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71화 (171/209)

171화

‘아니야!

마운드 위에서 투구를 준비하는 투수를 노려보던 대호는 문득 이대로 끝내는 것은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뭔가 일을 벌이고 마무리를 시원치 않게 처리한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나 자신이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나가기 전,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코칭스태프들이 보여 주었던 추태는 잊을 수가 없었다.

‘맞아! 포수가 사인을 보냈다고 투수가 무턱대고 공을 던졌을 리 없어.’

생각해 보면 야구란 것은 일반 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하지 못했다.

아마 야구는 물론이고 프로야구도, 또 모든 야구인들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이곳 메이저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큰돈이 오가는 메이저리그이기에 더욱 순수하지 못하다 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 보니, 두 번째 타석에서 자신이 몸에 공을 맞은 것도 어쩌면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코칭스태프들이 어제 대패한 이후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뭐,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사건이 있은 뒤 그들의 반응을 보면 내가 배려할 여지는 없어.’

자신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투수가 던진 공에 맞은 피해자다.

그러니 그런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일사천리로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아!’

생각을 정리한 대호는 투수를 맞추는 것만으로 복수를 끝내긴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연속 파울로 볼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인 상황.

하지만 대호는 커트를 잘할 수 있게 배트를 짧게 잡았다.

어떤 공이 날아와도 충분히 반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탁!

조금 전까진 홈 플레이트 뒤쪽에 있는 포수를 맞추기 위해 톱볼을 만들어 내며 날아오는 공의 윗부분을 때렸다면, 이번에는 스윙을 조금 늦게 가져가 1루 더그아웃 쪽으로 파울볼이 날아가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우왁!”

느닷없이 자신들 쪽으로 파울볼이 날아들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더그아웃 앞 펜스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이라면 날아든 파울볼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파울볼 테러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더그아웃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런데 파울볼 테러는 그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딱!

“우악!”

불행하게도 이번 파울 타구에는 희생자가 나왔다.

불운한 희생자는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3번 타자 브랜튼 크로포드였다.

서른네 살의 나이로 스물두 살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에 1라운드 픽으로 계약금 350만 달러에 계약하고 입단했다.

또 불과 2년 만인 스물네 살에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었다.

그렇게 20대 초중반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에 콜업 된 뒤, 1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우익수 자리에서 외야의 벽으로써 자리했다.

또 10년간 348개의 홈런을 때리며,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다.

오늘은 인터리그이고, 또 아메리칸리그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인 뉴슬랙스 볼파크에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아메리칸리그 룰로 경기를 하다 보니 지명타자로 수비를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코칭스태프들이 그의 나이를 생각해 지명타자로 타순에 넣은 것 때문에 수비 라운드에 더그아웃에 있다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더그아웃 벽에 부딪히며 도탄이 되어 날아온 덕택에 큰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바로 경기에 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더그아웃에서 비상이 걸리고 경기가 중단되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대호의 눈에는 생각지도 않은 효과로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이 정도면 뭐 괜찮네.’

파울 타구에 맞은 브랜튼 크로포드가 의료진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본 대호는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았다.

경기가 재개되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대호가 몸에 맞는 볼을 보았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의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파울 타구에 맞아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우우우우!”

오클랜드 팬들이 브랜튼이 부상을 당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에 환호하는 것에 화가 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호는 이번에는 투수를 노려보았다.

‘휴우!’

화가 어느 정도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대호는 이젠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따악!

복수의 마무리는 투수 앞 강습 타구였다.

“윽!”

투구를 하고 아직 중심을 잡기도 전,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강습 타구에 란슬럿 백은 급히 글러브를 끼고 있는 왼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갔지만, 살짝 늦고 말았다.

퍽!

마운드 앞 그라운드에 바운드 된 타구로 인해 타구의 높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상태다 보니, 대호가 때린 타구는 얼굴을 가린 왼손 밑으로 빠져나와 란슬럿 백의 턱밑을 맞혔다.

또다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에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인플레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다다다.

스윙을 하고 1루로 뛰 대호가 1루에 도착을 하자, 그제야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타임!”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키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더그아웃에선 급히 감독과 코치, 그리고 의료진이 마운드 위로 올라가 쓰러진 투수를 살폈다.

결과적으로 강습 타구에 맞고 기절한 란슬럿 백은 그대로 의료진과 함께 병원으로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경기장을 떠났고, 급하게 불펜이 가동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6회에 급격히 무너져 버렸다.

팽팽한 투수전처럼 진행이 되던 때, 갑자기 마운드 위에 있던 투수가 강습 타구에 맞아 물러나면서 준비도 되지 않은 불펜이 마운드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공격의 중심인 프랜차이즈 스타와 잘 던지던 선발투수가 둘 다 공에 맞아 전력에서 이탈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는 결국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6회에만 9점을 내주며 주저앉았다.

이로써 인터리그 두 번째 경기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오클랜드 슬랙스는 원정 마지막 경기에서 휴스턴 스트로스에 1패를 한 뒤 다시 연승을 이어 갔다.

* * *

인터리그 세 번째 경기,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출전 명단에 변화가 있었다.

