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대호의 결혼식은 성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만약 결혼식을 치를 장소가 한국이었다면, 그 명성 때문이라도 무척이나 크고 화려하게 치러졌겠지만 일부러 고국이 아닌 이곳 미국에서 결혼식을 하는 관계로 비교적 간소하게 치를 수 있었다.
신랑인 대호의 손님으로는 오클랜드 슬랙스에 소속되어 있는 친한 동료들과 단장인 조엘, 비서 크리스, 그리고 대호를 스카우트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조나단이 참석했다.
또 현재 팀 동료는 아니지만 LA다윈스로 트레이드 된 아론이 대호가 초청한 신랑 측 인사로 참석했다.
물론 대호의 부모님과 누나 정미호가 참석을 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예상외의 손님으로는 대호의 누나인 미호가 속한 아이돌 그룹 N―AGE 멤버들이 있었다.
‘쟤들도 왔네. 누나가 초대한 건가?
솔직히 대호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역사이지만, 대호와 N―AGE 멤버들 사이에서는 인연, 혹은 악연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은 사실이 있었다.
대호는 2회차와 3회차, N―AGE 멤버와 결혼을 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결혼 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도 않았기에 굳이 이번 생에서는 누나로 인해 얽히는 것을 제외하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누나 미호의 가장 친한 직장 동료라는 것을 간과했다.
신랑 측 축가를 N―AGE에서 부르기로 했다는데, 딱히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대호 입장에서 조금 꺼림칙한 일이긴 했지만, 시즌 초 대호가 자신의 테마곡으로 그룹의 곡을 써 준 은혜를 잊지 않고, 또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 된 것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대호는 N―AGE 멤버들이 부르는 축가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
한편 신부인 한나의 하객으로는 그녀의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와 친척, 그리고 대호와 마찬가지로 직장 동료 몇 명이 참석을 하였다.
이날 한나의 하객들은 뜻하지 않게 많은 스포츠 스타를 보게 되면서 스타들의 사인을 받아가는 진풍경을 이뤘다.
특히나 아이들의 경우 자신들이 응원하는 구단의 스타는 아니지만, 메이저리거의 사인 볼을 받는 것은 큰 자랑거리였으니 더더욱 좋아했다.
* * *
따아악!
타석에 선 대호가 친 타구는 호쾌한 타격음을 울리고 대기를 가르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타구가 외야 펜스를 넘기고 장외로 멀리 뻗자 심판의 홈런 콜이 들렸다.
“홈런!”
심판의 홈런 콜이 들림과 동시에 커다란 폭죽이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팡! 팡! 팡! 팡!
자신의 타구가 경기장을 벗어나자 대호는 과자 봉지를 한 손에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전 매일 경기에서 홈런을 기대하며 홈런 슈! 초코볼을 먹습니다.”
대호가 그렇게 초코 과자를 들고 소리치자, 야구 경기장 한쪽에서 이제는 결혼을 하여 한나 정이 된 한나가 조금 전 대호가 들고 있던 초코 과자를 상자째 자신의 앞에 쌓아 두고 소리쳤다.
“자기야! 여기 많이 준비했어! 대호 홈런 슈 초코볼!”
“컷! OK!"
광고 감독의 컷 사인이 들리자마자 조금 전 대호를 향해 감동적인 내조를 보여 주던 한나는 얼굴이 활화산처럼 붉어지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모습에 타석에서 과자 봉지를 들고 있던 대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던지고는 주저앉은 한나에게 뛰어갔다.
“한나! 괜찮아?”
하지만 대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던 한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대호! 설마… 다음 광고도 이런 식으로 찍는 건 아니겠지?”
갑작스런 한나의 물음에 대호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스포츠 스타를 활용하며 찍는 광고 내용이란 대부분 뻔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 혹은 활동하고 있는 스포츠의 특징을 이용한 것들.
방금 찍은 초코볼 광고와 대동소이하다는 게 업계의 규칙, 혹은 관행처럼 되어 있기에 대호로서도 어떠한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게… 그래도 출연료를 많이 주잖아?”
“뭐야, 그럼…….”
“이럴 때 아니면 우리가 언제 돈을 벌겠어? 한나, 조금만 참자! 몇 개 안 남았어!”
대호는 점점 눈꼬리가 올라가는 한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무도 가까이 붙어 있다 보니, 그런 대호의 말을 듣고 곧바로 대꾸한 한나의 고함 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이런 내용인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출연한다고 하지도 않았어!”
미국과는 다른 감성, 그리고 20대 후반인 한나에게 한국의 광고 내용은 맨정신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사인을 해 버린걸.”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대호는 그녀의 곁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야!”
“하하하, 들었어?”
“그럼 이렇게 가까이서 하는 말을 듣지 못했을까봐?”
“미안! 그래도 재미는 있잖아?”
그렇게 대호는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한나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한편 촬영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를 돌려 보던 관계자들은 한 쪽에서 투닥거리며 사랑싸움을 하고 있는 대호 부부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연상 연하 커플로 유명한 두 사람을 보면서 전혀 나이에 대한 갭을 찾아 볼 수 없고, 또 친구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행복함이 전해졌기에 절로 미소 짓게 되었다.
