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대호는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학생들을 거슬러 안쪽으로 뛰었다.
‘저기 보인다.’
교실 입구에서 라이플을 들고 안을 향해 총을 쏘는 수상한 인물이 보였다.
‘설마…….’
대호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음에도 식은땀을 흘렸다.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가는 한 단어가 있었다.
‘젠장!’
총기 난사 사고.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건 그 단어 이외에는 설명할 것이 없었다.
“당장 멈춰!”
대호는 다급히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총을 든 범인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총기 난사범이 괜히 범죄자일까?
대호의 호통에 고개를 돌린 존은 라이플을 돌려 겨누었다.
틱!
방아쇠를 당겼지만 안타깝게… 아니, 다행스럽게도 총은 격발되지 않았다.
총이 격발되지 않은 것은 이미 장전되었던 총알을 모두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철컥!
총이 격발되지 않자 존은 너무도 태연하게 다 써 버린 탄피를 제거하고 탄알집에 총알을 장전했다.
철컥! 철컥!
2연장 사냥용 라이플이라 총알을 장전하는 것은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이런…….’
대호는 낯선 사람의 등장, 그리고 그 사람이 건장한 성인임에도 범인이 총을 내려놓지 않고 재장전하는 모습을 보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복도에서 마주한 것이라 피할 곳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 손에 들고 있던 야구공을 들어 던졌다.
“에잇!”
휘익!
대호가 던진 공은 빠르게 총을 든 존을 향해 날아갔다.
탕!
대호가 자신을 향해 무언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존도 대충 방향을 잡고 총을 발사했다.
20m가 조금 더 되는 짧은 거리였고, 또 들고 있는 총이 사냥용 산탄총이었기에 아무렇게나 쏜 것이었다.
한편 대호는 공을 던지고 나서 자신을 향해 총구가 돌아가는 것을 보자 급히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쿵!
그러면서 복도 한쪽에 늘어선 로커에 부딪히며 큰 소음이 났다.
쾅!
6피트 5인치(195.58㎝)가 넘는 키와 98㎏의 육중한 몸무게를 가진 대호이다 보니, 그와 부딪힌 로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악!”
그런데 우연히 로커가 쓰러지는 방향은 총격범이 있던 곳이었다.
쓰러짐과 동시에 비명 소리가 들렸다.
‘기회다!’
“윽!”
대호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고 살짝 고개를 들어 총격범이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총을 놓치고 복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범인의 모습이 보였다.
대호는 즉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범인을 향해 달려갔다.
오클랜드 슬랙스 유니폼을 입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덩치를 본 존은 급히 허리 허리춤에 넣어놨던 권총을 빼기 위해 팔을 뒤로 뻗었다.
“아악!”
하지만 무거운 로커에 부딪힌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어깨에 전해지는 통증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하지만 그 행동만으로도 대호에게는 큰 위기였다.
무기를 놓쳐 빈손이 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으니 말이다.
‘총이 하나가 아니었어!’
뒤늦게 범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라이플 말고도 더 있다는 것을 알아챈 대호는 깜짝 놀라 더욱 빠르게 다리를 놀렸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는 그나마 새나 작은 짐승을 잡는 녀석이었고 거리가 어느 정도 있기에 작은 부상에 그쳤지만, 지금 더 가까워진 상태에서 총에 맞는다면 치명상이었다.
‘조금만 더…….’
위기의 순간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총에 맞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
일촉즉발의 순간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타석에서 정신을 집중할 때 일어나던 집중 스킬처럼 시간이 점점 느려지는 듯한 고양감을 느꼈다.
‘저 미친 놈이!’
느려지는 주변 풍경 중, 대호의 눈에 총격범이 고통을 참으며 허리 뒤로 손을 가져가 무언가를 꺼내는 게 똑똑히 보였다.
‘안 돼!’
속으로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타다닥!
대호가 그렇게 학교에서 총을 발사하여 사상자를 내는 존을 제압하기 위해 뛰어들고 있을 때, 존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뛰어오는 대호를 보며 갑자기 두려워졌다.
마치 그리즐리 베어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대호를 보며 고통으로 떨리는 팔을 들어 총을 겨눴다.
탕!
‘윽!’
대호는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총구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는 것과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며 급히 점프했다.
타닥!
복도 한쪽 벽면을 박차며 뛰어오른 대호는 곧바로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이는 대호가 태권도 발차기에 능숙해서 시도한 것이 아닌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퍽!
다행히 존이 두 번째 총알을 발사하기 전, 대호의 돌려차기가 먼저 머리를 가격했다.
털썩!
척!
거구의 대호가 찬 발차기를 맞은 존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대호도 얼른 복도 바닥에 착지하고, 쓰러진 존의 위로 올라가 떨어진 총을 멀리 치우고 양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좀 도와줘!”
총격범의 양팔을 뒤로 꺾고 제압한 대호는 얼른 교실 안에 대고 소리쳤다.
웅성웅성!
대호의 고함에 그제야 교실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학생을 보며 다시 한번 대호가 소리쳤다.
“어서 묶을 것 좀!”
“네, 알겠습니다!”
대호의 호통에 고개를 내밀었던 학생은 그제야 대답을 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란이 있고 잠시 후, 조금 전 그 학생이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끈이 없어 전기선을 끊어 왔어요.”