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브랜튼이 출전 명단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10―day IL(10일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전력에서 빠졌다.

그 대체로 40인 로스터에 있는 선수가 오기는 했지만, 브랜튼의 부재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전력은 3분의 1가량 줄어 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리그 1, 2차전까지 뉴슬랙스 볼파크의 관중석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저지를 입고 있던 팬들이 오늘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오클랜드 슬랙스 저지를 입은 팬과 태극기를 들고 대호를 응원하기 위해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한국 교포들로 들어찼다.

“와아아아!”

“대호! 대호!”

어제 힛 바이 피치를 당한 대호를 응원하는 구호가 게임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경기장 안을 울렸다.

이런 팬들의 응원은 몸에 맞는 볼에 대한 위로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게 직접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에게 복수를 한 것 같은 상황을 만든 대호의 활약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응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와, 오늘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참으로 많군요.”

김승주는 경기장에 휘날리는 태극기의 물결에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지르며 중얼거렸다.

“아마 1, 2차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원정을 온 타이탄즈 팬들로 인해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어제 경기 이후 절반 정도나 빠진 타이탄즈의 팬들로 인해 티켓의 여유가 생겨 그런 듯합니다.”

하구연 해설은 야구와 특별히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중얼거림에도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그런 하구연 해설의 말에 모니터 한쪽에선 간단한 인터넷 기호가 빠르게 올라갔다.

“아니 뭘 그런 것까지 설명을 하십니까?”

“아!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뭘 그런 것까지 설명하냐는 김승주의 말에 하구연은 멋쩍은 듯 웃어버렸다.

“그나저나 어제 있었던 사고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브랜튼 크로포드 선수가 10일짜리 부상자명단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예.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오클랜드 슬랙스는 오늘 인터리그 3차전을 치르는데 조금 유리한 지점을 차지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활약하는 오클랜드가 경기에 유리해진 것에 대해 하구연은 기분이 좋은지 무척이나 밝은 표정으로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어제 위원님께서 6회에 경기가 재미있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설마…….”

김승주는 어제 3회 말 대호가 타석에서 힛 바이 피치가 되었을 때,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하구연 해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뭐, 100% 확신한 것은 아니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러니까 지금 말씀은 순전히 감만으로 그러한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까?”

집요하게 물어보는 김승주의 질문에 하구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 고민을 하는 듯 멍하니 멈춰 있다가 생각을 정리한 것인지 이야기를 풀었다.

“정대호 선수가 고등하고 시절, 그러니까 청소년 대표로 세계 청소년 야구 대회 18세 경기에 출전했을 당시에도 비슷했습니다. 또한 마이너 시절에도 흡사한 상황이 있었고, 어제도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다 보니…….”

하구연 해설은 대호가 청소년 대표일 때의 일본과의 사건과 더블A, 그리고 트리플A에서 있었던 사건까지 언급을 하며 어제 있었던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그런 하구연의 말을 모두 듣고 난 김승주는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그게 의도된 일었다면, 정대호 선수의 타격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입니까? 허허허!”

김승주는 샌프란시스코의 포수 페레즈의 부상이나 더그아웃에 있던 브랜튼,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강습 타구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간 란슬럿 밴의 부상이 모두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 때문에 현재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브랜튼은 물론이고, 주전 포수인 페레즈와 4선발 란슬럿 백이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다.

그나마 4선발인 란슬럿 백이나 포수인 페레즈의 경우 대체가 가능했지만, 브랜튼의 경우 정말로 그가 돌아올 때까지 전력 누수가 불가피했다.

그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경우 이번 인터리그 이후 경기 운영에 크나큰 차질이 불가피했다.

이제 시즌이 시작 된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전력 중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브랜튼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였으니,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는 지구 우승을 위한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했다.

실제로 그 일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들은 난리가 났다.

뒤늦게 대호가 이번과 같은 일에 어떻게 상대를 보복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힛 바이 피치를 당했다고 보복구를 던진 투수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는지 뒤늦게 알려지면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프런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한탄을 했다.

사실 이들은 종종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종종 상대 선수를 도발해 팀을 뭉치게 한다거나 아니면 상대 팀의 중요 선수를 경기장 밖으로 몰아내는 방법을 사용했었다.

이는 구단 상층부에서부터 선수단까지 전략의 한 방법으로 상용하였기에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선수들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더그아웃에서 상대 선수에 대한 테러 지시를 받더라도 기계적으로 따랐다.

그리고 그 일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면, 또 코칭스태프의 지시대로 목표를 정하고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대호는 그들보다 더 기술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도발한 선수나 팀에게 보복하였다.

다시는 감히 자신과 자신의 동료에게 그러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코칭스태프들은 포수인 페레즈가 임의적으로 판단해 그런 일을 벌였을 때도 오히려 그의 편에 서서 두둔을 했다.

그 결과 주전 포수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구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10일 부상자 명단에 올라 트리플A로 떠났다.

그리고 대호를 맞췄던 투수도 최소 한 경기는 선발 사이클을 넘겨야 할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

참으로 손해가 많은 판단이 아닐 수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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