그리고 대호의 예상대로 남은 광고 촬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유치하기로는 방금 전 초코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 * *
초코 과자 광고를 비롯한 라면 회사 광고, 심지어 아이스크림 광고까지 세 개의 광고를 연달아 촬영하며 남의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달은 대호와 한나는 짧은 신혼여행을 즐기고 긴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올림픽을 끝내자마자 12월로 신청한 대호의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한 4주간의 군사교육 입교 때문이었다.
게다가 군사교육이 끝나더라도 곧바로 본격적인 2033시즌 준비에 들어가야 하기에 대호와 한나 부부는 같이 있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메이저리거인 대호가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야구 리포터인 한나 역시도 시즌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신혼부부이면서도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몸조심해야 돼.”
두 눈에 눈물이 글썽한 한나는 군부대 앞에서 헤어지기 전, 당부를 하였다.
사실 부대 안까지 들어가도 되지만, 어차피 조금 더 지켜보다 헤어지나 부대 앞에서 미리 헤어지나 똑같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인사를 한 것이었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앞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치 영화를 찍는 듯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웅성웅성!
“저기 메이저리거 정대호 아냐?”
“맞는 것 같아. 그 옆에는 얼마 전 결혼한 신부인가?”
부대 앞에서 이별을 하는 두 사람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기자들은 오늘 정대호가 입대하는 것 모르나?”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인원들도 하나같이 의문호를 머리 위에 띄우며 주변을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기본 군사훈련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됐든 메이저리거가 군복을 입고 들어가는 장면 아닌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기자와 방송국 카메라로 훈련소 앞이 꽉 차야 했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모두 모두 대호가 속한 에이전트 제리&맥콰이어와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가 합작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가뜩이나 결혼과 군 문제로 인해 다음 시즌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데, 기자들에게 시달리게 하는 것은 대호의 멘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내린 뒤 언론에 엄중 경고를 했던 것이다.
물론 언론을 상대로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에이전트와 프런트는 당근과 채찍을 매우 절묘하게 사용하였다.
자신들의 요구에 협조해 준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도 한 번 들어주겠다는 협상안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이들이 당당하게 언론과의 협상을 할 수 있었던 바탕은 2033시즌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리거가 대호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오승원은 나이 때문에 더 이상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KBO로 복귀하였다.
또 다른 메이저리거였던 김영현은 올림픽 출전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2033시즌이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 있는 유망주들은 언제 메이저리그로 콜업 될지 모르는 상태이기에 내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거란 확정은 없었다.
즉, 현재 메이저리거로 확정된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는 대호 혼자였다.
그 때문에 이런 협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대호는 한나와 편안하게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어서 들어가.”
대호는 부대 입구에서 뒤를 돌아 한나를 보며 소리쳤다.
“어딜 들어가긴? 자기가 들어가야지.”
들어가라는 대호의 말에 한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그렇게 소리쳤다.
“하하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나가 짐짓 모르는 척 그렇게 대답을 하자, 대호는 그만 웃어 버렸다.
대호의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한나도 빙그레 웃었다.
‘같이 오래 있고 싶어서 결혼을 했는데, 이게 뭐야!’
그랬다.
연애 때는 각자 활동하는 영역이 달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긴 연애 기간을 뛰어넘어 결혼했음에도 또다시 헤어지자 너무나 슬픈 것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인 대호가 아직 병역 미필이라는 것을 들었고, 각오를 했음에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었다.
덥썩!
뭔가 울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나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한나!”
쪽!
자신과 떨어지는 것을 슬퍼하는 한나를 보며 대호는 그녀를 두 팔로 안고 키스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작게 귓속말을 하였다.
“조금만 참아 줘.”
대호가 그렇게 가벼운 포옹과 함께 키스를 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쳤다.
“남자다, 정대호!”
“정대호! 멋있다!”
이날 입대하는 사람들 모두 대호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기에 좋은 호응을 보내 주었다.
* *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주간의 군사교육 훈련을 마친 대호는 수료식을 마치고 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미 다른 선수들보다 몸을 만드는 기간이 늦어진 만큼,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4주간 군사교육을 받는 기간에 부대 관계자들의 양해를 받아 틈틈이 훈련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지, 결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메이저리거로써의 훈련은 아니었다.
‘2033시즌에는 결코 작년 후반기처럼 체력이 방전되는 일이 없어야 해.’
대호도 훈련에 앞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 체력과 내구력을 향상시키는 것.
또한 기초 체력과 내구력의 향상을 위해선 운동보다 중요한 게 없었다.
이를 위해 대호는 군사교육을 치르기 전, 에이전트에 요청하여 자신의 운동을 도와줄 수 있는 인스트럭터를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리 대호가 4회차 인생을 살아가는 메이저리거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낼 수는 없었다.
그저 경험을 토대로 비슷하게 준비할 수만 있을 뿐.
명예의 전당을 위한 가장 최적의 준비를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할 필요성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기에 계약되지 않은 인스트럭터 한 명 있어서 계약할 수 있었다.
대호는 처음에 계약금이 조금 높지 않나 생각했지만, 누구인지를 듣고 나서 그 정도의 유명세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나, 도착했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건 상대는 부모님도 아니고 한 달 전 잠시 헤어진 한나였다.
이제는 엄연히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기에 자신의 행적을 부인인 한나에게 알린 것이다.
“응. 아무 이상 없이 훈련 잘 마쳤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시간 나면 또 연락할게.”
안부와 자신의 현황을 알린 대호는 한나와 통화를 마치고 바로 애리조나로 떠났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