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LA데블스의 포수 타이스는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타이스는 대호의 모습만 봐도 PTSD가 오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 초에 있었던 대결에서 남자의 급소에 빗맞은 타구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차례나 말이다.
결국 타이스는 병원에 급히 호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오클랜드 슬랙스와 대결을 할 때면, 마치 급소에 맞은 것 같은 통증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설마 에이스가 마운드에 있는데, 피하진 않겠지?”
타석에 들어서던 대호는 자신을 보며 움찔하는 타이스를 보며 물었다.
“제길, 신경 꺼!”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하는 대호를 보며, 타이스는 괜한 신경질을 부렸다.
“그만! 시즌 마지막 경기인데, 시작부터 문제를 일으킬 셈이야?”
포수의 뒤에 있던 주심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를 하였다.
“아닙니다. 전 그저 재미있는 경기가 하고 싶을 뿐입니다.”
대호는 얼른 자신은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답하였다.
“좋아! 그럼 경기 시작하지.”
자신의 경고가 통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주심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경기 시작을 알렸다.
“플레이볼!”
“와아아아!”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이 울려 퍼지자, 이를 들은 관중석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들려왔다.
“후우!”
그리고 대호 역시 짧게 심호흡을 하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어디 한 번 지켜볼까?’
이제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굳이 적극적으로 타격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초구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펑!
“볼!”
초구는 바깥쪽 낮은 볼이었다.
공 하나 정도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로 우측 타자에게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에 꽂히는 공이었다.
다만 너무 대놓고 바깥으로 빠지다 보니, 대호를 속이지는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깥쪽 공에 후한 메이저리그 심판에게도 너무 빠지는 볼이란 이미지를 심어 주었는지 투수에게 그리 유리한 판결을 받지 못하였다.
팡!
“볼!”
두 번째 공도 볼 판정이 나왔다.
비슷한 코스에 5마일 정도 느린 슬라이더였다.
가운데로 들어왔기에 자칫 유인구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대호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LA데블스 배터리가 자신과 승부를 결코 쉽게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 예상을 하고 있는데, 대놓고 공이 가운데 몰려 들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속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오늘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투수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LA데블스의 에이스이지 않은가.
그런 타일러가 1회 초를 시작하자마자 실투를 한다고 누가 생각하겠나?
정말로 실투를 했다고 해도 타자들은 그냥 지켜보았을 것이라 대호도 그냥 이를 그냥 흘려보냈다.
아쉽게 실투여도 다음 공을 노리면 된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다.
척!
두 번째 공도 볼 판정이 나오자 대호는 타격 자세를 풀고 목을 조금씩 돌리며 타이스를 자극했다.
“뭐야? 오늘 타일러의 컨디션이 좋지 못한 거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대호의 트래시 토크에 넘어간 것인지 타이스의 반응이 불같았다.
“어린 새X가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대가리에 공 맞고 싶냐?”
머리에 공을 맞고 싶냐는 타이스의 위협에 뒤에 있던 주심이 먼저 화를 내며 그에게 경고를 했다.
“타이스! 내 말이 우습나?”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새X가 먼저…….”
“분명 경고했다. 다시 한번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나 언행을 한다면, 내가 후회하게 해 주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주관하게 된 도나휴 미켈 주심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메리칸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라이벌 구단 중 하나인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였고, 또 어제 두 팀의 경기가 무척이나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LA데블스가 재미없는 경기를 한 것도 있고, 또 메이저리그 대기록에 도전을 하고 있는 대호를 고의 사구를 통해 네 번이나 볼넷으로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오늘 경기에 들어가기 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특별히 지시 사항이 내려왔다.
오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절대로 불상사가 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도나휴로서는 애초에 트러블이나 벤치 클리어링이 나올 여지를 주지 않는 게 가장 베스트이기도 하였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타이스를 보며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선 대호는 타격 자세에 들어가기 전 왼 손에 든 배트를 쭉 뻗어 센터 쪽 펜스를 가리켰다.
“우와아아!”
대호의 포즈에 바로 관중석에서 반응이 왔다.
그리고 반응은 타석 뒤쪽에 있는 타이스에게서도 나왔다.
타격 자세를 잡은 대호는 슬쩍 곁눈질로 몸을 부들부들 떠는 타이스를 보았다.
‘좋아, 걸렸어!’
자신의 도발에 타이스가 걸린 것을 확인한 대호는 정신을 집중했다.
쉬이익!
투수의 손을 떠난 공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좋았어!’
자신을 맞출 듯이 몸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확인한 대호는 앞에 놓인 왼발을 살짝 바깥으로 벌리며 스윙을 가져갔다.
휘익!
따아아악!
너무도 경쾌한 타격음이 데블스 스타디움 안을 울렸다.
‘헉!’
대호의 스윙과 함께 들린 타격음에 마운드 위에 있던 타일러가 속으로 헛숨을 쉬며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27°로 탄도각이 살짝 낮기는 했지만, 타구는 떨어지지 않고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갔다.
“우와아아!”
“정대호! 정대호, 투수가 던진 세 번째 몸 쪽으로 파고드는 포심 패스트볼을 왼쪽 앞발을 바깥으로 오픈을 하며 그대로 때려 냈습니다!”
흥분한 김승주가 대호의 타격에 대해 설명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갑니다. 가요!”
옆자리에 있던 하구연 해설 위원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런 두 사람과 별개로 센터 쪽 관중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몇몇 팬들은 손에 글러브를 끼고 타구가 날아오길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우와!”
