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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88화 (188/209)
  • 188화

    정규 시즌을 두 경기를 남겨 두고 있는 시점에서 LA데블스 배터리는 철저하게 대호와의 정면 승부를 피했다.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고의 사구를 던져 1루로 보냈다.

    심지어 베이스에 주자가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또 밀어내기로 점수를 내주더라도 무조건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승부를 피했다.

    그 때문에 대호는 71호 홈런을 때린 뒤 치러진 정규 시즌 164라운드에서 볼넷만 네 개를 얻었고, 도루 한 개만 기록하고 끝냈다.

    하지만 이렇게 대호와 대결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LA데블스는 오클랜드 슬랙스와 라이벌이란 말이 무색하게 6:3으로 패했다.

    LA데블스는 홈에서 치러진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패하는 바람에 대호의 홈런 기록을 보기 위해 데블스 스타디움을 찾은 야구팬과 데블스 팬 모두에게 질타를 받았다.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메이저리그 불문율까지 어겨 가며 치러진 경기에서 패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더욱이 이 경기는 LA데블스의 포스트 시즌과는 전혀 연관도 없는 경기였다.

    즉 한 마디로 대호에게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경기를 치른 것에 불과했으니,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로써는 데블스를 질타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메이저리그 불문율까지 어기면서 치졸한 패배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LA데블스 팬 입장에서도 기록을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 경기였다.

    그러다 보니 LA데블스 안에서도 이에 대한 말이 많았다.

    특히나 경기에 선발로 나갔던 호세 테베즈와 타이스에 대한 말이 많았는데, 선발 투수였던 호세 테베스야 팀 5선발이었으니 감독의 지시나 포수인 타이스의 사인대로 던진 잘못밖에 없었지만, 포수인 타이스는 달랐다.

    LA데블스 주전 포수인 타이스는 경기가 끝난 뒤 팀 동료인 야수들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감독이 그러한 지시를 내렸다고 하더라도 포수인 그가 이를 거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들은 승률도 낮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이니, 감독의 지시를 굳이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러한 말이 나온 것이다.

    물론 타이스도 처음 이러한 감독의 지시를 받았을 때는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즌 초에 대호에게 받았던 무시나, 작년 2032시즌에 얻어맞은 것을 떠올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대호에게 반감이 떠올라 그러한 사인을 보낸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뒤늦게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떠올라 부끄러운 감정이 떠오르긴 했지만, 이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기에 타이스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좋은 말도 반복해서 들으면 싫은 것처럼 자신을 타박하는 말을 팬은 물론이고 동료에게까지 듣다 보니 짜증이 났다.

    그 결과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LA데블스 구단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지 못했다.

    정규 시즌 165라운드 LA데블스 선발투수는 팀의 에이스이자 1선발인 타일러가 나왔다.

    전날 경기로 인해 야구팬은 물론이고 자신들을 응원하는 홈팬들까지 등을 돌리다 보니, LA데블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구단 프런트까지 나와서 대책을 세우다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이다.

    시즌 마지막 경기이니 1선발부터 어제 선발로 나온 테베즈를 뺀 선발을 모두 투입을 한다는 작전이었다.

    선발로 나온 타일러가 힘이 떨어지기 전 2선발을 올리고, 또 그가 힘이 떨어지면 3선발인 산도발을 올리는 식으로 9회까지 팀의 선발 투수들을 마운드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면 승부를 하지 않았다고 떠드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 나온 대호가 어떤 각오로 경기에 임하는지 말이다.

    어제 정면 승부까진 아니더라도 어렵게 승부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인데, 괜히 승부를 피하는 바람에 배부른 호랑이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 * *

    <상태창>

    이름 : 정대호(22살)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70

    힘 73/77

    민첩 66/72

    체력 58/72

    지능 65/70

    정신 62/70

    순발력 65/71

    컨택 70/72

    내구력 58/70

    ― 무리한 스킬 사용으로 체력과 내구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일정 시간 휴식이 필요합니다.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대호는 자신의 상태창을 들여다보았다.

    상태창의 경고대로 체력과 내구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지능과 정신, 그리고 순발력도 5~8포인트나 떨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힘 스탯이 73이란 점이었다.

    터억!

    “대호, 뭐 하고 있어?”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오늘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하고 있던 대호의 어깨를 누군가 치며 물어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 확인한 대호는 가볍게 대답을 하였다.

    “응, 오늘 시즌 마지막 경기라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 좀 하고 있었어.”

    “그래? 그런데 오늘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브렛은 뭘 보고 온 것인지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을 하였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쉽지 않겠다니?”

    너무도 이상한 브렛의 말에 궁금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 LA데블스의 로테이션을 봤는데, 오늘 선발이 타일러더라.”

    “타일러?”

    “응. 내 생각엔 아마 타일러가 오프너로 1~3회 정도 던지고, 그다음으로 데이비슨과 산도발 순으로 나올 것 같아!”

    브렛은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하며, LA데블스의 마운드 운용을 언급했다.

    “그래?”

    대답을 한 대호는 속으로 방금 전 브렛의 말을 떠올리며 궁리를 해 보았다.

    ‘어! 그렇단 말이지? 그거 나쁘지 않은데.’

