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2033시즌도 이제 고작 세 게임이 남았다.
메이저리그의 시즌은 끝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야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니, 시즌이 끝나가니 이제야 바빠지는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구단 프런트와 스카우터가 있을 것이고, 또 선수들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도 바빠질 터였다.
특히나 선수를 대신해 구단 프런트와 협상을 펼칠 에이전트의 고생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프런트가 시즌 내내 자료를 준비하고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는 동안, 선수를 대신하는 에이전트 역시 대비를 하기 마련이다.
맥콰이어도 그런 에이전트 중 한 명이다.
대형 에이전트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름값이 있는 에이전트였기에 조금은 쉽게 메이저리그 구단과 협상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바로 단 한 명의 의뢰인 때문에 말이다.
다른 선수들이야 그저 성적에 맞게 구단과 협상을 하면 되지만, 이 한 명만은 그렇지 못했다.
성적이 좋아도 너무 좋았기에 연봉 협상의 기준을 잡기가 애매해 그를 고민케 만들었다.
‘하! 이건 뭐… 성적이 어지간해야 기준을 잡지.’
자료를 살피던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2년 연속 70홈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시즌 초에는 메이저리그 기록은 물론이고 야구 역사에 기록될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무려 10경기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로 메이저리그 3년 차에 들어선 어린 선수가 기록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다.
이는 골프 황제로 불리던 라이언 우즈나 그 이전 농구의 황제라 불리며, NBA 열풍을 일으킨 시카고 옥스의 마이클 조던 이상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MLB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인 셈이었다.
더욱이 한창 잘나갈 때, 오클랜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적은 피해로 막아 낸 히어로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두 달 이상을 부상 치료와 재활로 날려 버리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대호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일부 구단 팬들에게는 악마에 버금가는 악성 댓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의 의뢰인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영웅이다.
거기에 성적도 최고였으며, 프로 씬에서 아주 모범이 되는, 그러니까 자신과 같은 에이전트나 구단 입장에서도 이상적인 선수다.
하지만 이렇게 다 좋은 선수였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처럼 어린 나이에, 그것도 아직 서비스 타임도 끝나지 않은 선수가 이렇게 엄청난 성적은 낸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대호라는 선수는 마치 메이저리그 역사에 나오는 레전드 선수 여러 명을 섞어 놓은 듯했다.
일부 팬들이 우스갯소리로 게임이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이라고 칭했기에 연봉 협상을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고심이었다.
남은 세 경기에 이변이 없다면 70홈런은 무난하게 칠 것이 예상되고, 타율도 홈런 때문에 조금 희생을 했다고 하지만, 0.452의 타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OPS도 2.378이나 되며, 도루의 개수도 100개가 넘었다.
이변이 없다면 올 시즌도 시즌 MVP와 실버 슬러거, 그리고 골든 글러브가 유력시되었다.
‘음, 2천은 기본이고 3천까지도 무리가 아닐 것 같은데…….’
기록만 따지면 정말로 그의 생각처럼 3천만 달러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문제는 대호가 아직 메이저리그 서비스 기간이라는 점이다.
물론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와 협상이 잘 되지 않아 결렬되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연봉조정 신청을 한다고 해도, 사무국이나 선수협은 오클랜드 슬랙스가 아닌 대호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렇지만 맥콰이어는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현재 대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무척이나 깨끗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그런 영웅적인 이미지다.
좋은 이미지를 돈 때문에 흙탕물을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단의 입장에 입각해 의뢰인에게 손해 보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비단 맥콰이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 *
넓은 회의장, 그 안에 오클랜드 슬랙스의 중요 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시즌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조엘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으로서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 내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조엘의 말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 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두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33년 정규 시즌은 아직 세 게임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오클랜드 슬랙스는 우승이 확정되어 포스트 시즌 돌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처럼 순조로운데 이들이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클랜드 슬랙스에 속한 핵심 선수의 연봉 협상 때문이다.
비록 아직 서비스 타임이 한 시즌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선수의 에이전트는 그대로 서비스 타임을 기다리지 않고 연봉 조정 신청을 할 것이 분명했기에 이들이 이렇게 긴장하는 것이다.
“작년에도 제가 언급을 했지만 인크레더블… 아니, 대호는 다음 시즌에도 구단에 꼭 필요한 선수입니다.”
조엘은 한 차례 이야기를 하다 멈추고 관계자들을 돌아보다 이야기를 이어 갔다.
“모두 앞에 놓인 자료를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조엘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들었다.
그 모습에 회의장에 모인 이들도 조용히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료를 읽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들이 읽고 있는 자료가 정말로 한 명의 선수가 단일 시즌에 이룩한 것인지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들도 자료의 정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2032시즌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들 확인을 했겠지만 참으로 엄청난, 또 메이저리그가 생긴 이후 이처럼 충격적인 기록을 기록한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조엘은 마치 무언가 엄청난 발견을 한 모험가나 세기의 발명품을 만들어 낸 창조자와 같은 심정이 되어 이야기를 하였다.