“빅 타이거! 빅 타이거!”
오른쪽 원정팀 응원석에서 대호의 영어식 이름이 연호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가던 타구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데블스 스타디움 센터 방면 2층 펜스에 맞으며 홈런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관중석이 없었더라면 그 뒤로 훨씬 멀리 날아갔을 만한 힘 있는 타구였기에 대호의 팬들이 환호하는 것이었다.
탁탁탁탁!
대호는 자신이 친 타구가 센터 방면 2층 펜스에 맞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스윙을 하고 출발이 좀 늦기는 했지만, 첫 타석에서 예고 홈런이 나오는 바람에 으르렁 대던 타이스도 미처 이것을 보지 못했다.
타타타타! 턱!
“와아아!”
그라운드를 가볍게 조깅을 하듯 돌아 홈으로 들어온 대호의 모습을 확인한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대호는 대기 타석에서 다음 타석에 들어가기 위해 홈 쪽으로 이동한 달튼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대호! 72호 홈런 축하해! 이제 하나 남았네.”
한 시즌 홈런 최고 기록인 73개까지 이제 한 개의 홈런만 남겨 둔 대호에게 이를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고마워! 달튼, 너도 한 방 쳐!”
자신의 홈런에 축하해 주는 친구에게 대호도 너도 한 방 치라며 덕담을 해 주었다.
“알았어!”
대호의 말을 들은 달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달튼을 뒤로하고 대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탁탁탁탁!
더그아웃에 도착하니 동료들이 나와 대호의 홈런을 축하해 주었다.
어깨며 헬멧을 쓰고 있는 머리 등 신체 부위를 두드리며 축하를 해 주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은 대호는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료들을 통과해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기회가 오니 놓치지 않는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대호의 옆에 언제 왔는지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와서 말을 걸었다.
홈런 브레드는 오늘 경기에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였기에 동료들과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이곳에 나온 것이다.
“몸은 괜찮아요?”
서른아홉 살로 이제는 은퇴를 할 나이가 된 브레드였다.
이번 2033시즌에서도 165경기 중 140경기나 치르면서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오늘도 가벼운 근육 통증으로 인해 선발 명단에서 아예 빠졌다.
“가벼운 근육통이야! 쉬면 나아져.”
아무리 잘 관리를 받는다 해도 서른아홉 살이란 나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경기에 선발로 나가려면 이젠 경기 수를 더 줄여야만 하였는데, 브레드가 받는 연봉을 생각하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 더 메이저리그에서 메이저리거로 활약을 하려면 연봉을 줄여야만 했는데, 브레드는 구차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올해까지만 주전으로 뛰고 내년에는 지도자 연수를 하려고 했다.
이는 감독에게도 이야기를 했고, 또 프런트에도 이야기가 된 사항이다.
그렇기에 선수로서는 올해가 마지막이었기에 남은 포스트 시즌을 위해 관리에 들어갔다.
2032시즌은 안타깝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막혔지만, 올해만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볼 심산인 것이다.
“선수는 올해까지만 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에요?”
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사실이야. 비록 은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내 나이도 벌써 서른아홉 살이잖아.”
홈런 브레드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도 아쉬웠다.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호와 한 시즌만 더 함께하면 자신의 꿈인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도 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때문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런 주장을 보며 대호도 이상한 기분이 몰려왔다.
‘제길, 아마도 우승 반지가 없는 것 때문에 은퇴가 아쉬워지는 것이겠지.’
대호도 지금 고개를 숙인 주장을 보며 그가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은 그 기분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우승 반지를 갈망하던 메이저리거들을 많이 보았다.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는 몇몇 특별한 선수만이 낄 수 있는 아이템이다.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양대 리그 서른 개 구단 중 매 시즌 단 한 팀만이 우승 반지의 주인이 된다.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이 이 특별한 반지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겨우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또 갖은 작전을 동원해 상대를 누르고 위로 올라가 쟁취한다.
메이저리그 대표적인 스몰 마켓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도 예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그것도 무려 아홉 차례나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 마지막 우승이 20세기 후반, 1989년도 월드 시리즈였다.
그 후로는 지구 우승이 최고이고, 리그 우승도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나마 대호가 입단을 하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것이지, 이전에는 지구 우승은 커녕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는 것도 빠듯했다.
그러니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가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 주장이 은퇴하기 전에 우승 반지를 끼려면 올해가 마지막 기회군요.”
대호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하하! 역시 인크레더블이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홈런 브레드는 느닷없는 우승 반지를 언급하는 대호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대호의 얼굴을 쳐다보다 웃어버렸다.
정말이지 딴생각을 할 짬을 주지 않는 대호였다.
“제가 제 개인 기록 욕심으로 인해 후반기에 좀 무리를 하긴 했지만, 작년처럼 막 몸을 굴린 것은 아니니까 올해는 꼭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주장을 월드 시리즈로 데려가 줄게요.”
그렇게 대호는 주장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는 씩 웃어 보였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홈런 브레드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처음 3년 전 스프링캠프에서 대호를 처음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대호에게서 뭔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발산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긍정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 주었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그때 느꼈던 긍정의 에너지가 발산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그렇게 해 준다면, 내가 평생 그 은혜 잊지 않겠어!”
조금은 농담과도 같은 대호의 말이었지만, 브레드는 그것을 진담처럼 느끼고 받아들였다.
“두고 봐요. 믿는 사람에게 복이 온다고 했어요.”
“알았다. 믿을게!”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