해설이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김승주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말을 받았다.
어차피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팀의 에이스를 올린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한 디트로이트 코칭스태프는 하구연 해설이 설명한 것처럼 5선발 본 브레스키를 버림패로 선발에 올렸다.
자신들은 중간 계투로 활용할 5선발을 1차전 선발로 내보내 상대의 에이스를 소비하게 만들고, 내일 2차전에 에이스를 내보내 오클랜드의 2선발을 잡는다는 계획인 것이다.
* * *
한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을 확인한 대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어떤 작전을 들고 나온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체력이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첫 경기부터 무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대호는 상대가 에이스가 아닌 5선발을 기용해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버린 것을 깨닫고 여유를 찾았다.
“디트로이트에서 이번 1차전을 버린 것 같은데!”
대호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브렛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응?”
“저기 봐. 마운드에 5선발로 던지던 브레스키가 올라가잖아!”
“어! 그러네.”
옆에 있던 달튼도 놀라며 소리쳤다.
대호와 친구들이 하는 대화는 바로 더그아웃에 있던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아마 내일 2차전에 윌 베스트가 던지겠지?”
“그렇겠지. 3승을 먼저 따내기 위해선 2차전까지 버리면 답이 없으니.”
달튼의 대답에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저런 작전을 쓴다고 해서 우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네.”
“그러게.”
“레프리! 어떻게 생각해요?”
대호는 조용히 더그아웃에서 쉬고 있던 레프리 그로스를 불러 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레프리 그로스가 물었다.
“디트로이트에서 1선발을 아껴 두고 내일 사용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물어본 거예요.”
대호의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레프리 그로스가 잠시 저기 마운드 위에 있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투수를 돌아보았다.
“어! 이런 빌어먹을!”
마운드를 확인한 레프리 그로스가 거칠게 욕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서 자신을 무시했다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리 투수력에서 다른 구단보다 약하다 평가를 받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2선발이라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어느 누가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것인가?
레프리 그로스도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투수 운용에 화가 났다.
작년 시즌 초반 데드 암으로 인해 전반기를 전부 날리면서 팀에 2선발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2033시즌에는 특급 투수로 분류되는 20승을 올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18승 9패를 거두며 이름값은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이렇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화가 났다.
물론 그도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1선발 윌 베스트의 실력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실력이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당당하게 자신과 맞대결에 윌 베스트를 올리면서 승리를 자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짜증 날 뿐.
“난 좀 몸 좀 풀고 올 테니 감독이나 코치가 찾으면 그렇게 이야기해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할게요.”
대호는 문을 열고 불펜으로 가는 레프리 그로스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출전은 내일이지만 이렇게 일찍 승부욕을 자극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좋았어. 빠르게 승부를 보고 쉬자!’
대호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바로 3승을 선취하여 승부를 보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선 투수들이 분발을 해 줘야 하였기에 자극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은 예상대로 맞아 떨어졌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은 너무도 싱겁게 오클랜드 슬랙스의 7:0으로 끝났다.
이날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로 나선 에디 프랭크는 9회까지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으면서 완봉승을 거뒀다.
굳이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음에도 에디 프랭크는 자신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에이스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작전에 재를 뿌렸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코칭스태프는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버리면서 오클랜드 슬랙스의 투수력을 소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에디 프랭크의 호투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타자들의 부진으로 그러한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여파는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 그대로 드러났다.
2차전에 에이스인 윌 베스트를 내보냈지만, 대호를 비롯한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은 포스트 시즌의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윌 베스트의 공을 제대로 공략했다.
그에 비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타자들은 레프리 그로스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아니, 탄탄한 오클랜드 슬랙스 야수들의 수비벽을 공략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레프리 그로스가 잘 던지기도 했지만, 어제와 다르게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타자들도 그가 던진 공을 타격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할 것인가?
수비벽에 막히는 것을 말이다.
오클랜드 슬랙스 야수들은 어제 다짐한 것처럼 디비전 시리즈는 빠르게 통과하는 지점이라 생각하고 집중해 수비를 보았다.
레프리 그로스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타선을 상대로 6회 2실점을 하고 다음 투수에게 공을 넘겼다.
1차전에서 에이스 에디 프랭크가 완봉승하면서 투수력에 여유가 있던 오클랜드는 바로 투수진을 투입해 5:2로 디비전 시리즈 2차전도 승리를 가져갔다.
그에 비해 야심차게 준비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에이스 윌 베스트는 5회까지 1실점을 하면 잘 던지긴 했지만, 6회 선두 타자 볼넷과 연속 안타로 2점을 내주며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그 뒤로 올라온 투수들도 2실점을 내주며 최종 스코어 5:2로 디비전 시리즈 2차전도 오클랜드 슬랙스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렇게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버리면서까지 2차전을 가져가 1승 1패를 만들려고 한 디트로이트 코칭스태프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2패를 기록하며 오클랜드의 홈으로 이동하게 된 셈이었다.
* * *
“와아아아아!”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이 벌어지는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관중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의 양상도 원정이었던 1, 2차전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발로 나온 체프 벤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타자들을 상대로 5회 1실점을 하고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먼저 2승을 거둔 오클랜드 슬랙스는 이번 홈에서 펼쳐지는 3차전에서 마무리하기 위해 총력전에 돌입했다.
5회까지 마운드를 책임진 체프 벤에 이어 루브 월터를 마운드에 올렸다.
원래 루브 월터는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4선발을 맡던 투수였지만, 라이언 헤밀턴이 LA다윈스에서 트레이드 되어 오면서 5선발로 밀렸다.
하지만 충분히 팀에서 3~4선발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투수였기에 혹시나 모를 패배를 생각해 라이언 헤밀턴 대신 먼저 마운드에 오른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결과로 나왔다.
체프 벤에 이어 6, 7, 8회를 맡아 1실점으로 막아 낸 그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마무리 데니스 에슬리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 결과 디비전 시리즈 3차전도 2:10으로 싱겁게 끝났다.
세이브나 홀드 상황도 아닌데, 마무리 투수인 데니스 에슬리가 나온 것은 그저 경기 감각을 위해 올린 것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복수전은 그렇게 3승0패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