    경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브렛의 말은 수긍이 가기는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선 그것이 꼭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처럼 자신의 타석을 그냥 지워 버리듯 고의 사구로 내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브렛의 말처럼 선발진을 짧은 이닝에 투입하여 어렵게라도 승부하려는 쪽이 자신이 오늘 계획한 것을 보다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대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리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러한 대호의 반응에 브렛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괴물!’

    자신은 오늘 경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대호는 어쩐 일인지 미소를 짓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네 입장에선 어제처럼 승부를 피하는 것보단, 어렵게라도 승부를 걸어오는 쪽이 상대하긴 더 편하겠다.”

    4타석 모두 승부를 피해 버리는 LA데블스 투수를 보며 브렛 또한 기분이 나빴었는데, 그나마 시즌 마지막 경기는 정상적으로 대결을 할 것이란 생각이 드니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야! 데블스가 앤더슨을 선발로 내보냈어!”

    뒤늦게 달튼이 나타나 소리쳤다.

    “이미 내가 알려 줬다.”

    뒤늦게 나타난 달튼을 보며 브렛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 대호! 오늘 자신 있지?”

    무슨 생각인지 달튼은 브렛을 건너뛰고 대호를 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저들이 어제처럼 날 피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칠 수 있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대호는 당연히 홈런을 칠 수 있다며 소리쳤다.

    “역시 대호라니까!”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 이들은 한데 뭉쳐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구단 프런트는 물론이고 코칭스태프도 대호를 방해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을 하고 있는 대호에게 그의 집중력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오클랜드 슬랙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좋은 마무리를 위한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 * *

    많은 사람이 2033시즌 마지막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모였다.

    특히 이곳 데블스 스타디움은 1982년 10월5일에 세웠던 64,406명이라는 관객수를 넘은 64,682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인원을 수용하는 기록을 세웠다.

    “안녕하십니까?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팬 여러분! 2033시즌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도 어느새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김승주는 비장한 표정으로 멘트를 하였다.

    그런 김승주에 이어 해설 위원인 하구연도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해설 하구연입니다.”

    하구연 해설 위원이 카메라에 대고 인사를 마치자 김승주가 얼른 질문하였다.

    “벌써 2033시즌도 정규경기 165경기의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하구연은 굳은 표정을 살짝 풀며 대답을 하였다.

    “오늘 데블스 스타디움에 역대 최대 관중이 들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들의 관심사는 우리의 정대호 선수가 홈런을 칠 것인지 아니겠습니까? 또 현재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73개로 수십 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 기록을 갱신할 수 있는지 오늘 관람 포인트가 아닐까합니다.”

    “아!”

    긴 설명을 들은 김승주는 아주 짧은 탄성을 지르며, 오늘 2033시즌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의 관람 포인트를 상기했다.

    “양 팀 레귤러 표를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겠습니다.”

    “네, 오클랜드 슬랙스에서는 기존대로 백업 선수 위주로 올린 것에 반해, 홈팀인 LA데블스의 경우 선발진 전부를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하구연 해설은 원정팀인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 선발은 변화가 거의 없는 것에 반해, 홈팀인 LA데블스 선발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하였다.

    이런 설명을 들은 시청자들은 TV 너머에서 눈을 반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관심사는 사실 오늘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한 시즌 최대 홈런 기록인 73개 홈런 기록이 갱신될지 그러지 못할지 그것이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시즌 홈런 기록이 73개인데, 현재 정대호 선수의 기록은 두 개 적은 71개입니다.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김승주는 한 경기 만에 기록이 갱신될 수 있는지 궁금해 물었다.

    “그저께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을 몰아친 정대호 선수라면, 충분히 기록을 경신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하구연 해설은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을 하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미에 다만이라며 첨언을 하였다.

    “LA데블스 투수가 승부를 어제처럼 피한다면, 그 어떤 타자도 기록을 경신할 수 없겠지요.”

    어제 164라운드 중계를 하면서 김승주는 물론이고 하구연 해설도 참으로 많은 말을 하였다.

    4타석을 모두 고의 사구로 걸러 보내는 것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많은 야구팬이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면서 메이저리그 불문율에 대해 알고 있고, 어제 경기에서 그것을 참으로 많이 언급했다.

    또한 마지막 타석이라도 승부를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이슈가 되진 않았을 것인데, LA데블스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대호와는 승부를 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늘 경기를 중계하면서도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오늘 LA데블스의 투수 운영을 보면 어제와 같은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위원님,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김승주는 출전 선수 명단을 보았지만, 짐짓 모르는 것처럼 질문을 하였다.

    이는 중계를 더욱 재미있게 하기 위해 시청자로부터 궁금증을 일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LA데블스에서 오늘 마지막 경기 선발투수로 1선발인 앤더슨 타일러 선수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아! 에이스를 마지막 경기에 올린 것이군요.”

    “네. 그러니 어제와 같은 경기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떠드는 사이 경기는 시작되었고, 원정팀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두 타자인 대호가 1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데블스 스타디움을 찾은 야구팬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6만 명이 넘는 야구팬이 일제히 지르는 환호성으로 인해, 아무리 보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지어진 지 160년이나 된 데블스 스타디움이 움찔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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