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오클랜드 슬랙스는 텍사스 레이스와 홈 3연전 마지막 경기를 1:0으로 이기고 위닝 시리즈로 마무리하였다.
촤아아!
숙소로 돌아온 대호는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띠리리! 띠리리!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대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옷을 갈아입고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맥! 저도 전화를 드리려던 참인데, 어쩐 일이세요?”
시합 중 주장의 조언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기에 그것을 말하려던 대호는 먼저 전화를 건 맥콰이어에게 용건을 물었다.
[오늘 시합 잘 봤어!]
“아니 뭐… 좀 헤맸는데 잘 보긴 뭘 잘 봐요.”
대호는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참 많이 헤맸었다.
그러다 주장인 홈런 브레드의 조언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어 그나마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진루를 했을 뿐이다.
[그래도 마지막 타석에서 감을 잡은 것 같던데?]
맥콰이어는 유능한 에이전트여서 그런지 대호의 8회 마지막 타석에서의 2루타를 치고 진루를 한 것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을 내렸다.
“머리가 복잡했는데, 욕심을 내려놓고 야구에만 집중하니 잘 맞던데요.”
대호는 별것 아니란 듯 마지막 타석에서의 안타를 평가하였다.
그렇지만 이를 듣고 있는 맥콰이어는 달랐다.
[역시 대호, 자네는 대단해! 아직 대호 정도 나이에 그 정도로 멘탈이 단단한 선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사실 맥콰이어도 그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건 것이다.
N사 닐슨 이사에게서 또다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아직까지 대호에게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고 찔러 보기식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참! 제가 맥에게 할 말이 있는데…….”
[응?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야? 한번 해 봐!]
할 말이 있다는 대호의 말에 맥콰이어는 해 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에이전트는 의뢰인이 요구하는 바를 잘 알아야 하기에 의뢰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맥콰이어는 아주 유능한 에이전트였다.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까진 N사와 재계약 협상을 중단하고 싶어요.”
[음! 괜찮겠어?]
맥콰이어는 뜻밖의 이야기에 확인 차 물었다.
그런 맥콰이어의 물음에 대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굳이 급하게 협상을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렇긴 하지.]
대호의 대답을 들은 맥콰이어도 인정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계약의 갑은 N사였지만, 현재 재계약 협상을 놓고 보면 대호가 갑이었다.
이미 전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대호의 명성이 크게 퍼져 있었기에 N사와 대호 중 재계약 협상의 갑은 대호였다.
그러니 굳이 급하게 재계약 협상을 마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대호는 빠르게 재계약을 하고, 야구에만 전념하려 하였다.
하지만 N사에서 이를 약점으로 생각해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재계약 협상을 하였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에이전트인 맥콰이어도 스폰서십 재계약에 대한 대호의 정확한 생각을 알진 못했기에,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조언도 하지 못해 N사가 내놓은 계약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호가 정신을 차리고 정확한 지침을 내려 주었으니 그로써는 훨씬 편하게 N사와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대호가 재계약 협상을 시즌 이후로 미루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속으로 ‘나이스’라고 환호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급해지는 것은 대호가 아닌 후원 계약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N사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N사는 작년 여름, 대호와 겨우 200만 달러 상당의 현금 + 야구용품 계약을 하면서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물론 전적으로 대호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득을 본 것만은 아니지만, 전설을 써 가고 있는 대호와 후원 계약을 한 영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1년 만에 재계약을 하자고 계약서를 들이민 것이지 않은가?
[알겠어! 그럼 대호가 말한 대로 N사와 후원 계약은 시즌이 끝난 뒤로 미루는 것으로.]
“OK! 그렇게 해 주면 좋겠네요.”
[그래,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N사와의 재계약을 시즌 뒤로 미루는 이야기를 마치고 간단한 당부를 하고 통화를 마쳤다.
덜컹!
막 에이전트와 통화를 마치기 무섭게 현관문이 열렸다.
“자기야! 나왔어!”
퇴근한 한나가 집으로 들어오며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나! 어서 와. 힘들었지?”
대호는 아직 샤워 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에서 퇴근한 아내를 안아 주며 환영해 주었다.
“윽! 자기 무슨 좋은 일 있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표정이 어두웠던 남편의 달라진 모습에 한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니. 별건 아닌데, 한나를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아서!”
대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내 한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찌 보면 뻔한 말이었지만, 이를 들은 한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날씨와 일로 인해 지쳐 있었는데, 남편의 말을 듣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쪽! 쪽! 쪽!
“나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했는데, 자기를 보니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
쪽! 쪽! 쪽!
결혼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혼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은 연애 기간까지 하면 3년이 되어 간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감정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무뎌질 만도 한데, 두 사람은 연애할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애정이 샘솟고 있었다.
* * *
고민거리를 털어 내고 여유를 찾은 대호의 행보는 잠시 주춤하던 것을 반성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무섭게 타올랐다.
텍사스와 홈 3연전 이후 LA데블스와 가진 홈 3연전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 2연전, 그리고 콜로라도 럭키스와 2연전을 치르면서 20타석 17타수 10안타 5홈런 3볼넷 18도루를 기록했다.
