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따아악!
잘 맞은 타구가 센터 방면 외야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와아아아!”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주장, 홈런 브레드가 친 타구가 외야 깊은 곳까지 날아가자 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대호의 시선은 차게 식어 있었다.
잘 맞은 타구처럼 보이지만 그의 눈에는 결과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필…….’
홈런 브레드가 친 타구는 얼핏 잘 맞은 타구처럼 보였지만, 하필이면 운이 없게도 중견수 정면으로 날아가 버렸다.
더군다나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중견수는 장타를 대비해 센터 방면 깊은 곳에서 수비를 하고 있는 상황.
타다다다!
워닝 트랙을 지나 펜스까지 달리던 중견수 라이언 그린은 타구를 쳐다보며 가늠을 하고 점프를 하였다.
턱!
홈런 브레드가 친 타구는 안타깝게도 점프한 라이언 그린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웃! 게임 셋!”
라이언 그린의 기가 막힌 펜스 플레이로 인해 홈런 브레드의 타구는 펜스 앞에서 막혀 버렸다.
그리고 9회 말 8:7로 뒤지고 있던 스코어, 2사 2루의 상황에서 역전 홈런이 아닌 외야 플라이로 타구가 잡히면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이 끝났다.
세트 스코어는 4:2.
디트로이트 라이온스가 오클랜드 슬랙스를 상대로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을 가져감으로써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가져갔다.
비록 원정 경기였지만, 경기에 승리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는 승리에 환호하며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을 만끽했다.
“아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을 디트로이트 라이온스가 가져감으로써 리그 우승을 가져가는군요. 오클랜드의 가을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경기 중계를 하던 김승주는 아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되었든 메이저리그에서 몇 없는 한국 출신 메이저리거가 몸담고 있는 구단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와 대결을 하던 오클랜드 슬랙스이지 않은가.
그것도 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 중 한 명이 소속된 구단이었기에 아쉬움이 더했다.
오늘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을 가져갔다면, 어쩌면 1차전에서 부상당했던 대호가 깜짝 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2032시즌 아메리칸리그 우승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월드 시리즈의 남은 한 자리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구연 해설 위원도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멘트를 받았다.
한편 홈런 브레드의 타구가 잡히는 모습을 확인한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더그아웃을 나갔다.
자신이 친 타구가 잡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주장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시즌에는 너무 무리한 경향이 없지 않았어.’
더그아웃을 걸어 나가며 올 시즌에 대한 복기를 한 대호는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너무 앞만 보고 무대포로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2033시즌에는 어떻게 한 해를 보내야 할지 궁리할 필요성을 느끼며 말이다.
* * *
2032시즌이 끝났다.
아니, 월드 시리즈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한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인 대호에게는 시즌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대호에게 이번 2032년에 남은 중요한 일은, 20여 일 뒤에 있을 결혼식과 병역 문제뿐이었다.
결혼식이야 특별한 이상이 없는 이상 계획대로 치러질 것이고, 병역 문제 또한 9월에 있었던 올림픽 금메달로 인해 해결되었다.
물론 4주간 군사 훈련을 받아야 확실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만 이 또한 결혼식이 끝나고 2주 뒤에 입대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어, 그 사이 신혼여행과 계약된 광고 촬영까지 시즌이 끝나도 대호의 스케줄은 빡빡했다.
다만 작년과 다른 점이라면, 시즌이 끝나고 바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것과 다르게 군사교육이 끝나고 난 뒤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정대호!”
이른 아침 뾰족한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이른 아침부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소란이야?”
새벽 훈련을 위해 헬스장을 다녀온 자신을 보며 고함을 치는 누나 미호를 보며 대호는 무슨 일이냐는 투로 물었다.
하지만 그런 대호의 반응에 미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오늘 하루 바쁘다고 했는데, 그새 잊어버린 거야?”
연예인인 미호였지만, 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연말 스케줄을 모두 줄이고 미국에 와 있었다.
그동안 결혼 준비를 모두 신부에게 미뤄 두고 자신은 야구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라도 결혼 후 올케가 될 한나에게 동생이 잡혀 살진 않을까 걱정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미호는 부모님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 결혼 준비를 돕기로 하였다.
애타는 누나의 마음도 알지 못하고, 대호는 좀처럼 협조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루틴대로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가벼운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오전 운동을 하는 등 평상시처럼 보내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네 결혼식에 입을 턱시도와 올케 웨딩드레스 보러 가기로 했잖아!”
“아!”
대호는 무엇 때문에 누나가 이렇게 아침부터 보채는 것인지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미안!”
간단하게 사과를 하고는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한나를 통해 계약한 LA에 있는 고급 맨션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대호는 오클랜드의 숙소에 있지 않고, 결혼 준비를 하기 위해 이곳 LA에 와 있었다.
더욱이 결혼식을 치를 장소는 갈 때마다 느낌이 좋았던 샹그릴라 호텔로 정했기에 굳이 오클랜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 * *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카메라 촬영하는 셔터 소리와 카메라 불빛이 번쩍였다.
2032년 11월 23일.
오늘은 메이저리그의 스타인 대호의 결혼식이 있어, 이곳 샹그릴라 호텔 로비는 많은 스포츠 연예부 기자들로 만원이었다.