“조만간 그의 에이전트와 협상을 들어가야 할 텐데,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내기 바랍니다.”
단장인 조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클랜드 슬랙스 사장인 빌리 벤이 물었다.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기록이었어.”
“그렇죠.”
대호의 기록을 읽은 빌리의 말에 조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구단에는 기준이 되는 주급 체계라는 것이 있지.”
사장인 빌리 벤은 주급 체계를 언급했다.
이는 조엘이 몰라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에도 그는 머니 볼의 창시자답게 꺼낸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무리 기록이 대단하다 하지만, 체계를 무시하고 무리한 연봉을 주었다가는 다른 선수들과 형평성 문제로 팀에 큰 문제로 작용할 수 있어.”
빌리 벤 사장의 말은 결국 하나였다.
많은 연봉을 이제 겨우 서비스 타임도 지나지 않은 선수에게 줄 수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연봉 조정 신청에 들어가면 어차피 저희에게 불리합니다.”
빌리 벤 사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려의 말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국도 웬만한 성적이어야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현재 대호가 보여 주고 있는 성적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대호의 손을 들어줄 것이 뻔히 보였다.
“홈런 개수가 아직 정규 시즌이 세 게임이나 남아 있는 현재 69개입니다. 그렇다고 타율이 낮은 것도 아니고, OPS가 낮은 것도 아닙니다. 이변이 없는 이상 이번 시즌도 MVP와 골든 글러브, 실버 슬러거가 유력시되고 있습니다. 한데…….”
말을 하던 직원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흔들었다.
뒤에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자넨 그에게 얼마의 연봉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못한 빌리 벤 사장이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직원이 표정의 변화 없이 바로 대답을 하였다.
“최소 2천 5백만 달러는 불러야 협상이 될 것입니다.”
“뭐!”
2,500만 달러라는 말에 빌리 벤 사장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대표적인 스몰 마켓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연봉 2,500만 달러 이상을 받고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홈런 브레드.
그가 받는 연봉이 2,650만 달러로 유일했고, 2위는 2,300만 달러를 받는 1선발 에디 프랭크였다.
그런데 이제 겨우 프로 3년 차인 대호에게 주장인 홈런 브레드와 버금가는 2,500만 달러가 언급되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기록을 보십시오. 홈런 개수만 현재 69개입니다. 이대로 시즌을 끝내도 2년 연속 60개 이상 홈런을 때린 것입니다.”
2,500만 달러를 언급한 그 직원은 자신이 무엇을 근간으로 대호의 연봉을 산정한 것인지 조목조목 설명을 하였다.
“이달의 선수에 선정된 것만 해도 4월과 5월, 그리고 8월, 9월 네 번입니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이변이 없다면 10월에도 수상이 유력합니다. 한 마디로 부상으로 결장을 했던 6, 7월을 빼고 모두 수상했습니다.”
거기까지 언급을 한 그는 목이 타는지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아닌 말로 현재 저희 슬랙스의 선수 굿즈 판매 수익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미스터 정 아니겠습니까? 프랜차이즈 스타인 브레드의 판매 수익을 한참이나 앞서고 있으며, 상위 2~5위까지의 판매 수익을 모두 합친 금액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란 말인가?”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빌리 벤 사장으로서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서비스 타임이 끝나지 않은 선수에게 2,500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한다는 것도 놀랐지만, 그런 선수의 굿즈 판매 수익이 프랜차이즈 스타를 포함한 상위 5위까지의 판매 수익을 합친 금액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덜컹!
모두가 충격적인 이야기에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회의실, 그런데 느닷없이 회의실 문이 열렸다.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단장인 조엘의 비서인 크리스였다.
“뭔가?”
굳은 표정의 빌리 벤이 물었다.
“방금 전 빅 타이거가 70호, 71호 홈런을 쳤습니다.”
회의가 길어지자 크리스가 중간에 오늘 경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오클랜드 슬랙스는 지구 우승을 확정지어 놓고, 남은 경기는 후보 선수들을 대거 선발로 투입해 경험을 쌓고 있었다.
“뭐?”
한 경기에서 대호가 두 개의 홈런을 쳤다는 소리에 빌리 벤 사장은 물론이고 회의를 이끌고 있던 조엘마저 깜짝 놀랐다.
이는 오늘 기록한 것이 단순한 홈런 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69개와 70개는 앞자리가 다르듯이 단순히 한 개 차이가 아니었다.
더욱이 아직 두 게임이나 남은 상황에서 71개 홈런을 쳤으니, 홈런 두 개만 더 친다면,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대 홈런 개수와 동률을 이루게 된다.
지금도 대호의 2034시즌 연봉으로 2,500만 달러가 언급되고 있는데, 2년 연속 70개 홈런을 친 지금 얼마를 두고 협상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