특히나 고무적인 것은 라이벌인 LA데블스와 가졌던 홈 3경기에서 세 경기 연속 홈런을 쳤다는 것이다.
LA데블스 이전 또 다른 서부 지구 라이벌인 텍사스 레이스와 가졌던 3연전에서 13타석 4안타 1홈런에 그쳤던 것에서, 20타석 17타수 10안타 5홈런을 쳤으니 대호 본인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본 팬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을 선사했다.
또 대호가 텍사스 레이스와 3연전을 치를 때 13타석 4안타로 부진했는데, 드디어 본 실력이 드러났다며 악플을 써 나르던 악플러에게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비록 작년 2032시즌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대호의 행보는 텍사스 레이스와 가졌던 홈 3연전 중 마지막 경기 네 번째 타석 이후 다시 한번 살아났다.
* * *
“우와아아!”
“정대호 선수! 오늘 3회 두 번째 타석에 이어 6회 초 세 번째 타석에서도 연속 홈런을 쳤습니다!”
2033시즌도 막바지에 들어선 10월 초, 163경기가 치러지고 있는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는 진즉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1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었다.
그 때문에 체력 안배를 위해 주전들을 빼고, 후보 선수 위주로 시합을 치르고 있었다.
다만 메이저리그 기록 도전을 하고 있는 대호는 계속해서 시합에 출전하고 있었다.
이번 홈런으로 인해 대호의 홈런 개수는 71개로 작년 2032시즌 홈런 기록인 70홈런을 경신을 동시에 이루었다.
“이로써 작년의 기록을 뛰어넘게 됩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김승주는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대호의 이번 홈런에 대해 떠들었다.
“정대호 선수, 정말로 별명처럼 인크레더블한 모습을 보 여줍니다.”
“빅 타이거! 빅 타이거!”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인 뉴슬랙스 볼파크 관중석에선 오클랜드의 팬들이 대호의 영어식 이름과 인크레더블이란 닉네임을 연신 연호하기 시작했다.
2033시즌 남은 경기는 앞으로 두 번.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2001년에 본즈의 73개로 30년이 넘어가는 오늘까지 깨지지 않고 있었다.
작년 대호에 의해 근처까지 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 개의 홈런이 부족해 역대 2위 기록인 70개로 마감했다.
그래서 2033시즌이 개막되고, 많은 야구팬이 30년이 넘어가는 동안 깨지지 않는 본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깨 주길 기대했다.
심지어 그는 금지 약물 복용자였으니 말이다.
보기 싫은 이름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 자체가 싫은 야구팬들 또한 매우 많았다.
하지만 그 큰 기대는 안타깝게도 전반기 대호가 큰 부상으로 인해 60일 IL(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무너져 버렸다.
물론 전반기 28홈런도 나쁜 성적은 아니다.
후반기 70경기 중 45개의 홈런을 치면 충분히 본즈의 73홈런과 동률이 될 수 있었다.
대호의 장타력이라면 45개 홈런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판단을 하는 팬이 많았다.
그렇지만 후반기 초반,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호가 흔들리는 바람에 타격감이 많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대호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경신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야구팬이 늘어났다.
그러자 수면 아래로 숨었던 안티들이 또 다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악플을 쏟아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타격감을 찾은 대호는 시즌 초반 연속 경기 홈런 기록 도전을 하던 때처럼 화끈한 홈런포를 가동했다.
그 결과 시즌이 마무리되는 10월에 들어서며, 본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두 개를 남기며, 오늘 경기에 들어섰다.
“정대호 선수, 2001시즌 본즈가 세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고작 두 개만 남겨 두고 있습니다!”
시즌 71호 홈런을 치고 홈으로 들어오는 대호를 내려다보며, 김승주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거듭 같은 말을 반복했다.
* * *
한편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팬들의 환호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두근두근!
침착해지려고 해도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에 어깨가 절로 올라가는 느낌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했다.
‘후우! 후우! 진정하자!’
자꾸만 나대는 심장으로 인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대호는 계속해서 진정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오늘 이렇게까지 잘 맞을 줄은 몰랐다.
아니, 후반기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기에 설마 자신이 본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즌 마무리까지 두 경기를 남겨 두고 있는 현재, 연타석 홈런으로 기록까지 고작 두 개의 홈런만 남겨 두다 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1~2타석 정도 더 타석에 서겠지만, 아마 오늘은 더 이상 홈런을 칠 수는 없을 거야!’
아무리 기록을 앞두고 있다고 하지만, 상대가 남은 타석에서 정면 승부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일과 모레, 남은 경기에서도 투수들이 자신과의 승부를 피할 수도 있었다.
아니, 거의 80% 이상이 자신과 승부를 필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기록 경기에서 승부를 피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하지만, 매번 그러한 불문율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승부를 피한 것으로 인해 팬들에게 들어야 할 창피는 잠깐이지만, 기록을 헌납하는 것은 두고두고 남아 흑역사가 될 것이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흥분해 두근거리던 심장도 서서히 잠잠해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