이중에는 대호의 결혼식을 취재하기 위해 멀고 먼 한국에서 날아온 방송과 신문 기자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평상시처럼 촬영하지 못하고 어느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조심스럽게 질서를 지키며 사진을 찍었다.
“미스터 빅 타이거! 결혼하는데, 소감이 어때요?”
기자들 속에서 누군가 대호를 부르며 결혼 소감을 물었다.
그런 기자의 질문에 주변에 울리던 셔터 누르는 소리도 멈췄다.
“하하! 당연히 기쁘죠.”
대호는 별것 아니란 투로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정말로 그 표정만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에 흠뻑 빠진 새신랑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서 짓궂은 질문이 나왔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 했는데, 굳이 20대 초반에 뛰어들 결심을 한 이유가 있습니까?”
“하하하하! 인생의 무덤이라뇨. 한나와의 결혼은 무덤으로 가는 게 아니라 요람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기자가 던진 농담에 대호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다만 대호의 농담을 알아들은 이는 많지 않았다.
아니, 그의 옆에 서 있던 한나는 대호의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을 붉게 상기시킨 채 대호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190㎝가 넘는 커다란 키를 가진 대호에게 안겨 가슴을 두드리는 한나의 모습은 마치 작고 귀여운 소녀가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신부인 한나도 180㎝나 되는 큰 키였다.
신랑과 신부 모두 키가 훤칠하다 보니,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어린 아들이 20대 초반에 벌써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호의 부모님은 만감이 교차했다.
사업 실패로 인해 야구 선수로 성공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던 아들이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자신들을 위해 가게도 마련해 주었고 말이다.
남들은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아들 잘 두었다고 말하지만, 대호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로서 제대로 해 주지 못해 마냥 미안할 뿐.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을 겉으로 표하지는 않았다.
미안함을 보이는 걸 아들인 대호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부모님이 대호와 새신부인 한나를 지켜보고 있을 때, 결혼식 하객이 하나 둘 도착했다.
“헤이, 대호! 결혼 축하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브렛이었다.
하이 싱글A에서 만나 더블A를 거쳐 인연을 맺어 온 브렛은 9월 확장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한번 대호와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브렛! 와 줘서 고마워!”
“무슨, 당연히 네 결혼식에 와야지.”
브렛은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호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대호! 결혼 축하한다.”
브렛에 이어 두 번째로 대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도착한 이는 작년 이맘때, LA다윈스로 트레이드 된 아론 헤들러였다.
대호와는 2031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인연과 더블A로 승격되었을 때 친하게 지낸 내야수다.
비록 LA다윈스로 투수인 라이언 헤밀턴과 1:1 트레이드가 되었지만, 그 뒤로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결혼식에 초청했다.
“아론! 와 줘서 고마워!”
한국과 다른 결혼 문화를 가진 미국이었기에, 사실 결혼식에 초대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호의 결혼식 초대를 받은 아론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그리고 더블A와 트리플A에 함께 콜업 되고, 잠깐이지만 오클랜드에서 함께 메이저리그 생활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메이저리거들이 동료라고 결혼식에 초대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아론은 처음 대호가 자신을 결혼식에 초대했을 때 놀랐다.
아니, 사실 LA로 트레이드 되었을 때 그와 인연이 끝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후로도 연락하고 잠시 부상으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을 때 고민 상담까지 해 주던 대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해 준 것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호가 자신을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고마움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결혼식을 찾은 것이다.
“내년에는 다시 LA다윈스의 주전으로 돌아와야지?”
부상 때문에 후반기에 트리플A로 내려간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이지. 이르긴 하지만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간 참이야.”
아론은 대호의 말에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와! 벌써 내년을 준비한다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브렛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기어들며 물었다.
“그래. 대호의 소개로 에이전트도 바꾸고, 에이전트가 소개해 준 인스트럭터의 도움을 받기로 했거든.”
“그래?”
브렛은 아론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LA다윈스 소속인 아론이 후반기 시합 중 얻은 부상 때문에 마이너로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부상 회복을 하고 내년을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는 말에 긴장했다.
비록 LA다윈스와 오클랜드 슬랙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로 다른 구단, 다른 리그에 속해 있지만 아론과 자신은 같은 2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경쟁의식이 없지 않기에 벌써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는 말에 브렛은 자신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후후, 브렛이 아론에게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군!’
긴장한 표정으로 아론을 쳐다보는 브렛의 모습에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과 친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브렛은 자신과 같은 팀원이지 않은가.
친구이긴 하지만 경쟁의식을 가지고 긴장을 하는 브렛의 모습에 대호는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같은 팀이고, 보다 오랜 기간 함께 했던 브렛이다 보니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부터 정대호 군과 한나 포커스 양의 결혼식이 시작되겠습니다. 하객들께선 얼른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축하객들의 축하 인사를 받고 이야기를 하던 중, 어느새 결혼식을 치를 시간이 되었고 사회를 맡은 사회자의 안내가 들렸다.
그러자 샹그릴라 호텔 결혼식 회장은 엄숙한 분위기를 내며 조용해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