학생이 내민 것은 끈이 아닌 전깃줄이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학생은 묶을 끈이 없자 빠르게 끈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전깃줄을 잘라 온 것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애애애앵! 애애애앵!
삐용! 삐용!
경찰차와 엠뷸런스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였다.
* * *
“미쳤어!”
모든 이야기를 들은 한나는 얼굴이 붉게 물들며 고함을 질렀다.
이곳이 병원이란 것도 잊을 정도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가 나 자신을 향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아내를 향해 대호는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이란 말을 되뇌었다.
“그러다 정말로 총에 맞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자기…….”
한나는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며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소리를 질렀다.
“응, 미안!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대호는 자신을 걱정하며 화를 내고 있는 아내를 보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또다시 같은 일이 눈앞에 반복이 된다면, 대호는 그때도 오늘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뭔가 계산을 하고 말고 할 것 없이 대호가 지니고 있는 성향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오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어린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서 발생한 일이지 않은가?
만약 그때 자신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사상자가 났을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불과 몇 분 사이 사상자가 물경 열 명이나 발생했다.
크고 작은 상처는 물론이고 불행하게도 사망자도 세 명이나 나왔다.
첫 희생자는 수업하던 선생이었고, 두 번째 희생자는 반장, 그리고 마지막 희생자는 축구부 주장이었다.
세 사람은 정면으로 총격을 받은 바람에 피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그리고 다른 피해자는 그들 주변에 있던 학생들로, 산탄의 유효범위 안에 있었기에 부상당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산탄의 위력이 약했기에 몇 개의 파편만 제거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작은 흉터는 남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것도 대호가 빠르게 범인을 유인하고 제압한 덕분에 피해가 줄어든 것이지, 그대로 시간이 지나갔다면 얼마나 더 많은 어린 학생들이 희생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한나가 남편의 사고에 병원에서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이번 총격 사건으로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
* * *
「미국 총기 자유화 이대로 좋은가?
오늘 오전 9시 20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케슬몬 하이스쿨에서 또 한 번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케슬몬 하이스쿨에 재학 중인 존 스트라볼트(17세)로, 첫 번째 희생자는 작문과 문법을 담당하는 앤드류 헤밀턴(42세)였습니다. 학생 희생자는 두 명으로 각각 가해자가 소속된 반의 반장인 마이클 컬쳐(17세)와 축구부 주장 패리 매튜슨(17세)이었습니다. 이 중 패리 매튜슨은 평소 피고를 무시하고 <중략> 이로써 이번 2033년 들어 오늘까지 세 번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사망 15명, 부상 98명이 발생했습니다. 매년 끊이지 않는 총기 사고로 수백 명이 죽거나 부상 후유증으로 장애를 갖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때, 아직도 총기 협회의 로비를 받은 의회로 인해 총기 규제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상태입니다.
오클랜드 헤럴드 소속 기자 사무엘 존스」
「총기 사고 속 히어로의 활약!
금일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케슬몬 하이스쿨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케슬몬 하이스쿨에 재학 중인 존 스트라볼트(17세). 그는 평소에도 총과 화약, 그리고 사냥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학업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자신들이 죽어야 한다며 아무렇지 않게 선생님과 친구들을 향해 총을 쐈다고 한다. 그렇게 세 명의 사망자와 10여 명의 부상자가 나온 이번 총격 사건은 우리의 영웅, 팬들에게 인크레더블, 빅 타이거라 불리는 사우스 코리아 출신 메이저리거 대호 정(22세)에 의해 제압되었습니다. 대호 정은 오늘 오전,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으로 출근을 하던 중 범인이 학교 안으로 총을 들고 들어가는 것을 최초로 목격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따라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잠시 911에 신고를 하는 사이 희생자가 발생하였지만, 극적으로 제압을 하고 범인이 쏜 총에 부상당했다.
울프TV 소속 기자 에드워드 미켈」
인조인간18호 : 와 씨! 정대호 이 새X 지가 무슨 인조인간이야? 총을 든 미친놈에게 달려들어!
⤷새끼라뇨!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분에게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가 있죠?
⤷그러게 위에 글 쓴 놈은 머릿속에 뇌가 아닌 우동 사리가 들어 있나 봄.
⤷하하하! 머릿속에 뇌가 아니라 우동 사리래. ㅋㅋㅋ!
대호사랑나라사랑 : 지금 장난칠 때냐? 우리 대호가 부상을 당했다는데!
대호 마누라 : 그러게 말이에요. 대호야! 제발 몸좀 사리자!
천하무적정대호 : 미친, 놀래라! 정대호, 무슨 깡으로 총 든 미친놈 앞으로 뛰어든 거래? 아무리 학생들 위해서라지만, 그래도 이젠 네 몸은 너 하나의 것이 아니다. 대호야! 자중 좀 하자! 제발!
대호의 소식이 TV와 신문,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슈퍼스타의 희생정신에 대한 칭찬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강타자이자, 경기 중 수많은 슈퍼 플레이를 펼치며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하는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 바로 그였다.
엄청난 활약을 통해 한 해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대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총기 난사범으로부터 학생들을 구하고 부상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대호 같은 슈퍼스타가 자기 연봉의 아주 적은 비율만 사용해 기부하더라도 충분히 칭송을 받는데, 대호는 평소에도 기부 천사로 이름 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학생들을 구하자, 당연히 칭송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다만 그가 속한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부인인 한나는 이런 분위기에도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또 이들뿐만 아니라 에이전트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대호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